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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대기(大道大器) 패러다임’으로 감리회에 희망을2030 메소디스트 포럼(Methodist Forum) 주관 <제1회 심포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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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5월 04일 (금) 13:46:24
최종편집 : 2018년 05월 08일 (화) 00:54:48 [조회수 :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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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감리교회, ‘대도대기(大道大器) 패러다임’의 비전을 기초로 희망의 새 길을 열어내자.

지난 5월 3일(목) 오후 4시에 감신대 백주년기념관 2층 세미나실에서 2030 메소디스트 포럼(Methodist Forum) 주관 <제1회 심포지움>을 개최되었다.

원천교회 곽일석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포럼에서, 열린교회 윤희완 목사가 기도하였으며, 감신대 김진두 총장의 환영인사, 서울남연회 도준순 감독의 축사가 있었다.
 

   
 

첫 번 발제자로 감신대 이은재 교수가 “존 웨슬리 정신과 신학의 빛에서 – 웨슬리의 실천적 종교와 영성”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였다.

“존 웨슬리의 완전에 이르는 길은 중립적인 영역에 있지 않다는 것. 영적 생활의 훈련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 현실 속에서 이뤄져야 했다.

그리스도인은 그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을 위해 단련되고 성장해왔던 것이 아니라 구원 말씀의 전달자로서 존재해왔던 것이다.

감리교회 영성의 목적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영성 형성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감리교회 영성은 신자들이 세상 속에서 신실한 제자가 되도록 준비를 시키고 힘을 북돋아주는 훈련을 사용하고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영적 순례의 목적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급한 과제는 그들이 살아가는 죄로 가득 차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석대 성백걸 교수가 “우리시대 한국감리교인의 자기 정체성 확립을 향하여 - 한국감리교회 형성기 선각자들의 빛에서”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이어갔다.

“오늘날 한국감리교회 위기의 한 근원을 자기 정체성 상실에서 찾을 수 있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가야하는지가 희미하거나 시대착오적이다.

여기서 어떤 한국감리교회의 참신한 개혁이나 건강한 변화나 창조적인 혁신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은 아닐까?
 
이제 우리는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당당하고 희망차게 살아가도록 새로운 차원에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야 한다. 확고하고 밝게 확립된 자기 정체성은 깊은 뿌리와 같아서 그 어떤 비바람이나 역경이 몰아쳐도 끝내 의연하게 자신의 창조적인 결실을 맺어내게 한다.

바로 여기서 19세기 말 출현한 한국감리교회의 대도대기 패러다임이 지닌 인류보편사적인 의미와 가치의 빛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한국기독교인과 감리교인들에게 풍요로운 생명과 희망의 지평(요10장)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

한국감리교회, 혼돈과 좌절의 종교단체로 전락해 갈 수도 있는 기로에서, 개화기 ‘대도대기(大道大器) 패러다임’의 비전을 기초로 희망의 새 길을 열어내고자 하는 미션을 함께 공유하는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역사 창조를 향한 카이로스의 시기에,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에서, 한국감리교회의 변화와 개혁을, 또 한 세기 희망의 지평을 밝히고자 하는 기대와 고민을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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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121.127.77.229)
2018-05-06 22:05:16
뭘 자꾸 움직이려 해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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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4 20:05:47
존 웨슬리의 완전에 이르는 길
완전이란 웨슬리의 완전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완전'일 겁니다.
웨슬리가 참 그리스도인었다 한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겟지요...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는 길이라... 그리스도의 완전이 뭔지나 알고 말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는 길이 중립적인 영역에 있지 않다고?

참 말도 어렵게 한다. 이러한 어려운 표현은 철학을 열심히 공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빠져나가기 위한 애매모호함이리라.

"영적 생활의 훈련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 현실 속에서 이뤄져야 했다." 이길이 바로 중립적인 영역이 아니란 말인데... 중립적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에 대한 중립적이란 말일까? 세상 현실이 중립적이 아니란 말인 것 같은데...

세상 현실이 하나님을 거스른다고? 정말 세상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이 거역하고 있는 세상을 가만 두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진정 이 말이 옳다면 우리가 부르는 이 찬송가의 가사는 또 무엇일까?

1.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찬송 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2.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3.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님의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내 알듯 하도다.

장로교 목사가 지은 찬송이라 우리 감리교회완 전혀 무관한 찬송인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 속에서 주님이 지은신 세상이 아름답다 노래하는 것이 영적 생활의 훈련이며 이 훈련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는 것이란 말인가?

웨슬리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훈련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 말했단 말인가?
정말인가? 어디 웨슬리가 그리 주장을 했다는 설교문을 내게 보여 주시라....

교리와 장정 제1편 교리 [43] 3) 성화와 완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완전은 인간의 본래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의미로서의 완전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다."라 하였다.

그런데 무슨 중립적인 위치가 아니니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에서 영적 생활을 훈련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이라 말하고 있느냔 말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훈련으로 되는 것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또한 훈련의 결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영적 훈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인란 말인가?

