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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은 살아있고, 다시 오셨군요!'' "Yes"-M:“Yes, yes, I am still alive!”
-재집권한 Dr 마하티르의 정치여정과 철학
노종해  |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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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5월 11일 (금) 23:09:50
최종편집 : 2018년 05월 16일 (수) 16:02:13 [조회수 : 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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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종 해 목사 (말레이시아 선교사)

   
▲ 14차 총선거 승리의 Dr 마하티르

 

2018년5월10일 오전 2시45분, 말레이시아 제14차 총선거에서 야당연합인 ''국민희망 ''(Pakatan Hadapan,PH)이 승리함으로 Dr 마하티르 전 수상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마하티르 박사(의사)는기자들의 질문에 “Yes, yes, I am still alive,”라 답하며, ''승리를 확신했다. 정치 보복은 없다''고 힘차게 말했다.

Dr 마하티르는 1981년에 수상이 되어 2003년가지 22년동안 장기집권하고 수상직을내려놓앗는데 재 집권에 성공하여, ''노장은 살아 있다''를 되색이게해 주었다. 그는 부정부패로 추락하는 국가 경제와 국민고통을 참지 못하고, 2018년 5월 9일제14차 총선거에 도전하여 압도적승리로 재 집권한 것이다.

그는 수상 재직 당시 유력한 경쟁자로 부각되던 부수상 안와르 이브라힘을 남색혐의로 투옥시키고 수상직을 이어왓는데, 안와르 지지자들과 그의 처가 앞장서 조직한 야당 ''국인공정당''(Keadilan, PKR)과 손잡고 "국민 희망연대"(PH) 결성하여 총선승리를 이끌고 재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Dr 마하티르 수상은 자신의 정치여정과 철학을 국가 발전 정책을 밝히는 "아시아를 위한 새로운 정책"(A Deal For Asia)이란 책(99.5.25.)에서 밝힌바 있다. 마하티르의 주장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아시아 가치"를 중심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선진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마하티르는 1925년 말레이시아 서북부 알로 세타(Alor Setar)시의 중하층 가정에서 10 형제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교사였으며 후에 회계 공무원으로 근무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성장하였으나 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마하티르는 어린 시절을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 받은 행운아였다고 술회하며, 가정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코란을 읽는 법과 이슬람 신앙에 대해서 배웠으며, 아버지는 열광적인 신앙인은 아니지만 깊은 무슬림 신앙을 가진 분으로 형제들이 서로 다른 관심을 같도록 가르쳐 자신에게는 특별히 수학을 가르쳤으며, 부모를 공경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 것을 교육 받았으나 정치나 국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술회하였다.

마하티르는 청소년 시절까지 말레이어와 영어로 공부하는 학교에 다니며 장래에 대해 큰 야망도 없었다. 그 자신을 볼 때 왕족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며 명망 있는 가정도 아닌 신분으로 국가 공무원으로 일하는 것이 큰 꿈이었고, 그것도 가능하리라 여기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는 영국 식민 통치하에서 교육 받으며 성장하여 유럽은 아시아보다 우수함으로 그들의 지도를 받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분위기에 아무 의심도 없이 성장하였다. 1941년 일본이 침략해 왔고, 영국이 물러가면서 작은 일본학교애서 일본어 교육을 받았지만 이때까지도 빨리 영국이 다시 들어와 영어 교육 받는 것이 좋다고 여겼으며 국가 독립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본 통치를 약 3년 겪으면서 말레이시아가 영국의 지배 아래서 독립할 수 없다는 생각이 변하기 시작 했고, 나아가서는 천성적으로 유럽인들이 우수하고(Superior) 아시아는 열등(Inferior)하다는 생각이 유럽인들의 교육과 위협 때문인 것을 알았다. 일본인들도 아시아인인데 저들이 유럽인들을 물리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변한 것이다.

전후, 영국은 다시 들어와 "말라얀 연합체"(Malayan Union)를 세워 식민 통치가 아닌 국가 자문(Adviser)과 보호령(Protectorate Status)이라 하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마하티르는 싱가폴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는데 지도자로써 더 공부해야겠다고 느끼고, 1947년부터 1953년 까지 정치관계를 공부하며 황동하면서 말레이 생활과 문화, 말레이 어부들과 여성들, 말레이의 정치문제등에 대한 생각을 언론과 현지 신문 " Sunday Times"에 기고하기 시작하였으며 학생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때 지금의 아내 시띠 하즈마(Siti Hasmah Modh Ali)도 만났는데 그녀도 역시 자신과 같은 어린시절 가정교육을 받은 분이라 하면서 "나는 가족이 복합 사회의 안정을 지키는 닻이라 믿는다. 가족은 어려움과 시련에서도 지켜주었으며, 오늘날 까지 내가 한일이 있다면 이는 가족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나의 정치활동과 정치적 소신 중심에는 가족의 가치를 증진 시키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마하티르는 1957년 8월 31일, 말레이시아가 독립 선언했을 때, 고향 알로세타에서 마하병원(MAHA Clinic)을 개업하였는데 이는 알로세타시 5개 병원중 말레이에 의해 설립된 첫 병원이 였다고 한다. 그는 진료비도 저렴하게 받아 $3, 주사를 놓으면 $5, 왕진료는 $6로 일반 서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돌보느라 분주한 기간을 보냈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며 서민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듣게 되었고, 저들의 요구에 책임 있어야 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의료활동하는 중 정치에 개입되기 시작해 39세 때인, 1964년에는 국회위원이 되었고, 1969년 인종분규 사건을 보며 복합사회에서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서신을 라만수상에게 올렸다가 국회에서 축출 되었으나 1972년 복권되었고, 1974년에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하였다. 1976년에 부수상, 1981년에 수상이 되어 2003년가지 22년동안 장기집권하고 수상직을내려놓앗다. 그러나 부정부패로 추락하는 국가 경제를 참지못하고, 2018년 5월 9일제14차 총선거에 도전하여 압도적승리로 재 집권한 것이다.

