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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허와 실- 십일조, 폐지돼야 하는가?
강만원  |  mw14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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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3월 31일 (토) 14:36:53
최종편집 : 2018년 04월 20일 (금) 02:58:33 [조회수 : 7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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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허와 실

- 십일조, 폐지돼야 하는가?

 

한국교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분명히 가름하는 으뜸 논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십일조이다. 신학적·종교적 이견을 넘어 종종 이단시비로까지 불거지는 십일조를 현대 기독교에서도 ‘유일신 신앙’의 전통적인 종교규범’으로 인정하고 오롯이 실천해야 되는가? 아니면, 율법시대와 구별되는 신약시대의 새로운 규범에 따르기 위해서 마땅히 폐지했어야 되는가?

십일조는 신정국가인 고대 이스라엘의 재정을 떠받치는 율법이었지만, 교회 재정수입의 70%를 차지하는 십일조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종교규범’이다. 하지만 신약시대의 신학적·성경적인 관점에서 살필 때 결코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십일조는 한국교회의 ‘뜨거운 감자’인 동시에 ‘양날의 검’이 아닐 수 없다.

“유대 십일조는 예수시대의 새로운 종교규범과 가치에 반하기 때문에 당연히 폐지해야 되는 구습”이라는 날선 주장에 맞서, 종교적 기득권을 쥐고 있는 한국교회는 십일조를 교인의 절대의무이며 순종의 증거로 강조한다.

예컨대 사랑의 교회(오정현)에서는 정관까지 개정하면서 “십일조를 내지 않는 교인들의 자격을 제한한다.”는 항목을 추가하려 했고, 금란교회(김홍도)에서는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암에 걸린다.”는 저주설교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존폐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십일조의 막강한 위력 앞에서 일부는 “기독교에서는 각자의 신앙에 따라 십일조를 결정하되,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십일조는 강요할 성격이 아니다”라는 말로 어정쩡한 중재안(?)을 내지만, 이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허언이다.

십일조는 옳든지 옳지 않든지 엄연한 ‘종교규범’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합당한 제도라면 마땅히 지켜야 하며, 부당하다면 응당 폐지해야 된다. 각자의 개인적인 호오好惡에 따라 임의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십일조는 정녕 없어져야 되는 구습이며 이미 시효가 만료된 구시대적 유물인가? 십일조의 존폐 이유와 명분에 대해 분명히 대답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십일조의 존재이유’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십일조가 지니는 ‘종교형식’과 달리 ‘본질적인 의미와 가치’를 구별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요컨대 십일조는 유대 율법주의의 이질적인 종교제도에 머물지 않는다. 토지 분깃이 없는 레위 지파와 재산이 없는 사람들, 이를테면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기 위한 율법시대의 중추적인 사회제도가 바로 십일조이다.

이처럼 십일조가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해도 율법시대가 아닌 신약시대에서는 당연히 금지해야 되는 것일까? 이는 결코 간단한 논제가 아니다. 신약시대 기독교는 분명 율법시대 유대교가 아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관점에서 예수시대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의 십일조를 폐지하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유대 율법시대가 지났다고 율법이 지닌 소중한 정신, 이를테면 십일조가 담고 있는, 이를테면 종교를 넘어 신앙의 소중한 가치까지 동시에 버려야 하는 것일까?

종종 우리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복음과 율법으로 구별하며 이분법적 관점에서 간단히 분리하려고 한다. 물론 기독교인은 바울이 힘줘 강조했던 것처럼, 모세 율법보다 신약시대의 신앙체계, 이를테면 그리스도 복음과 계명이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예수께서도 ‘율법은 요한의 때까지’라고 선언하셨을 뿐 아니라,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옛 제사는 지나고 성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새로운 시대, 이른바 예수시대가 왔다고 하셨다.

