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세습 목사의 변명
정연수  |  dofara@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7년 11월 15일 (수) 19:03:41
최종편집 : 2017년 11월 21일 (화) 18:22:03 [조회수 : 585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본 글은 필자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허락받아 게시했습니다. 이 글에 약 90여개의 응원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원글보기 :


[세습 목사의 변명]


(제목 그대로, ‘변명’이라는 말은 제가 생각했던 주관적 입장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점을 감안하시고 읽어 주시길... 이 글은 다른 사람을 향한 변명이라기 보다는 차제에 나 자신에게도 그 때의 일을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다는 점을 밝혀 둔다. 글이 길어질 것 같은... 주의~!!!^^)

최근 감리교회 내에서 세습한 교회를 전수 조사한 리포트가 공개되었다. 그 안에는 내 이름도 들어있다. 그렇다. 나도 세습목사 중 한명이다. ...

최근 한국교회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바라보고 있는 어느 교회의 세습을 둘러 싼 담론을 보면서 한번쯤... 나 자신을 위한 변명의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글이 길어질까 두려워서 여간해선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야 한번은 나 자신에게도 한번쯤은 나의 세습 역사에 대해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겨져서 자판 앞에 앉았다.

아버지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안양에서 교회를 개척하셨다. 당시 버려진 양계장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가마니 바닥과 창호지에 쓰여진 찬송가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예배처소는 우리집 안방으로, 그리고 미군부대에서 사용하던 군용텐트를 집 마당에 쳐 놓고 예배드리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그 후 아버지는 목회를 시작하신 그 교회에서 30년을 목회하신 후 그 교회에서 은퇴하셨다.

아버지는 목원대학을 다니셨으나 졸업하지는 않으셨고, 젊었을 때 잠시 목회하시다가 사회에 나오셔서는 당진에서 고아원을 경영하셨고, 서울로 오셔서는 사업을 하시다가 망하셨다. 그 후 안양으로 이사와서는 어머니가 먼저 교회를 개척하셔서 1대 담임전도사로 계셨고, 그 후에 군소신학교에서 신학교 졸업을 득하신 아버님이 2대 목회자가 되셔서 교회를 섬기셨다.

아버님은 그래서 감리교회의 정회원이 못 되신 채 협동목사로 오랫동안 계시다가 은퇴를 2년 앞둔 시기에 간신히 정회원(감리교 식으로 말하자면 꼭지 떨어진 정회원)이 되셔서 안양지방에서 가장 오래 목회하셨으면서도 은퇴 전 마지막 시기에야 감리사 한번 하시고 은퇴하셨다. 그 당시의 협동목사는 목회자 세계에서 여러 가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류셨다. 그래서 설움도 많이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후에 선배 목사님들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래서 아버님은 내가 빨리 목회하기를 원하셨고, 안수도 빨리 받고 감리교회가 인정하는 연급이 빨리빨리 높아지길 그토록 원하셨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 아버님이 목회하시던 모교회


감신대를 졸업하고 월드비전을 다니다가 성남에 꽂혀서 판자촌에서 공부방을 시작하면서 도시빈민들을 위로하는 목회를 시작했을 때에 아버님이 그토록 반대하시고 역정을 내신 이유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가 큰(Big)목사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랬던 아들이 13평 판자집에서 목회를 하겠다고 하니... 기가 막히셨을 법도 하다. 그래서 성남에서 개척시절, 아버지는 내게 한 푼도 지원하지 않으셨다. 나중에서야 월 5만원, 모교회에서 다른 교회들을 지원하는 금액과 같은 금액으로 새순교회를 후원해 주셨다.

새순교회 이후 서울의 교회로 부목사로 부임하여 3년차 섬길 때, 아버님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계셨다. 그리고 내게 부목사로 와서 목회를 도울 것을 요청하셨다. 아버님 교회는 부목사를 둬야 하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한 애매한 사이즈의 교회였다. 은퇴를 5년 앞둔 마당에 이제는 젊은 부목사가 와서 동역해 줘야 할 때였지만 아버님은 낯선 부목사를 두는 것에 대해 두려움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당시 주변에서 부목사와 담임목사와 갈등하는 교회도 많았고, 교회를 분열하고 따로 개척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많았기 때문이다.

