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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도 소중히 가꾸어야 하는 것— 물고기더러 물을 떠나 살라는 사람들이 있다 —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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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2월 04일 (일) 22:08:21
최종편집 : 2018년 02월 22일 (목) 00:26:43 [조회수 :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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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 시절의 필자의 모교회에 이런 집사님이 계셨다. 가끔이지만 술을 많이 드셨고 도박을 하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일만 아니라면 열심 있는 교인임이 틀림없었으나 의지가 술이나 도박의 유혹을 이길 힘이 모자랐던 것 같다.

목사가 많지 않은 때인데다가 시골교회라서 전도사님이 담임 교역자였고, 장로가 없다보니 집사님들이 돌아가며 예배의 대표기도를 했다. 집사님은 자기의 기도 차례가 되면 이런 기도를 빼 놓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나님 아버지,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사는 한이 있어도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기독교인은 정치와 연관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물고기더러 ‘물을 떠나서 살라’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는 말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 어디 한 곳인들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은 데가 있는가. 그러니 사람을 보고 정치와 무관하라는 것은 숨은 쉬되 공기 없는 곳에서 쉬라 하는 것과도 같다 할 것이다. 심지어 장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무엇이 이성을 그토록 기능치 못하도록 하는지 모를 일이다.

필자라 해서 정치판을 정도를 걷는 아름답고 깨끗한 무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권모와 술수, 그리고 이미지를 만들어 화장을 하고, 아니 그 가면을 쓰고 국민을 속이려 드는 그 풍토에 구토를 자아낼 만큼 혐오감을 느낀다.

 

필자는 정치판에 나오기 전의 한 과학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 적이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여 무료로 배포했던 나눔의 실천자, 그래, 안철수 지금의 국민의당 대표이다.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뒤에도 그 초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통 큰 행보를 보여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선 때 50%의 높은 지지율에도 5%에 불과한 지지율의 박원순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그도 그때와 다름이 없는가. 다른 정치인들과 다른가 말이다.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가.

필자가 여기에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를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치판이 사람들의 깨끗한 옷을 얼마나 쉽사리 버리게 하는 진흙탕인가를 말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가 떠오른 것일 뿐이다.

어떤 정치인은 밀양 화재 현장을 방문해서까지 “북한의 현송월 뒤치다꺼리를 한다고 국민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며 문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했다. 설사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초상집에 간 조문객이 문상에는 맘이 없고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것 같아 씁쓸한 입맛이다.

지금의 정치권을 보라. 온 국민이 뜻을 모아 성공을 빌고 가슴 설레며 기다려야 할 평창 동계 올림픽을 두고 ‘평화 올림픽’이니 ‘평양 올림픽’이니 하며 쌈판을 벌여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청치’를 우리에게서 떼어 내어 태평양 한 가운데에 버려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럽다고 혐오하여 국민들이 멀리하면 정치는 더욱 망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망가져 엉망이 되면 그럴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필자가 잘 아는, 성경에 밝을 뿐 아니라 목회도 성공적으로 이어 가고 있는 목사님 한 분은 정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돼도 나라는 달라질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역사와 인간만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데모라면 경기를 일으킬 만큼 증오하고, 집회 같은 것은 어디에 증거를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르지만 비성서적이니 안 된다고 한다. 그 교회의 교인 말에 의하면 설교를 통해서 자기는 선거에 기권을 한 일도 있다 했다 한다.

역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그런데 누구를 통해서인가. 인간을 통해서이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자유롭고 살기 좋게 발전한 데에 데모라든가 집회가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설교를 통해서 설교자가 자기는 선거에 기권했다 하는 것은 교인들에게 기권을 권면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그라고 몰라서였겠는가.

기독교의 지도자, 교회의 지도자는 정치에 대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글도 쓰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사역을 포기하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은 말이다.

기독교 또는 교회의 지도자는 꼭 목사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 지도자의 역할 중 빼 놓을 수 없는 업무의 하나는 교육이다. 그런데 그것은 기독교에서의 교육이니만큼 신앙에 대한 것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현실을 외면하고 일상을 떠난, 마치 구름이라도 잡는 것 같은 것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다. 지금의 교회는 교회 밖의 사회보다 더 현실적이어서 문제가 아닌가. 입으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하면서도 실은 내 중심이고 물질이나 명예 같은 것을 하나님보다 위에 두고 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는 교회, 교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바울이 ‘배설물’처럼 버려버렸던 것들을 거머쥐지 못하여 안달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교회와 교인들이 아닌가 말이다.

물론 교회가 불신 사회보다 더 현실적이라 한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아무런들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읽는 사람들인데 불신자들보다 못하기야 하겠는가. 교회가 세속화되다 못해 곪아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과장이 심해진 것이다.

