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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선교정책 수립 및 연구할 것"이상윤 목사, 감리교미래정책연구원 창립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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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2월 08일 (금) 21:27:01
최종편집 : 2017년 12월 13일 (수) 01:56:01 [조회수 : 8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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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윤 목사가 “감리교 미래정책연구원”을 창립하고 8일 오후창립감사예배를 드렸다.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 확립과 교단의 선교정책 수립 및 연구활동을 위한 “감리교 미래정책연구원”이 8일 오후 감리회본부 16층 회의실(본부교회)에서 창립됐다.

연구원 원장은 ‘걸어 다니는 사전’으로 불리는 이상윤 목사, 그는 얼마 전까지 ‘KMC전략연구소’ 소장을 맡아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다가 웨슬리사회성화실천본부 대외정책본부장을 맡으면서 이 단체의 지원 아래 후신격인 독립된 연구기관 ‘감리교미래정책연구원’을 재창립 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감리교 미래정책연구소’의 창립 감사예배에는 웨사본 실무진들이 대거 참석했다. 웨사본 홍보팀장(김진국 목사)이 창립감사예배에 사회를 맡고 웨사본 서울연회본부장 이광호 목사(도봉교회)가 기도를, 2부 창립식에 웨사본 기획팀장인 임행심 목사가 사회를, ‘(사)생명을나누는사람들’의 임석구 이사장이 인사말을 각각 전했다. 웨사본은 지난해 부터 ‘생명을나누는사람들’의 전문적, 효율적 사업 전개를 위한 부설기관으로서 전국 연회별로 웨사본 본부를 개설 중에 있다.

 

   
▲ 창립감사예배 사회 - 김진국 목사(웨슬리사회성화실천본부 홍보팀장)
   
▲ 기도 - 이광호 목사(서울연회 웨슬리사회성화실천본부 본부장)
   
▲ 설교하는 강승진 감독(선교국위원장, 서울연회)

 

‘감리교미래정책연구원’의 창립에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듯 했다. 감사예배에서 설교말씀을 전한 강승진 감독(선교국위원장, 서울연회)은 “이상윤 목사는 경험이 많고 사전을 삶아먹은 듯 해박한 사람이며 알고 보면 순진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며 “감리회가 웨슬리의 신학과 그의 복음주의 경건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성화를 실현시키려는 발걸음에 미래정책연구원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생명을 나누는 사람들의 임석구 이사장도 “나는 과거고 현재는 여러분이지만 미래는 바로 여기(감리교 미래정책연구원)다. 이제 판이 마련됐다”는 말로 연구원 창립의 의미를 두며  “이상윤 원장을 중심으로 신나게 춤을 추던지 씨름을 하던지 싸움을 하던지 여기에서 뭔가 만들어질 줄 믿는다. 그래서 감리회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생명을나누는사람들’의 상임이사이자 연구원 창립에 실제적인 역할을 한 조정진 목사도 이상윤 목사의 정책연구와 개발능력을 높이 사는 발언을 하며 “이상윤 목사님이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드린 것”이라고  창립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원 창립식에 장로회전국연합회 회장과 주일학교전국연합회 회장 등 많은 평신도들이 참석한 것이 눈에 띄었다. 장로회전국연합회의 이풍구 장로는 축사에 나서 “더 넓고 더 빠르고 더 크게 영향을 끼치며 급속한 변화를 가져오는 초연결과 초지능을 특징으로 제4산업혁명 시대에 감리회의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축사하면서 “이 연구원이 감리회의 미래와 변화를 주도하는 싱크탱크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상윤 원장의 오랜 지기인 안희군 목사(안성 장서교회)도 축사에 나서서 “평신도를 위한 선교정책을 연구한 논문이 거의 없는데 앞으로 감리회는 평신도를 중요한 선교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하고는 “미래정책연구원에서 감리회가 감리회다워지는 정책과 역동적인 논문이 나올 줄 알고 축하드린다”고 이상윤 목사를 향한 신뢰를 나타내 보였다.

