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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으면 그림이 되고 멈추면 추억이 되는 곳[안면도 뒤안길] 두에기해변과 방포해변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요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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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2월 08일 (목) 14:38:37
최종편집 : 2018년 02월 08일 (목) 14:46:49 [조회수 : 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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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에기해변을 지나 방포해변으로 향하는 언덕에서의 압권은 안면송과 안면송 사이입니다. 하늘은 바탕이 되고 그들은 늘일 수 있는 최대치의 높이로 키 재기를 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도열해 있습니다.

 

(이전 기사 : 지충지층이 동글동글 어울리는 곳, 여깁니다)

그날 아침에는 집과 사무실 사이에 있었다.
그날 점심에는 사무실과 인근의 식당 사이에 있었다.
인근의 식당과 사무실 사이에도 있었다.
그날 오후에는 사무실과 카페 사이에도 있었다.
두 번 정도 아니 세 번 정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이에 있었다.
- 김언 <사이> 일부

그럴까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이가 있을까요? 물론 타자가 그렇게 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주체는 절대로 그렇게 어물정한 존재로 있을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다만, 여기 있던 것이 저기로, 조기 있었던 것이 요기로 옮겨 갈 때, 때로 그 허망함 때문에 존재의 필요불가결함에서 한발 치 물러나 있을 수는 있겠지요.

수많은 돌들이 발밑에서 아우성칩니다. 오늘은 그들이 내 발과 대지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 이리 살갑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아프다는 건지, 간지럽다는 건지, 노래를 부르는 건지는 분간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아우성은 분명히 들립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일렁이는 바람의 춤사위를 보았기에 그리 들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안면송과 안면송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요

   
▲ 안면송이 들려주는 노래와 그들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메시지에 취해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보이는 하늘은 저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청명합니다.

 

집과 사무실 사이, 식당과 사무실 사이가 있다면, 발과 땅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풀잎과 하늘 사이도 있겠거니 생각하니 너무 많은 ‘사이들’이 곁을 내줍니다. 두에기해변을 지나 방포해변으로 향하는 언덕에서의 압권은 안면송과 안면송 사이입니다. 하늘은 바탕이 되고 그들은 늘일 수 있는 최대치의 높이로 키 재기를 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도열해 있습니다.

내 눈엔 고만고만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다고 자랑할까요? 자랑은 인간의 것이지요. 잠시 키 높이를 자랑할 거란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집니다. 욕심어린 인간의 눈으로 옹골차게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나무들을 능욕했으니....

안면송과 안면송 사이에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안면송과 안면송 사이에 양떼구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면송과 안면송 사이에 한 사내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들보다 훨씬 너저분한 생각으로 더렵혀진 채.

안면송이 들려주는 노래와 그들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메시지에 취해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두에기해변에서 방포해변으로 넘는 길은 아무래도 평범한 길이 아닌가 봅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회, 사이와 사이가 보여주는 여유, 칼바람이 안겨주는 인생의 매서움....

대지에 붙은 발은 빨리 앞으로 가지 않느냐고 채근하지만, 그렇게 쉽게 발걸음이 앞으로 가지질 않습니다. 이리 높은 둔덕이 있을까요. 이리 무거운 발걸음이 있을까요. 이리 막중한 ‘사이’와 ‘사이’의 간극이 존재해도 되는 걸까요.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보이는 하늘은 저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청명합니다. 나무들을 흔들어대는 바람은 매섭기 그지없는데 말입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날씨가 추우면 하늘은 더욱 청명하다고. 근거 있는 말인지, 과학적인 말인지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안면도 해변길에서 만나는 하늘은 적어도 그 말이 맞습니다. 오늘은 영하 12도라고 합니다. 걸맞게 하늘이 이리 청명하니 그 말을 믿을 수밖에요. 날씨가 추운 탓에 새벽이 아니라 오후 2시에 나섰는데도 날카로운 바람이 일렁이는 걸 보면, 추위가 미세먼지까지 깡그리 쓸어간 모양입니다.

