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지성수 칼럼
육체 노동 명상
지성수  |  sydneytaxi@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8년 02월 15일 (목) 21:04:01
최종편집 : 2018년 02월 22일 (목) 23:07:55 [조회수 : 184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사람들은 생활이 힘들게 느껴질 때 흔히 “사는 것이 전쟁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이 전적으로 맞는 말이어도 나 같은 은퇴자에게는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은 더 정확한 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정하긴 마땅치 않지만 70을 넘긴 나이에서는 무엇보다 시간과 싸우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왕에 살아온 지난 시간을 어쩔 수가 없지만 남은 시간이라도 소중하게 보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나로서는 매일 매일을 최선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요즘 힘이 들지만 매일 육체 노동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후배가 시드니에서 80KM쯤 떨어진 산 속 동네에 집을 샀는데 수리를 하는 일을 돕는 것이다. 이것은 돈 때문도 아니고 후배 때문도 아니고 전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서인 것이다. 집은 숲 속에서도 막다른 곳에 있다. 하루 종일 지켜 보아도 길을 잘못 들어왔다가 뒤돌아가는 차 한 두 대 외에는 들어오는 차가 없는 조용한 곳이다. 새로 산 집은 불이 난 집이다. 기이하게도 불이 났지만 벽돌집이라 외부는 그대로 있고 내부가 연기에 완전히 그을려 버린 집을 경매를 통하여 시가 보다는 싸게 샀다. 그러나 내가 훈제 하우스라고 이름을 붙인 집은 전기, 배관, 타일, 주방, 마루 페인트 등 모든 것을 완전히 다시 해야 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하는 동안 시드니에서 사람을 동원해서 공사를 해야 한다.

60 대 중반의 후배가 집을 사서 수리를 하고 이사를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일도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 도전일 수 밖에 없다. 모두 새로운 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머리로만이 아니고 온 몸으로. 즉 현상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둘러쌓고 있은 세계와의 전쟁인 것이다. 심지어 노인 부부가 살았던 집이고 경매가 되기까지 오래 동안 비어 있던 곳이라서 주변이 완전 정글 상태이었다. 모든 일이 돈, 사람, 자연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와 주변 자연을 정리하는 일이다. 공사장에는 항상 대형 쓰레기 통을 대여해 놓고 작업을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일 하는 사람들은 작업을 하면서 필요 없는 자재나 물건들을 쓰레기통 갖다가 버리지만 그것을 그냥 놓아두면 쓰레기통이 금방 가득 차 버린다. 쓰레기 통 하나를 버리는 일에 300 불씩 나가기 때문에 무게는 상관이 없이 부피를 작게 만들어야 한다. 잉여인력인 나는 할 수 있는 한 폐기물을 잘게 부수어서 더 많이 들어가게 하는 일을 했다.

마당을 넓히기 위해서 집 주변의 나무들을 무차별적으로 벌목을 해야 했다. 엔진톱으로 나무를 잘라 가면서 자연과 전쟁을 치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가지와 넝쿨에 긁혀서 팔과 다리에 생채기가 나면서 나무를 베면서 젊은 시절 월남에서 정글에 갇혀서 정글도로 쳐내면서 길을 내서 앞으로 전진하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내가 농담으로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기념식수 대신 기념 벌목을 해야 하니 어느 나무를 벌목을 할지 선택을 하라고 했다.