 

   
▲ 2부 창립식 사회 - 임행심 목사(웨슬리사회성화실천본부 기획팀장)
   
▲ 인사말 - 임석구 목사(생명을나누는사람들 이사장)
   
▲ 창립취지 및 인사말을 전하는 이상윤 원장
   
 

 

창립취지 설명에 나선 이상윤 목사는 “감리교성을 회복하고 발전적인 감리교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미래정책의 개발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따라서 우리는 미래정책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미래지향적인 신학적 자기성찰을 빼놓을 수 없으며 선교정책을 다루는데 있어서 정책학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정책개발분야는 먼저 신학적 노선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감리교 신학의 유산을 복음주의, 오순절성령은사주의, 에큐메니칼로 국한하고 이들의 합종연횡과 사회적 성화를 실천하기 위한 융합적 실험을 전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구원의 정책개발 방향을 “신앙은 보수적으로, 신학은 진보적으로” 삼되 중도적이고 신복음주의적 신학에 바탕해 각 입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들을 제시하겠다는 의미이다.

이상윤 목사는 이를 위해 “연구원에 △법사위 △연구운영위 △선교위 △청년선교위 △교회음악위 △재정후원위 등을 두어 안으로는 감리회의 공의를, 밖으로는 신뢰를 회복하는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 축사 - 안희군 목사(안성 장서교회)
   
▲ 축사 - 이풍구 장로 (장로회전국연합회장)
   
▲ 인사 - 조정진 목사(생명을나누는사람들 상임이사)

 

   
 

 

아래는 이날 배포된 설립취지문(증보판)이다.

 

감리교미래정책연구원 발족에 부쳐서

이상윤

감리교미래정책연구원의 영문표기는 Korean Methodist Theology & Policy-Making Institute 이다. 이것은 정책수립에 감리교 신학이 먼저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Theology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그리고는 교단 선교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감리교 싱크탱크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지금 감리교는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선거를 잘못 치루면서 발생한 분쟁이 8년째 계속되면서 최고 지도자들이 법정으로 나가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감리교 이미지를 해치고 내부적으로 상무행위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하고 있다. 감리교성을 회복하고 정책적 선택을 하자면 미래정책의 개발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감리교에 몸담고 있는 이들 조차 감리교가 무언지 웨슬리 신학이 무얼 말하는지 파악이 안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래정책연구원은 우선 먼저 착수할 것이 미래지향적인 신학적 기준을 마련하고 선교정책 수립을 위하여 웨슬리 신학을 토대로 삼는 정책학적 접근을 해보자는 것이다. 신학과 선교 현장, 교회와 사회간 소통의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교회는 현재 신자유주의 영향 하에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저성장, 저금리, 저출산, 고령화로 인하여 한국사회는 신빈곤현상에 처하여 있으며 교단은 연대주의를 상실하고 공정분배를 실행하지 않으면서 개체교회 중심주의로 표류하고 있다. 마치도 1970년대 복음화와 인간화 가 대립되던 구조처럼 변화된 선교지형에서 정책적 조정이 불가피하게 되고 말았다. 이러한 급변하는 변화구조에 인공지능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제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의 영향은 사회를 격변시키고 있고 우리사회의 조직문화와 경영 프로그램을 혁신시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요구하고 있다. 인간의 영역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고 상대적으로 인공 지능과 로봇 그리고 사물 인터넷과 빅 데이터 3D 프린터와 바이오 프린터가 속속 등장하여 인간의 감수성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사회에서 살아남을 10대 직업군에 경영이나 회계사는 없어져도 종교인이나 예술가 역술인은 살아남는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공지능 기계들의 습격으로 목회와 선교 영역에는 변화의 세찬 바람이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한 새 시대 도전 앞에 변화의 바람은 거세어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감리교회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성경 말씀에 따라야하게 되었다. 이것은 미래사회에 대한 낙관도 비관도 불허하는 상황에서 교회의 신학적 사고방식과 선교의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도 아닌 신학적 성찰과 미래전망을 찾는  것으로 정책적 과제를 가지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전문 인력을 키우는 것이며 동시에 신성장동력을 개발하여 미래정책학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책무는 하나님 앞과 교회 앞에 바로서서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자연계시로서 기후변화나 특수계시로서의 성령역사를 느끼고 일반계시로서 말씀을 새기는 기회가 오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먼저 감리교 신학풍토는 1) 웨슬리 복음주의 2) 성령충만의 오순절성령은사주의 3) 사회참여의 에큐메니칼 신학이 천하를 삼분지계로 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신학적 흐름은 감리교를 음으로 양으로 지배하면서 서로간의 갈등과 대립를 경험하고 이합집산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감리교 신학정립에 융합적인 실험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 예를 들자면 루터의 칭의의 신앙과 존웨슬리의 성령신학은 성화사상을 통하여 경험하는 것이 로마서와 야고보서를 읽듯이 상호갈등하는 가운데 칭의로 기울어지면 사회윤리가 약해지고 성화를 강조하면 교회성장의 무게가 낮아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죄 씻음과 성령 충만의 교리는 복음의 교회성장신학의 요체로서 성장한 교회의 사회적 윤리적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사회적 신뢰회복과 공로사상을 군형있게 이끄는 힘인 것이다. 특히 감리교가 취약한 봉사에서 성화적 결단을 촉구하는 요소인 것이다. 그것이 감리교 신학의 균형 감각이며 신학적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이것을 우리는 감리교적인 신앙의식이며 존 웨슬리는 Practical Divinity라고 불렀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감리교는 30년대부터 자유주의 신학이 보급되면서 신앙은 보수 신학은 진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70년대에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으로 양분되어 동시적인 구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법정에서의 사법정의가 감리고 감독회장선거사태를 거치면서 제기되었다. 교회의 법정서는 사회법의 위력으로 무너지고 교권수호차원에서는 사회법의 우위를 인정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교리장정과 법 개정에서 나타나는 법정서와 감정은 현실규제를 목표로 하는 세습금지법과 성직 출교처분이 최대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1968년 통일교관련자 67명을 정직처분하고 7명을 출교 처분하였던 교회가 1992년에 와서는 종교재판으로 2명의 신학교 교수를 출교처분하면서 감리교는 보수화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말았다. 신학적 자유는 구금을 당하고 종교대화와 토착화신학으로 기치를 들었던 감리교회는 일로 보수화되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와 결혼자 200만시대를 맞고 있는 한국사회는 이슬람포비아와 동성애추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글로벌 사회는 방향을 잃고 우경화되고 말았다. 교단역사 130년에 이단사상을 전혀 다루지 않았던 역사를 뒤로하고 이단대책위를 세웠는가 하면 동성애대책위를 세워서 교단선교전책의 일대전환을 꾀하고 있다. 교회대중은 믿음 제일주의 구원론으로 무장하고 주일성수와 십일조 신앙으로 성장을 이룩한 만큼 앞으로도 감리교 보수화는 이러한 신앙적 신학적 바탕위에서 선교와 목회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말은 감리교와 성결교 오순절성령은사주의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는 보수화의 첨병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감리교가 진보적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죄씻음과 성령충만의 교리로 무장한 감리교는 복음적인 신앙으로 말씀 신앙으로 강조하고 축복과 번영의 신학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에 감리교의 자유주의 신학은종교대화의 신학으로 나가는 에큐메니칼 신학의 토양이나 민중신학적인 입장은 퇴조하고 복음주의적 소명에 충실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인간구원의 전체성을 감안한다면 정의 평화와 민족통일의 사명을 자각한 민족교회로서의 자긍심과 사명감을 회복하여 한반도 구원역사를 책임지는 교회가 구속사적 비전과 소명을 회복하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바이다.

