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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간다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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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2월 31일 (일) 22:16:59
최종편집 : 2018년 01월 27일 (토) 23:19:05 [조회수 : 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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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를 교회의 얼굴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개신교에서는 성가대가 교회의 전면에 위치할 뿐 아니라 성가대의 수준이 바로 그 교회의 수준을 말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신성종 목사는 교인들이 설교를 통해서 50%의 은혜를, 성가를 통해서 50%의 은혜를 받는다고 말한 일이 있다. 성가가 교인들이 받는 은혜의 50%를 감당한다는 말은 좀 과장된 것이겠지만, 담임 목사가 교회의 얼굴인 것처럼, 성가대도 교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교회의 얼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간다. 20년 전이나 30년 전에 성가대에 서기 시작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어서 대원들이 늙어간다. 우리 교회 성가대원은 50대부터 70대까지 분포되어 있다. 30대도 40대도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젊은이들이 유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한두 명 온다고 해도, 그들이 어울리기 어렵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 둔다.

일부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이 그만 두어야 젊은이들이 들어온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나가면 당장 성가대 자리가 텅 비게 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현재의 인원을 유지하면서 젊은이들을 ‘모시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어만 간다.

내가 40년 전에 호주에 나가 있을 때, 호주 교회에서는 60대나 70대의 노인들이 성가대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0대는 나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다른 대원들과의 나이 차이가 많으니까 그들과 대화가 안 되었다. 그들 편에서는 외국인인 데다가 자식 같은 나와 이야기할 마음이 별로 없었을 것이고, 내 편에서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화제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였다. 교회봉사도 서로 어울려야 하는 법이다.

미국에 가서 보아도 성가대에는 머리가 하얀 노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분들이 성가대에 서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서지 않으면 성가대가 구성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 것이다. 성가대원들이 그렇게 늙었다는 것은 서양의 교회가 늙어간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젊은이들이 없는 교회에는 희망이 없다. 그래서 노인들만 10여 명 모이던 미국교회가 한국인 교회에 교회 건물을 넘겨주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한국교인들은 자기네가 큰 교회를 온통 쓰게 되었다고 좋아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도 서양교회를 바짝 뒤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성가대에도 흰 머리가 섞여가고 있다. 나는 흰 머리를 감추려고 자주 염색을 한다. 여기저기서 젊은이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신체가 늙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늙어가기 시작한 교회의 노쇠현상을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보약을 먹고, 좋은 보양식을 골라 먹고, 운동을 하고, 자주 건강 검진도 받으면서 젊음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요즘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교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한국교회가 늙어간다는 것을 인지하고, 말로는 걱정을 하면서도 교회의 건강 유지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힘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노쇠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면서 보양식을 먹으려고도 운동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건강진단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하루에 30분 이상 걸으면 좋다고 하니 좀 걸어야 하지 않을까? 왜 병원에 갈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인가? 어느 땐가는 한국교회도 서양교회를 따라가겠지만, 그 날을 미루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개혁자들의 신학을 따라 500년 전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것은 마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1차 산업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것은 폐병이 걸렸는데 수술도 양약도 외면하고 한의원만을 찾는 것과 같다. 왜 새로운 건강 유지법을 찾아서 동분서주하지 않는가?

이런 판국에 교회의 건강 유지를 위해서 약을 처방해야 할 신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에게도 핑계가 있다. 교단에 속한 신학대학에서는 보수적인 이사진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 교수들의 운신의 폭이 아주 좁다. 그뿐 아니라,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 일선에 들어서는 순간 목사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모두 버리고 기복신앙을 강조한다. 그래야 교회가 부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는 진보적으로, 목회는 보수적으로라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교단이 교수들의 학문 연구를 제한하고 교회가 현대 신학을 외면하면, 그런 신학계와 교회에 발전이 있겠는가? 이렇게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현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50여 년 전에 나온 존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가 2017년에 개정 2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이 즐겨 읽는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책은 불트만, 틸리히, 본회퍼 등의 현대 신학자들의 신학에 근거를 둔 책이다.

현대 사상이나 과학을 외면하면서 사이비 과학을 고안해 내는 근본주의 신학이 주도하는 교회에는 젊은이들이 모이지 않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그런 교회에 미래가 있겠는가? 신학은 그만두고라도, 대부분의 한국교회에서 1백여 년 전의 권위적인 옛 어투로 번역된 성경을 젊은이들에게 읽히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조차 고려하지 않고 있으니 교회 지도들에게 도대체 생각이라는 것이 있는가?