그러면 Dr 마하티르가 주장하는 정치사상인 "Asian Value"란 무엇인가? 마하티르는 이 "Asian Value"란 신념 때문에 서구 지도자와 언론으로부터 "건방진 제안자"(arrogant proponent)란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이는 서구 가치관에서 본 것일 뿐 자신의 소신에 변함 없음을 주장하며 아시아가 격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방향과 정책을 다시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 서구와 한국 언론들은 아시아의 경제 폭락의 문제를 서구에 책임 돌리는 그의 괴변과 같은 표현을 부각시켜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통 지도자 처럼 보이게 하지만 정작 그가 주장하는 Asian Value에 대해선 묵살하는 것을 본다. 우리는 그의 주장을 먼저 이해하고 정확히 알아햐 할 필요가 있다.

마하티르가 주장하는 "Asian Value"란 무엇인가? 이는 그이 정치적 역정에서 보았듯이 서구의 "개인주의"(Individualism)가 아닌 "가족-공동체 중심주의"(Family-Community)이며, 서구의 "자유주의"(Freedom)가 아닌 어른과 권위를 존경하여(Respect for Authority) 자기희생과 헌신을 알며 공동체를 결속하는 책임지는 정신이다. 또한 서구의 "물질주위"(Materialism)이 아닌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신주의"(Spiritualism)이다. 서구는 정치와 종교분리의 사회이지만 아시아, 특히 말레이시아는 정교일치 사회로 종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사회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으로 보고 있다.

마하티르는 "서구 가치관"이란 그들의 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결코 "아시아 가치"를 저들에 강요하거나 주입시키려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아시아 국가는 아시아의 사회 구조와 가치관 위에서 건설 되며, 경제적 발전도 아시아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잘나가던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몰락은 서구 자본가들의 농락이며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보는 것다. 과거에는 총과 칼로 쳐들어 왔지만 오늘날에는 자본을 가지고 아시아를 저들의 가치관에 따라 지배하려하는 것이라 보고있다.

그러므로 마하티르는 IMF를 받는 것을 "우리가 다시 식민지로 돌아 갈 것인가? 독립국가로 나아갈 것인가?"로 국민들에게 묻는 것이다. IMF를 받으면 저들의 요구 대로 시장을 개방하고, 개혁이란 명분으로 아시아적 가치가 무너져 혼란이 오며, 이는 곧 서구 식민지와 다를 바 없이 전락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아시아적 가치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세계를 위해 공한할 수 있느냐? 여기에서 마하티르는 "동양을 배우는 정책"The Look East Policy)을 제시한 것이다. 일본과 한국을 모델로 가족과 공동체를 중요시하며, 단결, 협동, 근면을 사회적 가치로 여기는 동 아시아를 배우자는 정책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은 제하고 일본을 배우자고 하고 있으며, 그의 "아시아를 위한 새로운 정책"이란 책에서도 아시아에서 일본의 사명을 주장하며 다시 일본을 배우자고 역설하고 있다.

마하티르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아시아는 아시아 가치로 단합하자고 할 것이다. 이는 서구를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유시장에 눈먼 숭배자들", 소수의 서구 자본가들의 농 락을 막고, 아시아 가치 위에 국가를 건설하여 세계인과 함께 인간다운 삶을 펼쳐 나가자고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제 시키는 통제 사회를 받아 들일 수 없다. 서구 가치관도 결코 가족, 사회적 책임이 없는 개인적 자유를 주장한다고 볼수는 없다. 오히려 서구 사회에도 강한 가족의 가치,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있고 가족애가 저들 사회에 기반이 된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마하티르도 이점을 주시하여 "개인과 공동체"가 편중함 없이 화합과 협력의 사회를 바라 보고 있다. 이점에서 아시아는 아시아의 가치로, 서구는 서구의 가치로 조화(Harmony)과 협력(Incorporation)을 주장하고 있다.

오늘 우리 한국은 어떠한 가치관 위에 서있는가? 한국의 전통 가치관은 시대에 뒤떨어진 세계화에 거치장 스러운 퇴물로 여기지지는 않는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 시키며 자유경쟁 시대를 펼쳐 나가자고하지 않는가? 우리의 가족 중심, 그리고 아름답게 보였던 공동체 중심, 서로 돕고 상부상조하였던 그 애국애족의 전통은 시대에 맞지 않는 퇴출 대상이 된 것은 아닌가? 오늘 우리는 해외 교민들로써 어떠한 가치관 위에 삶을 펼쳐 나가고 있는가? 우리는 마하티르의 주장에 깊히 생각하고 책임있는 답변을 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rch-CMRC)

 

   
▲ *Dr 마하티르 수상 재직시 건설한 쿠알라룸푸르 시티센타(KLCC )-삼성과 극동건설이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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