아버님에게 부목 오라는 제안을 받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그 때였던 것 같다. 당시 한국교회에서는 세습을 하는 교회들이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했고, 내가 아버지 교회의 부목사로 간다는 것은 곧 당연히 아버지 교회를 세습하러 가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버님 교회 부목사로 간다는 것 자체가 그동안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던 모든 삶의 신용을 잃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대로 민중교회 운동을 하면서 기존의 교회와는 다른 새교회를 향한 꿈을 꾸어왔던 내게는 나 자신에 대한 <변절>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친구들과도 몇날 밤들을 새워가며 고민을 토로했었다. 어느 한 친구가 내게 직격탄을 날리는 조언을 해 주었다. “너는 외아들에다가 목사다. 앞으로 목사로서 아버지에게 효도할 일은 없을 것이다. 네 이미지 손상 받기 싫다고 그걸 거부한다면 너는 진짜 못된 자식이다. 아버지 은퇴하실 때까지 편하게 모시고 나중에 남들 보란 듯이 멋있게 그 교회를 나오면 될 거 아니냐?”

그 친구의 조언에 충격(?)을 먹고 모교회로 갈 것을 결심했다.
그러면서 몇가지 하나님과 약속했다.
- 아버님 은퇴 후에는 절대로 아버님 교회에서 목회하지 않는다.
- 절대로 아버님 은퇴 시에 내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평생 가난을 짊어지고 목회하신 아버님이 자식에게 교회 하나 물려주겠다고 평생 교회를 섬긴 것으로 폄하되지 않도록 내가 보호해 드리리라!
- 나를 키워 준 모교회, 내 사랑하는 가족과 같은 분들이 계신 모교회가 든든히 서는 것을 모든 것에 우선순위로 둔다.
등등...

아버님 교회의 생활은 행복했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모교회를 떠나 30대 중반에 다시 돌아가 나를 길러주시고, 나를 가르치신 분들... 그리운 분들과 함께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정말로 행복했던 시기였고, 하나님에 내게 주신 기쁨의 선물이었던 때였다.

시간은 흘러 아버님은 은퇴하실 때가 되었다. 약속대로 나는 절대로 모교회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재차, 삼차 재확인시켜 드렸고 아버지는 결국 내게 교회를 물려 주신다는 것은 말도 못 꺼내시고 후임자를 찾으시기 시작하셨다.

아들로서 나는 아버님의 은퇴를 돕고 싶었다. 그런데 그 돕는다는 것이 다 아버님의 마음을 긁어 놓는 일이었다.

- 은퇴 후 모교회를 떠나세요. : 아버님, 생각해 보세요. 이 아들이 나중에 목회할 때에 30년동안 교회 개척하시고 은퇴하신 목사님이 떡~하니 자리를 지키고 계시면 어떻게 제가 맘껏 목회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은퇴하시면 교회를 떠나셔서 그리 멀지 않은 수원의 큰매부 교회로 나가세요.

- 공들여 세운 만안동산, 교회에 기증하세요. : 아버님이 사재를 털어 당진에 땅을 사셔서 <만안동산 청소년수련원>을 세우시고 매주 내려가셔서 잔디에 돋아난 풀 뜯으시고, 나무를 키우시느라 온 정성을 기울이셨는데... 아버님 생각에는 은퇴 후 그곳에 내려가셔서 수련원을 가꾸시면서 사실 꿈을 가지신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은퇴 목사님이 그곳에 가 계시면 아무래도 모교회의 후임 목사님이 불편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또한 교회에 기증하시라 했다. (최근 들은 얘기지만 그곳을 교회에 기증하심으로 교회에서는 아버님에게 감사의 표시로 소정의 사례를 했다 들었다.)

- 모교회로 오실 목사님을 청빙하는 일에 대해서도 장로님들에게 말씀드렸다. 아버님도, 또 장로님들도 어렴풋하게 암묵적 동의가 된 것은 오시는 목사님 교회로 내가 가는 것이었다. 그걸 알았기에 이렇게 말씀 드렸다. “모교회의 후임 목사님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저를 완전히 배제하시고 이 교회에 오실 목사님이 좋으신 분인지만 생각하세요. 저는 어떤 교회로 가더라도 상관없으니 절대로 내가 갈 교회 생각이 후임목사님을 청빙하는 데에 변수가 되지 않도록 해 주세요.”

은퇴에 대한 아버님의 여러 가지 계획이 다 아들로 인해 틀어지고 막혔다. 아버님이 이렇게도 내게 말하기도 하셨다. “너는 아들이면서도 어쩌면 니 애비가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하냐?”
당시에는 그것이 아버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었다해도 아들된 나로서는 아버님이 정말 멋있게 목회에서 은퇴하실 것을 꿈꿨고 그것을 도와 드리고 싶었다.
(후에 아버님을 아는 목사님들을 가끔 만날 때마다 아버님의 은퇴를 두고 존경하고 칭찬하는 소리를 몇차례나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맞았다는, 불효한 내게 나름 위로가 되기도 했다.)