여기서 교단의 지도자들이 바로 서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가톨릭에서는 누가 교황이 되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정치는 물론 교리까지 바뀐다. 개신교에서도 지도자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치 목사들이 교단의 실권을 쥐고 있으니 한국교회에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올곧은 생각을 지닌 사람을 세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진정 교회의 건강을 염려하는 목사들은 거친 정치판에 휩쓸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당장 자기들이 차지할 밥그릇만을 챙기려는 정치 목사들이나 정치 장로들의 세력을 당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목사들이 이사진을 구성하는 신학대학들의 분규는 더욱 심해지고 한국을 대표할 만한 교회들에서는 목사와 장로들이 담합해서 대형 사고를 내고 있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늙어가는 교회에 보양식을 제공하기는커녕 교회의 식탁에 독을 뿌리고 있다. 그들 때문에 한국교회의 주름살이 늘어간다. 그들 때문에 전도의 길이 막히고 가나안 성도가 늘면서 교인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이번에 한목협에서 시행한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에 따르면 가나안 성도가 5년 동안에 2배나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개신교인의 개신교에 대한 비호감도가 불교나 천주교에 비해서 월등하게 높다고 한다. 특히 비호감도 면에서 천주교(21.8%)보다 개신교(63.8%)가 3배가량 높다고 하는 것은 아주 충격적이다. 이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 개신교의 현황이다.

한때 천주교는 이단이라고 혹은 천주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천주교가 사람들에게 더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개신교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겠는가? 사람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교회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예수님은 자라면서 사람과 하나님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 예수님은 한 소자에게 한 것이 바로 하나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 한국의 개신교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는가? 왜 이 지경이 되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이라는 무책임한 생각은 금물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지도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평신도들에게는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도록 방임하거나 협력한 책임이 있다. 최근에 일어난 명성교회 사건을 보더라도 장로들과 교인들이 호응하지 않고 그런 부끄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말한다. 요즘 목사들 중에는 자기 마음대로 해놓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 말은 신앙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 아주 위선적이다.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평신도들 중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주신다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미루고 자기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진실한 신앙인의 태도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잠언에는 계획하는 것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인간이 계획한 것을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도우시지만, 인간도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성경 말씀도 있고, 선을 행하다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열매를 거둘 것이라는 말씀도 있다. 이 말씀들은 인간이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만을 바라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물론 성경에는 들의 풀도 공중의 새도 하나님이 기르시고 먹여주시니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그 구절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생계를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믿고 일터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주신다고 말하는 사람도 일터에 나간다. 그 구절은 과장법이라는 일종의 비유적 표현이다. 그래서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성경에는 인간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아주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부분만을 골라서 읽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을 골라서 읽고 설교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지난번에 <당당뉴스>에 올린 ‘하나님의 말씀을 편식하는 사람들’에서 강조했던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노령화를 막고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언어를 민주화하자. 메시지를 현대화하자. 교회재정을 투명하게 하자. 그리고 삶의 모범을 보이자.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의 뜻 있는 지도자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주름살은 급속하게 늘 것이다. 그 책임은 바로 당신에게 있다.

 

   
▲ 일러스트 임종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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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121.127.77.229)
2018-01-02 01:08:16
교회에 젊은이들이 이젠 거의 없죠~ ㅠㅠㅠ
있어도 찬양대는 참가보다는 감상정도로 전혀 참가의향이 없죠 .문제죠 ㅠㅠㅠ

한가지 당부!
언어교정 : 성가대 ==> 찬양대 로 수정! 하여 모든 교회는 사용하여야 합니다.

1. 성가대 : 성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집단/대원들 --> 불론 아주 틀린 단어는 아니지만, 천주교든 불교 이든 타 종교도 성가대라 부름.

2. 찬양대 : 단어 그대로 “찬양”을 주님께 드리는 집단/대원들 --> 개신교에서만 사용하는 추세임.

3. 찬양단 : 주일 대예배/오후(밤)/수요예배 등 찬양대가 드리는 찬양 이외의 교회음악들을 회중들과 같이 부르는 현대적인 BAND 형태의 악기편성 집단/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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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7
화평 (122.35.176.192)
2018-01-05 16:06:29
교회를 혁신할 일꾼들이 보이는가? 이 터락한 세대는 마치 선지자들이 외쳤던 시대를 방불하게 하고 있으니 이 타락한 세대를 일깨울 선지자가 나와야 하는 시대 아닌가? 명성교회에서 기껏 한다는 짓이 수석장로 교체니 이게 말이 되는가? 그렇게 바꾸면 면피가 되는가? 교회가 바뀌어질까? 이것도 눈가림에 불과한 짓거리 아닌가? 하는 행태가 욕지기가 날 뿐이다. 화 있을진저! 하나님이 극히 노하셨던 소돔과 고모라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젊은이들 보고 이런 위선적인 집단에 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이 오겠는가? 그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아집, 권모, 술수 외에 무엇을 배우겠는가? 올바른 신앙을 지닌 사람이 그런 교회에 나가겠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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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
에덴킴 (211.208.29.132)
2018-01-04 19:44:14
이해하고
젊은이를 교회오게하는 극단처방
1 음주.흡연개방
2 주일성수를 너무강조하지않음
3 부동자세 예배에서 편한자세
4 믿음좋아지면 윗것들은 자제하게됨
5 어쨋든 예수복음 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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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8
삼청교육대 (39.7.28.244)
2018-01-02 02:12:52
참 좋은글입니다
교회 노쇠화문제 정말 심각합니다
근데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노년층이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죽으면 그만이다
라는 말과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면 왜 하나님을 믿고 교회가는지
나는 그이유를 통 모르겠습니다
뭐 경로당보다 좋아서 다닌다라고 하면 이해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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