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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항쟁 70주년을 기억하는 제주평화순례
김형권  |  eee-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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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5월 03일 (목) 02:16:44
최종편집 : 2018년 05월 04일 (금) 15:10:26 [조회수 :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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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항쟁 70주년을 기억하는 제주평화순례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하 고난함께)이 2018년 4월 29일(주일)- 5월 1일(화) 2박3일간 4.3항쟁 70주년을 맞이하여 ‘4.3항쟁 70주년을 기억하는 제주평화순례’를 떠났다. 이 번 순례는 진광수 목사(고난함께 사무총장)와 20여명의 감리교회 목회자들 및 감신대학생이 29일 오후 제주로 모였다. 대다수가 사역자이기 때문에 주일 일정을 다 소화하고 다소 늦은 시간 모임을 시작했다.

첫날의 일정은 제주 표선면에 있는 숙소에서 오리엔테이션 및 4.3항쟁과 강정마을 이슈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늦은 시간까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둘째 날 첫 방문은 4.3평화공원 견학으로 시작하였다. 해방 직후 제주의 처참한 고난의 흔적을 돌아보고 애환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특별히 4.3항쟁에 대한 해설을 맡은 선생님께서 자신을 4.3항쟁의 피해자요 가해자의 가족이란 사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진심어린 설명으로 약 1시간가량 4.3항쟁의 배경과 배후 그리고 당시의 사건들을 진지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설명해 주었다. 해설자의 입장처럼 제주에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함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70년 전 일제로부터 수탈과 박해 속에 어떤 이들은 피로, 어떤 이들은 수치를 당해도 참고 이겨내며 그렇게 염원했던 일제로 부터의 해방, 광복의 날을 밝았다. 그 후 2년이 지났다. 1947년 봄 여느 때와 같이 제주에는 벚꽃도 유채꽃도 동백꽃도 피고 있었다. 1947년 3월 1일 제주북교에서 3.1절 기념행사 한 아이가 당시 경비에 나섰던 기마경찰에 의해 부상을 당했지만 경찰이 아무런 대처 없이 도망한 일에 대하여 항의를 하였고, 그 대답으로 소총을 발포해 6명이 죽게 되었다. 경찰은 이것을 정당방위로 발표하였고 항의에 참여한 관련자들을 검거 하는 등 강경 대응을 하자 이에 166개의 기관단체가 참여하는 3.10 총 파업을 단행하여 경찰의 탄압에 저항함으로 4.3항쟁이 시작되었다.

이승만은 미군정과 손을 잡고 제주도를 손아귀에 넣기 위하여 육지에서 서북청년회를 파견하였다. 이들에게 인권비가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수당을 채우기 위해 경찰 및 군정과 야합하여 태극기 등을 강매하고 가진 폭력과 억압 그리고 살인을 자행하였다. 이에 1948년 4월 3일 새벽 경찰의 탄압에 저항하려는 사람들 350여 명이 12개의 경찰지서를 습격하고, 우익단체들을 공격하여 민•경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무장대는 경찰과 서북청년회의 탄압 중지와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 촉구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5•10단독선거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 투쟁을 전개하여 5•10총선거에서 제주 3개 선거구 중 2개 선거구가 투표 과반수 미달로 무효처리 됨에 따라 독기를 품은 미군정과 이승만은 1948년 10월 17일 제9연대장의 포고문 발표와 그해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1949년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토벌대의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을 불태워 가옥이 소실되고 많은 주민이 불법으로 처형당했다. 이 당시 희생당한 주민만 3만여 명이나 달한다.(4.3 70주년 2018 제주방문의해 홍보지 참조)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울던 한민족 한 형제에 의해 처참히 짓밟히고 죽어야 했던 비극의 동족상잔(同族相殘)을 그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을까?