하나님께 기도한대로 아버님이 목회하시던 교회로 오시는 목사님 교회로 무조건 조건없이 가기로 한 결과로 이천시 면 단위에 있던 100여년의 전통이 있는 교회로 가게 되었다. 아버님도, 또 친구들도 고개를 갸우뚱 하시긴 했다. 내가 도시적 목회자 스타일인데 농촌지역의 전통있는 교회로 가는 것이 맞겠냐는 우려였다. 그러나 기도제목의 응답이라 생각했기에 정말 한치의 주저함 없이 그 교회로 가게 되었다.

목회 시작하면서 이런 약속을 하나님께 드렸었다. 어떤 형편, 어떤 상황에서든지 목회 임지에 가면 반드시 5년 이상은 목회하겠습니다. 라고... 농촌지역 교회에서 5년간 목회하다가 하나님과 약속했던 5년의 시한이 넘어가면서 속도가 느린 교회보다는 도시적 환경의 교회에서 열정을 불태우리라는 심정으로 공개청빙 광고를 보고 지금의 효성중앙교회에 부임하였다.

지금의 교회에 부임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이 참에 써 볼라 한다.
목회지를 이동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내게 주변에서 몇 차례나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인천의 어떤 교회가 TD를 잘 섬길 수 있는 목회자를 청빙한다는 공고를 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데 만나는 동기들마다 그 얘기를 내게 해 주는 것이었다. “정연수 목사, 딱 너를 찾는 교회더라.” 라고...

그래서 이력서 접수 마감 날...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그 당시 수술 후 병상에 있던 아내에게, “여보, 내가 이곳에 있으면 나를 불태울 수 없을 것 같으니, 나를 태워 버릴 곳으로 가려고 하니 그리 알어.” 라 말하고 마감 시간 직전 이력서를 발송했다.
이력서를 내면서도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어디 있는 교회인지, 지금은 교세가 어떤지... 정말 아무런 정보도 모르면서 원서를 냈다. 인천에 있다니까... 도시에 있는 교회이니 가서 열심히 목회만 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교회에 부임해 와서야 전임 담임자 이후 6개월 간이나 교회 담임자가 공석 상태였었고, 2명의 목사님들이 인사구역회에서 부임 결의가 안되어 못 오시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지금 생각해 봐도 ‘나도 참 너무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전임 목사님이 내가 이력서 낸 사실을 어찌 아시고 내게 전화를 하셨었다. 장로님들에게 내가 효성중앙교회에 청빙되도록 조언을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좋아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로서는 굳이 이 교회에 꼭 와야 할 필요가 100%는 아니었기에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전화 후 조금 생각한 후에 다시 전화를 드려서 말씀 드렸다.

“만일 목사님이 저를 도와 주셔서 제가 효성중앙교회에 가게 된다면 제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이 교회로 나를 보내 주셨다는 확신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가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꼭 가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뭔가 수를 써서 교회에 부임하게 됐을 때에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괜히 왔나?’ 라는 생각이 들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보낸 곳이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버티고 뚫고 나가야 하고요. 그러니 목사님이 이번 청빙 건에 아무런 도움을 안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나름 후배들을 만나면서 자주 했던 이야기가 있다.
“목사는 자존심으로 사는 것이다. 폼생폼사~!!! 우리는 폼에 죽고 폼에 사는거다. 호랑이는 굶어 죽어도 풀을 먹지 않는 것인데, 목사가 목사로서 가오가 죽으면 다 죽는거다.”

나는 훌륭한 목사는 못 된다. 내가 나를 너무 잘 안다.
난 멋진 목사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그나마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은 그냥 목사로서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맘은 갖고 산다. 바리새인이라고 욕해도 할 말이 없다.
내 속에는 끊임없는 욕심이 솟아난다. 저절로 멋있게 포기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맨날 갈등하고, 또 아까워한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멋있는 결정의 퍼센테이지가 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1도씩이라도 간신히 방향을 틀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의 목회를 세습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목회 정신도 세습했다.
내가 성남의 판자촌에서 목회한다고 했을 때에 완강히 거부하시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게 다 아버지 때문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천막치고 목회하는 것을 보았고,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다 보고 배웠습니다. 그러니 내가 성남에서 목회하려고 하는 것은 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치신 것이고, 그렇게 나를 키우신 것이니 아버지가 책임지세요.”

아버지는 효성중앙교회에 부임하자마자 돌아가셨다. 내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축도 한번 하시고 돌아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그 후회가 들 때마다 가슴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뭉클하고 올라온다.