신약 성경이 증언하는 중생과 성령충만을 가지고 구속의 확신을 품는 감리교 신앙은 성령이 주장하는 감리교 복음주의 신학 안에서 성장해 왔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감리교 신앙과 신학적 유산을 한데 모아 감리교 미래정책연구원의 진로를 선택하려고 한다. 그것은 신앙적으로는 좌도 우도 아닌 중도적인 길을 선택하잔느 것이며 동시에 사회적 성경을 추구하는 신복음주의적 노선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그것은 감리교 신학이 에큐메니칼 운동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스도중심의 복음주의 신학을 수용하면서 직접전도의 사명을 실천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에서 신복음주의라는 것은 교회론이 중심에 서되 기독교 윤리적인 책임의식을 강조하자는 것이며 웨슬리 성화사상을 통하여 성결의 삶을 살자는 것으로 웨슬리 복음주의의 전형적인 균형감각을 맞추자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민족과 국가사회를 위한 교회로서의 사명을 강조하면서 한반도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민족구성원들에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기를 대처하는 방식으로서 한국교회가 책임져야할 선교적 과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지금 수행중인 국제 에큐메니칼 운동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한반도에서의 평화실현과 전쟁을 극복하는 평화체재 구축에 쏠려 있다. 비핵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은 한반도 비핵화이지만 현실정치에서 요구하는 과제는 민족자주원칙과 평화를 위한 선택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감리교회는 존 웨슬리의 복음주의 경건주의 사회적 성화 실천에 강조점을 둔 만큼 감리교가 감리교회다워야 하는 책무를 지고 민족 복음화와 평화를 위한 선택이 핵심사항인 것이다. 감리교가 전하는 성결의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부름받은 이들은 생활인이면서도 민족적 여망이고 소망인 평화를 위한 선택에 신앙적 결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바로 극심한 이념적 갈등의 원인이 되는 좌우익의대결과 민족의 분열을 극복하자는 것으로 축약된다. 앞으로 우리는 감리교 미래정책연구원이 각위원회조직을 통하여 활동할 때 1) 법사위 2) 기획연구위 3) 평화통일선교위 4) 청년 차세대 교육위 5) 교회음악위 6) 재정후원위 등을 설치하여 활동할 것이다.