 

   
 

 

4.3항쟁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놓은 전시물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포장되어 보이지 않던 슬픔이었다. 70년이 지난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침묵의 함성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데올로기로 대립되는 시대에 인간성을 상실한 이들이 자행한 처참한 학살의 흔적은 70년의 긴 시간동안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에게 분명한 요구를 하고 있다. 4.3을 바라보는 지금, 수동적으로 전해지는 희생역사 앞에서 우리에게 끓어오르는 분노와 한 없이 가슴 아프고 먹먹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라산 자락에 한탄의 넋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어서 다음 여정으로 일제 강점기에 제주도를 수탈하고 파괴한 일본군의 만행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가마오름 평화박물관’에 들어서자 해병대의 전략 전차 L.V.T(수륙양용장갑차)가 보였다. 약 15분가량 영상(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을 시청한 후에 전시장에 들어갔다. 가마오름 지하에 땅굴을 파놓은 일본군의 물품들과, 기증 받거나, 수집해온 일제 강점기의 군사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별히 기억되는 것은 연평도 포격 탄피가 전시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설명을 잘하는 해설자 한 분은 제주도의 일본 만행을 설명하며, “일제는 제주도를 마지막 최후의 전쟁 시나리오 속에 넣었다. 미국에게 패할 것을 짐작한 일본은 제주를 일본 본토의 방패로 만들기 시작했다. 제주의 200여개의 오름 속에 개미굴처럼 여러 곳에 땅굴을 파 놓았다. 일제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무참히 짓밟고 파괴하였다.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미국에 항복한 일본은 조선 땅 가운데 가장 늦게 철수하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진지들을 폭파하는 과정에 강제징용 되었던 제주도 남자들이 아직도 오름 속 땅굴에 매장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고난함께’ 4.3평화기행단은 현재 해군기지가 막바지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인 강정마을을 방문하였다.

강정마을 안에 마련된 평화센터에서 현재 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들었고, 특별히 개척자들이라는 단체의 미국인 자매(커리와 켈리)가 이날 함께 하면서 화기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리고 강정마을이 제주의 제2의 4.3이 되어버렸다는 현지인의 눈물어린 증언을 들을 수가 있었다. 투쟁 4000일이 지난 현재 강정마을은 20여명의 해군기지빈대 지킴이가 남아 있고,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오면서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과 아직도 불협화음이 계속 있다. 특히 이번에 다소 젊은 층의 사람들이 마을대표로 뽑히면서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어서 가톨릭 공소회장(가톨릭 신부가 없는 성당의 장) 정선녀씨의 현장의 증언은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먹먹한 감동을 주었다.

“ 지금이 물때다(바다가 풍요로운 때) 소라 작업 할 때이다. 바다가 제일 풍요로울 때인데... 바다는 제주사람에게 삶의 터전으로 가장 소중한 곳이다. 제주 사람들은 모두가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 때문에 행복했었다. 가족 중에 해녀가 많다. 그래서 우리 가족, 우리 마을, 제주의 사람들은 행복했었다. 이때가 오염되지 않은 행복을 누리던 때이다. 그래서 그런지 물때가 되면 몸이 먼저 알고 힘이 난다.

해녀는 나이가 들어도 죽는 그 때까지 물질을 하고 물에서 죽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숨을 내 쉬는 순간 바닷물을 몸에 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바다는 삶이고 삶의 터전이 바다이다 강정(구럼비-강정의 옛 이름)은 감태나 미역 등 해초가 풍부한 마을인데 해군기지가 들어오면서 삶의 행복도, 삶의 터전도 다 빼앗겼다. 이에 따른 보상을 상군(제일 깊이 들어가는 해녀) 8000만원, 중군7000만원, 하군 5000만원씩 턱없이 부족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한다.

지금 바다에 나가면 해초가 하나도 없다 소라도 영양실조로 알이 없다 그 안에 게가 다 차지했다. 이것을 노미집 살이(남의집살이)라고 하는데, 있어야 할 것이 없고 남의 집에 들어와 살고 있는 모양이 바다 속이나 강정이나 우리의 처지가 그렇다.

