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破邪顯正)’과 ‘내로남불’

천하보다 귀한 ‘나’는 어디에 있나?

사돈 남 말하시네

언어가 살아 숨 쉬는 생물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한다. 변화되며 성장하는가 하면 퇴보되기도 한다. 요즘은 은어를 섞어 쓰는 청소년들의 말을 노인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근래 정치권에서 자주 쓰고 있는 비속어로 ‘내로남불’이라는 게 있다. 정치권이라기보다 어느 한 정당이 전매특허라도 낸 듯 거의 독차지하여 쓰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라면 자기네가 훨씬 더 심한데, 상대방을 비난할 때면 전후맥락도 생략하고 사안도 가리지 채 마구잡이로 ‘내로남불’을 남발한다. 그러다보니 억지스러워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이 상대 정당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된다.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시민들은 올바름을 구현하기 위해 촛불을 들었고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도록 기반도 마련해줬다.”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한다.” ‘破邪顯正’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원광대 최경봉 교수가 추천의 이유로 든 말이다.

2001년에 시작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2017년인 올해로 17번째가 되는데, 그 중에서 긍정적인 내용은 이번의 ‘破邪顯正’뿐이라 한다. 이를 제외한 16번은 모두가 어둡거나 비관적이거나 경고성 짙은 것들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라를 온통 잿빛이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둠으로 엉망을 만든 저들 세력은 ‘내로남불’ 타령이다.

저들이 창출해 뒤를 받쳐 주던 정권의 최근 4년간에 선정된 ‘올해의 자자성어’를 살펴보자.

※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니 평소에는 배가 강물 위에 떠있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

※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한다.

※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

나는 작년의 ‘올해의 사자성어’ <君舟民水>의 예지력에 소름이 돋도록 놀랐다. 백성이 강물이 되어 대통령이라는 배를 띠웠으나 폐단이 쌓이고 쌓여 적폐의 산을 이루자 화가 난 그 물이 배를 뒤집어엎고 말았으니 말이다.

혹자는 여기에서 필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럼 너는 ‘내로남불’과 무관하냐?”고. 그렇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려는 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내로남불’과 맥이 닿는 우리 속담에 ‘사돈 남 말하시네’가 있다. 그리고 성경에는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눅6:42)가 있다. 그런데 지금의 세상은 정말이지 모두가 ‘내로남불’이요, 네 탓뿐이다. 내 탓이라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내 누구더러 뭐라 하겠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부터가 그러한데.

손가락질하여 남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집게손가락이라고도 하는 검지 하나뿐인데, 그때 나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중지와 약지와 소지의 세 개다. 이를 남을 비난하는 나의 허물이 상대방보다 더 많다는 의미라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게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신에게 꼭 어울린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지도 모른다.

나는 남을 칭찬하는 것보다 비난하는 글을 더 많이 쓴다. 목사를 비난하고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는 글을 쓰는 것이 나의 목사가 된 이유 중 하나인데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물론 비난을 위한 비난은 아니고 지적을 위한 지적 또한 아니다. 그리함으로 ‘목사’가 ‘먹사’라 비난 받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현실을, ‘목사’가 ‘성직자’로 존경받고 교회가 스스로를 녹여 사람들로 하여금 살맛이 나게 하는 ‘세상의 소금’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같은 글을 쓸 때면 마음이 평온하지를 못하고 거칠어지기 일쑤이다. 비난하고 지적하며 마음이 편하다면 그게 어디 정상이겠는가. 전술한 대로 불행 중 다행으로, 검지 하나로 손가락질을 하는 글을 쓰며 세 개의 손가락은 나 자신을 가리키려 노력하고 있다.

자신을 가리키는 세 손가락의 하나하나가 허물 열 개씩 가리키기를 몇 번씩하고도 남을 만큼 허물투성이의 나이다 보니 그 많은 것들을 일일이 다 고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래서 생각하여 시작한 것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는 말씀을 붙잡고 한 기도이다.

이 같은 기도를 시작한 그때 나는 ‘예수의 마음’을 그저 막연히 심산유곡의 아침공기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 그러니까 욕심 없고 미움도 없으며 시기질투 같은 것이 없는데다가 부드럽고 따스하여 포근하며 아늑하기까지 한, 그리고 넉넉한 그런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라고 그 생각이 바뀐 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꼭 믿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질 않은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믿는 사람 이상으로 착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그런 면에서라면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파사현정

하나님을 위로하는 사람

이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고백부터 해야 할 것이 있다. 예수의 사랑을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피부로는 깊이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엄청난 사랑은 뼈 속까지 사무쳐 아프도록 느끼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것 같은 자잘하고 섬세한 사랑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성경을 건성으로 읽은 면이 없이 않았던 탓이 크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제 머리털로 발을 닦아 준 바 있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다, 그리고 그 자매의 오빠 나사로를 몹시 사랑하셨다. 그런데 두 자매로부터 오빠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전갈이 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말을 듣고도 미동도 안 하셨다. 이틀이 지나서야 길을 떠나 도착하였을 때는 나사로가 죽어 이미 나흘이나 된 뒤였다. 무덤의 시체는 부패가 진행되어 냄새까지 났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와 조문 온 사람들이 슬피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눈물을 흘리”셨다. (요11 1-44 참조)

