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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수도원 개원을 앞두고(3)
강문호  |  mhkang5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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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5월 04일 (금) 14:24:17
최종편집 : 2018년 05월 09일 (수) 20:14:41 [조회수 : 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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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쇄 수도원 개원을 앞두고(3)

 

 6월 10일 16;00 충주 봉쇄 수도원 개원을 앞두고 있습니다. 당당뉴스에 7번 연재 글을 올리며 기도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합니다. 멀리 같이 가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1. 4월 22일 봉쇄 수도원을 세우라.
 2. 4월 29일 이스라엘 91곳 수도원을 찾아서
 3. 5월 6일 수도학교 창립
 4. 5월 13일 봉쇄 수도원 건축
 5. 5월 20일 한국 토속 수도사
 6. 5월 27일 타 종교 수도원
 7. 6월 3일  수도원 규칙 영성

 

                 
수도학교 창립

 

 “무식이 호랑이보다.”
 이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같습니다. 봉쇄 수도원이 무엇인지 모르며 세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수도학교를 세웠습니다. 말이 학교이지 한 치 앞도 모르고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장글에 길을 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내일을 모르고 가고 있습니다. 수도학교를 세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수도사를 파송하여 주세요. 
 그리스 메테오라 수도원(Meteora Monasteries)을 둘러 보았습니다. 바위위에 절묘하게 24 수도원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위에 정원”이라 불리우는 수도원들이 깍아지른 듯한 절벽 바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위에서 떨어지면 떨어지다가 굶어죽을 정도의 높은 바위들입니다. 14세기에 세워진 절벽 꼭대기의 수도원은 지금도 그리스 정교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사진 1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튀르크 족 공격이 심할 때였습니다. 수도사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접근이 어려운 바위기둥위에 수도원을 세우고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도하려는 이들이 없어서 한 두 명씩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기념품을 팔던 수도사 한 분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수도사를 파송하여 주세요.”

 그 후 이스라엘 91개 수도원을 찾던 중 그리심 수도원을 보려고 세겜에 들렀습니다. 세겜은 그리심산을 등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우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던 곳입니다. 예수님이 목마른 목을 채워주었던 물이 지금도 솟아나고 있습니다. 이 곳에 수도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우물은 건물속에 있습니다. 수도사가 단 한 명이었습니다. 방문자는 많고 수도사는 한명이라 바빠서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내가 틈을 만들었습니다. 그를 모시고 수도원밖으로 나와 정원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큰 수도원에 왜 혼자뿐인가요?”
 “세겜은 모두 회교화되었습니다. 저들이 수도원에 침범하여 수도사들을 다 죽였습니다. 목잘라 죽이고, 거꾸로 매놓고 껍질을 벗겨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수도사님은 왜 피하지 않나요?”
 “내가 도망가면 세겜에 예수님이 없어져요. 언제 저들이 쳐들어 와 나를 죽일지 몰라요. 하루 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아요.”
 “무섭지 않으세요.”
 “나는 이 곳을 35년 지키고 있지요. 지금 75세니까 살만큼 살았지요. 나를 따라 오세요.”
 그가 인도하는 곳을 가보았습니다. 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는 관속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사진 2 관을 만들어 놓고 수도사는 수도사
   
▲ 사진 3 야곱의 우물 수도원 원장과 함께


 그리고 나에게 한 마디 던졌습니다.
 “목사님! 수도사좀 파송해줘요.”
 두 번째 “수도사 파송”이라는 말이 나를 송곳처럼 찔렀습니다. 지금까지 선교사 파송이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수도사 파송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수도학교를 만들어 수도사를 양성하여 온 세계에 파송하자.”