감리교회 세습 리포트에 내 이름도 들어갔고, 또 아버지의 이름도 그곳에 등재되었다. 나름... 아버님에 대해서 죄송스럽다. 평생 올곧게 목회하신 아버지, 협동목사로 설움도 많이 겪으셨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 그분의 이름이 그곳에 기재된 것이 못내 자식의 못남 때문이라 여겨져서 그 리포트에 적힌 아버지의 이름을 보면서 마음이 시렸다.

그러나.. 그 리포트는 잘 작성했다 생각한다.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인데 작성한 목사님이 정말 많은 부담을 껴안으면서 그 일을 해냈다.

지금까지도 그런 마음이었지만... 이제 다시 한번 더 ‘빚진 마음’으로 돌아간다. 아버지 목회 덕에 나는 남들보다는 조금 더 앞선 출발점에서 목회를 하게 된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무언가 부탁해 오는 농촌교회, 개척교회의 요청에 대해 거의 거절한 적이 없다. 그것은 내 나름대로의 속죄의 마음이다.
목회 임지를 2번 이동했으니 지금의 목회는 정목사의 목회라고... 말해주는 분도 계시다. 고마운 말이지만 나는 그 ‘빚진 마음’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아버지 목회에 빚진 마음, 그리고 나의 사랑 첫 번째 교회, 새순교회의 가난했던 그분들에게 받은 사랑과 아름다운 추억에 대해 난 빚진 인생이라 생각하고 살자는 결심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쓰다 보니... 긴 글이었다.

사족 하나를 붙이고 싶다.
이 글을 홍천 시골에서 며느리와 단둘이서 교회를 지키며 목회하고 있는 아들도 읽었으면 좋겠다. 목사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어드벤티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들이 더 고생하고 아래로부터 연단받기를 난 기대한다. 난 아들이 호랑이 새끼라 믿는다. 호랑이 새끼는 어디에 두어도 호랑이이다. 나도 기대한다. 아들이 나보다 더 훌륭한 목회자로 성장할 것을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아들에게 앞으로도 편파적으로 잘 해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쓸 것이다. 아들 전도사가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아버지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밟고 지나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혹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 계시다면...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하단 인사를 드립니다. 조금 공감해 주시면 감사하겠고, 돌만 던지지 말아 주세요. ㅠ)

 

[관련기사]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59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4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요나 (183.105.184.10)
2017-11-27 10:24:57
세습하셔도 좋아요
천국 못가시고 지옥불에 던져져도 그래도 좋은가요?

탐욕은 멸망의 지름길이란것을 그렇게 교인들에게 설파하시고도

자신은 깨닫지못하시니 참 안타깝습니다.

보아도 보질못하고 들어도 듣질 못하리라.
리플달기
결국변명 (122.46.62.244)
2017-11-26 20:13:18
결국 변명입니다. 변명은 변명이죠. 효도로 포장한 변명입니다.

그렇다면 다 포기하십시오 다 내려놓고 원래 그자리로 돌아가십시오. 그러면 인정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변명이고 또 변명이며 자기 합리화일 뿐입니다.
리플달기
안정찬 (183.104.199.69)
2017-11-25 12:14:55
춥다
대형교회는 80%가 그늘이다
그늘에는 예수생명도 빛도 없다 춥다
그런 교회가 많을수록 사회는 춥다 어둡다
대형교회 세습은 대형이익이 온다
진정한 세습은 대형교회를 소형교회로 분산시키는 것
내가 챙길 이익이 없다면 무슨 시도를 할 것인가?
고난 뿐이라면 그런 시도를 하겠는가?
진정 부르심이라면 사양하겠나?
리플달기
세습이 (121.153.44.172)
2017-11-24 14:01:51
세습반대가
장로 아들들 목사땨문에 세습이야기가 나온개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평신도의 자녀들 가운데 목회자들도 세습법안에 넣어야 한다.

목회자들은 세습법 반대 안할것이다. 자기 자녀가 목회하면 어느 부모가

자기 자녀를 외면할것인가??? 어떻게든 바꿔가거나 도움을 줄려할것이다.

교회를 사유재산화하면 문제지만 그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같이 공감대와 정을 쌓으며 그 고을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성도들과 대를 이어가며 지켜가는것도 나빠보이지 않는다. 세습법에도 평신도 자녀도 넣어봐라 장로들이 개같이 일어날것이다.
리플달기
제대로정보를알고 (175.117.42.254)
2017-11-29 09:10:39
장로 자녀들도 세습하면 안 된다고 이미 감리교 교리와 장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무슨 소리를 하시는건지..
리플달기
화평 (122.35.176.192)
2017-11-24 10:37:57
정연수 목사는 세습이 나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분이군요. 그런데 왜 세습을 하게 되었는지 그 경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단지 나는 세습이 나쁜 줄 알면서도 세습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그렇게 알면서 했으니 보아달라는 말인가요? 이것은 변명거리가 아니고 사죄해야 할 일 아닌가요?