이리 아름다워도 되는 건가요

   
▲ 안면송과 안면송 사이에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안면송과 안면송 사이에 양떼구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면송과 안면송 사이에 한 사내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 길로 말하면 차도 다닐 수 있는 너른 길입니다. 하지만 걸어서 이 해변과 저 해변을 넘나든다는 것은 온갖 추억과 상념을 떨칠 수 없게 만듭니다.

 

나는 오늘 두에기해변과 방포해변 사이에 들어 있습니다. 바닷가로 서덜길을 지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없이 바닷물이 물러나 줘야 할 텐데 요즘은 그리 물러날 기미가 없습니다. 두에기해변과 방포해변 사이에는 꽤 높은 언덕이 버티고 있습니다. 바닷물의 양보가 없는 터라 바람들의 노랫소리를 벗 삼아 이 높디높은 둔덕을 넘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에 안면송들이 있고, 또 같은 하늘 아래에 뚱딴지 주검들(?)이 검열을 서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안면송이 내려다보고, 아래에서는 돼지감자의 앙상한 줄거리들이 올려다봅니다. 땅 밑으로는 돼지감자(뚱딴지)들이 자라고 있을 테지만 겉에서 볼 때는 그 앙상한 줄기들만 즐비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장관입니다.

이 길을 이리 쉽게 넘질 못하고 있습니다. 안면송이 도열하고 서서 자신들을 검열하고 경례도 받으라고 발걸음을 막기에 그렇습니다. 더하여 돼지감자 줄기들도 가지런히 도열하고 검열을 부탁합니다. 이런 사이사이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는 게 느껴지시나요?

뭐 길로 말하면 차도 다닐 수 있는 너른 길입니다. 하지만 걸어서 이 해변과 저 해변을 넘나든다는 것은 온갖 추억과 상념을 떨칠 수 없게 만듭니다. 바람은 왜 이리 성깔을 부리나요. 무엇 하나 호락호락하게 내 갈 길을 내주지 않는군요.

오늘 걷는 길에서는 사진 기술이 부족한 게 한입니다. 카메라가 평범한 게 한스럽습니다. 아, 이렇게 다 담을 수 없는 풍경도 있군요. 찍으면 그림이 됩니다. 멈추면 추억이 됩니다. 이 언덕에선. 파란 물감? 하얀 구름? 붉은 기둥? 짙푸른 이파리? 이렇게 뻔하게 하늘을, 구름을, 안면송을 표현한다면 그들을 모욕하는 겁니다.

그래서 표현을 만들려고 할 수가 없군요. 그저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만 누릅니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 담을 수가 없네요. 기술도 부족하고 카메라도 후져서요. 하하하. 그리 남 탓만 하는 내가 밉습니다. 좌우당간 두에기해변을 뒤로하고 방포해변을 향하는 둔덕은 그간 글을 쓰지 못했던 시간의 너비보다 더 넓은 ‘사이들’이 기막힌 담론으로 나를 이끕니다.

두에기해변 쪽에서는 돌과 풀들이 누운 곳으로 걷습니다. 둔덕의 꼭지에서 방포해변 쪽으로는 시멘트 포장길을 걷습니다. 물론 걸음이야 훨씬 수월합니다. 하지만 진도는 너무 느립니다. 이미 말한 ‘사이들’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리 달콤하게 머물 수만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진으로도 다 담을 수 없고, 글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이 있다면 얼마나 다양할까요. 그 인생을 질펀하게 이 언덕에 뿌려봅니다. 그리고 행복만 가슴에 안고 집으로 가렵니다. ‘사이’가 내주는 행복을 당신에게도 전하며.

[안면도 뒤안길]은 글쓴이가 안면도에 살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안면도 뒤안길]은 김학현 목사가 안면도에서 목회하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안면도의 진면목을 담으려고 애쓸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 언덕을 다 넘으면 저만치 방포해변이 내려다 보입니다. 꽃지해변의 할미 할아비 바위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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