 한국으로 돌아 와서 나는 거룩한 고민을 시작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수도원은 세워져 있어서 몸만 가면 된다. 먹을 것, 거처할 곳, 입을 것 모두가 준비되어 있다. 사람만 가면 된다. 어떻게 수도사를 양성할가? 선교사 파송보다 일하기 쉽다. 선교비도 들지 않는다.”
 자나깨나 수도사를 양성할 수도학교 생각이었습니다.
 프란시스칸 수도학교 찾아가기
 2017년 3월3일이었습니다.
 드디어 수도학교에 대한 정보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할려고 하는 자에게 할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흥 수도원 박 희진 수도사님이 정보를 주었습니다.  프란시스칸 수도원 고 바울 수도사가 수도사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시 전화번호를 물었습니다. 박 수도사와 전화를 마치자 말자 찾아가겠다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거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차량 기사에 주소를 주면서 차를 그 곳에 대라고 하였습니다. 무조건 찾아가서 대면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태리에서 7년 공부하였습니다. 앗시시와 로마에서 수도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관상기도가 전공입니다. 베네딕도 렉시나 디비나 기도와 다릅니다. 맥은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수도학교를 맡고 있습니다.”
 “한국에 프란시스칸 수도원 공동체가 몇 개나 되나요” “20 여곳입니다. 우리는 3년 길게는 6년마다 인사 이동을 합니다.”
 “수도원에 대하여 말씀해 주세요.”
 “강 목사님! 수도원을 개원하려고 하지요? 쉽지 않아요. 수도원이 밖에서 보면 거룩하여 보이지만 안에 들어와서 보면 지옥이지요. 자기와의 싸움, 공동체와의 갈등을 헤쳐나가기가 그리 쉽지 않아요.
 다니기 싫은 학교는 졸업이 있고, 잘못된 결혼은 이혼이 있고, 힘든 군대 생활은 제대라는 탈출구가 있지요. 수도원은 탈출구가 없습니다. 견디다 못 해 떠나는 이들이 부지기 수입니다. 통계적으로 대개 10-20%만 끝까지 남습니다.”
 “재정은 어떻게 하나요?” “우리 프란시스칸 수도원은 80년 전에 선교사들이 와서 세웠습니다. 당시 땅이 싸니까 많이 사놓았습니다. 선교사들이 사놓은 땅을 조금씩 팔아서 80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팔 땅이 없습니다. 그리고 수도사들이 모두 늙었습니다. 노후 보장등이 걱정입니다.”
 “프란시스칸 수도원 수도사님들은 얼마나 되나요?”
 “수도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는 이들이 30여명, 수도사들이 130여명입니다.”
 “과정은 어떤 가요?”
 이렇게 물으면서 수도학교를 세우기 위한 본론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우리 수도학교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기로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물었습니다.
 “독서는 어떻게 하나요?” “성경을 주로 읽고, 성인전을 많이 읽습니다.”
 “봉쇄 수도원도 있나요?” “경남 하동군 악약면 지리산속에 관상 수도원이 있습니다. 2-3명 있습니다. 그런데 봉쇄 수도원은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미가 없습니다. 옛날 중세기 교통이 발달되지 않고 폐쇄되었던 시대 유물입니다.
 미국 버민트 주에 카르트시안(Carthusian) 봉쇄 수도원이 있습니다. 900만평입니다. 원시림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입구에서 건물까지 8KM입니다. 13-14명 수도사들이 사는 데 우울증 환자, 정신질환 환자가 되었습니다. 지나친 침묵과 고행은 정신적 건강을 해치고 있습니다.”
 “부부 수도원도 있나요?” “아직은 프란시스칸 수도원에 부부 수도사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수도사 수가 적어져서 부부 수도원을 만드는 추세입니다. 귀농, 농촌 향수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카토릭에서는 아직 법으로 독신외에는 수도를 금하고 있습니다. 부부 수도원이 잘 될 것이 생각합니다. 오히려 독신 수도원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숙대 교수 한 분이 은퇴하고 지금 부부 수도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에 봉쇄 수도원을 세우시겠다는 발상은 혁명적입니다. 기독교에도, 한국에서 하나쯤은 있어야 합니다. 힘든 것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실 것이기에 잘 되기를 돕겠습니다.”

 

   
▲  프란시스칸 수도사와 함께

 

 커리규럼 만들기
 나는 돌아 와서 수도학교 2년제 4학기로 커리큐럼을 만들었습니다.

 1학기 주제 ; 수도 신학
 수도원 역사, 수도원 영성, 수도원 규칙, 수도사의 길, 사람같지 않은 사람들, 미래를 읽는 힘, 봉쇄 수도원 창시자 안토니우스, 공주 수도원 창시자 파코미우스.

 2학기 주제 ; 수도 체험
 탁발 체험(3일 걷기), 기독교 수도원 방문.
 수도 공동체 연구(아미쉬 공동체, 메노나이트 공동체, 모라비안 공동체, 후터 라이트 공동체, 청교도 공동체, 브루더호프 공동체, 왈덴쉬 공동체)

 3학기 주제 ; 타 종교 수도원
 불교 수도원, 힌 두교 수도원, 유대교 수도원, 회교 수도원.
 이스라엘 수도원 방문 성지 순례.

 4학기 주제 ; 수도원 생활
 수도원의 음식, 시간관리, 노동, 침묵, 옷, 기도, 말씀, 독서, 고행, 청빈, 순복, 거룩, 하나님의 성품, 고독, 하나님의 성품.

 

   
▲ 수도학교 공부

 

수도학교 성지순례

 수도학교 학생들을 이스라엘 수도원 방문을 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둘러본 91개 수도원 중에 23곳을 뽑아서 순례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 하였습니다. 이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입니다. 봉쇄 수도원에서 세상을 향하여 주는 감동과 메시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알고 돌아 왔습니다. 산속 땜안에 가두어 놓은 물이 쏟아질 때 에너지가 온 세상을 밝게 하고 있습니다. 봉쇄 수도원에서 발전된 영성은 온 세상을 맑게 합니다. 토마스 아켐퍼스, 어거스틴, 프란시스, 루터등은 조무 수도원 영성입니다. 아예 수도사로서 수도원에서 수도원 영성으로 그런 책들을 저술하였습니다. 앞으로 수도학교에서는 일년에 한번씩 수도원 성지순례를 할 것입니다.