이는 율법시대와 예수시대가 분명히 구별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구약과 분리된 신약, 야훼와 분리된 예수 그리스도, 나아가 율법과 전적으로 분리된 복음의 일방적인 배타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둘 사이가 이분법으로 절연될 수 있다면 기독교는 야훼 신앙, 이를테면 유일신 신앙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중대한 오류에 봉착한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에베소서4:4-6)

이처럼 본질적으로 ‘하나’인 유일신 신앙의 가치와 본질이 구약시대 유대교와 신약시대 기독교의 이질적인 가치로 갈린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시대와 종교, 문화와 전통에 따라 다른 모습을 지닌, 이른바 ‘다신주의’라는 성경적·종교적 오류가 발생한다.

예수는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기 위해서 왔다”고 하시면서, 율법의 강령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사랑계명’으로 요약하셨다.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제시한 신약시대 복음이 구약시대 율법과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본질이 합쳐 완성된 하나를 이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된 가치가 아니며, 유대교의 하나님 사랑, 그리고 기독교의 이웃 사랑으로 갈라지지 않는다. 첫 번째 ‘하나님 사랑’에 이어 두 번째 ‘이웃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 “두 번째도 이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랑의 ‘우선순위’를 설명하신 것이 아니다. 요컨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본질상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율법강령이며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명백한 선언이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이며,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오롯이 실현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율법의 강령을 ‘사랑’이라고 하셨고,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면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도 “나는 (율법의) 제사보다 자비와 긍휼, 요컨대 사랑을 원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구약에 명시되었고 예수께서도 여러 차례 인용하셨던 것처럼, 사랑은 유대 율법시대뿐 아니라 예수시대에도 절대계명인 동시에 그리스도 신앙의 절대가치이다. 결국 율법과 복음이, 그리고 율법시대의 규범과 예수시대의 그것이 종교형식에서 분명 다를망정 본질에서, 이를테면 유일신 신앙에서 파생된 유대교와 기독교의 두 신앙체계가 본질적으로 함축하는 내용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십일조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되는가? 십일조 논쟁의 본질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즉, 십일조를 다만 형식적인 관점에서 율법에 일치시키며 섣불리 비판하거나 폐지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유대 율법에서 말하는 십일조의 형식과 그것의 본질적인 내용을, 이를테면 십일조의 허와 실을 구별하는 ‘신앙의 분별’에서 시작돼야 한다.

예수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대 율법주의의 구습인 십일조의 형식, 이를테면 밭 소산의 십분의 일을 의무적으로 바치는 ‘옛 형식’에서 벗어나되, 유일신 신앙에서, 그리고 본질상 이와 동일한 삼위일체 신앙에서 명실공히 절대계명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되는 실제 가치, 이른바 ‘구제’에 집중해야 된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십일조가 과연 바르게 사용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만약에 십일조가 성경에서 제시한 대로 바르게 사용되지 않는다면, 분명 그것은 바른 신앙과 순종이 아닌 반성경적 오류이며 일탈일 수밖에 없다.

십일조가 헌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교회, 특히 중대형교회에서 정작 구제에 사용하는 비율은 1%에 미치지 못한다. 반면에 예배당 건축이나 첨단영상과 음향을 비롯한 호화장비,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각종 문화행사와 교역자들의 보수로 대부분의 재정이 사용되며, 돈이 차고 넘치는 대형교회는 교회 곳간에, 그리고 담임목사의 ‘숨은 계좌’에 고스란히 축적되고 있다.

이를테면 한국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의무적·강제적으로 십일조를 거둬들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선한 구제’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당과 목사를 위한 ‘악한 축재’에 악용되고 있다.