감리교미래정책연구원을 시작하려니까 지나간 저의 신학적 순례에서 만났던 인물과 사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첫째는 인디아 유학 시절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만났던 인디아 케랄라 마르 토마 교회 출신으로 프린스턴신학교에서 M.M. 토마스의 기독교 윤리와 실천요가사상의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카르나타카 방갈룰루시 화이트필드 소재 에큐메니칼연구원(ECC) 원장을 하면서 연합신학대학원(UTC) 윤리학 교수로 있던 K.C 아브라함을 떠올린다. 그는 나의 지도교수로 석사학위를 이수하게 하였고 인디아 달릿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의 상관관계 연구로 학위과정을 마치게 도우셨다. 또 하나의 교수는 인디아 마드햐프라데시 주에서 30년간 인디아 불가촉천민들을 상대로 학교와 병원사역을 감당했던 유명한 선교학자 도날드 맥가브란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교회성장학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선교학을 인류학적인 지평위에 세우고 인디아 선교경험을 세계화시킨 인물이었다. 교회성장의 가교나 교회성장이해 라는 유명한 저서를 통하여 동일집단이론으로 선교학에서 도시선교의 장래를 활짝피게 만들었는데 한국에서는 교회성장학파들에게 성장학의 계량적 수치변화와 선교적 미래전망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하였으며인구학적으로 증가하는 아시아의 도시를 상대로 하는 성장학의 비전을 제시하여 선교적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성장 신화를 분석하고 해석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항하는 복음화를 주창하여 낮게 평가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인디아 상황에서는 동일집단이론을 가지고 하위 카스트인 불가촉천민 선교에서 인류학적인 지평을 열었고 여성과 달릿의 해방을 위한 기독교 선교의 참여를 실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것이 나와 도날드 맥가브란이라는 걸출한 인물간의 학문적인 인연이었다. 그는 인디아가 1991년 개혁개방을 단행하기 전까지는 국제적으로 인디아의 정치사회적 변전과 경제상황이해에 결정적인 길잡이가 되었던 학자였다. 그는 한국에서 일어난 도시산업화 환경에서 교회성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진단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동일집단이론을 소개하였고 그것이 엄청난 기여를 하였던 것이다.

70년대 이농민들의 도시집중으로 형성된 교회성장의 열기를 바라보면서 빈민들을 응집시키고 교회성장의 토대로 삼은 한국 장로교 감리교의 교회성장 전략은 이러한 선교신학적 성찰과 해석을 통하여 한단계 향상되었고 훗날 영성신학운동이 일어나 마지막 보완을 하기까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농민들의 영적 욕구는 축복의 선포였고 고향을 떠난 이들의 영적 안식처로서 작동한 교회들은 민중신학이 보듬지 못하는 목회현장에서 가부장적 남성우의 문화가 뼈대를 이룬 교회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터였다. 반면에 해외 에큐메니칼 선교단체와 교회들의 재정적 후원으로 주민조직과 대중운동을 펼쳐나간 민중운동은 교회 안에서 착지하는 것에 실패하고 현실정치세계로 뛰어들었다. 그것이 교회성장그룹과 사회참여세력간의 갈등이었다.

