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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고?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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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2월 05일 (화) 00:29:15
최종편집 : 2017년 12월 08일 (금) 22:01:29 [조회수 :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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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혈통 면에서는 순수한 유대인이고 그는 유대교 중에서도 엄격함을 자랑하는 바리새파의 유대교인이라고 자랑했다. 그리고 그 당시 최고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사도 중의 사도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바울이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고? 그런 듣도 보지도 못한 말을 무슨 근거로 한단 말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바울이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를 곤경에서 구해준 로마 시민권에 대해서는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된 로마 시민권을 왜 자랑하지 않았을까?

실상 로마 시민권은 그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는 그의 몸에 가시가 있다고 그의 약점을 언급한 일이 있지만, 로마 시민권은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약점이었다. 그의 로마 시민권이 왜 그렇게 큰 약점일 수 있었는가? 정말 그랬다면, 이 사실이 바울의 삶과 신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 사도바울 Apostle Paul, 렘브란트, 1633년, 캔버스에 유채, 137 x 112 cm, 빈 미술사 박물관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


로마와 유대인

로마가 다른 민족을 지배할 때의 기본 정신은 패자까지도 자신들과 동화하는 데에 있었다. 로마가 동화 정책을 쓴 것은 일차적으로 피정복민들의 반발심을 무마하여 로마의 지배에 순순히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아가서 로마 제국 전체 시민들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세계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할 만큼 로마가 광대한 식민지를 다스리던 제정 로마 시절에 유대도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로마의 지배를 받던 여러 민족 가운데에 유대민족만이 동화하기를 거부했다. 유대 민족은 그들의 지배자인 로마만이 아니라 어느 다른 민족과의 동화도 거부했다.

니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것은 그들의 종교 때문이었다. 유대교의 십계명에서는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로마나 다른 이방인들과 동화한다는 것은 바로 그들이 섬기는 다른 신을 인정하고 섬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은 여러 곳에 신당을 세우고 심지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같은 황제들까지도 신으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들은 로마의 동화 정책에 응할 수가 없었다.

로마에서는 동화를 거부하는 유대가 독립국으로 존속하는 조건으로 유대교 제사장들에게 정교일치의 통치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유대인 출신 헤롯을 왕으로 세우자 그가 완전한 전제군주 체제를 수립하면서 제사장들이 국정에 간섭하지 못했다. 헤롯이 유대 왕국을 삼분하여 세 아들에게 나누어 준 후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에서 유대인들이 제사장들의 신권 통치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다. 그러자 로마는 이 중부 지역을 직할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예루살렘에서는 제사장들이 사법을 맡는 것을 인정해 주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대법을 따르고, 죄를 지은 경우에도 유대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다. 다만 사형 판결이 난 경우에는 로마 황제의 대리인인 유대 주재 장관이 허가해야만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 예수가 처형될 때에도 예루살렘 제사장들로 구성된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당시 유대 장관인 본디오 빌라도가 집행을 허락하는 절차를 밟았다.

로마가 제국 안에 사는 이민족을 로마인과 동화시키기 위해서 취한 구체적인 방책은 그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것이었다. 로마 시민이 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었다. 로마 의회에서 투표할 수 있었고 공직을 맡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로마 시민과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고 그 자녀들은 로마 시민이 되었다. 특히 로마 시민은 고문하거나 채찍질하지 않았고 반역죄가 아니면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다. 반역의 혐의가 있으면 로마에서 심리를 받고 사형선고를 받더라도 십자가형은 면했다.

카이사르가 정한 법에 따라서 의사와 교사는 민족에 관계없이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는데, 제정 시대가 진행되면서 이 제도는 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유대인은 우수한 민족이라서 의사와 교사를 많이 배출했지만, 이 특전을 활용한 사람은 놀랄 만큼 적었다. 로마인이 되면 로마법을 지켜야 하고 로마법을 지킨다는 것은 우상에게 절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로마 시민권자가 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종교적으로 배교자였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로마 시민권은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부유한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시민권을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민족 반역자로 취급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이 활동하던 때에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에 바치는 세리가 죄인으로 취급 받았던 것을 알고 있다. 그 당시에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로마에 동조하는 사람은 민족을 배반한 죄인이었다.


