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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비평적 방법으로 오경의 저자를 찾다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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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4월 06일 (금) 23:44:07
최종편집 : 2018년 04월 20일 (금) 02:58:12 [조회수 :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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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경의 저자에 대한 주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편에서는 전통을 따라 모세가 오경의 저자라고 보고, 다른 편에서는 19세기 후반에 벨하우젠이 내놓은 편집비평에 따라 모세가 오경의 저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많은 현대 신학자들이 편집비평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모세오경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편집비평을 고등 비평적 혹은 역사 비평적 방법이라고 말하는데, 문학비평적 방법으로도 모세가 오경의 저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힐 수 있다.

이 새로운 방법에서는 소설의 이야기 전개에 관한 이론을 오경에 적용한다. 소설을 언급하니까 오경을 소설처럼 지어낸 이야기로 보는 것 아니냐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단지 오경과 소설이 모두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공통점에 초점을 맞춘다.

창세기는 천지창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을 탈출해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모세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배우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오경은 이야기체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야기에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오경에 적용하면 리트머스 시험지에 색깔이 선명하게 나타나듯 오경의 저자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결과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 이렇다 혹은 저렇다 시비를 걸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제 오경의 이야기에 이야기 이론을 적용해서 오경의 저자를 찾아보기로 한다.

 

시점(point of view)에 관한 이해


이 글에서는 이야기의 전개 방법인 ‘시점’에 의지해서 오경의 저자 문제를 이해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나이든 독자들에게 ‘시점’이라는 용어가 아주 생소할 것이다. 그래서 우선 ‘시점’을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소설에서 시점은 하나의 이야기가 이야기꾼(화자, narrator)에 의해 이야기되는 방식 또는 이야기꾼이 작품 내의 상황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보통 1인칭 소설과 3인칭 소설로 구분하는데, 이것은 소설을 이야기꾼의 유형에 따라 구분하는 방식이다. 1인칭 소설에서는 ‘나’라는 1인칭 인물이 자기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어 나가기 때문에 1인칭 시점의 이야기라고 한다. 3인칭 소설에는 ‘그’라고 불리는 3인칭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을 3인칭으로 언급하는 이야기꾼이 제 3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에 3인칭 시점의 이야기라고 부른다.

1인칭 소설에서는 이야기꾼인 ‘나’가 자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를 작가와 동일시할 수 있다. 그런데 3인칭 소설에서는 보통 이야기꾼이 작중 인물 모두를 그리고 그 인물들의 생각을 다 알기 때문에, 전지적인 시점의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 전지적인 이야기꾼을 작가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고전소설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지적 시점을 취했으나 헨리 제임스(1843-1916) 이후의 근대 소설에 와서는 다양한 시점이 시도되고 있다. 1인칭 소설의 시점을 1인칭 주인공 시점과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구분하고, 3인칭 소설의 시점을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과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3인칭 소설에는 전지적 시점만 있지 않고 한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관찰하는 3인칭 제한적 시점도 있다. 현대에 와서 소설의 시점이 이렇게 세분화했지만, 오경의 저자를 밝히는 데에는 이렇게 세분화한 시점 이론이 필요 없다.

성경은 시점이 세분화하기 이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3인칭 전지적 시점의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런데 전지적 3인칭 시점인 이야기에서는 전지적 이야기꾼을 저자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

 

   
 

 

오경에 나오는 3인칭 전지적 이야기꾼


오경에는 1인칭 인물을 내세워서 기록자가 자신의 경험을 전하는 이야기가 없다. 모두 3인칭으로 부르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의 삶을 속속들이 아는 전지적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여호와, 아브라함, 모세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들 역시 나도 너도 아닌 3인칭 인물들이다.

3인칭 전지적 시점의 이야기에서는 이야기꾼이 언급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이야기꾼이 등장인물들 뒤에서 전체 이야기를 조정하면서 끌고 나간다. 이 이야기꾼은 직접 개입해서 이야기를 이어주기도 하고 논평하기도 한다. 오경의 이야기꾼은 모세의 생각과 기분도, 이스라엘 백성의 동기도, 심지어 모세 외에는 아무도 본 일이 없는 여호와의 의중도 모두 알고 있는 전지적 이야기꾼이다.

창세기에서 보면, 이야기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면서 일하시는 것을 하나하나 전달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진술하는 사람이 바로 이 이야기꾼이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고 좋게 생각하신 것을 파악하고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전달한다. 그리고 노아가 드리는 번제를 받으시고 여호와가 다시는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심중에 다짐하는 것까지 정확하게 알고서 그 사실을 알려준다.