민중신학운동인 이러한 도시빈민운동과 농촌목회 세력의 선교운동에 의하여 성장했지만 민중운동은 세속화되고 말았다. 이것은 교회이해를 달리한 결과이기도 하였다. 기존의 교회론인 조직과 건물이었지만 실제로는 유교적 샤마니즘적 회중구성은 교회를 예배자를 통하여 종교적 권위와 일체감을 갖을 수 있는 장소적 이해로서의 교회이해가 작용하면서 성막의 지성소 같은 위치가 교회였고 목사는 유대교의 제사장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교회론은 마을의 두레가 되어 협동조합이 되고 고향 향우회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교회성장의 기초를 다르게 이해한 결과 지금과 같은 대형교회의 세습론이 갈등의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 것이다. 이점이 민중선교가 간과했던 복음주의권 교회들의 성장이었고 민중선교가 놓쳤던 항쟁하는 인간조직이 아니라 예배하는 인간공동체의 신비인 것이다. 철저히 가부장적 남성위주의 조직문화가 구축된 성장한 교회는 막강한 부친처럼 교회의 회주가 담임목사였고 독재와 전횡을 일삼는 공백이 주어진 것이다.

교회는 지금도 선교정책보다는 카리스마 중심으로 돌고 있고 강한 교회의 응집력은 이러한 부동산의 위력을 뿜어내는 건물을 가지고 프리 메이슨같은 위력으로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신도시개발지의 중견교회들은 대형교회를 지향하면서 지금도 건물전도전략을 쓰는 이유인 것이다. 물론 예배는 뮤지컬적이고 축복의 전당에서 가난한 교우들이 오히려 안식과 평안을 맛보려고 하지 않는가. 대형교회 예배란 이제는 무대연출자 몫이고 찬양과 성가로 어우러진 극장식 쑈인 것이다. 연극영화에 대한 감각적 추구는 이미 대형교회 예배관리의 요체인 것이다. 문제는 사회적 공신력인데 그것은 교회가 지역사회봉사 프로그램과 함께 복지 센터로 자리 잡는 경우이다. 지자체가 주관하는 행정명령으로 이루어진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이미 교회의 선교영역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는 다음세대를 위한 양육 프로그램이다. 교육적인 사명을 강조하는 교회의 투자로서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감리교는 전도운동에 관해서 만은 전문선수급 감리교 전도운동지도자를 조직하고 프로그램을 만들면 전도운동은 가속도를 붙일수 있다. 그만큼 미지의 영역이 전도운동인 것이다. 그다음은 사회봉사다. 감리교는 봉사활동이 미미하다. 실제로 보자면 생명을 나누는 사람들의 장기기증운동을 보자면 장기기증운동은 본질적으로 국가가 주관하는 합법적인 법인체가 주도하는 교육과 홍보활동이며 장기기증을 자발적으로 전개하여 일정한 실증을 올리는 활동이다.

생명을 나누는 사람들은 그동안 골수이식기증을 시작으로 신장 기증운동으로 넘어 왔고 지금은 각막이식으로 반전하고 있다. 특별히 각막조직을 이식하는 운동을 매개로하여 일선 교회들의 모금운동을 관장하고 있다. 여기에 감리교 웨슬리 성화사상을 가지고 교회 안에 성화실천본부를 조직하고 광역화시키고 있다. 지금 운동본부의 실무진을 보강하고 허리부분을 강화하고 있으며 모금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있다. 모금활동과 운동의 공공성을 확립하고 장기기증운동의 대중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감리교뿐만 아니라 가톨릭이나 조계종 불교 원불교 등도 일제히 시작하여 생명존중과 장기이식을 위한 생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각막이식의 경우 어둠속에 갇혀있는 환우들을 모금으로 격려하고 각막이식을 독려하여 생명기증운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이 운동은 북미주의 한인교회를 상대로 모금운동을 확대하고 있으며 모금을 가지고 아시아 선교현장에서 현지인들의 각막이식을 위한 활동을 하여 선교의 후방영역을 개척하고 응원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서 감리교 중심으로 기부 문화와 생명윤리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교회가 복음의 직접전도를 관장하고 교회개척을 궁극적인목표로 설정한 교회성장은 도날드 맥가브란에 의하여 체계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선교사 부모에게서 인디아 다르질링에서 태어났다. (1897년) 고교를 졸업한 뒤 그는 버틀러대를 나왔고 인디아나폴리스의 선교대학을 거쳐서 선교사가 된 그는 명문 예일대와 콜럼비아대를 다니면서 선교학이 아닌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주요무대인 교육활동을 가지고 교육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선교사로서 인류학적인 분석을 습득하고 선교적 전망보다는 사회학적 비교분석에 아주 밝았다. 그러나 선교사역을 마친 1954년 귀국하여 인디아폴리스의 선교대학의 교수가 되었다(Indianapolis College of Missions) 1960년 미국 오레곤주 Northwest Christian College로 옮겨 교회성장연구원(The Institute of Church Growth)소장 직을 맡았다. 안식년을 맞아 귀국한 선교사들을 상대로 신학교육을 하였다. 그러나 1965년 68세라는 나이에 미국 파사데나 소재의  The School of World Mission at Fuller Theological Seminary 학장으로 갔다. 은퇴를 앞에 둔 노 선교사의 활약은 풀러 신학교를 세게 최고의 선교학의 메카를만든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 었다. 그것은 도시선교의 전략적 전망에 능통하였고 인디아 불가촉천민 선교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부동의 저력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1974년 로잔 선교대회에서 에큐메니칼 선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 대항하는 복음화 전도전략을 제시하여 환영을 받았고 존 스토트와 함께 복음화 운동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그의 주장은 복음전도의 결실을 강조하는 직접 전도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교회개척을 강조하였고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적 전망도 제시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도 성장학에 비하여 학문적 성과가 큰 상황화의 신학을 선도하던 토착화 신학이나 종교대화의 신학을 도입하고 민중 신학 운동이 등장하던 때였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산업화로 인한 경제호황 국면을 이용하여 복음주의권 교회들의 고속성장이 일어나고 있었다. 에큐메니칼 선교는 해외 자금으로 불을 부쳤지만 대형교회는 부동산으로 몸피를 키웠고 교회개척이 생소한 감리교는 연대주의를 청산하고 개체교회중심주의로 궤도 이탈을 이룩하였다.

