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검사의 성폭력 피해 인터뷰가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그녀는 제도에 의해, 인습에 의해 거의 언제나 말을 빼앗겨버리고 마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를 얻기까지 8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이 용기를 내게 된 계기로 밝힌 사건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 계기란 바로 해당 성폭력 가해자가 기독교인이 되면서 세례를 받을 때 했던 간증이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를 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된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정확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청준의 단편 <벌레 이야기>를 각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아이를 유괴한 후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수감 중인 범인이 면회를 온 아이의 어머니 앞에서 아주 평온한 얼굴로 이제 자신은 감옥에서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용서 받았노라고 말하던 바로 그 장면을.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롬 10:10)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받아들였다. 엄청난 구원에 이를 그 존재가 떨리는 고백을, 박해의 시대에 어쩌면 목숨을 걸었어야 했을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단순한 세치 혀의 놀림으로 이해해버리고 만 것이다. 구원이 혀로 충분하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회개 또한 혀로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그렇게 혀로 쉽게 이루어진 회개와 그렇게 쉽게 선언되고 분배된 구원의 결과를 우리는 마침내 똑똑히 지켜보게 되었다.

여성 검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앵커는 며칠 후 한 코너에서 현실의 죄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값싼 회개를 비난하며 성경의 아골 골짜기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것은 죄를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임을 당한 아이성의 아간 이야기였다. “제가 진실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수 7:20) 실제로 아간은 자신의 죄를 고백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죄를 다 고하고 회개했지만 아간은 결국 돌로 쳐 죽임을 면하지 못했다. “너는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느냐?”(수 7:25) 여호수아는 아간을 이렇게 비난했다. 이 말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만 죄를 지었다는 아간의 생각도 비난한 것일까? 어쩌면 그가 용서받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동포들에게 지은 죄를 고백하지 않아서였을까? 분명한 이유는 모르나 이 성경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분명한 점은 이것이다. 입의 회개가 자동으로 용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세상에게 회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에게 회개를 가르치는 아이러니를 교회는 스스로 자초했다. 값싼 혀의 회개의 남발로 말이다. 회개는 결코 죄의 세탁이 아니다. 말로 한다는 회개는 입으로가 아니라 삶으로 말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설화(舌禍), 혀로 이룩한 모든 회개와 구원이 결국 혀의 화가 되어 교회를 덮쳤다. 행함이 없는 입만의 믿음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만족스럽게 여기는 신자들을 조롱했던 야고보서 기자의 말은 분명 지금의 우리를 향한 말일 것이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떱니다.” (약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