이렇게 주인공의 외면적 행동은 물론 내면적인 느낌이나 생각까지 모두 아는 이야기꾼을 전지적 시점의 이야기꾼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심중까지도 아는 이 이야기꾼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경지에 오른 것 같이 보인다. 이렇게 모든 것을 파악하여 전달하는 이야기꾼이 바로 오경의 저자다.

그런데 모세는 전지적 이야기꾼이 아니고 오경 이야기에 나오는 여러 등장인물 중의 한 명이다. 다시 말하면, 모세는 오경의 이야기꾼이 관찰하고 그들의 행동을 전달해주고 의중까지 파악하여 알려주는 여러 등장인물 중의 하나이다. 물론 모세는 출애굽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오경의 이야기에서 어느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인 것이 사실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을 지도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계명, 규례, 전투상황 등을 기록한 책을 가지고 있다.

구약에는 모세가 가지고 있던 책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이 책을 오경이라고 볼 수는 없다. 출애굽기 17장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에서 모세가 기록한 것은 여호수아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전쟁 기록이다. 이 책을 모세 오경 저작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경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그 책에 있는 율법, 제사의 규례, 전쟁 등에 관한 기록은 오경에 포함되어 있는 단편적인 기록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모세의 책은 오경 자체가 아니고 오경 안에 포함되어 있는 단편적인 기록들을 담고 있는 자료집이다. 오경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말씀해주신 내용을 기록한 자료집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이다. 오경의 저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물론, 모세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생각뿐 아니라,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동안 산 아래서 사람들이 황금우상을 만든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한 것 등 모세가 목격하지 못한 것이나 파악하지 못한 것들도 모두 알고 있는 전지적 시점의 이야기꾼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꾼은 가끔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어서 수시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14장 31절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경외했다거나 모세를 믿었다고 언급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이야기꾼이다. 이것은 모세가 이 이야기의 기록자가 아니고 모세까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관찰하고 그들의 행동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민수기 21장 31-32절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땅에 거주하였더니 모세가 또 사람을 보내어 야셀을 정탐하게 하고 그 촌락을 빼앗고 그 곳에 있던 아모리인을 몰아내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이야기꾼이 이스라엘이 살았던 땅을 알려주면서 모세가 아모리인을 몰아낸 것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모세가 이 글을 썼다면 “모세가 또 사람을 보내어”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또 사람을 보내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여기서 모세를 관찰하고 모세의 활동상황을 전달하는 이야기꾼은 모세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모세를 이 민수기의 기록자라고 볼 수 없다.

 

오경에 나오는 1인칭 진술


오경에는 1인칭 진술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러한 1인칭 진술에 주목해서 이것은 1인칭 시점의 이야기꾼을 내세운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1인칭 진술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을 직접 인용한 것이거나 특히 신명기에서는 모세의 설교를 인용한 것이다. 인용문을 인용부호로 묶는 현대문장에서는 인용문장을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인용부호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인용문장을 알아보는 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오경에 나오는 1인칭 진술은 전지적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 1인칭 진술은 3인칭 전지적 시점의 글에 포함된 것에 불과하다.

창세기 17장 1-2절을 보면,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로 시작한다. 이렇게 “이르시되”라고 여호와의 말씀을 소개하는 사람은 3인칭 전지적 시점의 이야기꾼이다. 그 다음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라고 1인칭 진술이 나온다. 이 진술은 전지적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직접화법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인용했기 때문에 “나는”이 나온다. 그리고 2절 마지막에서 “하리라” 다음에 “하시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지적 이야기꾼이다.

전지적 이야기꾼의 언급으로 시작해서 그의 언급으로 끝나는 창세기 전체는 전지적 이야기꾼의 시점에서 기록된 글이다. 특히 창세기에는 모세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창세기의 저자가 모세라고 주장할 근거가 전혀 없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가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가 나오고 그 다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온다. 창세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인용되기 때문에 이 인용문에서 1인칭 “나”가 나온다. 여기서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라고 말하는 전지적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이 글이 시작하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 더 유의해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에서 여호와와 모세는 모두 전지적 이야기꾼이 관찰하고 설명하는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전지적 이야기꾼은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 그 내용을 전달해 주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을 관찰하고 설명한다. 따라서 전지적 이야기꾼의 글에 등장하는 오경의 여호와도 모세도 이 글의 저자가 아니다. 여기서 이 글의 저자는 전지적 이야기꾼라고 보아야 한다.

