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저희 가족도 수요예배를 마치고 부지런히 시부모님이 계신 서울로 향했습니다. 시부모님이 떡집을 운영하고 계서서 명절 전날은 떡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장사를 했습니다. 근래 어깨를 다치신 시어머니가 무리하시지 않도록 남편과 미혼인 시동생들이 예년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행동할 줄 아는 두 아이도 가게 한쪽에 마련된 방에서 조용히 잘 놀았습니다. 심심하면 떡집 옆 마트에 가서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간식거리를 마음껏 사다 먹었습니다. 조용한 놀이도, 마음껏 먹는 간식도 지겨워진 작은아이는 낮잠을 잤고 큰 아이는 가게로 나와서 건조된 가래떡 썰기를 도왔습니다. 남편이 떡가래를 가져다주면 큰아이가 가래떡 끝에 물을 살짝 묻혀서 떡을 써는 기계 안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렇게 떡이 한 소쿠리 썰어져서 나오면 저와 시동생이 용량에 맞게 봉지에 담아 판매대에 내놓았습니다. 썰어진 떡국 떡은 저희가 먹을 것 한 봉지를 제외하고 모두 팔렸습니다.

   명절은 항상 떡 장사로 고단하기에 명절 아침이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세배를 한 후 피곤한 가족은 명절 전에 모자랐던 잠을 채우고 나머지 가족들은 목욕을 다녀옵니다. 올해는 시어머니와 저희 가족 4명이 함께 목욕을 갔습니다. 저희가 들어갈 때는 시간이 이르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만 오후가 되면서 아이들과 함께 3대가 목욕을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시원하게 목욕을 마치고 ‘할머니 찬스’로 아이들은 마트에 들러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한 가지씩 선물 받았습니다. 조부모의 사랑은 부모의 엄격함과 대비되어 아이들에게 좋은 탈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명절을 전후하여 친한 동생 재희(가명)의 아버님 부고와 저희 교회에 출석하는 고등학생의 할머니 부고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장례를 치르는 몸도 마음도 힘겨웠던 명절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하얼빈 유학시절에 만났던 재희는 4년을 저와 함께 동고동락하던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계절을 불문하고 작은 접이식 자전거 뒷자리에 저를 태우고 기숙사에서 강의 동까지 이동했었고, 기숙사에서 나와 외부 아파트에 집을 얻은 후에는 자신이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저에게 집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었습니다. 재희의 집에서 언 몸을 녹이기 위해서 둘이서 주전자에 물을 끓여 세숫대야 부은 후 발을 담그던 기억, 교회 주일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400인분의 장을 보던 기억, 기숙사 전도를 위해서 물품을 준비하고 방마다 인사를 다니던 기억, 한때는 다른 룸메이트와의 갈등으로 인해 힘겨워하던 재희와 상담을 하던 기억, 카메라를 품에 안고 얼음축제를 가던 기억 등 재희와의 기억은 언제나 20대 초중반에 머물러 있습니다.

    재희에게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가족을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재희는 하얼빈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친구였습니다. 그런 재희는 저와 남편이 소개한 믿음을 가진 남성과 결혼을 했습니다. 재희의 배우자는 “너희들이 교회 다니는 것은 좋은데 우리에게는 교회에 가자고 하지 말게.”라고 엄하게 말씀하시던 장인 장모님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뜰히 잘 모시는 남편이었습니다. 재희의 여동생도 “우리 형부가 최고”라고 형부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을 지낸 어느 날 재희의 아버지는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한 차례 수술과 요양, 그리고 재발과 투병이 계속되는 동안 재희의 부모님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재희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세례를 받으셨고 온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 자녀와 자손을 모두 대면하여 인사를 나눈 후 임종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 임종 후 재희의 어머니는 “이제 나도 교회에 출석을 하니 너희들도(여동생 내외) 교회에 다니도록 해라.”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재희의 오랜 기도제목이 이루어진 것을 들으면서 남편과 저는 재희와 그 남편의 수고와 인내를 칭찬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칭찬하지 않아도 그 모든 과정은 이미 하나님이 아시겠지만 재희의 꿈 많은 젊은 시절 교회를 향한 헌신과 사랑을 잘 아는 저는 재희의 오늘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철없이 웃고 웃던 시절이 지나가고 이제는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야 하는 성숙한 어른으로 변한 재희의 얼굴에서 아련한 추억이 묻어나왔습니다. 하얼빈 유학시절 처음 신앙을 가진 학생들의 공통된 기도제목은 가족을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는 재희와 같이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저는 그렇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도하고 왔습니다. 값없는 은혜이지만 가장 사랑하는 이 조차도 십 수 년의 눈물과 기도가 뿌려져야 열매를 맺습니다. 물질과 권력으로 쉽게 영혼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한계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인내만이 영혼을 얻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 오래 참고 인내하는 것이 당연한 과정임을 기억하고 영혼을 구원함에 있어 조급해 하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뿌리는 이는 그저 씨를 뿌릴 뿐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