내가 말하려는 것은 글에 논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앞뒤가 맞지 않는 설교, 다시 말해서 논리가 서지 않는 설교를 많이 듣고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신학교에서 설교학 시간에 설교 작성법을 잘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리플달기
지나가다 (99.225.193.49)
2017-11-24 01:40:35
나는 세습이 좋다.
어차피 새 목사와도 싸움질할텐데,
전쟁터가 된다. 원로 목사 죽을 때까지
그 꼴 보기 싫어서, 새 목사 청빙하는 것
나는 반대다.
한국인의 속성상 전쟁을 하면,
한국 동란, 월남전 저리가라다.
예전에 광성교회 싸움난 것 봤냐
이거는 내 생애에 기독교인으로써
최대의 수치였다.
다시는 보기 싫은 꼴이었다.
저 꼴 보기 싫어서 차라리 세습이 낫다.
리플달기
변명에 대하여 (99.249.84.97)
2017-11-20 01:50:27
변명입니다. 세습목사들이 하는 변명을 정리하자면, 교회와 성도를 위한 최선의 결정이다, 비난받을만큼 큰 사이즈가 아니다. 부모의 신앙을 이어가는 선택이다등입니다. 장황하게 말씀하셨지만, 위의 글도 이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교회세습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는 교회의 사유화에 있습니다. 결국은 대물림을 통해 교회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을 계속해서 자식들에게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열심과는 별개로 그것은 결국 개인의 욕심이고 탐욕입니다. 온갖 것들로 미화시켜도 세습의 본질은 욕심입니다.
정목사님의 아버님이 또 다른 형태의 세습을 진행하며 자식을 돕고 이득을 주기위한 마음이 없었을까요? 정목사님이 세습을 받아들이며 개인적인 욕심이 없었을까요?
오랜 신앙(?)에 가리워져 깨닫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 기본에는 욕심이 있고 결국 그 대상이 교회와 성도가 되었다는 겁니다.
결국은 세습교회가 발판이 되어 또 다른 곳으로도 옮기는 기회가 되었겠죠.
그러기에 변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목사님 아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감동이
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큰 결심처럼 해야하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리플달기
변명에 대하여 (99.249.84.97)
2017-11-21 00:13:41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마도 목사로서의 자존심, 폼생퐁사로 사셨던 분이 세습목사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니, 무언가 '변명'이 필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이것은 공허한 변명입니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고 있지 않습니다.(일반적으로 세습목사들이 세습후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빚진 마음으로 목회한다고 합니다)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어, 자존심이 살지 않는다면, 그때로 돌아가 다시 바로잡는게 필요합니다. 이미 손에 쥔 것들을 놓지않으며 변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폼이 사는 겁니다.
난 당신이 호랑이라 믿는다. 호랑이는 어디에 두어도 호랑이이다. 나도 기대한다. 당신이 지금보다 더 훌륭한 목회자로 성장할 것을 말이다.
리플달기
나도 한마디 (119.207.169.148)
2017-11-17 13:35:15
정목사님의 글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세습의 수혜자가 글을 쓴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미터 달리기에서 목사님은 50미터에서 출발했고 아버지가 목사도 장로도 아닌 분들은 0 미터에서 출발한 거죠. 지금도 교회에서 나가라고 하는 말에 고통스러워 하는 분들도 있고 한 평생 작은 농촌마을을 지키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평과 정의로 드러나는 것이고 이를 전하고 실현하는 사람이 목사인데 세습은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를 가슴 아프게 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후배이며 분당에서 큰 교회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도 세습으로 늘 빚 진 마음으로 목회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사실 별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사람의 욕심인 한국교회의 세습과정과 그로 인한 고통과 담론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 정화의 기회를 삼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공감까지는 좀 무리라고 봅니다. 그저 빚진 자로 목회하셨으면 합니다. 빚진 자는 대개 나서지 않거든요. 빚진 자 답게 목회하시길 기대합니다.
리플달기
개척교회목회자 (1.242.49.175)
2017-11-17 18:31:08
100m 출발선상에서 오롯이 출발하는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합니다. 솔직히 저역시 공감이 되지가 않아요. 변명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아예 세습을 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리플달기
송영섭 (116.123.190.95)
2017-11-16 09:03:15
참으로 오래간만에 가슴에 잔잔한 감동과 애잔함을, 진심의 눈물어리게 하는 글을 만났습니다. 진심으로 마음모아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저도 시골에서(?) 개척중인 목사입니다. 그리고 어제 어느 곳엔가 명성교회 세습에 대하여 분노를 쏟아놓는 글을 썻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 감동과 고마움으로 이렇게 댓글을 남겨봅니다.