바울의 로마 시민권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는데, 그의 시민권은 그가 취득한 것이 아니고 세습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바울처럼 세습에 의해서 취득할 수 있었고, 돈을 주고 사는 방법도 있었고, 로마를 위해서 공을 세우면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바울의 경우에는 다소라는 큰 도시의 부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시민권을 샀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든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어려움을 모면했다. 빌립보의 행정관들이 그를 매질하려고 할 때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혀서 그 매질을 면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도 로마 시민이기 때문에 채찍질을 당하지 않았다. 그가 로마로 압송된 것은 로마 시민으로서 황제 카이사르에게 직접 재판을 받겠다고 상소한 것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 유대 사회에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다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의 배반 행위였다. 먼저 로마의 다신교를 섬기겠다는 서약이기 때문에 여호와 신앙을 버리는 배교 행위였고, 여호와의 선민인 유대 민족을 버리는 민족 반역자였다. 유대 사회에서 로마 시민권자는 신앙과 민족을 버린 이중의 배반자였다. 따라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자신의 유대 혈통을 내세우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이라는 것을 자랑했지만, 그가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가능하면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이 약점 때문에 그는 자신의 혈통이나 교육 배경, 그리고 사도로서의 위치를 더욱 내세우지 않았을까?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1:14)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세습에 의해 얻은 로마시민권이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지나치게” 그리고 열심히 유대교를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할 때 그도 그 박해에 앞장서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바울을 곱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 자신이 그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배신자의 아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국노 이완용의 아들들에 대한 반감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완용의 아들들은 단지 정치적인 배반자의 아들이었지만, 바울은 종교적이면서 정치적인 이중의 배반자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울에 대해서 우리가 이완용의 아들들에 대해서 갖는 나쁜 감정 이상의 반감을 가졌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유대교 신앙을 위해서 아무리 열심을 낸다 하더라도, 로마 시민권자로서의 아킬레스건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었다.

니오노 나나미는 당시에 유대인들 중에 예외적으로 로마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들이 일부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런 사람들은 현대의 이스라엘 사람들한테도 배신자로 낙인찍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조차 로마에 빌붙었던 로마 시민권자들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다면, 바울이 살던 당시에는 그 반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만하다. 나나미는 바울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바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었을 것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를 한사코 죽이려고 한 표면적 이유는 바울이 이단자 예수를 선전한다는 것이었지만, 그가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민족 배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로마 관헌들 앞에서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가 로마 시민임을 밝혀서 로마 관헌들의 보호를 받을 때 유대인들의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바울에 대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폭력적이고 집요한 반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40명의 매복자들까지 자원하여 나서서 바울을 죽이려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치면서

구약의 신명기 사관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고 불순종하는 자는 벌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유대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한 그는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면할 수 없는 죄인이었고, 민족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따돌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중심에는 예수를 믿으면 아무리 악한 죄라도 용서받는다는 십자가의 복음이 자리하고 있다. 믿기만 하면 어떤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죄인 취급을 받았던 바울에게 매혹적인 복음이었다.

그가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의 사도가 되어 이신칭의 교리를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만하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는 말씀은 바로 바울 자신이 갈구하던 복음이었다.

바울은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약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능력을 “크게 기뻐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바울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삶과 그가 내세운 믿음의 신학을 로마 시민권자라는 그의 아킬레스건과 결부시켜서 생각할 만하다. 바울이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인이 된 것,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지방에서 활동한 것, 유대인에게 전도하기보다는 이방인에게 전도한 것, 율법을 비판한 것, 그가 이신칭의를 내세운 것 등은 로마 시민권자인 그를 유대인들이 박대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구속의 교리는 기독교 신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역설이다. 로마 시민권자로서 유대 사회에서 큰 죄인이었던 바울이 사도 중의 사도가 되었으니, 바울은 이 역설을 몸소 실현한 사람이다. 그의 신학은 바로 이 역설 위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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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252)
2017-12-12 20:27:16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의 바울이
또한 바울은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1:14)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 자신이 그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배신자의 아들이었다.

유대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한 그는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면할 수 없는 죄인이었고, 민족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따돌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의 중심에는 예수를 믿으면 아무리 악한 죄라도 용서받는다는 십자가의 복음이 자리하고 있다. 믿기만 하면 어떤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죄인 취급을 받았던 바울에게 매혹적인 복음이었다.
<본문 중에서>

결론은 바울은 싸이코였던 것이다.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과도한 액션으로 덮으려 했지만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바울?
그가 예수의 삶의 대부분을 무시한 채
예수의 죽음-속죄의 죽음에 매몰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나?