이처럼 십일조가 종교집단과 목사의 축재를 위해 ‘악한 도구’로 사용된다면, 교인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악행’을 저지르며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교회의 타락은 ‘돈을 사랑하는’ 외식에서 비롯되었으며, 돈에 의한 타락은 십일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소득의 십분의 일’이라는 일방적인 기준, 다시 말해 개인의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기준의 십일조는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 십일조가 제정된 당시의 유대 율법시대는 고대사회로, 지금처럼 소득불균형에 따른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십분의 일이라는 일률적인 기준이 나름대로 합리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소위 (천민)자본주의 시대는 불평등, 불균형의 시대이다. 상위 5%가 전체토지의 90%와 총소득의 대부분을 독식하며 사사로이 재산을 축적하는 반면, 하위 10%는 끼니조차 제대로 때우지 못한다. 이처럼 빈부격차가 극심한 상태에서 일률적으로 소득의 10%를 제시하는 것은 합리적인 기준이 아니라 ‘부당한 폭력’이다.

다시 말해, 일률적인 10%를 강요하는 십일조의 형식과 허는 즉각 폐지하고, 많이 가진 자가 많이 내며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내되 없는 자에게는 도리어 주어야 한다.

나름의 결론을 말한다. 고대 율법주의의 유물로서 이미 시효가 만료된 십일조의 허와 형식은 버리되, 신구약시대를 통틀어 영원불변의 절대계명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십일조의 근본정신인 실과 사랑, 이를테면 가난한 이웃을 섬기기 위한 구제는 시대와 종교를 넘어 반드시 지켜져야 된다.

십일조의 허와 실을 구별하지 않는 채 섣불리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중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자체가 마치 신약시대의 바른 순종인 양, 십일조 폐지를 빌미 삼아 나눔의 정신까지 저버리며 개인적인 일탈이다.

또한, 십일조를 거부하면서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절대계명까지 덩달아 무시되는 심각한 오류이다. 마치 더러운 욕조의 물을 버리면서 욕조 안에 있던 소중한 아기까지 내다버리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요컨대 십일조의 허와 실, 반드시 구별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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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121.160.212.227)
2018-04-02 16:32:51
소득의 십분의 일중 일부를 교회운영을 위해 주일헌금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이루어지는데 소외되었다고 여겨지는 곳에 나누어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헌금생활에 있어 그정신을 이어 할수있는껏 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수행하는데 있어 하나님께 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교회에 돈을 가져다 내는데 재정보고도 이루어지지 않고 보고한다 해도
터무니 없이 집행하고난후 열람도 의미없어 보입니다

선교사를 직접 후원하는일도 주로 선진국으로 파견되어있는점 자신과 자녀들 시시콜콜한 생활에서부터 심지어 본인들 영주권 따는 비용까지 모금후원으로 전부 해결하는 상황을 보고 지금은 그것도 가립니다

티비만 틀어도 기근으로 병으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 멸종되어가는 동물들 그들의 울부짖음이 진동합니다
지으시고 보기좋으셨다하신 이땅의 정말로 스스로 자립할수없는 무수한 생명들이 있는데 사역자 섬기느라
건물지어 운용하고 인건비 지출하느라 바쁩니다

구제와 나눔을 위해 일정부분 희생한다고 해도 주객이 바뀐거 같아보입니다

십일조를 연보로 바꾸면 뭐할겁니까 그 수혜의 대상이 섬김의 대상이 여전히 교회안에 몰려있으면
공염불이지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스스로 자립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십자가를 남의 힘으로 지겠습니까
그러고선 나는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고 떠들고 있으니 가상할 노릇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의 모범과 의무와 근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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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
궁금이 (183.105.184.109)
2018-05-10 05:28:48
율법을 완성시키신 예수님 말씀대로
주님의 교회를 도적질한 김삼환이와

성도와 문란한 교제를한 조용기 목사는

돌로 쳐죽여야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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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8 18:05:20
이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울 자이다.
교회가 심일조 헌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십일조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암에 걸렸다고 독약을 집어 삼키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독약을 삼키면 암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도 죽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암에 걸렸는가? 그렇다면 암을 치료하자고 하자. 암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하자.
교회가 암에 걸렸는가? 그렇다고 교회를 없애야 할까? 십일조를 없애야 할까?