저도 부끄럽지 않은 목회자로 살아보려고 나름 더욱 정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냥 어제 어느 곳에 기고했던 - 글이 채택되지는 않았습니다만 - 글 한 편 이곳에 남겨봅니다. 아! 어머니 한국교회가 이렇게 망가지는군요. 이미 오래 전 일이든가요?....



[봉창 뜯는 소리]

명성 세습을 비난하는 철없는 사람들에게




세상엔 참 철없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엔 참 철없는 사람들이 많다. 물정 모르는 사람도 많다. 남의 집일에 매냥 감 놔라 콩 놔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한가하여 심심한 까닭이 아닌가 한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을’ 추억의 시대가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에 언론을 보면 참 답답한 일을 많이 본다. 기독교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기레기 때를 벗고 기자정신을 살리겠다는 나름 정론을 이끈다는 어느 언론까지도 최근 집중하여 보도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 명성 세습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언론도 무얼 모르는가 보다.

게다가 명성의 세습을 종교개혁 500주년 운운하는 이야기와 연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제대로 물 먹였다나 뭐라나? 참 어이가 없는 발언들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 사람들은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왜 남의 집 일에 감 놔라 콩 놔라 참견질일까? 아니, 명성기업이 그 명성대로 노는데 왠 참견이 그리 심한 거냐? 교회 밖의 사람들이야 교회가 뭔지 잘 모를 터이니, 그저 십자가만 내걸면, 그저 “주여, 주여!” 술주정만 해대면 교횐지 뭔지로 잘못 알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나름 예수 믿고 교회다닌다는 사람들마저 그러면 안 되지? 안 그런가? 어디 명성그룹이 교회이던 적이 있었더냐? 나는 명성그룹 역사에 문외한이고 관심도 없는 일이지만 그 기업이 교회와 아무 하등 관계가 없는 그저 ‘유사 종교재단’이요 ‘캐피털 그룹’이라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아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캐개그룹(캐피털 개독교 그룹)이 세습인지 네습인지 기습(기습 위임 세습)인지 개습(개자리 인수)인지 한다고 한들 무얼 그리 난리하는 건지, 원!!



그냥 놔둬라! 그러다 다 사라질 사람들이다.

그냥 놔둬라! 그러다 다 사라질 사람들이다. 하긴 이미 하늘에 계신 그 분 장부(생명책)에선 사라진지 오래일 터. 그냥 놔둬라! 10만이 어디 교회냐? 70만이 떼지어 왁왁거리는데 그게 어디 교회일 수 있을 것이었더냐? 진리는 항상 외로운 것, 진리는 언제나 들소리로 들려오는 법. 세례자 요한이 그랬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고, 예레미야, 아모스, 미가, 에스겔, 무수한 들사람들이 그랬다. 외롭지 않으면 진리 아니다. 그것은 뇌를 상실한 사람들의 떼창일 뿐이다. ‘하일 히틀러’가 그랬고, ‘어버이 수령님 만세’가 그렇고, 오늘도 “목사님, 목사님, 우리 먹사님!”이 그렇다. 교회가 1천명 넘어가면 이미 교회이기 어렵고 1만명 넘어가면 기업논리 아니고는 운영 안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요 원리인 것을. 아직도 떼 창을 외치는 그곳에서 교회를 찾고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제발 이제는 우리 모두가 정신들 차리기를. 우물에서 숭늉 찾고, 시궁창에서 인어를 기다리고, 차라리 똥통에서 벌 나비를 찾을 일이다.