왜 기독교가 자아분열적인 현상을 지속하는가?
그것은 기독교의 원조인 바울의 원죄인지도 모른다.
왕따의 바울, 사변(궤변)의 바울.
결국 기독교가 개독교로 변개할 수밖에 없는 원죄!

Q복음서와 마가복음으로 돌이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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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252)
2017-12-11 20:37:00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구속의 교리는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구속의 교리는
기독교 신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역설이다...
그의 신학은 바로 이 역설 위에 세워졌다. <본문중에서>

원시교단(야고보 등)에서 미심쩍어 하던 바울은
기독교의 정통이 되었다.
바울이 정통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신학과 교리가 후에 제도화한 교회권력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정통은 교권싸움의 승자가 붙이는 명패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바울의 신학과 교리 위에 근거하지만
성경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는
바울의 선언이 무색하게
마가와 마태 그리고 야고보의 신학을 내장하고 있다.
이 얼마나 큰 아이러니인가?
특히 한때는 바울의 동역자였던 마가는
바울의 복음을 비판하고 교정하려는 의미에서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였다.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인 야고보가 피살되고
이방선교의 두 기둥이라 하는
베드로와 바울조차 로마에서 죽임을 당하고
예루살렘이 로마군의 공격에 함락되기 직전
기원 69년 가을에서 70년 봄 어간에
예수운동(천국운동)을 되살리는 것이
곧 복음의 길이요 예수를 따르는 그 길임을 간파하고
그의 복음서(마가복음)을 집필한 것이지 아닐까?

마가는 혈통주의(야고보)와 전통주의(제자 구룹) 및
바울의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신학(복음)을
비판하고 교정하며 대안으로서
그의 복음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예수 자신의 기록물이 하나도 전해진 바 없는데
예수를 어떻게 알겠느냐교 의문을 제기한다.
일리있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Q복음서(Q문서)와
투박한 마가의 복음서가 쥐어져 있다.
예수에 대하여 필요충분하게 알 수 있는...

마가복음은 특히
한때 바울을 따랐던 마가의 작품이라면
바울에게 직접적으로, 직격탄으로
총구를 겨눈다.
바울이 저주하는 다른 복음인 마가복음은
바울을 비웃으며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있다.

마가를 섬세하게 벗겨보면
새로운 복음, 새로운 기독교가
열릴수도 있지 않을까?

니콜님의 오랜만의 등장을 반가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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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소리 (122.35.176.192)
2017-12-11 07:26:28
진지한 댓글들을 잘 읽었습니다.

예수가 "가이사의 것...."을 언급한 이 장면 전후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책잡으려고 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는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을 예수에게 보내서 그를 잡을 빌미를 찾아내려 한 것이죠.

세금에 대한 것을 잘못 말하면 걸려들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데나리온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 말을 한 것이죠. 마치 솔로몬의 재판에서처럼 예수는 아주 지혜롭게 말해서 그들의 올무에 걸리지 않은 것 아니겠어요?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언행을 비판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 그러나 예수는 아주 지혜롭게 그들의 올무를 벗어났다는 사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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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콜 (82.47.232.86)
2017-12-09 20:10:24
원글과 댓글 잘 읽었습니다

먼저, 댓글에서 무릇돌님 퍼오신 글은 이미 65여년 전에 발표되었던 내용들입니다 (The Gospel According to St. Matthew by George A. Buttrick; Israel Abrahams, Studies in Pharisaism and the Gospels, 1st ser., p. 64).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대부분은 아마 태어나지도 않았겠죠.

일반적으로 그 당시 바울(롬13:1-2)을 포함한 모든 종교지도자들은 평화주의자(반전주의자)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권세에 복종할 것을 가르치지요. 오늘날의 한국기독교가 그렇듯이 종교지도자들은 언제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에 굴종하는 정책을 고수합니다.