 

   
▲ 사진 6 수도학교 1기 수도원 방문


 수도학교 규정
 수도학교 규정도 만들었습니다.
 1. 2년 4학기 공부하고 수도합니다.
 2. 매월 두 번째 목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공부합니다.
 3. 한달에 10권 정도 제공하는 책을 읽고 리포트를 써야 합니다.
 4. 3학기는 이스라엘 수도원 방문입니다.
 5. 졸업후 원하는 분은 수도사로 세계 부르시는 곳으로 파송합니다.
 6. 충주 수도원에 들어와 같이 수도생활할 수 있습니다.
 7. 세상에서 수도원의 영으로 신앙생활할 수 있습니다.

 등록금
 먼저 지출 예산을 뽑아 보니 한 사람에게 한 학기에 40만원 정도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30만원만 받고 10만원 보조하여 주기로 나 혼자 정하였습니다. 같이 일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선 혼자 모든 것을 하여야 했습니다. 입학 자격을 세 가지로 정하였습니다.
  (1) 수도사로 지원하는 이.
  (2) 수도원과 수도사의 영(靈)을 사모하는 이
  (3) 수도원을 세우고 싶은 이
  (4) 수도사의 거룩한 영을 사모하는 이.

 수도학교 교수
 처음 가는 길에는 학생도 교수도 없었습니다. 길도 방법도 없었습니다. 경험도 멘토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저에게 주신 사명만 있었습니다. 나도 배워가며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멘토가 될만한 인물을 책을 통하여 교수로 모시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책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물색하였습니다. 그래서 책 구입에 들어갔습니다.

 1. 기독교 서점, 카토릭 서점, 정교회 서점, 성공회 서점을 샅샅히 찾았습니다. “수도”란 글자가 들어간 책은 모조리 싹쓸이하였습니다.
 2. 중고서적 싸이트 북코어에 들어가서 “수도”란 글자가 들어간 책은 모조리 검색하여 찾아냈습니다. 싸게 사는 책도 많았지만 골통품으로 사야하는 책도 많았습니다. 10,000원짜리 서적이 보통 60,000원 정도 부르는 책도 있었습니다. 100여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3. 한국에 있는 수도원을 찾으면서 수도원에 있는 책들을 모았습니다.
 4. 수도원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이들도 눈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공담도 중요하지만 실패담 듣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아 놓은 서적들을 염치없이 뻔뻔할 정도로 요구하였습니다. 긴 대화를 진진하게 나누다 보면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주셨습니다.  조그만 서재로 수도에 관한 책들이 가득하였습니다. 모두 읽었습니다. 좋은 책을 골라냈습니다.
 5. 수도원 영성을 가진 사람을 찾아 내어 매달렸습니다. 밤 10시부터 11시까지는 전화로 수도원 공부를 하였습니다. “둔재는 천재를 이길 수 없고,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였습니다. 모두 친절하게 저를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지면을 통하여 감사드립니다.
 6. 감동을 주는 멘토를 찾아냈습니다. 수도 영성을 공부하신 분들을 찾았습니다. 총신대 최 형걸 교수님, 성결 신학대학 황 훈식 교수님, 협성대 김 수천 교수님, 감신대 송 성진 교수님, 천주교 신부였다가 지금은 목사가 된 정 훈섭 목사님, 화학산 산속에서 지금 10년째 하루 한끼 먹으며 혼자 수도하고 계신 이 영길 수도사님, 동광 수도원 김 금남 원장님, 가평 정교회 백 은영 수녀님, 안토니오 수도원 김 락현 수도사님, 은총 수도원 박 희진 수도사님들은 지금까지 나에게 수도 영성을 선물하여 주셨고 앞으로도 저의 멘토가 되어 주실 분들입니다. 이스라엘, 아토스에서도 저에게 자료를 공급하여 주시는 수도사님이 생겨나기 사작하였습니다.
 7. “지성소”란 이름으로 출판사를 등록하였습니다. 그리고 21권을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이 가장 좋은 교수였습니다. 수업시간에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도 하였습니다.

 수도학교 교재
 그 동안 수도 공부하기 위하여 출판한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수도원 방문기(더 드림 출판사),  사람같지 않은 사람들(더 드림 출판사),
 공주 수도원 창시자 파코미우스, 동방 수도원 아버지 바실리오,
 청빈 수도사 아버지 분도 요셉 라브르, 수도원 규칙 창시자 베네딕도,
 프란시스, 글라라, 아르세니오스, 십자가 오상 성자 비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거리 성자 방 애인, 성경대로 살아간 이 세종, 우리 곁 성자 장 기려,
 독거 수도원 창시자 안토니우스, 수도의 길, 수도원의 역사, 수도원 영성, 토착 수도원,
 수도원 생활 규칙, 기독교와 개신교, 렉시오 디비나.
 
 학생 모집
 이제 어느 정도 수도학교에 대한 정리를 마쳤습니다. 이제는 수도학교 학생 모집이 과제였습니다. “성막 쎄미나”와 “마지막 때 쎄미나”에 참석한 최근 목사님들 249명에게 내 뜻을 전하는 장문의 문자를 발송하였습니다. 경험을 쌓을 겸 예수님처럼 12명만 모집하여 같이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반응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반응은 우간다였습니다.

