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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물결, 현존하는 미래희망 가능한가?
오재영  |  ojy0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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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2월 01일 (금) 11:57:46
최종편집 : 2017년 12월 02일 (토) 23:55:36 [조회수 :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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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목사의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 의 목회자에 관한 글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목회자는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교회라는 배에 사람들을 태우고 운항하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단지 배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고 먼저 자신에게 그 일을 맡겨준 주인의 뜻을 잘 헤아릴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거친 파도와 폭풍 중에서도 자신이 책임지고 가야할 길을 포기하지 않는 거룩한 강인함으로 연단된 꿋꿋함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라 했다.

그러하기에 그가 애초부터 꼭 특별한 사람으로 태어날 필요까지는 없다 해도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처럼 성장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목회자(牧會者)란 자신의 세대에서 주님께 부름을 받아 옛사람인 자기부인을 전제로 성별된 사람이며 자신을 죽여 남을 살리기 위해 주님 뒤를 따르는 현존하는 희망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 32회 총회 입법의회 이후로 임의 단체인 자칭 “새물결”을 이끌고 있는 일부 목사들의 모습들을 보노라면 도대체 이들의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고 무슨 뜻을 이루고자 함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회의 이전부터, 회의장과 밖에서의 돌출 행동들과 지난17일, 본부 그 좁은 행정실 에서 기어이“총회긴급 점검”을 하겠다며 진행을 하고 이제는 이미 통과된 법을 무효화 시키겠다고 거금 5백만원의 공탁금을 걸어 총회 특별재판위원회에 제소했다.

관계있는 이들의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으나 이들의 크고 작은 일마다 등장하여 표현하는  선동과 술수를 보노라면 한마디로 통제 불가능한 공갈단, 불한당 왈짜패거리들과 진배없다. 지난17일의 긴급점검의 발제내용들은 막말수준의 표현들로 아직까지 당당뉴스에 그대로 있으니 명색이 성직자들이면 조용히 엄위 앞에서 상대의 입장에서 읽고 참고하기를 권면 드린다. 도대체 임의단체가 기존의 위원회와 500여 회원들을 그리 표현해도 되는가? 이 모습이 앞으로 5년, 혹은 10여년의 교단을 이끌고 나갈 중진목사들의 진심이라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백보를 양보하여 이들이 정상적인 구도자들이고 또한 제안한 내용들이 그리 시급하고 중요하다면 미리 장정개정 위원회에 제출하여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 아닌가?. 이미 전국에서 모여 정해진 회의에 그 많은 분량을 당일에 현장발의로 제출함은 누가 보더라도 비난하는 ‘장개위’의 부실함보다 본인들의 과오가 크다는 생각이다. 사람마다 누구나 전능자 아니기에 우리는 실수를 반복하며 성숙해간다. 그러나 성숙의 표시는 때로는 자신의 지나친 행위를 식별하고 인정하는 겸손의 자세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아직까지도 지난17일의 본부 행정실의 좁은 구석에서 어쩌면 일부 자식과도 같은 직원들의 눈총을 받으며 굳이 진행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동안 수시로 회의실에서 사안마다 기자회견을 진행 하지 않았나?

우리가 구도자로써 인생의 연륜을 지나노라면 주변에서 큰소리 지르는 일이라 하여 모두가 시급한 일들은 아니다. 그 때문에 아무리 명분이 있고 뜻이 고상하다 하여도 오로지 은혜만으로 살아감을 고백하는 이들에게는 그 나름대로 자신의 뜻을 내세우는 절차와 방법이 있다. 더구나 영혼을 교도하는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주변에서 자신의 피를 끓게 하는 일과 선동을 조심하고 경계해야한다. 그것은 심령이 뜨겁다는 것과 피가 뜨겁다는 것은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 자신을 드려 섬기는 마음으로 교단의 미래를 염려하여 기초를 세울 순수한 마음뿐이라면 이제까지 진행하여온 자신들의 과격한 언어와 행동들을 자제하고 구도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결단을 해야 한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이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고 신앙인답지 못한 행실과 소문 때문에 더 이상 우리를 가리켜 구도자(求道者)라 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 상대를 인정하거나 배려함은 없이 쉽게 화를 내며 증오하고, 천박한 승부에 골몰할 뿐, 이해심 전혀 없는 냉담한사람들로 낙인을 찍어놓았다. 자신들이 맡고 있는 고상한 직분과 는 관계없이 온갖 수단과 방법들을 동원하여 서로 물고 뜯으며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못해 안달하는 일상화된 가련한 모습들이 세상과 이교도들에게 비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함께 공존하는 세상과 이교도들이 우리를 이러한 무리로 여기고 있는데 우리가 그들에게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지신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예수께서 지신 그 자기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들로서 용서와 배려, 희생과 섬김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허한 말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들은 해보았는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들이 현장 발의한 내용들은 살펴볼수록 더욱 혼란스럽다. 각종 선거법은 차치하고라도 교역자들의 처우개선을 말하며 목회에 전념하기 위함이라하나 이거야말로 성경을 벗어난 공허한 주장 아닌가?. 어려운 동역자 돕자는 일에 반대하는 이들 없겠으나 규모가 작든 크든 일부교회를 제외한 많은 교회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모두를 확인한 바는 없으나 많은 교회들의 통계표가 정확하지 않음을 알만한 이들은 모두가 안다. 자신들이 기록하는 통계표하나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른데 호봉제가 가능하겠는가?