마태 22:17절에서 말하는 세금에 관한 질문을 패러프레이즈하면, 유대인들의 거룩한 땅에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가? 혹은 하나님 한분만이 유대인의 왕이므로 유대의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

예수의 대답은 분명해집니다. 그는 바울과는 정반대로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세우기 위해 싸웠으며,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 칭한 것도 이런 통치개념에서 온 것. 그는 자신에 의한 이 땅의 통치를 부인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확신했던 거죠.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뒤집어 승리했고, 결국 기독교는 겉이름만 예수지 속내용은 바울을 믿고 있습니다.
무릇돌님의 주장은 맞습니다.

신약성서중에서 가장 편집이 많이 이뤄지고 구약성서를 비틀어서 왜곡한 책이 마태복음입니다 (S.V. McCasland, "Matthew Twists the Scriptures,"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80 (1961): 143-48). 특별히 마태복음을 해석할때는 본문비평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며, 참고로 한국에는 비평학자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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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생님의 바울의 로마시민권 콤플렉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국주의 치하에서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이완용은 있어왔습니다. 유대가 페르시아 통치하에 있을 때의 이완용은 에스라였습니다.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의 특명을 받고 (율)법(학자들은 현재 모세오경의 일부로 봄)을 만들어 귀국하여 (성전을 세우고) 자신이 만들어 온 법을 가르칩니다. 이것이 페르시아 제국이 이집트를 포함한 다른 모든 속국들의 종교를 인정해주고 그것을 이용하여 성전을 통하여 세금을 걷어들이기 위한 통치수단이었지요.

일반적으로 제국의 통치하에서 이완용은 당대의 최고 종교지도자들중에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제국들은 언제나 속국들의 종교를 통치수단으로 삼아왔으니까요.
희랍-로마시대의 이완용은 사울-바울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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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님의 댓글 코멘트는 이따 외출 다녀와서 하겠습니다.
네, 글 이어서 쓰겠습니다.

김경환님의 댓글은 코멘트할 필요가 없는데 혹시 섭섭해 하실 것 같아서 최대한 간단히 하겠습니다. 글의 전개나 결론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는 바울 정신을 대변해 주고 있네요. “바울이 예수님을 가리는 측면도 있지만, 예수님을 빛내는 측면도 있다.”틀린 말 아닙니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기독교는 위선과 거짓위에 세워진 종교 맞습니다. 기독교의 주요 교리는 삼위일체, 동정녀 탄생, 대속, 부활, 재림 등이지요. 이중에 한가지라도 부인하면 이단으로 낙인 찍어버립니다. 왜일까요?

기독교역사 초기부터 교리에 관하여 너무도 많은 공격을 받아와서 이론적으로 방어가 불가능해지자 이단으로 정죄하여 (칼뱅이 그랬듯이) 사형시키거나, 기독교안에서 그런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아예 낚인 찍어 입을 봉해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의 교리는 왜곡과 성서변개를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지요.

왜곡이란, 예를 들어, 마태는 이사야 7:14를 왜곡시켜 동정녀탄생을 만들어냈으며, 성서변개란 성경에는 없는 삼위일체를 증명하기 위하여 성서 이곳저곳을 변개/삽입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은 결국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셈이지요.

한가지만 더 지적하겠습니다.
그동안 마사다 전투에 관한 정보는 요세푸스에 의존해 왔지요. 마사다 전투에 관한 전설(학설)이 깨진지가 40여년이 되었는데 어디서 참고하셨는지 아직도 마사다 전투를 믿는 학자들이 있군요. 신기합니다.

최근 학계에서는 마사다 전투는 허구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Zuleika Rodgers, ed. (2007). Making History: Josephus And Historical Method. Brill. p. 397)

이토록 애국적인 전설의 이야기를 만들어 이스라엘은 군인들의 훈련과 학생들의 교육장으로 이용하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까지 등록하여 세계기독인들을 속여가며 관광지로 돈을 벌고 있지요. (거짓이라도)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 경웁니다.

아래는 학계에서 관련학자들이 쓴 만들어진 마사다 전설에 관한 아티클입니다. 참고하세요.
------------------

Bruner, Edward M. and Phyllis Gorfain (1984): "Dialogic Narration and the Paradoxes of Masada" Pp. 56-75 in Plattner Stuart and Edward M. Bruner (eds.): Text, Play, And Story: The Construction And Reconstruction Of Self And Society, Washington: The American Ethnological Society.

