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되 십자가에 달리신 분으로 전합니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3-24) 바울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 이래로 사람들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만할 뿐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꽤 이른 시기부터 사람들은 십자가를 마술적 힘이 담긴 부적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 즉 힘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십자가 모양의 물건뿐 아니라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공중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신비한 힘이 발휘된다고 믿었다. 외경인 <사도언행록>에는 자물쇠가 잠긴 감옥을 향해 십자를 긋자 사도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이 기적적으로 열렸다는 얘기도 있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사탄을 멸망시키셨으니 십자가가 악을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십자가의 표시는 사납게 짖는 개도 침묵시키고, 환부에 그으면 유방암도 낫게 하며, 지혈대로도 멎지 않는 피를 멎게 만들고, 샘을 정결하게 만들기도 했다. 모두 실제로 십자가와 관련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십자가는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흡혈귀 백작까지도 떨게 만들었다지 않은가.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십자가는 예수께서 실제로 달리셨던 십자가일 것이었다. 가장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 분명한 이 십자가는 마침내 4세기경 기독교를 공인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성 헬레나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발견으로 지금의 이름을 지니게 된 예루살렘의 성묘교회 자리에서 십자가 세 개를 발견했다. 그녀는 신적 영감으로 셋 중 어느 것이 그리스도가 달리셨던 십자가였는지를 알아보려 했는데 그 방법이란 세 개의 십자가 각각에 시체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진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시체를 다시 살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발견되었고, 발견된 십자가는 일부는 예루살렘에 다른 일부는 콘스탄티노플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유물은 이런 저런 이유로 조각 조각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십자가 조각의 양도 오병이어처럼 점점 늘어났던지 사람들은 세상에 퍼진 십자가 조각을 다 모으면 예루살렘 시 전체를 다시 건설할 수 있을 거라고 조롱하며 말하기까지 했다.

이 우스워 보이는 모든 오해가 과연 과거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과거에 오해 당했던 십자가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이긴 하나 오늘날도 여전히 오해 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하나님과 십자가에 관계된 ‘능력’이라는 말을 해독할 능력이 없는 듯하다. 하긴, 우리 눈에 능력으로 보이는 것은 이미 능력이 아니라는 역설을, 우리 눈에 지혜롭게 보이는 것은 이미 지혜가 아니라는 역설을 어찌 쉽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납득이 된다면 그것이 어떻게 역설이겠는가. 십자가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평안을 집요하게 훼방하는 것이 아니라면, 십자가는 우리에게 역설이 아니며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도 아니다. 아무 능력도 없는 무능한 십자가,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무력한 십자가,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십자가, 거추장스럽고 방해만 되는 십자가...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능력의 십자가는 이런 성질의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십자가에 관한 저 유명한 종교개혁자의 말처럼, 십자가는 지금도 우리의 모든 것을 시험한다.

Crux probat omnia. “십자가는 모든 것을 시험한다.” - 마틴 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