그냥 놔둬라! 세상이 이야기 하지 않더냐? 그러다 뭐할 일이다고. 그냥 뇁두라고.
그래 그냥 뇁둘 일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문제가 다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렇다. 그렇다고 문제가 다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명성캐그룹인지 명성개그룹인지에서 십자가 보고 찾아든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현혹하고/미혹하고/세뇌하고/조직하여 자기들의 유사종교기업을 문어발처럼 확장하고 수많은 선남선녀들의 코묻은 돈을 끄러모아 온갖 비자금을 조성하여 이 땅의 맑은 질서를 헤친다는 위험이 그 곳에 있는 까닭이다. 자기들끼리 ‘십자가 앞에서 누가 물구나무서서 오래버티나?’ 놀이를 하든지, ‘예수이름 그럴 듯하게 발음하여 예수 이름 죽이기 놀이’를 하든지 그 모든 일이야 당신들의 취향이니 이 포스트모던의 세상에서 남이 놀이에 감 놔라 콩 놔라 할 건 없는데, 그래도 그러려면 최소한 십자가는 내어걸지 말아야지. 저렇게 떡하니 붉은 십자가를 간판 높이 세워 올리고 그곳에서 갈릴리의 처절한 예수 그이를 저렇게도 오래도록 살해하고 난자하며 전시할 수 있단 말인가? 로마 제국도 예수의 시신을 3일도 되기 전에 무덤에 안장케 하였거늘 아무리 자기들의 장사가 좋고 놀이가 즐겁다 한들 예수를 저리도 학대 학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예수가 혹이라도 정말 부활하여 자기들 생전에 들이 닥치실까봐 아예 안장도 못하게 하고 시신을 천년만년 전시하려는가보다. 잔인하고 잔악한 인간들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일이 아니다. 그래도 사람인가? 기업하는 사람도 양심이 있는 일인데 유사기업 유사종교는 기업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니 그리도 막 되어먹어도 일없다는 것인가? 너무한다. 사람의 탈들을 쓰고.

그건 그렇고 우리 동네 분들에게 부탁 좀 드려보자. 우리도 역사바로잡기 차원에서 이런 사전 하나 편찬해봅시다. < 전국 사이비 개독교 인명/교명 사전 > 하나 만들어 보자. 그래서 전국의 교회에 배포하고, 사람들 많이 모이는 광장과 촛불의 거리마다 배치하여 혹이라도 선량하고 진실하여 ‘십자가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만에 하나라도 이 캐피털 개독교 그룹에 현혹되어 혹세무민되는 일이 없도록 < 전국 사이비 개독교 명단 >을 만들어 배포하자. 해마다 그 인명의 개정판(업데이트 판)을 내고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자. 고발과 정보제공도 받자. 전국의 기독교 시민 기자들을 만들자. 연대하고 감시하자. 그리고 혹세무민된 친구들을 다시 작은 교회들로 분산 파송하는 ‘참 기독교 디아스포라 운동’을 펼치자. 물론 사업하고 부줏돈 깔아놓아 그룹 산하의 수많은 캐피털 교인들의 부좃돈과 코묻은 돈을 기다리는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야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곳들에도 맑은 영혼의 선남선녀들이 있는터이니 그 분들을 구해오자. 하여 전국의 작은 참 교회들로 파송하고 디아스포라 하자. 본래 땅끝까지 이르러 우리가 증거한 것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되다보니 전파된 것 아니더냐? 그래서 캐피털 그룹에서 탈출하고 액소더스한 젊은이들로 가나안 교우들과 연대케하여 <참 기독교 실천운동 전국 네트웤크>를 만들어 진정한 출애굽 교회를 만들자.



지금 한국교회는 애굽(자본)의 본산이 되었다.

지금 한국교회는 애굽(자본)의 본산이 되었다. 개척교회는 작은 교회를, 작은교회는 중형교회를, 중형교회는 대형그룹을 선망하는 애굽의 본산이 되어 그 고깃가마의 추억과 향기에 취해 기사회생이 불가능하다. 탈출해야 한다. 출애굽해야 한다. 가나안 교우들과 연대하여 새하늘 새땅의 신천신지를 열어야만 한다. 이 땅은 이미 맘몬의 성채, 이 땅의 교회는 이미 자본의 하수인,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맘몬과 하나님을 같이 섬기려는 자들이 되었다. 누구 말할 것 없다. 내가 그렇다. 내 속을 보면 그렇다. 오심 즉 여심. 이심전심. 내 맘을 보니 남들도 그런 것 부인 할 길이 업겠다, 나는.


그러니 우리 ‘출애굽 하자!’

그러니 우리 ‘출애굽 하자.’ 자본의 교회로부터, 캐피털 주님을 모시는 ‘사이비 종교그룹 주식회사’들로부터 탈출하자.

지난 촛불혁명을 기억한다. “이게 나라냐?”
이 한 마디로 이 나라는 판을 갈아 없었다. 아직도 미약한 것이 너무 많고, 청산해야할 적폐가 태산 같지만 그래도 하나의 문을 닫고 새 문을 열어 제끼지 않았는가? 하니 우리도 묻자. “이게 교회냐?” “이게 신앙이냐?” “이게 십자가 정신이냐?”

개도 웃고, 물어가지도 않을 그래서 이미 길가에 버려져 개나 소나 씹고 침뱉고 짓밟으며 지나가는 ‘버려진 소금, 맛 잃은 (이미) 똥’을 교회라 부르지 말자. 사이비 개독교 그룹이라 칭하자. 그 명단을 만들자. 배포하자. 해마다 업그레이드 하자.