Cotton, Hanna and Yehonatan Preiss. 1990. "Who conquered Masada in 66 A.D. and who occupied it until it fell?" ZION, 55:449-454 (Hebrew).

Doty, William G. 1986. Mythography, The Study Of Myths And Rituals, Alabama: The University of Alabama Press.

Doty, William G. 1986. Mythography, The Study Of Myths And Rituals, Alabama: The University of Alabama Press.

Gill, Dan. 1993. "A Natural Spur at Masada" Nature, 364[#6438]:569-570.

Lewis, Bernard. 1975. History: Remembered, Recovered, Invented,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Nachman Ben-Yehuda/ The Masada Myth. Collective Memory And Mythmaking In Israel. Madison: The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95)
--------- Nachman Ben-Yehuda/ Department of Sociology and Anthropology. Hebrew University, Jerusalem 2000

Paine, Robert. 1994. "Masada: A History Of A Memory" History And Anthropology, 6(#4):371-409.

Roth, Jonathan. 1995. "The Length of the Siege of Masada" Scripta Classica Israelica, 14:87-110.

Schwartz, Barry, Yael Zerubavel, Bernice M. Barnett. 1986. "The Recovery of Masada: A Study in Collective Memory," The Sociological Quarterly, 27(#2): 147-164.

Shargel, Baila R. 1979. "The Evolution of the Masada Myth," Judaism, 28:357-371.

Zerubavel, Yael. 1995. Recovered Roots: Collective Memory And The Making Of Israeli National Tradit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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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47.216.79)
2017-12-10 06:24:31
마사다전투에 관하여 제가 아는 限度
1. 로마제국의 12군단이 수행한 전투

<로마제국의 명령에 의해 12군단이 마사다, 헤로디온, 마카이로스 3곳을 평정>하였는데 마사다는 3년, 그 외 지역은 금방 평정하였습니다. 이스라엘(요세후스) 측에 의하면 960명 전원이 결연하게 저항하다가 자결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고고학자가 발굴한 유골은 20구 정도였다고 합니다.

2. 이스라엘의 과도한 부풀리기와 마사다의 의미

마사다의 의미는 이전부터 계속된 對로마 항전의 대미를 장식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의 필요에 의해 이스라엘 측의 뻥튀기가 심했다는 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 그 자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3. 유사한 실례

1952년 12월,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에서 전국적 조사를 통해 '일본 震災時 피살자명부'라는 제목으로 파악한 관동대지진 조선인 피살자는 290명. 이 중, 2015년에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 조사위원회가 최종 신원 확인한 것은 40명.

한국은 일본의 잔학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일제시대 관동대지진 당시에 6000명의 조선인이 ‘방화범’으로 몰려 피살되었다고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290명을 6000명으로 뻥튀기하였습니다. 아무리 뻥튀기 하였다고 하더라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소한 290명은 일제에 의해 희생된 것임은 분명합니다.

뻥튀기와 사실관계는 구분해야한다고 봅니다. 단지 뻥튀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동대지진 학살 그 자체를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4. 마사다전투에 관하여 제가 아는 限度라고 한 이유

제 눈으로 <로마제국 12군단에 하달된 명령서>를 직접보지 못했지만, 이런 저런 문헌에서 읽은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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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47.216.79)
2017-12-10 06:26:39
바울에 관하여
우리는 ‘온전한 예수님’을 과연 몇%나 알고 있을까요? 바울에 의해, 敎父에 의해, 로마法王에 의해, 루터에 의해, 담당목사에 의해, 나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예수님은 왜곡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겹겹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온전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여태껏 진정한 기독교인은 단 한사람뿐이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바울에 대해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바울에게 功過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을 믿는 것인지 예수를 믿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울의 過에 대해서는 니콜님과 무릇돌님의 견해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바울의 過보다는 功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고 싶군요. 휘어질망정 부러지지는 않겠다는 정신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로마황제 가랑이 밑을 기어 다니더라도 ‘최소한의 敎理’을 지키겠다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의 쓰임새가 있고,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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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소리 (122.35.176.192)
2017-12-09 09:29:42
무릇돌님은 누구보다 유식하시네요. 이 글에서 가이사의 문제는 지엽적인 것이고 이 글이 놀라운 통찰에 의한 것인가 혹은 잡론인가가 중요한 것인데 그것을 언급하셨으니까요. 그럴듯 하다면 귀기울일만 한 것 아닐까요? 어떻든 이러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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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252)
2017-12-07 23:21:54
바울의 따돌림이
그의 로마시민권 때문이라니?