그러므로 심일조 헌금을 강요하지도 말고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말아라. 다만 믿음을 따라 헌금을 드리라 하라. 자신의 형편에 따라 믿음으로 드리라 하자. 그리고 드려진 헌금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도록 하자.

구제가 하나님의 뜻인가? 그렇다면 구제하라.
교회의 증축이 진정 하나님의 뜻인가? 그렇다면 증축하는데 사용하라.
선교 후원금이 하나님의 뜻인가? 그렇다면 어려움에 처한 믿음의 동역자들을 도와주자.

하나님의 뜻이 아닌 그 이상과 그 이하로 벗어나는 것은 제 아무리 선해 보인다 하여도 모두 죄가 될 것이다. 선을 악으로 갚지 말아라. 악조차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선으로 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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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나무늘보 (211.114.22.104)
2018-04-10 17:07:37
그럴듯하게 중립을 지키는 듯한 논리네요.
십일조를 폐지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헌금을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지요.
십일조의 정신은 자유로운 헌금으로 하면 되는 겁니다. 십일조 폐지가 왜 구제와 사랑의 실천을 무시하는 것이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오히려 십일조 폐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헌금의 올바른 용도에 대해 글쓴이의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하던데요. 글에도 나와있지만 십일조 폐지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은 막대한 교회재정을 충당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강제적인 십일조가 아니면 유지가 안되니까요. 그만큼 교회가 교인수에 비해 너무 큰 규모를 갖고 있는 것이죠. 그것을 비판하고 자유로운 신앙과 양심에 따른 헌금을 하자고 하는 것이 맞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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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
웨슬리 (108.45.95.55)
2018-04-02 21:43:25
"다시 말해, 일률적인 10%를 강요하는 십일조의 형식과 허는 즉각 폐지하고, 많이 가진 자가 많이 내며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내되 없는 자에게는 도리어 주어야 한다." 말같은 말 하시네요...
그래서 십일조가 꼭 필요하네요 많이 가진자는 거기에 따라 많은 쓸곳이 생깁니다 적은자는 나름대로 그정도로 넉넉하다고 보기에 적게 버는것일수도 있지요 그래서 십일조는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봅니다 목숨까지도 드리라 하시는데.. 주님을 사랑해서 십일조 하는데..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일조 하라고 가르치는데 ,,, 안하시는 분은 안하면 그만.. 내는 분은 즐겨내는데 왜 이다지도 십일조를 물고 늘어지는지.....문제도 안되는 것은 자꾸 문제 논조로 들이대니 문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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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제자 (49.50.206.22)
2018-04-01 05:10:25
많은 부분 동의하며 잘 읽었습니다. 다만 결론에는 동의할 수가 없군요...
이 글의 결론에는 논리적 모순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신약 교회에서 구제와 사랑을 위한 헌금으로 이미 "자원적인 연보"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의무적인 십일조"가 왜 아직도 다시 필요할까요?

그럴려면 그들은 뭐하려고 굳이 연보를 걷었을까요. 초대교회 당시에도 계속 십일조를 걷으면 되었을텐데요.

구약 십일조의 정신은 신약 교회의 연보로 계승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도들의 바른 가르침입니다.

율법의 정신은 좋은 것이나, 율법 조항 자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첫째 율법을 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히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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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5
mw1440 (218.48.131.224)
2018-04-01 10:16:58
허를 버리고 실을 택해야 됩니다
십일조의 허와 실을 구별한 이유는, 십일조라는 이름과 형식을 버리고 구제를 위한 연보에 충실하자는 의미가 아닐까요?

신약시대는 연보라고 하지만 정작 어떤 교회에서 가난한 이웃이나 단체를 구제하기 위한 연보에 신경을 쓰던가요?

