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된 인간들을 위한 인본주의 교회의 잔치는 끝났다.

[우리는 왜 교회를 꿈꾸는가](현승건 지음, 교보문고퍼플출판)에서 발췌함

이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교회를 꿈꾸는가?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랑은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랑에 목말라 하듯이, 우리는 교회에 너무도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필사적으로 교회를 꿈꾸는 이유이다.

손봉호는 “지금 한국교회는 개신교 역사상 가장 부패했다. 한국교회 교인수가 줄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증인을 못 믿는데, 증인이 거짓말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믿겠는가? 이제까지 믿었던 사람들도 부패를 보면서 낙심하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 고 주장한다.[1] 그는 “한때 삶의 중심부에 있었던 종교는 주변으로 밀려나 사적인 공간에서 쉬는 시간에나 관심을 쓰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다.” 라고 지적하면서, “기독교의 권위는 떨어졌고,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발언권을 상실했다.” 고 한탄한다.[2]

은준관은 존 로빈슨(John A. T. Robinson)이 예고한 ‘교회의 죽음’ 을 인용하며 “한국교회의 성장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 종교사회학자들의 일관된 해석이다.” 라고 설명하면서, “교회는 무엇일까?” 라는 근본적인 신학적 질문 하나를 제기한다.[3] 그는 불만(Walbert Bühlmann)의 “제3교회의 도래”를 인용하며 2000여년의 교회의 진행을 제1교회, 제2교회, 제3교회로 구분하면서[4], 20세기 중엽부터 역사의 무대를 서서히 장악하기 시작한 제3교회에 주목한다. 특히 “1985년을 기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한국교회의 침체현상은 이미 서유럽과 미국교회들이 경험한 교회 죽음의 징후들을 그 안에 담고 있다.” 고 지적한다.[5]

이러한 상황속에서 이미 교회에 나가지 않는 교인이 증가하고 있고, 이런 현상이 ‘가나안 교인’ 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증후군으로 나타나고 있다.[6]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교회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4세기에 유럽에서 시작된 르네상스(Renaissance, 문예부흥)는 중세의 신본주의 패러다임(paradigm)에 대한 반발로 새로운 근대 패러다임을 시작하였다. 이는 인간의 해방을 주장하는 인본주의의 선언이며,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속에서 16세기에 마틴 루터(Martin Luther)와 장 칼뱅(Jean Calvin)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위대한 종교개혁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주창한 구호는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라는 구호였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근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속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한 운동이었다.

‘오직 성경’ 이라는 구호는 중세교회의 전통과 전승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직 기록된 성경만을 인정하겠다는 의지였다. 또한 중세교회의 사제에 의한 면죄권에 대한 반발이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하는 선언을 하게 하였다.

이러한 근대 패러다임의 바탕이 된 인본주의와 과학주의는 이후 700여년에 걸쳐 시대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 패러다임은 2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점차 퇴조를 보이고 오히려 이러한 근대 패러다임에 반기를 든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탈 권위주의적이고 반 과학주의적인 전혀 새로운 흐름이다.

근대의 인본주의는 겉으로는 유신론을 표방하면서도 그 속내는 이 세상에 인간들의 이상향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김재성은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에 관해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를 확신하던 에라스무스는 기독교 사상가로서 도덕운동에 열심을 가졌기에 자유의지론을 주장했다.” 고 설명하면서,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추구하던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자발적인 양식을 증진시키라고 주장했다.” 고 적고 있다.[7]

이러한 인본주의는 하나님의 간섭 없이도 스스로의 이성과 과학과 합리주의를 통해 이 세상에 인간의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자신감이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근대의 인본주의는 한 번뿐이자 잠시 뿐인 인생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여 인간의 행복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인간의 생명을 중시하며 인간의 생존을 위한 환경의 보존에 주력하여 왔다. 부의 편중과 인권의 억압 그리고 자연환경의 보존을 위해 투쟁하면서 오직 인간의 평등과 자유와 행복을 위한 정의로운 인간의 유토피아 건설을 지상목표로 하여 왔다.