민중 신학의 연구는 연구실의 언어로 고착되고 있을 때 성장하는 교회는 성공학의 언어를 구사하고 번영의 신학으로 무장하고 나왔다. 민중 신학은 민주화를 위한 선동이었다. 그러나 데모도 그만두고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실 정치로 뛰어들었다. 이러한 정치참여의 태도는 민주화를 앞당겼을지 모르나 교회는 더 이상 추동하지 않고 말았다. 교회는 대형화되었고 북미의 대형교회들처럼 조직 관리와 성경공부 프로그램 개발로 맞불을 놓으면서 사회정의 투쟁은 기운을 잃고 말았다. 여기에서 얻는 통찰력은 복음주의권도 에큐메니칼권도 시대의 유행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변화하고 있는 삶의 현황에서 복음이 명령하는 대로 선교현장에 적응하고 성경이 증언하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라는 것이다.

지금 남반구 지구촌의 주도권은 복음주의 오순절성령은사주의이라지만 감리교의 영적 도덕적 실추는 선교의 접점을 찾기가 어렵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가 쉽지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현대판 민중 신학이라는 세월호 사건도 정치 프로그램화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데 이는 교회선교의 한계이면서 세속화의 고속도로에 들어간 만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교회 선교의 한계상황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문제이다. 미래사회를 선도하는 인공지능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글로벌 신자유주의는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고 사회적 약자와 나그네들을 압박하여 가난한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다. 선교는 낮은 자리인 불우이웃들에게서 시작하는 것이고 선교공동체는 소외된 대중 속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이라면 인류사회는 미래라는 엄혹한 현실을 담고 있는 최후의 선택지에서 우리의 고난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강도만난 이웃들을 향한 손길이 절실한  것이다.

사마리탄의 복음은 중도적이고 신복음주의적이라는 말은 지금 감리교신학과 선교의 좌표를 가리키는 가장 적절하고 실천적인 과제인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서는 성장한 교회의 공공성을 기대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각성한 소수의 무리들이 교회의 영극화를 이겨내기 위한 결단으로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고 가난한 개척교회의 장래를 담보하는 비전을 가지고 목회역량을 키워주는 일에 나설 수는 없는 것인가? 이것이 지금 감리교 위기의 본질이고 빠져나갈 길목인데 감리교 생존의 방략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이 미래정책연구원의 시대적 소명이자 역할인 것이다. 정책개발이나 연구는 현장에 있고 이론과 실제를 두루 겪은 이들이 한데 합쳐서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측면에서 2018년 3월 첫주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열릴 예정인 WCC 세계선교대회는 성령의 역사 변혁을 위한 제자도를 놓고 열리게 되었다. 해방신학을 중도적으로 해석한 주제를 미연합감리교 소속 목사들이 지적하여 시대의 징조를 주제로 추가한 이번 대회는 인간해방의 인간구원의 상극관계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성령역사(Moving in Spirit)를 강조하고 한국출신 우경화 목사가 주제하는 대회에서는 변혁의 과제를 짊어진 예수 제자도를 Transforming of Jesus Discipleship을 가지고 대회를 치른다.

