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신앙을 혼동하는 교인이 많다. 그런 이들은 종교인으로의 삶에 충실하면서 자신이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가장 신랄하게 지적한 이들이 이들이다. 바리새인, 율법사, 제사장, 레위인 등 당시 유대의 종교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긴다고 자처하던 이들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회칠한 무덤 같다며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전혀 신앙인이 아니라고 평가하셨다. 그러기에 그른 태도를 고치라고 교훈하고 가르치셨다. 결국 듣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교회에 다니면서 자신의 열심을 자랑하는 이들 중에 예수 당시의 종교인들과 다름없는 이들이 많다. 불행하게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 이야기는 성도라면 잘 아는 이야기다. 왜 그들은 강도 만나 피를 흘리고 신음하고 있는 이를 돕지 않았을까. 가장 신빙성 있는 의견은 그들이 성전에 일하러 가던 중이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거룩해야 성전에서 일할 수 있다. 피를 묻히거나 죽은 시체를 만진다면 불결해진다. 그들은 종교적 율법에 충실한 이들이었다. 그러기에 성전에 가는 길에 만난 이웃을 돌볼 수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종교주의자의 전형적인 태도다. 오늘날 이와 같이 종교에 충실한 기독교인이 있다. 하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대표되는 신앙인을 찾으시는 것이지 종교에 충실한 이를 찾으시는 게 아니다.

예전에 관악산을 오를 때 항상 만나던 승려가 생각난다. 매일 만나는 분이기에 인사를 하면 묵언수행 중인지는 몰라도 무덤덤하고 딱딱한 표정으로 손만 합장을 했다. 한 번도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못 봤다. 그때 난 전형적인 종교인의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하곤 씁쓸해 했었다.

그는 나도 근엄함 속에 사랑을 잃지는 않은 건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자신의 신조에 묻혀 사람냄새가 나지 않으면 분명 신앙인이기 보다 종교인이다. 엄격한 신조의 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종교인인 바리새인들, 철저히 실천가이길 원했고 그것을 가르치셨던 예수님, 둘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프릿츠 리데나워는 <종교에 매이지 않은 그리스도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남들과 비교할 때 그래도 꽤 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완전함에 비추어 볼 때 얘기는 달라진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계속 가면을 만들어 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앞에 아무리 선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해도, 아무에게도 발견되기 원치 않는 더러운 마음의 방을 몇 개씩은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저분하고 은밀한 방을 잠가 두고 열쇠를 멀리 집어 던진 것이다.”

얼마나 짜릿한 지적이냐? 마음을 몽땅 들켜서 가슴 한 가운데 대로가 뚫린 기분이다. 우리는 한 번 물어봐야 한다. 종교인인지? 신앙인인지?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교인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종교인의 길에서 신앙인의 길로 돌아서야 한다. 하나님은 도인을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초인을 원하시지 않는다. 생활인을 원하시며, 사람냄새 나는 그리스도인을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