진정 그렇다면 난 감신대 이은재 교수에게 묻고 싶다.
1.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에서 영성 훈련을 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는 어떤 관계인가?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에서 영성훈련하는 것과는 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3. 또한 성령님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 세상에서 훈련하는 영성과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 세상에서 행하는 영성훈련에 굳이 성령이 필요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4.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우신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영성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부단함 노력? 부단한 영성훈련?

아브라함은 어떤 영성 훈련을 하였던가?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 또한 모세와 다윗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은 대체 어떤 영성훈련의 과정을 겪었는가 말이다.

"감리교회의 영성"은 또 어떤 영성인가? "사람들의 개인적 영성 형성을 초월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개인의 영성을 초월하는 것이 "신자들이 세상 속에서 신실한 제자가 되도록 준비를 시키고 힘을 북돋아주는 훈련을 사용하고 적용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앞에선 개인적 영성을 초월하는 것이라 해놓고선 뒤에선 신실한 제자가 되도록 준비시키고 힘을 복돋아 주는 훈련을 사용하고 적용하란다... 이것은 자가당착이 아닌가?

어느덧 감리교회의 영성은 자가당착에 빠진 영성이 되었는가 보다.
자가당착에 빠진 영성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룰 수 있단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감신대 이은재 교수는 감리교회의 교리에 맞지 않는 혼합주의적 신학 사상을 마치 감리교회의 영성인냥 전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감신대의 이은재 교수의 주장이 감리교의 교리에 맞지 않는다면 그는 감리교회의 이단이다.

이단이 웨슬리의 영성을 빌어 감리교회의 영성을 오해시키고 왜곡을 시키고 있으며 어렵게 말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어려움이 바로 이것이다.

“존 웨슬리의 완전에 이르는 길은 중립적인 영역에 있지 않다는 것. 영적 생활의 훈련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상 현실 속에서 이뤄져야 했다."

그럴싸하지만 당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이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져서 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말에 대하여 스스로는 진정 알고는 있는 것일까? 무슨 말이며 무슨 의미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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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안 (220.78.58.136)
2018-05-05 11:23:53
감리교 신학과 영성
1.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아름답다.
2.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인간과 세상은 구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3.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4.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성취하셨으며 당신의 구원 사역의 완성을 위해 성령을 보내셨다.
5.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게 하시며, 재창조하시며, 성화시키신다.

이상에서 잘못된 것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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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5 12:34:14
제게 묻는 질문이신가요?
웨슬리안이 말씀하신 감리교 신학과 영성은 극히 기본적인 기독교의 기본 틀이라 생각을 합니다.
다만 그 하나 하나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시키며 어떻게 통합을 하여 하나되게 하는 가가 중요한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다만 감리교회의 신학과 영성(존 웨슬리)에서 중요한 것은 회심과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화 및 영화가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개념 가운데 반드시 웨슬리안님이 약술하신 기본적인 신학적 틀이 어떻게 적용이 디고 있으며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 가는 더 세세한 설명 및 이해가 필요하고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웨슬리의 체험을 같이 경험해봐야 제대로 인식을 할수 있는 문제이기에 성령의 감화 감동 더불어 성령의 역사(깨우침)는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하고 모든 것을 하나되게 만드는 거룩한 열쇠라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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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안 (220.78.58.136)
2018-05-06 06:33:18
성령의 감화 감동
언제부턴가 본래의 감리교 신학이 잘못 가르쳐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존 웨슬리가 "신인협동설"을 말한 적이 있었던가요?
구원의 전 과정(선행은총, 회심, 칭의, 신생, 성화, 영화)에 있어 모든 주도권은 하나님 편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존 웨슬리가 인간은 "손 놓고 가만히만 있어야 한다"는 이른바 정적주의(queitism)를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했죠.
인간 편에서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종하며 은혜 받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놓을 책임이 있습니다. 경건생활이 바로 그것이죠. 감리교 신학의 균형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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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6 07:16:57
저보다 더 웨슬리안 이신듯 합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이야말로 웨슬리 회심의 중심이며 모든 신앙적 공리와 같은 개념들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선 성령을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성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을 하며 이것은 스스로 성령을 받지 않았음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것이라고도 할수 있을 것입니다.

웨슬리안님의 글들이 뒤틀린 감리교회의 신학과 신앙을 바로 잡지 않을까 싶기도합니다.
그런의미에서 저보다 더 웨슬리안이십니다.
그러니 그 빛을 말아래 두지만 마시고 등경위에 두시길 바랍니다.
이름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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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4 20:13:52
도를 아십니까 중에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학문은 개똥철학이다. 왜냐하면 개똥철학은 들으면 들을수록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이야기인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감리교회를 망치고 감리교회의 신앙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은 개똥신학자들의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개똥신학자의 가르침을 들으면 들을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든든히 세워지는 것이 아니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개똥신학자들에게 배우면 배울수록 성경말씀 조차도 명확해지는 것도 아니며 성경말씀도 무슨 말씀인지 점점 어려워 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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