 “샬롬. 하나님의 이름으로 평강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김 순종 선교사입니다. 수도사 학교에 대한 안내 메시지를 보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 아프리카 우간다 선교 현장에 있습니다.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반드시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2018년도에 한국에 잠시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므로 꼭 수도원에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목사님! 강건하시죠?
늘 환하게 웃으시고 믿음으로 사시는 목사님 뵙고 싶습니다. 
지난 마지막 때 세미나에 참석하여 많은 도전 받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우간다는 심한 건기로 몸살을 앓다가 비가 조금씩 내리면서 숨통을 트고 있습니다. 물통에 물도 없어 빨래도 제대로 못하고 씻는 것도 고양이 세수 하듯이 하다 요즘은 좀 깨끗하게 씻고 다닙니다.
우간다 카사나에서 클라라 김순종 올림.”

 수도학교 첫 정식 등록자는 변 일국 목사입니다. 이런 문자 편지를 주었습니다.

 “목사님
 편안하시지요? 저희 부부 매일 주일 갈보리 교회 주일 설교를 통하여  목사님을 뵙고 있어요. 목사님. 수도학교 이야기를 가장 친한 두 그룹에게 이야기했다가 엄청난 반대에 직면하였습니다. 봉변에 가까운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한 그룹은 10년 정도 함께 한 목회자 독서 모임 그룹이고 다른 한 그룹은 30년 지기 친구들입니다. 저는 설마 이들은 나를 이해하고 내 입장에서 들어 주겠지 했다가 아이고 너무 놀랐습니다.
 목사님.
 지난 주일 설교에서 봉쇄 수도원 이야기가 꺼냈다가 혼났습니다. 그러나 입학하려고 합니다. 가치를 나는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도학교 지원하시는 분들은 모두 기가 막힌 사연들이 있을 것같아요.
 대전 유성에서 변 일국 올림.”

 

   
▲ 사진 7 2기 수도학교


 이런 사연들과 함께 2일만에 12명이 모집되었습니다. 다음날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저도 수도학교에 입학하고 싶어요.”
 “찼습니다.”
 “찼다는 말이 무슨 말씀인가요?”
 “12명 모집에 12명이 등록되었다는 말입니다.”
 “12은 누가 정한 수인 가요?”
 “내가요.”
 “왜요?”
 “12 제자를 생각하고 그랬습니다.”
 “목사님! 12제자 그러지 마시고 24장로 그러십시오.”
 “기도해 보겠습니다.”
 목사의 언어중에 기도해보겠다는 것은 거절입니다. 그런데 계속 전화가 오기에 24명으로 정하고 더 받았습니다. 그런데 5일만에 24명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수를 제한하지 않고 다 받았습니다. 32명이었습니다.

 입학식
 드디어 기다리던 수도학교 입학식을 하였습니다. 나는 32명에게 말했습니다.
 “수도학교는 군대보다 더 엄격하고 정확하여야 합니다. 결석 금지입니다. 두 번 결석하면 퇴학입니다. 교수가 없기 때문에 책이 교수대용입니다. 이번 학기에 20권 정도 책이 제공될 것입니다. 한 달에 리포트 한 편씩 써야 합니다.”
 이 때 76세 강 원길 권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눈이 어두워서 성경도 못 읽고 책도 못 읽어요. 리포트도 못 써요. 그냥 공부만 하겠습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간단해요. 빠지세요. 한 명 두 명 예외를 두다 보면 질서가 없어집니다. 등록금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입학식날 퇴학입니다.”
 강 권사는 조금은 놀란 듯이 떨며 말했습니다.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손자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손자의 손을 빌려 리포트를 작성하였습니다.  1학기 마칠 때 수도원에 1억원의 도움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더 크게 일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두 사위가 병원 원장이자 장로님이십니다.

 


 그리심 산 정상에서
 이스라엘 수도원을 돌아 보는 중에 세겜에 들렀습니다. 그리심산 정상에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리심산 정상에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밑에 보이는 길이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오가시던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보면서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51km다. 12살부터 일년에 3번은 올라가셨다. 세 절기는 이스라엘 성인 남자들은 모두 예루살렘에 가야 했다. 33살까지 그렇게 하셨다면 공생애까지 합하여 거의 100번은 이 길을 왕복하셨다. 요즈음 이스라엘 날씨가 45도 정도다. 걷다가 목 마르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정말 진하게 알려면 150 km를 한번은 걸어야 한다. 마침 뚝섬 우리 교회에서 충주 산척 수도원 예정지까지가 고속도로로 120 km, 국도로 150 km다. 한번 걷자. 그것도 복중에 걸어야 정말 예수님 체험이다.”
 내가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고 나면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우리 강 문호 목사 아버지 닮았구나!”
 그런데 내가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목사 예수님 닮았구나!” 언제나 나는 이 말을 들을 수 있을 지 걱정입니다. 어쩌면 평생 못 들을 것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 사진 8 그리심산 정상에서