몸글에서도 말했지만, 대형교회에서 구제에 사용하는 비율은 1%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십일조를 폐지하되 그 정신이 연보를 통한 구제에 집중돼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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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
예수를 믿으시기나 하십니까? (82.45.20.142)
2018-04-03 19:50:36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존중합시다.
(눅 11:42)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그 밖의 모든 채소는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 십분의 일을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이것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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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6
개혁본부 (121.127.77.229)
2018-04-01 00:13:35
아주 많이 빙빙 돌리며 "중립"의 이미지로 독자들을 이끌었지만, 결국
올바른 사용의 "주님의 것 환원"은 계속 되어야 마땅 하다는 결론이다.

엄지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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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6
직딩교인 (180.228.201.78)
2018-03-31 23:26:55
출석하고 있는 교회가 아름답게헌금을사용한다면 마땅히 십일조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렇지못하다면 그만하시고 더 도움이필요한곳에내셔도됩니다 그또한 하나님의 일이니까요 저는 제가출석하는교회가 헌금을 건축대출금에 과도히지출하는것을알게되어 미자립교회 봉사자로운영되는병원등에 후원을하고있습니다
하나님앞에서 헌금생활믿음생활신앙생활하십시오 목사앞에서하지마십시오
작은자에게한것이 주님께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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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7
ysi123 (210.113.223.20)
2018-04-02 08:07:41
선생님 생각에 깊이 이해됩니다만 지금 한 교회에 적을 두고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계신다면 그 교회에서 발생하는 운영비에 대해 구성원으로서 적당한 책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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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무릇돌 (59.15.221.170)
2018-03-31 19:33:40
지당하신 말씀...
여기 당당의 다른 기고문에서처럼
교회에서 십일조로 장사(사업)하기는
불법으로 그만두어야 하지만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인 십일조의 정신은
유지, 계승되어야...

"요컨대 십일조의 허와 실, 반드시 구별해야 된다"
<본문의 결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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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6
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8 18:11:50
십일조의 허와 실을 누가 구별할 수 있을까?
목사가? 장로가? 그렇다고 신학자가?
십일조의 허와 실을 진정 바르게 구별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말해보라.

고양의 목에 방울을 달자고?
그래 좋다 그렇다면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쥐는 누구인가 말이다.

무릇 돌이 십일조의 허와 실을 제대로 구별을 한다고? 웃기지 마시라.
무릇 돌은 사람의 역사과 하나님의 역사부터 구별하라.

사람의 편집과 성령의 감동부터 구별하라.
만약 이것을 구별할 수만 있다면 무릇 돌이 십일조의 허와 실을 구별할수 있다고 내가 직접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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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
예수를 믿으시기나 하십니까? (82.45.20.142)
2018-04-03 19:54:03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존중합시다.
(마 23: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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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
깨진돌 (59.15.221.170)
2018-04-04 21:51:35
귀하는 성경이 표현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 혹은 예수님의 말씀이라
믿으시는 순진무구한 얼라인가요?



십일조 장사?
교회에서?
장사라면 교회에서는 아니될 일!
그러나 십일조가 폐지되었다고?
십일조의 폐지는 마태에게 물어보아야...
십일조 장사는 그만!
십일조 정신은 계속!

싸우지들 마시오.
십일조로 장사(사업)하기는 불법이고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인 십일조의 정신은
유지, 계승되어야...
리플달기
1 2
노재신 (222.105.146.139)
2018-05-08 18:18:14
이미 깨진 돌이니...
성경의 표현 그대로를 받아 들일 수 없는 어른이란 말인가?
주님은 께진 돌과 같은 이들에게 하는 말을 들으시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믿음은 순진함입니다. 그래서 때론 무모해 보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순수함입니다. 그래서 때론 거짓 선생들에게 속기도 하고 이용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실한 믿음의 사람은 주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으로 보응해 주실 것입니다.

깨진 돌님 너무 어른스럽게 생각하려 하지 마십시요.
인간이 살아본들 120년도 되지 못하거든 어찌 하나님 앞에서 감히 어른인척 행하려 한단 말입니까?

그것이 가식이고 외식이니 독사의 자식이 됨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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