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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없는 것.
오재영  |  ojy0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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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년 02월 02일 (금) 22:57:42
최종편집 : 2018년 02월 08일 (목) 13:20:59 [조회수 :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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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없는 것 

교회역사와 함께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요 수도사이며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어느 날 교황청의 초청으로 교황을 만나게 되었다. 한참 교황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때마침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갖 보화를 가득 실은 마차들이 줄을 이어 들어오는 모습들을 보면서 교황이 그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보십시오. 초대교황이었던 베드로사도께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했지만, 이제 우리는 금은보화를 저렇게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오는 저 많은 보화를 보십시오. 그리고 이 웅장한 건물들과 화려한 장식들을 보십시오.” 이 말을 들은 아퀴나스는 조용히 그리고 교황에게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교황님!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성당을 지었습니다. 금으로 기둥을 세웠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았습니다. 또 우리는 땅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가졌던 나사렛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설교자인 목사에게 있어야하는 것...

“철로 역정”을 쓴 ‘존 번연’ 그는 목사가 아니었다.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받고 안수를 받은 사람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 시대에 가장 천한직업중의 하나인 땜질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무식한 땜장이의 설교를 자주 들으러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그의 설교 앞에 공손히 귀를 기울이며 감화를 받곤 하였다. 그는 바로 당대 영국의 최고 석학이요, 왕에게 자문을 해주던 존,오웬(John Owen)박사였다.

자신이 존경하는 오웬박사가 땜장이의 설교를 들으러 다닌다는 말을 듣고 왕은 깜짝 놀랐다. 그래서 오웬 박사를 만났을 때 왕이 물었다. “박사님같이 고매 하신분이 어떻게 그런 무식한 땜장이의 설교를 들으러 가십니까?” 그의 물음에 오웬 박사가 대답을 하였다. “폐하! 제가 만약 번연 선생과 같이 설교하여 그 사람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박사학위 같은 것은 몇 개라도 버리겠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고 그 지식 때문에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대상이 누구이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파도와 같이 밀려가면 그의 그 많은 생각과 지식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흩어져버린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심정으로...

신분이 성직자이며 구도자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을 말하는 것일까? 최근에 우리교단의 혼돈된 일들과 그에 따르는 다양한 부끄러운 모습들로 인하여 타교단과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조소거리가 되고 있다. 한편으로 그 일의 중심에 있는 이들과 그를 동조하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노라면 그들보다 앞선 삶을 살아온 까닭인지 모르나 든든함보다는 염려가 앞선다. 목사라 하여도 누구나 할 수 없는 열정과 집념, 개인 나름의 희생이 동반되는 문제이지만,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지금 함부로 나서는 이들로 인하여 교단이나 지지하는 본인들이나 교단과 교회에 별다른 유익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이들의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오만한 모습들... 한마디로 거칠 것 없는 모습들은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이들은 도대체가 신앙이 무엇인지, 목사로서 진정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를 뿐만 아니라 더 큰 염려는 이들은 진짜 자기 실력들을 모른다. 한마디로 어쭙잖은 편린의 어설픈 법률지식으로 자신이 3류 인줄도 모르고 누군가를 지도하며 가르치려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치명적인 약점은 서로가 공생하는데 지도자라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예의범절”에 관한 문제다. 우리말 사전은 예의범절을, 가리켜 일상생활에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할 모든 “예의와 절차”라 풀이하고 있다. 혹자는 이 내용을 자기 아닌 타인을 향해 지켜야할 행동으로 이해를 한다. 그 때문에 이들은 상대에 따라 그가 취하는 행동이 각기 다르다. 자기보다 지위가 높다 생각하면 지나칠 정도로 비굴함에 가까울 예의를 지키려하면서도, 이익이 되지 않거나 낮 은이라 생각하면 간단히 업신여기는 오만함을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예절”은 상대를 향한 행동이기이전에 타자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 즉 상대를 위한 자기억제이며 또 자기절제다.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사회와 나라마다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위한 타율적 장치로 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법이라 하여 꼭 수학공식처럼 정확한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법을 다루는 사람사이에도 법의 조항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서로 다르기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다투고 있다. 여기에 “예절과 예의”의 필요성이 필요한데 법과 예절이 우리들의 공생을 위하여 상호보완적 관계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에는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를 가리켜 사랑으로 표현했다. 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아니한다했다. 비록 그에게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예언하는 능력과 모든 비밀과 지식, 탁월함과 아울러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그의 몸을 불사르고 내어주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했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자랑과 교만, 무례히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분쟁마다 피차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이미 자신의 몸에 자신도 모르게 배어버린 자기중심적인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타인에 대한 무례로 대하기 때문이다.

 

구도자는 언제나 자신을 성찰하는 수준이 그의 영성이다.

지난연말, 한해가 며칠 남지 않은 때, 요즘 젊은이들이 만나기 원하는 목사 중 한사람인 김기석 목사와 오랜만에 함께 차를 나누며 옛날이야기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한때 신학생시절, 멘토되시는 목사님 수하에서 함께 보낸 사이지만,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인생의 연륜의 차이에 비하여 그동안 꾸준히 자신을 가꾸어온 ‘인격도야’에서 풍기는 대화에 나자신,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그와 함께 인도의 ‘비노바 바베’라는 사회운동가이며 깊은 영성수행자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분쟁에 관한 대화를 마칠 때쯤 그가 한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저는 어떤 분명한 불의에 대하여서는 비판하는 것보다는 안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비겁한일인데도 불구하고 문젠 뭔가 하면, 자꾸 비판을 하다보면 냉소적이 되고, 아주 그 태도들이 타자 존중하지 못하고, 평화운동을 하든, 진보운동을 하든, 사람들을 경멸하고, 이런 면은 그건 너무나 잘못된 것인데, 자주 우리가 그렇게 빠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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