나는 이 장면을 읽을 때면 ‘이제 얼마 뒤면 친히 살려내실 거면서 비통히 여기시어 눈물까지 흘리실 건 뭐람’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나 이 얼마나 메마른 감성의 소치인가. 그분께서는 마리아와 조문객들이 슬퍼하는 그 슬픔이 그대로 당신의 가슴으로 전해 와 그냥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깨달았을 때 나는 그분과 갑자기 더욱 가까워짐을 느꼈다. 피부와 피부를 맞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분께서는 누구와도 비교가 안될 만큼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육체의 가시 때문에 심적 고통이 너무도 커 불과 2, 3개월 동안에 71kg의 체중이 62kg까지 준 적이 있다. 기도하다 마음이 너무도 아파 앉은 채로 팔짝팔짝 뛰기도 하고 데굴데굴 뒹굴기도 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네가 고통당할 때 나도 너와 함께 아파했노라”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들려 왔다. 귀로 들은 것은 아니지만 바로 옆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 더 또렷하게 들렸다. 그러며 하나님께서 아파하신 아픔 그 자체가 나의 안에서 느껴졌다. 나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 얼마나 아프셨나이까, 얼마나 아프셨나이까” 하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하나님을 위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의 아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육체에 박힌 가시는 그대로 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후로 20년이 훨씬 넘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가시를 무슨 보물단지라도 된 듯 육체에 간직한 채 오히려 감사하며 아픔 아닌 기쁨으로 살고 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다. 현직에 있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몹시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퇴근 때까지도 화가 조금도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며 인문대 현관 앞에 세워 둔 차의 시동을 걸려는데,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물론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렸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성을 들은 게 놀라운 것이 아니라 씩씩거릴 만큼 화가 나 있는 상태의 사람까지도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 하나님의 속성에 놀란 것이다. 그때까지의 나에게 있어서의 하나님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풍부하고도 예민한 감성의 하나님이심을 이렇게 체득하고도, 예수께서 그런 하나님의 외아들로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분께서 그 같은 감성의 소유자이심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 채 살아 온 것은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기도 또한 바르게 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면…

나는 앞에서 예수의 마음은 착한 마음인데, 그 착하다고 하는 면에서는 믿지 않은 사람도 믿는 사람 못지않은 경우가 많다고 하는 의미의 말을 했다. 그런 면에서는 믿는 사람의 그것이 믿지 않는 사람의 그것과 같다는 의미의 말을 했다. 그러나 아니다. 똑같아 보여도 양자의 각자가 지닌 착함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다. 믿는 사람의 착함에는 있는 생명의 빛깔이 믿지 않는 사람의 그것에는 없다. 그런데 그 빛깔을 사람들은 볼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밝히 보신다.

믿는 사람의 착함에는 생명의 빛깔이 있기에 믿음을 살찌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나,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착해도 그것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다. 구원은 행함(선행)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므로 ‘믿음’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성삼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들이다. 외형이 아니라 지정의(知情意)의 인격대로 지음을 받았다. 따라서 성삼위 하나님께 풍부하고 섬세하게 내재되어 있는 감성(感性)의 희로애락(喜怒哀樂) 또한 인간이 가져야 할 필수 요건이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하나님의 형상, 곧 그분 인격의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격은 무엇인가의 자극에 대하여 희로애락이 어떠한 형태로 반응하여 어떠한 모양으로 드러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무엇인가에 대해 기쁨(喜)과 노여움(怒)과 슬픔(哀)과 즐거움(樂)이 어떻게 조절되어 어떠한 형태로 드러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다.

자신도 당연히 같이 기뻐해야 할 남의 기쁨을 보고 노여워하거나 슬퍼한다면 그런 사람의 인격은 어떻게 되겠는가. 남의 슬픔을 보고 기뻐하거나 즐거워한다면 어디 그게 인격 있는 사람이 할 짓이겠는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내로남불’이라 하는 것 같은 사람이 많은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똥 묻은 개는 당연히 겨 묻은 개를 나무라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나무라야 한다. ‘네 탓’을 하기 전에 ‘내 탓’부터 해야 한다. 1990년대 초에 천주교를 중심으로 ‘내 탓이요’ 운동이 전개된 적이 있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갈등이 심해지고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려, 잘못된 현상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자 시작한 운동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자 그 운동은 점점 동력을 잃어 가다가 결국 소멸되고 말았다. 그때문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더욱 ‘내 탓’이라 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네 탓’이라는 사람뿐이다. 하기야 무슨 운동이 됐건 사회가 참여하는 그것이 성공을 거두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무슨 운동이 됐건 성공을 거두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하여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자기 한 사람도 운동의 목적에 맞게 변화시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무엇인가에 대해 비난하거나 무엇인가의 시정을 요구하는 글을 쓸 때면 그런 면에 대해 먼저 나 자신부터 돌아보려 애를 써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아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하늘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그 같은 노력을 계속하려 하지만, 가능하다면 가속을 붙여 가며 하려 하지만, 그런다 해서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그런 면에서 보면 시작은 이미 했으니 50%의 성과는 거둔 셈이라고 자위를 해 보기도 한다. 아니,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100%에 가깝다고 인정해 주실지도 모른다.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살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의롭다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말이다. 죽은 물고기처럼 떠내려가면서도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려 애를 쓰는 물고기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보다 나은 미래로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방법이 달리 있지 않다. 너무 흔히 들어서 상투적인 말처럼 여겨질지 모르나, 우리 믿은 사람들이 말씀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예민한 감성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모셔 오는 수밖에 무슨 방법이 어디에 달리 있겠는가. 예수의 마음을 나의 안에 품을 수만 있다면 누구라 해도 자연스럽게 ‘내 탓이요’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