놀라운 통찰일까요?

해괴한 잡론일까요?

그럴듯은 합니다.

새로운 학설인가요?

워낙 무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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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22.35.176.192)
2017-12-06 16:24:03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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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252)
2017-12-07 23:55:56
스스로 신이요 신의 아들이라 쓰여진
가이사의 동전을
성전 안에 가지고 다니는 중생들!
그들은 하느님 숭배자들인가요?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다 신앙하는
다신론자들인가요?
그냥 필요하다면
도깨비 방망이라도 신으로 믿을
그런 중생들인가요?

도대체 가이사의 것이 무언가요?

대답이나 들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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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252)
2017-12-07 23:18:07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카이저의 카이저에게 주라. 카이저의 것이 무엇인가? 단지 화폐(데나리온)에 새겨진 형상뿐이고 그것은 로마제국의 억압적 존재를 확인시키는 역할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식민지 백성들에게 그것은 없으면 더 좋은 것이다. 그것을 그에게 되돌려 주라. 그 형상을 가지고 꺼지라는 말이다. 세금을 바치고 말고 하는 문제가 예수와 무슨 상관이 있나? ... 카이저의 것을 카이저에게 주라는 말을 통해 예수는 오히려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신앙 없는 것을 고발한다. 동전에 카이저 형상과 글이 있다면, 그것을 카이저에게 되돌려 주어라,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을 담고 있다(창 1:27). 그렇다면 우리는 내면에 새겨진 하느님의 글(가치관)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유대 지도자들(=교회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믿음을 가지고 성전에서(교회에서!) 행세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세금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앙과 가치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박원일, 마가복음-정치적으로 읽기, pp.242~243)

아느냐?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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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252)
2017-12-07 20:47:08
가이사의 것?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1. 전통적 이해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리고)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전통적 이해는 앞절에 강조점을 두어 해석합니다. 그래서 (설혹) '가이사'가 불의한 독재자라도 교회는 그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복종하며 세금을 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나아가 교회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은 구별되므로 교회는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때 보수교회는 자신의 몰정치적 입장을 강변하기 위해 이 구절을 즐겨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의 본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들만의 해석입니다.

2. 본문 분석 -

(1)무엇을 시험? :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칠 것인가, 말 것인가.

(2)누가 시험? : 바리새인과 헤롯당 / 전혀 상반된 입장을 가진 이들이 연합해서 예수 공격.

<헤롯당> - 당시의 정치체제 인정, 통치자들을 지지해서 상당한 특권 누림.
<바리새인> - 로마의 식민통치를 증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지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전력. 주후 66년, 열혈당들이 로마에 반란 일으켰을 때 가담.

(3)시험의 의도는? - 예수를 올가미 씌우자는 것. 즉 <세금을 바치지 말라>하면. 헤롯당원들은 예수를 로마당국에 대한 반란을 선동한 죄로 고발할 셈. <세금을 바치라>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 외에 로마 황제가 합법적으로 군림한 왕이란 사실을 시인한 셈이 되어 바리새인에 의해 매국노로 지탄받을 것.

※ 유대인에게 있어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낸다는 것은 식민 시대에 일본에 세금을 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고,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십계명의 제 1계명, 즉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열혈당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세금바치는 일에 반대했던 것입니다.

(4)예수의 답변 - 두 절 중 후자에 관심. 두 절을 잇는 접속사도 '그리고' 대신에 '그러나'가 옳다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3. 예수 답변의 참뜻 -

(1)돈에 새겨진 화상과 글이 누구 것이냐? - 시험하러 온 자들에게 데나리온(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로마 은전)하나를 가져 오게 합니다. 거기에 가이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시의 배경에 비추어 볼 때, 시험하는 자들이 가이사를 그들의 왕으로, 그들 스스로를 가이사의 시민으로 인정했음을 지적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식이 강했으므로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진 로마은전을 사용하기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20세 이상의 유대 남자들이 성전에 대는 성전세도 로마은전(데나리온)으로 바치지 않고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두로의 세겔로 환전하여 바쳤습니다. 특히 열혈당은 로마돈을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시험하는 자들이 로마은전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가이사를 그들의 왕으로, 스스로를 가이사의 시민들로 기꺼이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 답변의 묘미가 있습니다.