 예수님 체험
 이스라엘에서 귀국하고 나니 바로 7월 17일이 초복이었습니다. 18일 월요일부터 걷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기사를 데리고 우리 교회부터 충주까지 150 km를 4시간 가량 지형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천까지는 걸을 수 없는 환경임을 알았습니다. 이천부터 수도원까지 약 100 km 정도 걸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수도원을 보고 오더니 엉뚱한 행동을 한다고 할 것같아서 우리 교회에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토요 목사님들 성경공부 모임에서 복중에 걷기 계획을 말했습니다. 목사님 한 분이 물었습니다.
 “정말 걸으실 것입니까?” “네.”
 “지금 연일 폭염주의보가 나고 있는 데 가을 선선할 때 걸으시지요.”
 “지금이 절호의 날씨입니다. 예수님은 45도에서 걸으셨거든요.”
 “정말 걸으실 것입니까?” “네.”
 그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살아서 돌아 오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전대나 두 벌 옷이나 두 켤레 신발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배낭과 지팡이 그리고 밥얻어 먹을 그릇을 지니고 출발하였습니다. 점심 때가 되었습니다.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밥달라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대접받기에 익숙하여진 나를 발견하였습니다. 점심을 굶었습니다. 서러웠습니다. 길거리에 식당들은 즐비한 돈이 없었습니다.
 지나다 보니 절앞에 “식사를 제공합니다”라고 프랭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굶을 지언정 절에 가서 밥을 얻어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느 덧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장호원 앞까지 왔습니다. 배도 고프고 잘 곳이 막연하였습니다. 장호원 교회 김 광중 목사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를 찾아갔습니다. 따뜻하게 맞았습니다. 저녁에 보리밥을 대접하여 주었습니다. 꿀맛이었습니다. 잠자리까지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아침까지 해결하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와서 떡 3말 하여 보냈습니다.

 다음 날은 40km 정도 걸었습니다. 허리에 찬 만보계를 만지다가 떨어졌습니다. 허리를 굽혀 줍기조차 싫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버리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앞에 금덩어리가 떨어져 있어도 줍기 어려운 때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다 필요없이 빈 손으로 주님앞으로 가야 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삼일째 충주부터 수도원까지 26 km 걸었습니다. 모두 100 km 가량을 걸은 것입니다. 마지막 4 km 남은 길은 한 걸음이 천근을 들어 옮기는 것같이 힘들었습니다. 그늘에 조금 쉬었다가 다리를 옮기려면 기중기로 발을 드는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다 왔다는 소망이 발걸음을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드디어 목적지 수도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잔듸 밭에 앉아서 한참 울었습니다. 승리하였다는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렇게 100번도 더 걸으셨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두 번째 걷기
 2017년 9월에는 수도학교 학생들 모두가 서울에서 충주까지 탁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예수님 나이를 생각하며 33시간 금식기도부터 하였습니다. 그래서 미리 금식 기도 33시간을 마쳤습니다.
 탁발하면 불교 생각이 나는 데 초기 수도사들도 탁발 수도승, 탁발 수도회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약 1,000년 정도 기독교도 사용하던 언어입니다.
 시흥 은총 수도원과 우리 수도학교 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탁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두에게 개회예배에 헌금드릴 돈만 지니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둘씩 짝지어 헤어졌습니다. 충주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박 희진 수도사와 짝이 되었습니다. 충주 근처를 걸으며 전도하며 음식은 얻어 먹기로 하였습니다. 박 목사님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강 목사님! 우리 가장 어려운 곳을 찾아가서 전도하몀 밥얻어 먹을 가요?”
 우리는 절에 들어갔습니다. 방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노크하였습니다. 한 여자가 문을 여는 데 5,6명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박 목사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전도자입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을 닫으려고 하였습니다. 박 목사님과 나는 약속한 것처럼 문을 막았습니다.
 “우리는 빈 몸으로 다니며 전도합니다. 밥좀 주시구요.....”
 전도할 틈없이 그들은 떠들어 대며 우리를 밀치고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우리는 웃으며 돌아 섰습니다.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탁발 전도하고 있는 데 먹을 것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미친 사람을 바라 보듯이 바라보더니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음식을 주었습니다.
 충주 수도원에 약속한 시간에 갔습니다. 모두가 모였습니다. 예수님이 70문도를 두 명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눅 10;1)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32명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모두가 탁발한 이야기로 믿음의 꽃을 피웠습니다. 최고령은 이미 말씀드린 76세 강 원길 권사님이었습니다. 그도 서울에서 충주까지 탁발하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번 탁발이 아니었으면 나는 14년 낭비할 뻔 하였습니다. 나는 자식들이 모두 병원장이라 부러움없이 즐기며 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90세까지는 일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아직도 14년은 더 활기차게 일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 곁에서 일할 것입니다. 14년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수도원 91곳을 돌아 보면서 한국 수도사 3명을 만났습니다. 알고 간 것이 아니라 가서 만났습니다. 서로가 반가워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전라도 출신이었습니다. 왜 전라도 사람만일가? 이에 대한 의문은 한국으로 돌아와 일년 후 풀렸습니다.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마지막 때 온 세상에 퍼져 복음을 증거할 민족은 우리 민족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조금 지나면 우리 나라는 선교 파송 1위국이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현재 1위국은 미국이고 우리나라는 2위국입니다. 우리 민족은 지금 188개국에 퍼져 있습니다. 한국인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내가 제일 놀란 곳은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 있는 카라우파파입니다. 미국에서 한센시병 환자가 생기면 이 곳으로 보냈습니다. 다미엔이 이 곳에서 선교하다가 한센시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나는 경비행기를 빌려 타고 혼자 이 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다미엔 비서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다미엔이 사용하던 곡괭이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곳에도 한국 여자 한 명이 들어가서 술집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분이 말했습니다.
 “달나라에 두 명이 마주보고 방아를 찧고 있는 데 한 사람이 한국 사람이다.”
 한국인은 달나라까지 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수도원에 한국인이 보석같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수도학교를 성장시켜서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을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는 수도사 파송을 활기차게 할 것입니다.