교회까지 이 지경이니 정치판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당도 저 당도 거기서 거기요 피장파장이라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두고만 볼 것인가. 그래서는 정치는 더욱더 망가져 갈 수밖에 없다.

 

정치를 가리켜 생물이라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정능력이 없는 생물로, 국민들이 그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크리스천도 국민인 이상 당연히 그에 관심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 전체가 크리스천일 수는 없지만, 크리스천 모두는 국민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천이기에 일등 국민이어야 한다. 비국민으로 신앙 좋은 크리스천이 있다면 거짓말이다.

일등국민이여야 할 크리스천은 당연히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데, 정치에 무관심인 채 하는 애국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나라는 어떻든 정치하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정능력이 없는 정치를 어떻게 정화시켜 건전한 성장으로 이끌 수 있는가. 아무리 이 당도 저 당도 거기서 거기요 피장파장이라 해도 똑같을 수는 없다. 미묘한 차이는 반드시 있을 것이고, 오십보백보의 차이도 날 수 있을 것이며, 더 큰 차이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오십보백보를 거기서 거기라는 의미로 쓰기도 하는데, 문자적으로 따져 엄밀히 말하면 백 보는 오십 보의 배가 된다. 그런데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큰 차이가 아니다. 조그마한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자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사안에 따라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것이 정치가 바로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말이다. 환언하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민이 정치라는 소를 몰아가는 소몰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필자는 자신을 진보 쪽에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필자가 1990년, 당시의 노태우 대통령이 주도하여 여당과 두 야당이 합당하는 데에 통일민주당의 김영삼이 같이 하자 대통령 병에 걸린 사람이라 비난했다. (국민들은 그 합당을 삼당야합이라고도 삼당합당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하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가 하면 하나회를 척결하는 등의 굵직굵직한 일들을 해내자, 이 분이 대통령이 되기를 잘했다고 생각을 고쳐 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청와대의 칼국수 오찬에도 가슴 훈훈한 정감이 느껴졌다.

보수는 무엇이고 진보는 다 무엇인가. 보수와 진보에는 모두 장단이 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한다면 양자는 둘 다 국가발전의 선봉이 된다. 보수가 됐건 진보가 됐건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의 옳고 그름에 있다. 보수가 해서 좋은 일은 진보가 해도 좋은 것이고, 진보가 해서 나쁜 일은 보수가 해도 나쁜 것이다. 내가 했을 때는 좋았으나 네가 하니 나쁘다 해선 안 되고, 네가 했을 때는 나빴으나 내가 하니 좋다 해서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보수든 진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속한 진영이 한 일이라 해도 나쁜 것은 나쁘다 하고, 그 반대 진영이 한 일이라 해도 좋은 것은 좋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한 진영이 바르기만 하거나 그렇지 못하기만 할 수는 없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 맞다. 정도의 차이, 그게 중요한 것이다.

단 한 뼘이라도, 아니 손가락의 한 마디만큼이라도 더 나으면 좋다 하고, 더 못하면 나쁘다 해야 한다. 거기서 거기고 그놈이 그놈이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정치를 망치는 것이고, 정치를 망치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지만 자정능력이 없다.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이다.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삿대질을 하는 조각배의 사공이다.

유능한 정치인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여론을 살펴 그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 주고 아픈 데를 싸매 주는 정책을 편다. 반면 어리석은 정치꾼은 자기 진영 사람들을 결집시키려고 국민 일반의 여론에 귀를 막는다. 그런데 위대한 정치가는 국민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그에만 얽매이지 않고 나라와 국민과 그 미래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려 한 발짝 한 발짝 진전해 나간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있고, 그것은 각자가 다 다르다. 따라서 지지하는 진영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이고 그러니만큼 예수를 따라야 하는데, 그분께서는 내 편, 네 편, 편을 가르지 않으셨다. 바른 길로만 가셨다. 그러면서도 그분의 눈길이 더 오래 머문 데는 작은 자, 곧 사회적 약자였다.

생물이면서도 정치는 자정능력이 없어 국민들이 보살피지 않으면 방향감각을 잃고 욕심의 위험한 칼춤을 추게 된다. 그들의 마비되어 가는 방향감각을 일깨워 바른길로 가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내 편 네 편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고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 때 표로 보여 주는 것이다.

어떤가. 이쯤으로 우리의 정치를 대할 자세가 드러났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른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가. 우리 모두 지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어떻게 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 성경 정신에 맞는지 옷깃을 여미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게 어떨까 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인간은 정치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가 망가지면 내가 살고 있고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나라가 망하기 때문이다.

 

<蛇足>

교회에서도 찾기 어려운 성자(聖者)를 진흙탕의 정치판 사람들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당초부터 무리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이 더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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