문득 ‘니코스 카잔치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옷을 입고 바닷가로 나가보았다. 걸음을 빨리했다. 위험이나 죄악에서 멀어진 것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오기도 전에 미래를 엿보려했던 아침의 지각없는 내 짓거리가 신에 대한 모독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주었다. 열심히 데워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에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 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한낱 미물의 축에도 들지 못하는 곤충세계에도 그 나름의 창조의 질서와 섭리에 따라 자기스스로 생을 건위기를 극복해야 비로써 자신의 존재의미를 성취할 수 있는 섭리가 있다면, 하물며 영혼을 교도하는 구도자의 선두에서 생을 마감해야할 성직자의 길에 어찌 편안과 안일을 바랄수가 있겠는가? 성경이 보여주듯이 주님께서는 때로 당신의 종들을 사명 에 따라 다양한 시련의 과정을 통과 시키실 때가 있다. 어차피목회자가 진리를 따라 사는 삶 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에게 고난은 숙명적인 것이지만 그 고난을 대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미래의 든든한 교단의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인으로 만나면 모두가 웃으며 인사할 현존하는 미래의 희망들인 소중한 사람들...
남이 하지 않는 일들을 시작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요즘같이 영성이 바닥을 치고 목회의 의미를 잃은 이들이 방향을 틀어 자리에 오르려 안달하는 때에... 500여년전, 교회의 극심한 부패와 타락과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이그나시우스 로욜라’를 비롯한 일곱 명의 수사들이 모여 발족한 기도문, “하나님의 뜻이라면 세계 어느 곳으로나 시체처럼 운반되고 맹인의 지팡이처럼 사용되겠습니다.”...이‘예수회’에서 500년 만에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하였다.

타락된 교회를 개혁한 마르틴.루터, 그가 하나님의 소명자로 교활한 사탄과 교회의 부패한 세력들의 끊임없이 밀려오는 엄청난 투쟁을 안팎으로 감당하면서 이제 이 땅을 떠나려할 때 드렸다는 기도의내용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하나님! 제 고향 아이슬레벤 해변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제 2세대 종교개혁자 존. 칼빈에게도 31가지가 넘는 질병에 시달림을 받았다 하지 않는가? 이제 또다시2017년의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온 인류의 죄와 허물을 감당하신 주님께서 탄생하셨던 그날이 구도자인 우리들에게.....


 

   
▲ 사랑침례교회 정동수목사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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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183.109.33.40)
2017-12-01 14:05:02
감독회장님~
본부에 자리 하나 더 만드셔야겠습니다.
근데 예산이 없어서 어쩌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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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4
김경환 (110.47.216.79)
2017-12-01 15:36:39
목적이 좋더라도 수단이 좋지 않은 경우 주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어차피 목회자가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에게 고난은 숙명적인 것이지만 그 고난을 대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남이 하지 않는 일들을 시작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요즘같이 영성이 바닥을 치고 목회의 의미를 잃은 이들이 방향을 틀어 자리에 오르려 안달하는 때에...  이 ‘예수회’에서 500년 만에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하였다.”

易地思之하지 아니하고 나만 옳다는 자세에 대한 더 이상의 군더더기가 필요 없는 적절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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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0
오재영 (116.33.133.221)
2017-12-01 15:13:52
먼저 부족한 표현의 긴 글을 관심 갖고 끝까지 읽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대충이 아닌 정독해주셨을 것으로 믿고), 당당에 등장 할 때는
그만한 각오 못한바 아니나 본인의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표현한다하여
주님께서도 모르시겠습니까? 특별한 관계없으시면 그저 가볍게 보고가시면
본인의 영성관리에도 해가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하셨으니”동시에 오늘 우리교단의 처한 형편을 아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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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
지나가다가 (27.117.223.173)
2017-12-02 00:01:36
제 이름 석자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제 이름 석자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다만 제 이름이 알려지는 일은 두렵고,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것은 두렵지 않은 일임은 목사님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너나 잘하세요..하시니 저는 제 일만 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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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평신도 (218.156.72.172)
2017-12-01 16:23:58
가볍게 읽으라고요?
지금 우리 감리교단의 현실이 가볍게 여겨질 정도로 보시는 건 아니지요?
각오하며 많이 연구하고 비장함으로 쓰신 글 같은데 가볍게 읽고 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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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
지나가다가 (27.117.223.173)
2017-12-01 13:10:57
지나가다가.
새물결은 원래 그러서인지 말이라도 알아듣겠는데, 죄송하지만 목사님 말씀은 하나도 못알아 듣겠습니다..하시는 말씀이 없어서 그렀습니다. 단지 새물결이 마음에 안든다는 것이지요..
조르바도 알지만 조르바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예리하게 비판해야 아픈 것이지, 잘 팔린 책 껴 넣은다고 해서, 글의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이런것이야말로 일종의 선동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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