 

   
▲ 이스라엘에서 수도하는 한국 수녀


 지구 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바티칸입니다. 두 번째 작은 나라가 아토스 자치국입니다. 그리스내에 있습니다. 1000년 정도된 자치국입니다. 2000명 인구입니다. 모두 수도사입니다. 모두가 남자입니다. 여자가 한 명도 없는 나라가 이 세상에 있습니다. 여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 여왕도 못 들어갔습니다. 7월 3일 들어가는 비자를 받았습니다. 그 곳에서 나에게 제안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 수도사, 중국 수도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수도사가 없습니다. 목사님이 우리나라에 최초의 한국 수도사가 될 마음은 없으신지요?” 나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나는 그 곳에서 수도사 생활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수도학교를 통하여 수도사를 양성하여 세계에 파송하기를 원합니다.”
 

   
▲ 아토스 자치국(그리스내에 있다)


 모든 종교에는 수도원이 있습니다. 내용만 다르지 형식과 금욕은 같았습니다. 나는 유대교 수도원, 회교 수도원, 카토릭 수도원, 정교회 수도원, 천도교 수도원 그리고 불교 수도원 체험을 하여 보았습니다. 수도원은 그 종교의 핵심입니다. 수도원은 그 종교의 법궤입니다.
 유대인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중심은 지구입니다.
 지구의 중심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입니다.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입니다.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입니다.”

 자기 종교의 중심은 자기 종교의 수도원을 통하여 보존되고 흘려지고 있었습니다. 타 종교 수도원에 대하여도 한번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수도학교에 대하여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잘 해 보고 싶은 의욕만 있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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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러운 점들 (112.186.44.176)
2018-05-04 20:42:14
경험적으로 볼 때,

문제 인간들은

언론 플레이에 매우 강하며,

매우 강렬하게 의인인 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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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
착한종 (121.129.23.215)
2018-05-05 18:21:00
마28:19-20
그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봉쇄 수도원에서 밥이나 비우지 말고
기도하고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말씀 대로 살고
복음의 증이되고
제자를 세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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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선입관 (106.243.251.41)
2018-05-05 11:17:51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할때 더 소중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도원에 대한 입장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장단이 있습니다. 수도원은 영성생활을 위한 제도이니 단보다 장이 더 많지 않을까 싶네요. 비판적인 시각도 필요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도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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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5 12:26:27
목사보다 신부에 대한 선입견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헤아릴 것 같아 보이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커다란 희생을 하였으니 더 성직자로서 성직자 다움이 있을 것이란 선입견을 갖기 쉽습니다.

물론 목사라고 신분보다 더 낫다라고도 할 순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개인의 차라고도 할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전 성직자란 의미론 사람의 차이에 따라 목사보다 나은 신부가 있을 것이고 신부보다 더 성직자다운 목사가 있을 것이라 그 기능적인 모습을 갖고 누가 더 낫다곤 할수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전 성직자 이전의 모습 즉 남자란 태생적인 모습을 말하고 싶습니다.
남자란 여자를 만나 결혼함으로써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온전함을 이룰수 있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이자 기본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무시되거나 이것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거룩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인류 생존의 문제에 있어선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어리석음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 다는 것은 반드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매우 위헌천만한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부나 수녀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 됩니다.그런의미에서 본다면 목사는 최소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부합한 기능적인 순종 및 복종을 하고 있다 생각을 합니다.

이해하여 주십시요. 제가 감리교회 목사이기 때문에 그리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태적 기능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며 하나님의 거룩함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다만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성령의 은사로써 된 바울과 같은 이도 있습니다.
더불어 주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고자가 된 이도 있을 줄압니다.

그렇다면 진정 모든 신부와 수녀가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물학적 기능을 포기하였거나 성령의 은사로 된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자유로울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결혼을 통해 스스로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내려 놓을 수 있는 그 마음이야 말로 더 큰 사랑이며 더 거룩한 자유라고도 할 것입니다.

