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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호신술
지성수  |  sydneytax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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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4월 14일 (토) 22:39:56
최종편집 : 2018년 04월 20일 (금) 02:57:46 [조회수 :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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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내주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쪽 뺨을 때리면 된다”

희대의 영적 사기꾼이었던 오쇼 라즈니쉬가 한 말이다. 맞는 말은 아니지만 세상의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그러므로 양쪽 뺨을 때릴 준비가 되어 있는 상대에게 오른 뺨까지 내미는 사람은 바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바보 노릇을 하라고 가르친 것일까? 그럴 리가 있나? 그러므로 이 말을 문제 그대로 해석하면 병신 쪼다가 되는 것이다.

싸움을 좀 해 본 사람을 알 수 있지만 때리는 것도 기술이지만 맞는 것도 기술이다. 실제로 군대에서 잘못 맞아서 병신 된 사람 많았다. 맞아도 잘 맞아야 한다.

호신술의 경지에서 보면 두 손으로 사람을 때릴 때는 식성 대로 때리면 되니까 구태어 왼 뺨을 들이 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절대적 우위 서 있는 상대가 분노해서가 아니라 멸시의 입장에서 때릴 때는 두 손으로 때리지 않고 한 손으로 때린다. 조폭 영화나 군대 영화에서 앞에 세워 놀고 훈계를 하면서 한 손으로 한 번씩 때리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최악은 한 손으로 왼 뺨, 오른 뺨을 때리는 것이다. 때리는 사람이 오른 뺨을 때린 후 왼 뺨을 때리려면 손등으로 때리게 되어 있다.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마저 돌려대라.”는 말을 기술적으로 해석해 보자. 전혀 저항할 수 없이 맞을 때 때리는 놈이 오른 뺨을 때리면 얼굴이 왼 쪽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 때 빨리 얼굴을 다시 돌려서 왼 뺨을 대지 않으면  코뼈가 부러질 수 있다. 호신술의 입장에서도 예수의 가르침은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단순히 호신술 교육을 했겠는가? 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예수의 호신술 강의는 어떤 문맥에서 등장했던가?

“누가 당신의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그에게 다른 쪽 뺨마저 돌려대시오.

당신을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마저 내어 주시오.

누가 당신에게 천 걸음을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시오.

당신에게 청하는 사람에게는 주고, 당신에게 꾸려는 사람은 물리치지 마시오”

(마5:39-42)

 

위의 성경 구절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4 가지의 이야기가 밑에서부터 점차 그 요구가 더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 꾸어 달라고 하는 청에서 함께 가자는 강요를 거쳐 재판을 걸겠다는 협박을 하고 나중에는 뺨을 때리는 폭력으로 점점 억압이 고조되고 있다. 마치 범죄자가 수사망이 점점 좁혀오듯이 신변의 위협이 점점 높아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여기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을까? 주목할 점은 예수가 이야기한 위의 네 가지 경우는 당시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당시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부딪히고 있는 실재적인 일들이었다는 것이다.

우선 제일 강제성이 약한 네 번째 경우인 돈을 꾸어 달라고 하는 경우부터 생각해 보자.

고대 동방에서는 구걸을 하는 거지들 때문에 성가실 지경이었다. 소수를 빼고서 대부분의 국민의 아르바이트가 구걸이라고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오늘날의 아프리카처럼.

거지가 졸졸 따라다니면서 졸라대는 것은 물론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비록 염치없이 조르더라도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 번째 경우를 보자. 징용, 징발이다. 일제 시대 때, 6,25 기간에 많이 있었던 일이다. 예수 당시 길을 가다가 로마군에게 재수 없이 물건을 지고 가라고 강제징벌을 당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다.  안 가겠다고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닐 것이다. 할 수 없이 복종해야만 하는 경우인데 5리를 끌려간 다음에 인상 쓰다가 트집을 잡혀 한 대 맞고 5리를 더 끌려가기 전에 자진해서 10리를 가라는 말이다.

두 번째 경우는 상황이 더욱 나빠진다. 가난한 사람이 가진 것이라는 그것 밖에 없는 한 벌 옷을 빼앗길 처지이다. 유대인의 율법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추운 밤에 겉옷을 이불을 삼아야 함으로 어떤 경우에도 겉옷은 빼앗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유대인 사이에서는 겉옷을 빼앗길 염려가 없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고 점령군인 로마군을 상대로 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한 마디로 치사하니까 까짓 것 겉옷까지 주어 버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 경우는 위에서 설명했다. 즉 어떤 경우에든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한 걸음 더 나가는 적극적 복종을 하라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세계적인 군사강국 로마와 보잘 것 없는 변방의 식민지 팔레스틴의 이스라엘 민족주의가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예수가 로마와 유대 사이의 정치 사회적 구조를 분석할 만한 식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고대인으로서 예수는 로마를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 정도로 파악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명백하다. ‘불의를 당하더라도 어떤 보복이라도 할 생각일랑 아예 말아라. 힘으로 대항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가 과연 누구를 상대로 이 말을 했느냐 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 당시 권력을 잡은 자들에게 이 말을 한 게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리떼가 들끓는 것 같은 세상에서 살아야만 하는 양 같은 입장인 제자들에게 뱀 같은 지혜를 말한 것이다.

그들에게 상대방에게 감동을 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방법 즉, 상대방은 가지지 못한 도덕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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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8 17:57:37
호신술이 누구를 감동시킬수 있단 말인가?
만약 호신술로 누구를 감동시킬 수 있는 호신술이 있다면 내게도 그런 호신술을 가르쳐 주시오.

진정 호신술로 감동을 받을 것이라면 그는 싸움꾼이던지 아니면 세상의 왕따이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약자(왕따자)들을 위한 교훈이라 하고 있는 것이겠지...

만약 예수님의 말씀이 약자들만을 위한 가르침이라면 어찌 세상을 구원할 복음이라 할 것인가? 어찌 예수를 인류의 구원자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가 가난한자들과 약자들만을 위한 구원자이던가?
그런 예수는 정치 신학자들의 장난이며 사회 운동권(정치)자들의 편협한 생각이며 예수님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이려는 얄팍한 술수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약자의 편만이 아니다. 예수님은 모두의 편이시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한다면 상한 심령으로 통회하는 마음을 갖은 모든 이들의 편이시라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감동을 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방법 즉, 상대방은 가지지 못한 도덕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

도덕과 윤리는 감동이 아니다. 도덕과 윤리가 감동이 되려면 그 도덕적인 행위와 윤리적인 행위의 이면에 거룩한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만 한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만이 진정한 감동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과 윤리가 줄수 있는 감동은 참 감동이 아니라 미혹이다. 세상의 교훈이며 세상의 가르침일 뿐이다. 그래서 당장은 감동이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겠지만 실재론 도적적 윤리적 외식행위에 대하여 큰 배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향하여 윤리와 도덕적인 선생으로 다가간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반해야만 했고 부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 믿었던 이들은 참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은 선생이신 예수님을 부정하고 부인했던 제자들을 감동케 했으며 그들의 입을 통해 예수님은 윤리와 도덕의 선생이 아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로 선포되었다. 이것이 성령의 감동이었던 것이다.

호신술은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오직 성령의 사람만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무조건 왼편 뺨을 내준다고 감동이되고 감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칫 미친놈 처럼 취급을 당하거나 자신을 모욕하는 행위로 취급하여 더 큰 폭행을 당하기 쉽다.

그러니 왼편이든 오른편이든 겉옷이든 속옷이든 오리든 십리든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그것이 예수님의 진정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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