스포츠만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삶도 온 몸으로 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신을 섬기듯이 삶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전투에는 결과만 중요할 뿐 기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를 앞에 놓고 기분이 좋네, 좋지 않네 하는 것을 따질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따진다면 아직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면서 기분이 좋네, 나쁘네 하는 것은 삶이 전쟁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 살면서 기분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것은 삶이 전쟁이라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나름 목적을 가지고 삶을 치열하게 살고자 했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로 희로애락에 휘둘렸던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하는 성찰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쓰레기를 태우고 버릴 것을 정리하고 나무를 베고 쌓고 하는 완전 육체 노동이 가능할까 염려 했는데 생각 보다 피곤 하지 않았다. 낫, 엔진톱, 전기톱, 컷터 등을 동원해서 나무를 자르고 풀을 베어서 자연을 정리하는 노동을 통하여 30도를 웃도는 더위에 아무리 물을 많이 먹어도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오줌을 누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현장이 멀어서 아침에 가다가 맥도날드에 들려서 햄버거 하나로 아침을 때우는데 배도 고프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날은 점심 때도 배가 고프지 않아서 햄버거도 먹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즐거움으로 일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모든 일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맑스가 규정한 생산력과 생력수단의 관계 범위 밖의 일이다. 나는 노동의 대가로 즐거움과 보람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세상의 모든 노력에는 화폐로 대가를 지불 받아야 한다.

일을 하다가 몸이 너무 힘이 들어서 그늘을 찾아 잠시 누웠다. 사지를 쭉 뻗고 누워 보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누워 있다가 보니 50년 전 1 호선 지하철 공사를 할 때 처음으로 잠깐 일용직 육체 노동을 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는 지게를 만들어 벽돌을 등에 지고 날랐었다. 점심 시간에 밥을 먹은 다음에 아무 곳이나 쓸어져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몸이 가쁜하고 머리가 맑아지던 경험을 했었다. 중세 수도원에는 “노동이 기도이다” 라는 팻말이 있었고 아유슈비츠 수용소 정문에는 “노동이 너희를 깨끗하게 한다.” 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신은 자연을 창조 했지만 사람이 사는 세계는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졌다.

집 수리는 한 달 안에 끝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수리하는 일에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주변의 나무들을 잘라내고 타잔이 탈 만한 넝쿨들을 걷어내어 땅을 원래 조성 되었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만 해도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 집을 고치는데 여러 사람이 와서 돕고 있다. 시드니 바닥에서 목수 생활을 하면서 거절을 못하는 성격 때문에 늘 이용만 당해 오던 후배가 이번에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비록 돈을 받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해주고 있다. 사람의 손으로 집을 고치는 것 보다도 자연을 고치는 것이 더 오래 걸리고 좋은 인간관계를 쌓는 것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이제 벌목과 벌초 작업을 대강 마치고 나니 잔해 처리가 문제가 된다. 마당 여기 저기에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Green 쓰레기들이 보기에 매우 흉해서 그대로 놓아 두고 살 수는 없다. 태워 버릴 수도 묻을 수도 없어서 결국은 고민 끝에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갔다 버리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처리를 하자면 풀은 한 군데 쌓아 놓으면 퇴비를 만들 수 있고 나무는 집에 난로가 있으니 몇 해 동안 겨울에 뗄 수가 있지만 양이 너무 많고 보기 좋게 정리할 수가 없어서 갖다 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생각난 일이다. 일생을 살면서 우리가 맺은 관계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래 두고 관리를 잘 하면 모두 유익할 수가 있는데 그 때 그때 기분에 따라 혹은 당장의 필요에 따라 잊거나 버린 일들이 있지는 않았는가? 해롭지 않고 유익할 수 있는 나무와 풀을 당장의 형편에 따라 버려야 하는 결정을 하면서 오래 시간이 지나면 유익할 관계들을 길게 보지 못하고 당장의 기분이나 감정 때문에 잃어 버린 일은 없는가 하는 성찰을 하게 되었다.

동네는 평균적으로 땅이 1 Acre(대략 1200 평 정도) 이상이기 때문에 집들이 떨어져 있다. 그래서 새로 이사를 오면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도시에서 보다 오히려 차가 드나드는 것이나, 이웃 집에서 나는 소리나 사람들의 움직임이 있는지에 대해서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전투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어떤 선입관도 있을 수 없다. 오직 상대방의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예민하게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이란 전투에서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이나 표현 보다는 선입견에 영향을 받는 일이 훨씬 더 많지 않았던가?

 

 

 

 

지성수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3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