문제는 우리는 아직도 번영의 복음이 내뿜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교회의 준비된 제자도는 윤리적인 과제를 수행하는데 그치고 있지만 예언자의 대화의 신학을 주창한 스테판 베반 신부의 비전대로 1) 복음주의 중심의 교회성장과 교회 개척을 2)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신학에 의한 사회정의 실천과 변혁의 과제를 가지고 3) 종교대화의 신학을 가지고 문화와 역사의 갈등을 가교짓는 예언자적 신학을 추구하자는 것이 글로벌 선교의 궁극적인 과제이다.

지난 2013년 10월 8일 제 10차 WCC 부산 총회장에서 총회결의문에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WCC의 관점이 간명하게 들어있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은 주한미군의 철수로 귀결된다. 북한은 이미 전쟁 직후인 50년대에 중국군과 소련군을 반도 안에서 밀어냈으나 우리측은 전쟁이 끝난지 6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미군은 상승군 마냥 주둔지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지금 NCC 신임 총무가 된 예장통합의 사무총장인 이홍정 목사는 영문 결의문에는 손을 못대었지만 공개기자회견에서 쓸 한글판에는 미군철수를 빼는 악역을 맡았었다. 그것이 한반도 힘쓰는 교회들의 입장이었다. 지금도 한미동맹의 굳건한 체제는 평화체제 구축을 거부하고 있고 당연히 미군철수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비핵화의 북미 협상 테이블에는 공공연히 보상금액이 697조원이라고 되어 있다. 북한이 받아가려는 금액이다.

북측은 원하는 것이 하나다. 핵 보유국가로 미국과 국제사회가 인정하라는 것이고 이것을 수용하면 경제제재 빗장을 풀라는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 비핵화를 시작하는데 핵과 미사일 동결을 받아들일 용의도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비핵화는 물 건너 간지 오래다. 그것은  미군철수와 경제보상이라는 보따리가 있는 한은 정권보장과 맞물려 돌아가는 핵심사항이다. 1973년 베트남 전쟁을 파리평화협상으로 하고 레둑토와 키신저가 노벨상을 받았는데 평화협상이 끝나고 2년 뒤 북베트남군인 사이공을 함락하고 북월맹이 원하는 남북통일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악몽은 한반도 저손반도에서도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는 예상이다. 이러한 악몽같은 가상 시나리오가 지금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핵시설 폭격이나 정권교체 또는 김정은 제거 같은 작전개념을 가지고 한미동맹의 노림수를 만지작만지작하고 있다. 90년대 나온 시나리오인 북한의 자체적인 봉괴론도 남아 있지만  이제는 2000년대 노벨평화상을 받던 햇볕정책도 빛을 잃었다. 오히려 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풀이 죽어 있던 북한은 강고해진 선군체제를 가지고 러시아와 중국을 충분히 통제하면서 원유공급선을 끊지 않는 중국이 있는 한은 유엔의 경제제재조치도 소용이 없다. 그러면서 대화도 원치 않는다. 오직 있다면 핵위력으로 승부를 보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로 가겠다는 강고한 외교전술만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반면에 촛불혁명으로 이룩한 남한의 정권교체는 반미를 가슴에 비수처럼 품고 있으면서도 한미동맹을 거부하지 못하는 이중성을 안고 겉으로는 중국으로 향하는 속마음을 참고 견디고 있다. 북한은 강고하고 미국은 강력하고 일본은 교활하여 무장복귀를 노리고 있는 현실에서 이중적인 전략과 한수 밀리는 외교술을 무기로 삼은 남한만 북한의 핵 공격목표로 되어버렸다. 북미간의 대화는 통미봉남의 악몽 곧 코리아 패싱으로 나타날까 두렵고 북한은 엄청난 보상금을 노리면서 언제든지 파기 가능한 북미협정문을 기다리고 있다. 사상 유례 없는 신보호주의 정권인 지금의 백악관도 상태를 제압할만한 유연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지는 뻔하다. 흔한 선제타격론이나 핵재무장론이나 김정은 참수작전 같은 대중성이 가득한 전략만 있다.

