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령이 영하 17도를 넘나들면서 해가 없는 시간의 추위가 상당합니다. 아이들도 추위 때문인지 한 번씩 열을 동반한 감기를 앓았고 저도 지난주에 감기로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친정어머니는 B형 독감으로 6일간 격리입원을 하셨습니다. 왠지 모를 건강 자신감과 병원과의 물리적 거리로 인해 아무도 독감 주사를 맞지 않은 저희 가족은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접종을 하기에는 늦었습니다. 올 겨울은 그냥 잘 먹고 잘 자는 것으로 건강을 지키려고 합니다.

   지난 주간에 두 번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저 혼자 출장을 가는 것이었고 한 번은 교육이 있어서 큰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진부령은 이제 매표소가 없어서 가장 가까운 백담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게 되는데 동서울로 가는 첫 버스는 아침 7시입니다. 이제는 해가 짧아서 아침 7시 버스도 캄캄한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속초나 고성에서 동서울로 가는 버스는 군인들로 만원입니다. 한 번은 저를 제외한 모든 탑승자가 군인인 적도 있었습니다. 군부대가 밀집한 강원도 지역은 군인들이 지역 상권을 유지시켜 주는 큰 손님들입니다.

   서울에 혼자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올 때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저녁 식사가 참 애매합니다. 점심은 업무와 관련해서 해결을 합니다. 그리고 고성으로 돌아오는 버스 탑승을 기다리면서 동서울터미널에서 제가 주로 선택하는 저녁식사는 김밥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같이 말이라도 하면서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해서 함께 먹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저녁식사를 해야 할 때는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고 외부 식당을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혼자 김밥 한 줄을 시켜두고 먹습니다. 김밥 한 줄을 먹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김밥 한 줄과 단무지 몇 쪽 그리고 물을 두고 텔레비전이 보이는 쪽으로 앉아 눈은 텔레비전에 고정시키고 손은 김밥을 집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유난히 저와 같은 방향으로 앉아서 김밥 한 줄을 두고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김밥 한 줄로 저녁을 먹은 후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 졌습니다. 아마도 저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김밥으로 저녁을 먹고 나면 남은 출장 식비로 아이들에게 줄 샌드위치를 구입합니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 왔어요?”하고 반가워하며 달려 나오는 아이들의 눈동자는 제 손을 살핍니다. 뭔가 맛있는 것을 사왔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어쨌거나 김밥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훌륭한 한 끼 식사를 제공합니다. 버스터미널에서 혼자 먹는 김밥은 다소 쓸쓸하고 비장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유년시절의 김밥은 풍성함과 즐거움의 상징이었습니다. 소풍을 가는 전날이면 김밥 속을 만드시는 어머니 옆에 앉아서 오뎅이며 소시지를 집어먹었습니다. 소풍가는 날이나 운동회 날이면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김밥을 마는 어머니 옆에서 가장자리 김밥을 집어먹었습니다. “김밥을 싸면 애들 뱃고래가 커진다.”며 말아도 말아도 끝이 없는 6식구의 김밥 말기를 하시던 어머니는 이제는 김밥을 쌀 일이 없어지셨습니다.

   저도 가끔 김밥을 싸야할 일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저희 아이들은 저의 어린 시절처럼 김밥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작은아이가 5살 때 제가 야심차게 친환경 재료로 김밥을 싼 적이 있었는데 김밥을 집어먹어 본 작은 아이가 “엄마 저 김밥 안 가지고 가면 안돼요?”하고 물어봐서 난감해진 기억도 납니다. “그냥 오렌지 김밥(김밥을 맛있게 만들던 지역에서는 유명했던 식당) 사주시면 안돼요?”해서 그 날은 그냥 싸가라고 하고 그 다음부터는 김밥가게에서 치즈김밥을 사서 보내주었습니다. 사실 그때 제가 싼 김밥은 제가 먹어도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 잡곡밥에 조미료 맛이 하나도 안 나는 재료들만 넣었으니 말입니다. 그 이후로 김밥을 쌀 일이 있으면 마트에서 파는 재료들을 사서 하는데 아직도 작은 아이는 ‘엄마 김밥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제가 싼 김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장 손쉽게 선택하는 한 끼 식사, 김밥.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사람, 시간이 없는 사람, 혼자 식당에 앉기 민망한 사람에게 좋은 한 끼가 되어주는 김밥. 모락모락 김이 나는 새벽밥에 참기름과 깨를 솔솔 뿌려 휘휘 잘 섞은 뒤 네모난 김 위에 잘 펴고 이것저것 속 재료를 넣어서 돌돌 말아 썰어주시던 어머니의 김밥. 김밥은 가장 선택하기 쉬운 음식이면서 동시에 다른 여타의 음식들보다 추억이 많은 음식입니다. 고급스럽고 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도처에서 우리의 허기를 달래주는 김밥이 있어서 급작스러운 배고픔도 쉽게 달랠 수 있습니다.

   보기 드물고 귀한 것만 값어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처에 있어서 언제라도 얻을 수 있는 것도 소중한 것입니다. 좀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허술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기적이나 이적도 좋지만 도처에 산재한 평범한 일상의 도우심이 있어서 우리는 항상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저도 특별하지는 않아도 누군가 마음의 손을 내밀면 닿을만한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안고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