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교단은 다르지만 독일 유학생활에서부터 형처럼 돌봐주시던 목사님이 계셨다. 지금은 본인이 속한 교단 신학교의 교수로서 나라면 학생들에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후학들을 위해 애쓰고 계시다. 서로의 바쁜 생활 속에서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최근 오랜만에 목사님을 만나 회포를 풀 기회를 가졌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목사님은 자신이 목사가 되려던 결심을 자신의 어머님과 나누던 얘기를 들려주셨다. 목사가 되겠다는 아들은 오랜 세월 신앙의 연륜을 쌓아 오신 어머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으셨다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어쩌면 자신에게는 모든 평신도를 대표했을 노년의 어머니로부터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을 기다리는 순간 일성으로 떨어진 어머님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아야, 설교는 짧아야 한다잉.”

다소 우스갯소리 같기도 했던 어머니의 말을 듣고 마음이 풀린 목사님은 목회할 때 가슴에 담아야 할 다른 중요한 건 없냐고 물으셨고, 그러자 어머님은 이번에는 목사님께 다음과 같이 물으셨다고 한다. “아야, 열 손가락 가운데 깨물면 가장 아픈 손가락이 뭔지 아냐?” 아, 목회를 할 때 모든 교인들을 다 자식처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씀이시구나,하는 짐작으로 목사님은 누구나 다 아는 그 대답을 어머님께 드렸다고 한다. “모든 손가락이 다 아프죠.” 그러자 어머님은 뜻밖에 이런 대답을 주셨다고 한다. “아니다, 다친 손가락이 제일 아프다.”

그렇지, 자식들도 마찬가지지, 교인들도 그렇고... 어머님의 말씀은 목사님의 가슴에 깊이 내려앉은 말씀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목사로서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셨다. “마땅히 다친 손가락을 먼저 돌봐야 하는데, 엄지손가락 눈치를 보느라 그걸 못하네요...” 다친 손가락이 가장 아프다는 노인의 지혜와, 엄지손가락 눈치를 보느라 그 지혜를 따르기 어려웠다는 중년 목사의 회환의 고백은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엄지손가락 눈치를 보느라 다친 손가락을 돌볼 수 없다는 말은 단지 목회자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이 상황은 교회에서 책임을 맡은 모든 이들이 동일하게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 이 문제는 단지 교회 안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밖 삶 모든 영역에서의 문제이기도 하다. 엄지손가락의 눈치를 보느라 다친 손가락 돌아보지 못하는, 돌아보지 않는 일이 어찌 교회 안에서만의 문제일 수 있을까? 힘이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제일 약한 사람, 상처 입은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나약함과 비겁함을 우리는 언제나 자신에게서 발견하곤 한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의 삶은 늘 다친 손가락을 돌보는 삶이었다. 바리새인들을 위시한 종교지도자들과 온 백성들이 내쳤던 로마제국의 부역자 세금징수원들, 몸을 파는 여인들, 그밖에 ‘죄인’이란 딱지를 붙여 증오했던 배척 받는 소수자들을 예수님은 찾으시고 돌보셨다. 그분은 엄지손가락의 눈치를 보지 않고 늘 다친 손가락들에게 주저 없이 다가가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따른다고도 고백한다면, 우리의 삶은 마땅히 이 예수님의 삶에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좀 더 용기를 내서, 엄지손가락 눈치를 보는 일을 그만두고, 다친 손가락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막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