너무 설이 길어졌는데 수도원이 교회보다 더 거룩할 것이란 생각이나 수도원이 영성 생활을 위해선 더 낫다는 생각이야 말로 수도원에 대한 선입견에 불과합니다.

수도원이야 말로 장보다 단이 많은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젊어선 할 것 다하고 즐길것 다 즐기더니 늙어선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하여 왕국을 건설하려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왕답지 못함이며 목사답지 못함이며 거룩을 빙자한 욕심이라 할 것이며 경건속에서 울부짖는 당나귀의 울음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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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우스랍 (223.38.10.245)
2018-05-04 21:51:07
노재신님의 글 감사합니다. 수도원 개원을 앞두고 쓴소리 주시는것이 참 좋아 보입니다. 수도원이 님의 쓴소리대로 성속을 분리할 위험성에 노출되기 쉽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반면에 하늘이 부여하신 역할과 그 기능들을 잘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가운데 성속의 분리가 아닌 성속의 일치에 나아갈 여지도 또한 충분히 있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수도원이 하늘의 뜻대로만 나아가도록 쓴소리 많이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노재신님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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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5 10:32:45
성속의 일치를 구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수도원은 불필요합니다.
교회가 교회로써의 역할을 잘 할수 있도록 회복하는 것이 더욱 성속의 일치를 구할 수 있는 길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수도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반면 수도원이 타락해도 교회는 건전할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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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김경환 (110.47.216.79)
2018-05-04 20:08:08
開放(개방)수도원이 아닌 封鎖(봉쇄)수도원?
로마軍團(군단)의 침략으로부터 유대敎를 보호하기 위해 마사다要塞(요새)에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경우나 로마敎 등의 세 확장에 맞서 그리스正敎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아토스山에서 고립을 자초한 경우 등의 이른바 봉쇄수도원은 어느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을 예로 들자면 마적단 일당의 종교말살정책에 정면으로 맞설 힘이 없어 울타리를 치고 몰래 성경공부를 하는 경우의 이른바 봉쇄수도원이라면 더욱 더 공감이 갈 것입니다.

압도적인 물리적인 힘에 정면으로 대응하기는 역부족인 경우 ‘예수敎의 불씨’라도 살리는 게 絶體絶命(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경우의 봉쇄수도원은 마지막 남은 불씨라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납득이 갑니다.

다른 宗派(종파)도 수도원이 있는데 감리회에는 없어서 하나 만든다는 식의 봉쇄수도원이라면 그 필요성에 대해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사상적으로는 이미 적화되었으니 남북공산당으로부터 누란의 위기에 몰린 감리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봉쇄수도원을 만든 것입니까?

감리교 내 여타 세력의 꼴이 보기 싫어서 봉쇄수도원을 만든 것입니까?

감리교 내에 경로당 겸 성경공부교실을 만들면서 이름만 거창하게 봉쇄수도원이라 한 겁니까?

세상의 거지같은 예수쟁이들과는 달리 봉쇄수도원에 입회한 교인은 貴族敎人(귀족교인)이므로 여기에 걸 맞는 궁궐을 지어 이름만 떡하니 봉쇄수도원이라고 한 겁니까?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교회’가 반성은커녕 엄살을 떨며 ‘피해자교회’라고 코스프레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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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3
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4 18:04:08
수도원은 그 종교의 핵심입니다. 수도원은 그 종교의 법궤입니다.
수도원을 예찬하다 그만 자신이 목사임을 잊었는가?
그것도 감리교회의 목사 말이다.

감리교회가 언제부터 법궤를 숭상하였던가?
언제부터 감리교회의 핵심이 수도원이었단 말인가?

교리와 장정은 알고나 있던가?

"나는 유대교 수도원, 회교 수도원, 카토릭 수도원, 정교회 수도원, 천도교 수도원 그리고 불교 수도원 체험"을 하더니 온통 정신이 혼란스러워 진것인가? 아니 정신이 혼미해진 것인가?

유대교가 수도원이 자신들의 핵심이라 하던가?
회교도가 수도원이 자신들의 핵심이라 하였던가?
아니면 카토릭이 그랬던가? 카톨릭의 중심을 로마 교황청이 아니었던가?
정교회와 천도교와 불교의 수도원을 체험을 하더니 스스로 우주의 중심이라 여기게 되었던가?

강문호 목사가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의 중심이며 대한민국의 중심이자 감리교회의 중심이었던가?

근데 어찌 감독회장 선거에서 투표를 몇일 앞두고 돌연 선거운동을 멈추었으며 특정후보를 위한 담합을 하였다 의혹을 받았었던가?

그것이 감리교회의 중심이란 말이던가? 아니 강문호 목사는 감리교회의 핵심이라 할 것인가?

감독회장 선거에서 떨어지더니 공황장애가 오셨는가? 아니 언제부터 감리교회의 핵심이 수도원이었냔 말이다. 아니 그 핵심과 중심이 없어서 감리교회가 혼란스럽고 감독회장의 문제로 어지러워진 것이라 믿고 있었던가?