근대의 패러다임은 중세의 하나님 나라 중심적 신본주의에 반발하여 이 세상에 인간의 낙원을 건설하려는 세속적 인본주의를 신봉해 왔다. 이러한 근대의 인본주의 패러다임은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극복하기 힘든 커다란 장애였다. 오히려 기독교안에서 조차도 이러한 세속적 인본주의의 사고가 넓게 퍼져서 교회는 물론 신학과 신앙의 전분야에 걸쳐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적(겉으로는 기독교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기독교가 아닌)인 현상들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8]

그러나 이러한 인본주의 패러다임속에서도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지고 교회의 부흥이 이루어진 것은 다름아닌 세가지 방부제가 그 역할을 감당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가난과 질병과 핍박이었다. 거대한 인본주의의 흐름속에서도 가난과 질병과 핍박은 기독교의 복음을 신선하게 유지하였고 교회의 부흥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하여 이러한 가난과 질병과 핍박의 요소가 사라지면서 교회에서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점차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의료기술의 발달과 의료보험의 완비로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민주화의 진전으로 독재의 핍박이 사라지게 되었다. 기독교의 복음을 신선하게 지켜온 세가지 방부제가 사라지면서 잠재하였던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다.

일부 교계의 지도자들이 탈선하고 일부 대형교회들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상황은 이미 근대 패러다임의 커다란 흐름속에서 잠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일부 목사들이 타락하고 일부 교회들이 부패하여 생긴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신선하게 지켜온 가난과 질병과 핍박의 요소들이 걷히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시작한 인본주의의 본질적인 현상이다.

손봉호는 “교회가 물량적으로 커지자 돈, 명예, 지위, 권력같은 하급가치가 생겨나서 그런 것을 탐하는 불순분자들이 교회안으로 들어오거나 교인들이 유혹을 받아 타락하기 때문이다. 과거 그리스도인이 핍박 받는 소수였고 교회가 가난했을 때는 그런 세속적인 가치를 탐하는 자들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런 것 때문에 다툴 이유가 없었다.” 고 주장한다.[9]

14세기에 시작된 거대한 인본주의의 물결속에서 필연적으로 출발하게 된 개신교회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700여년에 걸친 장대한 인본주의 패러다임의 흐름에 밀려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진 세속주의의 해변에 표착하였다.

20세기를 지나면서 경제부흥으로 인한 물질적 풍요와 의술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수명의 연장 그리고 정치의 민주화로 인한 민주주의의 확립속에 교회는 더이상 가난하고 병들고 억압받는 자들의 친구가 되기를 포기하였다.

교회의 성장은 목사의 사회적 신분을 보장하며 교회의 직분은 권력을 분점하는 관료화를 이룩하고 각 교회는 스스로의 영역을 구축하여 이 땅에 천국을 실현하려는 개교회의 바벨탑을 완성하였다. 이런 상황속에서 교회는 신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고, 그들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세속의 행복감에 취한 교회는 더이상 그들을 불러들일 의지도 능력도 상실하였다.

아직도 다수의 건강한 교회가 존재하고, 또 스스로 개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도 있지만, 그러나 오늘날 일부 교회의 모습은 신자들로 하여금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교회를 떠나게 한다. 교회를 떠나 방황하는 가나안 신자는 이제 어느 곳으로 향할 것인가? 과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가나안 복지는 이 땅 위에 존재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이미 가나안 땅을 마련해 두셨듯이, 오늘날 교회를 떠난 가나안 신자를 위해 복된 처소를 마련해 두셨음이 분명하다.

세속화된 인간들을 위한 인본주의 교회의 잔치는 끝났다. 유신론적 신본주의의 패러다임이 다시 시작되는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신 원형교회의 모범을 따라 이 땅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새롭게 세울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교회를 꿈꾸는 이유이다.