(2)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너희들이 기왕에 가이사를 왕으로 인정하고 그의 통치권(PAX ROMANA) 하에 그가 이룩한 평화와 질서를 누리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면 너희들은 마땅히 가이사가 요구하는, 그에 대한 대가를 내야 할 것이다.

(3)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 그러나!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절대적인 요구가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신 6:4)

※ 예수님에게는 종교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이 따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고 안내고의 문제를 질문자의 결단에 맡겼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은 모두에게 부과된 절대적 요구로 내세웠습니다.

-로마의 체제에 의존하는 헤롯당원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할 것.
-로마제국에 심정적으로 저항하는 바리새인들은 세금바치기를 꺼려할 것.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열혈당원들은 세금납세를 아예 거부할 것.
-그러나 헤롯당원이나 바리새인이나 열혈당원이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자들이건 안 바치는 자들이건, 모두 혼신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없다~!!!

이것이 예수님의 답변의 진의입니다.

이것은 쥔장의 허락도 엾이 퍼 나른 글입니다.
실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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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47.216.79)
2017-12-06 14:18:11
유태인 强溫(강온)투쟁의 산물 - 온건파 바울의 대두
유태인은 로마제국 지배 하에서 그리스인과 유태인의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였다. 多神敎(다신교) 사회인 그리스는 公務(공무)와 軍務(군무)를 지면서 로마에 협력하였지만 一神敎(일신교) 사회인 유태는 공무와 군무를 지게 되면 다신교의 일종인 로마황제에게 고개 숙여야하므로 敎理(교리)에 어긋나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로마제국 내에서 권리만 요구하고 책임은 회피하니 다른 복속지역과의 특혜시비가 불거지는 등 로마제국의 질서가 흩뜨려지게 되자 로마제국은 유태를 손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래서 터진 게 제1차 마사다전투(73년), 제2차 코크바전투(134년)였다. 군무와 공무를 지지 않는 대신 경제적 평등에 만족하는 온건 유태인은 구제해주고, 종교적 권리는 내세우면서도 중요한 책임을 회피하는 강경 유태인은 ‘죽음 아니면 디아스포라’로 내몰리게 되었다.

예수님은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라며 공무와 군무를 거부하였다. 공무의 일종인 稅吏(세리)를 대하는 태도 역시 완고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예수님은 강경 유태인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야고보의 예루살렘 교회가 종교적 권리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이런 측면을 계승하였다가 로마제국에 의해 몰락하였다.

온건 유태인은 생각이 달랐다. “조폭의 횡포 앞에서 일단은 살고보자!” 였다. 예수님의 사상 중 또 다른 측면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현실세계가 아닌 형이상학적 추구를 목표로 설정하여 로마제국의 의심을 피하고, 공무와 군무를 포기하는 대신 경제적 평등을 얻는 조건으로 로마제국에 항복(?)하여 후일을 도모하자는 것이었고, 여기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이가 바로 그 유명한 바울이었다. 바울은 로마제국과 타협할 수 있는 이론을 제공하였다. 300년 경이 되자 로마제국의 질서에 순응하던 유태교의 한 분파 즉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필요에 의해 國敎(국교)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바울을 벗어나야만 진정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바울마저 강경하게 로마제국에 맞섰더라면 기독교는 유태지방에서 일어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이름 모를 무수한 종파의 하나에 불과했을 터이다. 바울이 예수님을 가리는 측면도 있지만, 예수님을 빛내는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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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112.172.204.73)
2017-12-06 12:09:12
따돌림을 당하던 바울?
로마시민권 때문에?
차라리 그의 난해한 율법해석과 신학때문이 아닐까?
그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을때
야고보가 수장으로 있던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구명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아니하였다?
왜? 그는 사고뭉치이고 난해한 인간이었으므로?
그런데 기독교(신학)은 바울을 승리자로 만들었다?
따돌림 당하던 바울이 승리자가 된 것인가?
기독교는 본래부터 괴이한 자들을 위한 종교였는가?

지금 한국에선 기독교(개신교)는 역시 따돌림 당하지 않는가?
바울의 원죄인가?
기독교의 원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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