요즘 백배(100회의 절)를 한다. 따로 마련한 부스 안에서 한다. 우리는 바닷가에 생명이 없으면 살 수 없고 생명을 만들어내는 곳이 바다인데 지금 제주 앞 바다에서는 생명을 죽이는 시설을 만들었다. 평화는 무엇인가? 생태가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반(反)을 빼는 것이 평화다. ‘반평화, 반민주, 반인권, 반통일’

이번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마을은 예전과 다른 서로를 적대하는 관계가 만들어 졌다. 과거 4.3의 일도 그렇듯 서로가 혈연관계이면서 원수지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웃을 사촌이라고 부르지 않고 삼촌이라고 부른다. 4.3의 소설 ‘순이 삼촌’에서 삼촌이 바로 이 뜻이다. 우리는 남자든 여자든 다 삼촌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서로 상부상조하며 살던 우리의 이웃이 지금은 4.3의 아픔을 다시 느끼는 것 같다. 요즘은 많이 좋아지고 있어 다행이다. 남과 북이 화해하는 이때에 우리도 견디고 좋은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젊은 분들이 와서 우리와 함께 동행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어서 고난함께를 대표해 진광수목사(고난함께 사무총장)가 기금을 전달하고 해군기지 앞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생명평화의 땅 제주를 염원하는 고난함께 만종기도회’를 해군기지 앞에서 5시에 시작하였다. 이날 흐린 날씨 가운데에도 함께 모인 이들이 진심을 담아 예배를 드렸다. 사회는 고난함께 간사를 맡고 있는 민아름 전도사가, 기도는 박형순목사(희망감리교회)가 설교는 진광수목사가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의 말씀으로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다. 진광수 목사는 “처음 방문 때와 다른 상황이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이 이젠 군사시설로 막혀있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점점 잊혀져가는 것이 두렵다. 잊혀 지려고 하는 것으로 부터 계속 기억하려고 하는 것이 투쟁이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를 수 있었던 그곳, 우리가 기억한다면, 그 기억이 살아 있다면 강정마을을 살릴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강정마을의 평화로웠던 때를 기억하자 강정마을 평화의 마을로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옳은 것을 따라야한다.”고 말씀을 전하였다.

2박3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4.3항쟁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유커들(중국 관광객)이 빠지고 국내여행객들로 제주공항은 인산인해다. 많은 사람이 제주를 찾지만 제주의 역사와 아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제주를 찾을 때 꼭 제주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다면 더 뜻깊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제주의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하는 것처럼 오늘도 제주는 우리에게 4.3의 아픔을 함께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제주의 슬픈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또 다시 이러한 비극을 맛보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4.3항쟁의 희생자를 위로고 추모하기 위함이다.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억하는 것뿐이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가는 이 따뜻한 봄의 온풍이 70년 전 아픔의 역사로 붉게 물들였던 동백의 계절을 치유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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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61.36.222.132)
2018-05-03 13:38:52
사실을 오도한 편향된 기사
제주4.3을 왜? 민주화운동 등의 수식어 없이 그냥 4.3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는분의 편향된 기사입니다.
4.3은 해방이후 제주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일제강점기 이후 귀향하는 사람의 증가) 일자리 부족등과 같은 사회현상이 발생하면서 남로당 제주도당 간부들이 이 민심을 교묘히 파고들어 불법 집회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기마경찰과 시민의 충돌후 미 군정청의 현지 민심을 잘 확인하지 못한 어리석은 과격 진압과 이에 대한 복수로 남로당 청년대원들의 군경가족 학살 이에따른 군경의 남녀노소 어린아이까지 죽이는 피의 보복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시대의 비극으로 마치 민주시민의 의한 평화적인 항쟁에 군경의 일방적 보복을 한것같은 편향된 삐뚤어진 의도적인 기사는 자제해 주심이 바른 처사일 것 같습니다.
제주도민의 아픈역사와 우리민족의 근현대사의 대한 재 조명이 이루어지는 후대에 가서 자연스럽게 역사의 기록으로 판단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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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개혁본부 (121.127.77.229)
2018-05-03 13:51:13
가슴이 무거워 오는 진정한 진실은 "티"를 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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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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