한반도 생존의전략이 이 모양이니 교회는 어떠하겠는가? 무력한 에큐메니칼 평화대타협론은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대화도 할 만한 상대여야 하는 것이지 북한은 이란과 또 다르다. 이란과의 핵협상은 극적 반전이 있는 대화와 협상이 작동하였다. 그러나 확실하게 미국의 경제보상이 있었고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협상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화나 협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제 결론이다. 미래사회를 위함 감리교 미래정책연원은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이다. 먼저는 스마트 시대라는 특징을 가지고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문명이 개화하고 있는데 우선적으로 눈에 띠는 것이 자율주행차 전기차 수소차 하이브리드차가 등장하여 교통의 대중화를 시도하는 것이고 로봇을 사용하여 이족로봇과 팔 로봇이 대량생산의 주역인데 앞으로는 대량 생산을 위한 로봇만이 아니고 공중에 떠서 적을 무찌르는 드론도 있겠고 수중촬영하는 스포츠 카메라와 드론이 있으며 파주에 있는 LG 단지는 OLED 생산이 이미 10조원을 육박하였고 매출고 세계최고인 삼성전자의 휴대폰생산과 함께 하이닉스 반도체의 비메모리 분야는 세계 6대 무역국가로 발돋움하게 하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의 몰락에 가담하여 삼성전자 최고 책임자가 영어의 몸이 된 것이다. 삼성의 대외적인 통괄 조직의 이름은 미래전략본부였다. 여기에는 무수한 음모론이 돌고 있다.

이번 회기 국회는 제 4차 산업 혁명위원회가 설치되어 운영 중이다. 위원장은 국민의 당 출신 김성식 의원이 맡아 놓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의 4차 산업 혁명위원회도 가동 중이다. 이들의 설치 목적은 다 아는 대로 혁신 산업 활성화 규제개혁 철폐 활동이다. Fast track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자율 주행자동차 문제 바이오 의료와 바이오 장기이식문야와 핀테크 전자상거래와 금융복합 시스템 구축 스마트 신도시 개발 사업과 여기에 따른 행정지원 체계 구축과 규제철폐 활동이 주요 업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보 격차가 심화되면서 정보 부유층이 압도적인 위력을 뿜어내고 있다. 미래사회는 1.기계정보를 소유한 자와 2.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와 3.기계가 하기 싫어하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자로 나뉘게 된다. 미래 정책학은 궁극적으로 적응의 사회학으로서 하이브리드 사회를 구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사회를 리드할만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로봇이나 드론이 중앙 통제시스템으로 묶이고 있는 우리 사회는 경영, 회계, 인사, 행정 각 분야가 통제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 한다. 여기에서 인간두뇌 대 인공지능간의 대결로 분할되는 정보전쟁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4차 산업 혁명사회로서 정보와 재화의 양극화를 일으키고 있는 주범이고 대량 실업과 인간효용가치의 하강으로 일어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정보기기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현실화되면 2050년대에는 적어도 8억 명의 일자리가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마지막 남은 인간의 생존방법은 인간이 갖고 있는 영적 감수성을 개발하여 예배와 복음 메시지연구 그리고 전통적인 금욕적인 수도자 공동체이다. 슈퍼컴퓨터가 빅브라더가 되고 세계는 인공지능이 지배한다는 시나리오이다. 이미 우리 세대들도 인간사회의 종말을 느끼고 있다. 중국에는 장례식에 동원되는 로봇 승려인 시아너가 있으며 일본에도 페페 라는 독경 하는 로봇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는 노인요양 로봇이 있다 한다. 과거 인터넷 교회가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가 성만찬 집전이 불가능하고 헌금 수금이 되지 못하면서 실패했는데 앞으로 현금결재가 전자화되고 인간관계가 무력해지는 시대가 될런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러한 사회가 온다고 한다면 인간의 생활영역은 그만큼 줄어들고 말 것이다.

앞으로 기대하기는 교회가 선교라는 이름으로 수행할 일들은 먼저 1) 빅 데이터 구축 2) 인간 공동체 조직의 활성화 3) 전문가 육성이다. 인간 공동체의 최후의 생존은 복음을 설교하고 영성생활을 프로그램화하고 생명의료의 발전으로 150세가 가능한 미래사회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미래 자율공동체 육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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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8.194.186.155)
2017-12-09 01:34:28
죄송하지만
연령대를 보면

미래 정책이 될까 의구심이 든다.
리플달기
1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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