그러면 공주 봉쇄 수도원을 세우면 감리교회의 혼란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이란 말인가?

감리교회는 범궤를 숭상하지 않는다.
감리교회의 핵심은 수도원이 아니기 때문에 수도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감리교회의 중심도 수도원이 아니다.

감리교회의 중심은 복음이며 이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잃어 버린 법궤 보다 더 온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요 감리교회의 존재 그 자체이시다.

수도원은 감리교회를 봉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핵심인 복음을 빼앗으려 한다. 수도원은 복음이 아니다.

수도원은 율법주의자들의 아지트이며 외식주의자들의 모임이며 성속을 구별하려는 적 그리스도의 둥지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제물로 삼으심으로 더 이상의 짐승의 제사는 불필요하다 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살과 피로써 성속을 파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의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케 하셨다.

그런데 강문호 목사는 수도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봉쇄하고 그 거룩함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봉쇄 수도원이다. 그래서 공주 수도원이다.

봉쇄 수도원을 통해 왕자가 되려는 이는 진정 누구인가?
공주 수도원을 통해 공주로 세우려는 이는 진정 또 누구란 말인가?

수도원은 수자원 공사에게 맡기라.
수자원 공사가 수도물을 잘 관리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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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9
EUN (72.141.156.6)
2018-05-05 09:06:09
"수도원은 수자원 공사에게 맡기라.
수자원 공사가 수도물을 잘 관리하니 말이다." 이런 빈정거림은 뭔가? 자기의 소신과 달라서 틀렸다고 여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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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
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5 10:19:05
EUN이란?
Earth United Nations 인가요?
기도원 운동은 빈정거림을 받아도 마땅한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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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지나가다가... (173.196.148.88)
2018-05-12 23:49:33
어이가 없네...
당신의 댓글도 빈정거림을 받아 마땅해 보입니다.
역사 속에 완벽한 모델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비판도 받고 단점도 보입니다. 다만 각자의 상황과 신학 속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밝히며 그것을 닮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어떤 운동이든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수도원의 삶을 직접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유치한 비유까지 써가며 비난하는 자태는 그리스도의 길과는 멀어보입니다.
저도 기도원운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수도원 운동으로 인해 오지에 선교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봉쇄라고는 하지만 그안에서 신학적인 발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건설적으로 비판할 수 있지만 도를 넘은 빈정거림은 당신의 이름의 가치를 떨어뜨리네요.

제가 보기에는 당신의 그 댓글의 태도는 빈정거림을 넘어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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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노재신 (222.105.146.139)
2018-05-13 11:01:44
비난을 받아 마땅한 글이라 생각을 한다면
당연 비난을 하십시요.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 하셨지만 아닙니다. 사람이 이루는 것은 완전함이 없지만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들은 언제나 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그자체로 완전합니다.

사실 우리 사람도 완전한 존재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완전함을 스스로 버렸으며 스스로 죄를 짓고 스스로 탐욕에 빠지고 스스로 이기심을 채우려고 하나님이 이루신 완전함을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감리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믿습니다. 웨슬리만이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분명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어떠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빈정거림다 하시니 네 어쩌면 듣는 입장에선 빈정거린다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빈정거림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면 그 빈정거림은 또 다른 권명이며 또 다른 충고가 되고 또 다른 복음도 될수도 있음입니다.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이라 함이 진정거림이라 생각을 하십니까?

봉쇄수도원이야말로 빈정거림을 받아도 마땅한 것입니다.
어쩌면 수도원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음이 아니라 봉쇄 수도원을 짓겠다는 사람의 문제라고도 할 것입니다.

진실에 대하여 직접 삶을 살아 봐야만 알수 있습니까?
꼭 먹어봐야 하고 입어봐야 하고 맡아 보아야만 할까요?

그렇다면 님은 똥을 먹어봐서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까?
그렇다면 님은 죄를 지어 보니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란 사실을 알아서인가요?
그렇다면 성악과를 따 먹고 나니 먹으면 않되었구나 였을까요?

성경은 아담에게 이것을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아직 먹어 보지도 않은 아담에게 말입니다.

아담은 먹어 본적이 없고 죽어 본적이 없으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은 아담이 두번째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진노하신 것이 아니며 선악과를 따먹어 보니 아 죽는구나 하고 죽음을 경험에 본 것도 아닙니다.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감리교회는 체험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렇다고 죄의 경험 죽음의 체험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험과 체험은 철저히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경험이자 체험입니다.
이러한 경험과 체험이 있다면 봉쇄수도원이 얼마나 부질 없는 인간 욕망의 덩어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수도원은 회칠한 무덤입니다.
주님이 무덤으로 이끄신다면 어쩔수 없지만 인간이 스스로 무덤에 들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나가다 어이없음을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어이없음이 님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모르면서 아는채 하고 알면서 무시하고 자신에게 좀 뭐라하면 버럭 화를 내며 비난을 하고...

나의 빈정거림(?)을 비난하려거든 하십시요.
그러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비난하지 말라 그 비난으로 네가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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