근대 패러다임의 특징을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이성주의와 과학주의 그리고 합리주의와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반발로 태동하게 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신본주의를 바탕으로 감성주의와 다원주의 그리고 혼합주의와 상대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은 오히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새로운 기회이며 도전의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신본주의의 패러다임속에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한 대열을 정비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얼마나 구시대의 인본주의에 오염되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예수님의 마음에서 멀어져 있는지 자각할 때가 왔다. 예수님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천국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영광의 나라로 가는 길을 열어주셨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시대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영원한 생명을 향해 열려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위해 잠시 뿐인 자신의 생명을 버릴 때에 얻게 되는 영원한 생명이다.[10]

은준관은 “진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라는 물음에, “진정한 교회란 역사의 삶 속에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를, 그리고 그의 뜻을 신앙으로 분별하는 사람들이 자기 혼자만의 구원과 축복이 아니라 이 역사를 살아가는 이웃 모두와의 공동운명 의식과 책임의식으로써 ‘하나님의 나라’ 와 그 ‘의’를 구하기 위해 헌신한 공동체이다.” 라고 답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증언자로 결단하는 자들의 공동체이며, 교회라는 말보다 하나님의 백성(Laos Tou Theou)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고 강조한다.[11]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WCC와 제2 바티칸 공의회를 거쳐 부상된 제3의 교회의 ‘선교신학적 접근’ 을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 개입과 종말의 약속을 따르는 ‘역사종말론적 신학의 접근’ 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Basileia Tou Theou)’ 를 지향한다.[12]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인간의 낙원이 아닌 탈 세속적이고 신본주의적인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를 목표로 한다. 그리고 잠시 뿐인 이 세상에서의 생명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소망한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이며,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예수님에게 충성을 바치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교회이다.

시나브로 죽어가는 ‘제3의 교회’ 를 뒤로 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여 새로운 교회를 꿈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긍지를 품고 다시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능력 있게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1] 2011년4월20일 한기총 해체를 촉구하는 손봉호 초청 강연회 인천기독교회관강당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 이진오 / 인천 더함 공동체 교회 http://cafe.naver.com/withpluscom 뉴스앤조이(http://www.newsn joy.co.kr) 출처: http://cckout.tistory.com/71 [한기총은 해체돼야 합니다! CCKOUT]

[2] 손봉호,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서울: 도서출판CUP, 2017), 91-92.

[3] John A. T. Robinson, “Church and Theology: Here to Where”, Theology Today, 1968, vol. Ⅱ, 149; 은준관, 『신학적 교회론』 (서울: 한들출판사, 2013), 5. 에서 재인용.

[4] Walbert Bühlmann, The Coming of the Third Church (Maryknoll, NY: Orbis Books, 1978): 은준관, 『신학적 교회론』, 15-40. 에서 재인용. 불만에 의하면, ‘제1교회’에는 지역적으로 동방교회들과 공산주의 국가 내의 교회들이 포함된다. 특히 11세기 로마교회와 분리하기 이전의 교부 시대의 중세 초기까지의 교회 역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교회(Orthodox Church)가 제1교회로 지칭된다. ‘제2교회’는 주후 1000년에서 1500년까지의 로마 가톨릭교회와 1500년에서 1950년까지의 유럽과 미국의 개신교회 모두를 총칭한다. ‘제3교회’는 로마 가톨릭의 1963년 제2바티칸 공의회(Vatican Council Ⅱ)에서 ‘새 오순절, 새 교회상, 평신도 사역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계기와 개신교회의 1968년 웁살라(Uppsala)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n Dei)’라는 혁명적 신학을 선언하였다.

[5] 은준관, 『신학적 교회론』, 18-41.

[6] 가나안은 성경에서 ‘젓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 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교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이른바 교회에 ‘안 나가’ 는 교인이란 의미이다.

[7] 김재성, 『종교개혁의 신학사상』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7), 255-256.

[8] 현승건, “한국 개신교 교회의 갱신을 위한 기독교 세계관의 적용 방안에 관한 연구”, 신앙과 학문, 제17권 1호(2012,3), 293-294.

[9] 손봉호,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117.

[10] 개역개정, (마 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11] 은준관, 『신학적 교회론』, 460.

[12] 은준관, 『신학적 교회론』, 5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