신명기에서는 3차에 걸친 모세의 설교가 소개되는데, 그 설교가 직접 인용되기 때문에 설교문 안에 1인칭 “나”가 자주 나온다. 그런데 그 설교 하나하나가 아주 길기 때문에, 그 긴 모세의 설교 때문에 신명기 전체가 1인칭 시점에서 서술되는 모세의 설교인 것으로 착각할 염려가 있다. 그렇게 착각하면 신명기가 1인칭 시점의 글이라고, 1인칭으로 말하는 모세가 바로 신명기의 저자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지적 이야기꾼이 모세의 설교를 인용하면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세의 첫 번째 설교가 나오기 전에 1장 1-4절에서 전지적 이야기꾼이 이스라엘이 처했던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5절에 가면 그 이야기꾼이 “모세가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라고 모세의 설명이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6절에서부터 4장 40절까지 모세의 설교가 직접화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 설교에서도 같은 형식이 반복된다.

이렇게 신명기에서는 전지적 이야기꾼이 이스라엘의 생활상을 설명하면서 모세의 설교를 인용한다. 특히 마지막 34절에서 이 이야기꾼이 모세가 모압 땅에서 죽었다는 것과 그가 죽기 전에 여호수아를 안수하여 지도자로 세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이 전지적 이야기꾼은 모세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선지자였다고 모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죽은 후에 평가를 받는 사람이 이 글의 저자일 수는 없다. 저자는 바로 그렇게 평가하는 이야기꾼이다.

 

마치면서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문학을 외면해 왔다. 문학을 외면한 사람들은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인데 반해서 문학은 인간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용 면에서 문학과 신학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혹은 문학에 대한 관심은 신학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세기에 와서 성경이 문학의 형식을 빌려서 표현되었다는 데에 착안하면서 신학자들이 문학 연구방법을 성경 읽기에 적극적으로 적용해 왔다. 현대 신학자들이 신앙의 언어는 상징이라고 말하거나 은유의 신학과 이야기 신학이 나온 것은 바로 문학의 영향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에게 생소하겠지만, 지금 성경 연구와 문학은 밀월관계에 있다.

필자는 소설의 시점에 관한 이론을 통해서 모세 오경의 저자 문제를 밝혔다. 소설의 시점에 관한 이론은 소설의 이야기 형식에 관한 이론이고 오경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의 기법을 오경의 분석에 적용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문학을 외면하던 시대의 사람들처럼, 그것은 성경을 만들어낸 이야기로 취급하는 일이이라고, 심히 불경스러운 짓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점 이론은 소설의 형식에 관한 기법이기 때문에, 소설의 기법을 성경의 이야기에 적용한다고 해서 성경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시점 이론을  오경에 적용해 보면 전지적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오경에서 모세는 저자일 수가 없다. 모세는 오경에 나오는 여러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저자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야기꾼이다. 성경학자들은 자료비평을 통해서 오경의 저자는 모세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오경의 저자를 밝히는 데에는 문학비평이 자료비평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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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170)
2018-04-08 16:21:06
이런 영양가 있는 글에
아무런 댓글이 없으니...
아마도 이글을
신성모독의 글로 여기는 것인가?

이해불가? 언급곤란?
근본주의, 교리주의에 빠진
어처구니없는 중생들은
다 어델 갔는가?

문학비평으로 보면
모세오경이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는데...

모세오경이 모세의 작품이라면
그는 죽어서도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기록한 자이다.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오경은 한참 후대의
포로기의 작품일 것이다.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위대한 역할을 하여야만 하는
문서(오경)에
모세의 이름이 필요했던...

그 후에도 가필과 수정은 지속되었지만 말이다!
[알베르츠의 이스라엘종교사]를 보라.
리플달기
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8 17:39:00
모세 오경의 저자가 그리 중요하시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모세오경의 진짜 저자에 대한 증언을 들으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22:29)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눈24:4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5)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롬10:9~1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벧후1:20)

괜히 성경을 무슨 고고학 자료라도 되듯이 다루려 하고 지층 속에 감춰져 있던 화석처럼 여기는 학문적 태도에서 자유로와 지길 바라오.

그래 문학비평으로 모세오경의 저자를 밝히고 모세가 아니라 부정하면 그것이 돌님을 구원이라도 하던가?

최재석 목사(?)가 구원을 받았다 하던가? 괜한 지식 자랑일 뿐......
지식을 자랑하기 위하여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려 하지 마시길 바라오.
그렇다고 모세오경이 모세가 쓴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오. 모세와 관계된 성경(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감동)은 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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