‘인터넷 디아스포라 캐피털 유민’들의 방을 개설하자. 연대하자. 가나안 교우들과 연대하자. 정보를 나누자. 서로 자극을 주고받자. 그러다가 연대하고 참 신앙모임들을 누룩처럼 퍼뜨려 보자.



엊그제 참담하였다.

엊그제 참담하였다. 한 늙은 표도르가 그의 아들 드미트리에게 그의 명성을 온 세상에 떨쳤던 ‘명성 캐개그룹’의 인장을 물려주고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는 눈물나게 참담한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날마다 막장에 막장을 더한 막장 드라마의 산실 한국교회인줄 알았지만 그야말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그 막장과 욕망의 정점을 찍는구나. 아! 한국교회여.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나는 드미트리 김하나목사가 안타깝다.

나는 드미트리 김하나목사가 안타깝다. 그도 표도르 김삼환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망가지지는 아니했을 터. 가문이 무슨 죄란 말인가? 아비를 잘못 만난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아! 그러나 그는 이미 그 죄업을 승계하였다. 그의 말 속에 드미트리의 양심의 소리가 아직 묻어있는 것 같으나 그는 이미 넘어올 수 없어 보이는 죄의 강을 건넜다. 이제 주님 앞에 알몸으로 서기는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으니. ‘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는 코끼리가 쥐구멍으로 빠져나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였으니 ‘부자세습’한 부자(캐피털)교회 드미트리 김하나가 예수를 만나는 것은 이제 도저 불가로 보인다. 가슴이 아프다. 한없는 연민의 정을 그에게 보낸다. “키리에 엘레이숀! 드미트리 김하나에게 자비를!!” 유다 김하나여, 이제 너의 할 일을 하라! 망설이지 말아라. 차라리 (표도르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더 복되다 하였을 것을.

김삼환 자칭목사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불쌍하도다. 저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한 사람이 태어나지 않음이 10만을 구원하고 만인에게 자비가 되었을 것을. 저가 태어남이 이 민족의 비극이 되고, 저의 어미의 신앙을 천국의 원수로 만드는구나. 애닮도다, 표도르의 어머니여! 그의 눈물이여!!

이 모든 막장드라마에 주연과 조연으로 출연하는 나와 모든 이 땅의 기독자들에게 눈물과 한숨과 부끄러움의 신음소리를 바친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오는 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표도르 김삼환이여!
그대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그대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캐피털 개독교 그룹들이여!
그대들은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그대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눈 먼 한국 교회여!
그대들이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구나.

어리석은 한국교회의 눈먼 교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그대들이 또 이르되, “누구든지 하나님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에게 바치는 헌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구나.

불쌍한 영혼의 시각장애인들이여!1)
어느 것이 크냐? 그 제물이냐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이냐?

그러므로 예수이름으로 떠드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교회로 맹세하는 자는 교회와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신앙으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이 땅 교회들의 목사와 장로들이여!
너희가 월급과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의 십일조는 드리라 하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이웃사랑과 진정한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영혼의 눈이 먼 이 땅의 목사들이여!
너희가 날마다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코끼리는 삼키는도다. 오호 통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한국교회의 모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기독자들이여! 너희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이 땅의 교회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의인들의 뼈와 무수한 씨알들의 피로 가득하도다.

화 있을진저, 선교 130년을 자랑하는 이 땅의 개신교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의를 외치는 선남선녀들과 이 땅의 정의를 외치는 선견자들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예배당에서 채찍질하고 입을 틀어막아 밖으로 끌어내며 교회당 마당에 내동댕이치는 구나.

그러므로 손양원과 주기철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김재준, 이용도, 변선환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한국교회여!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 땅의 불쌍한 기독자들이여!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 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는 이 땅의 정의와 평화의 딸과 아들들이여!” 할 때까지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는 나 예수의 말이니라.



- 2017년 11월 15일, 남녘에서. 스메르자코프 바보 송영섭.



주(註)
--------------------------------------------------------------------

1) 죄송합니다. 시각장애인 친구여러분! 부득이 이렇게 쓰는 표현을 양해해 주십시오. 부디 성서의 문맥을 보시고 그 뜻만 헤아려 주신다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리플달기
김경환 (110.47.216.79)
2017-11-16 15:23:13
절반만 겸손하였고, 자기의 '확신'에 예수님을 덧칠했네요!
시각장애인에게 겸손을 표하듯이 드러나지 않게 열심인 성도(목사, 장로, 교인)에겐 겸손을 표하는 것은 빠뜨리셨네요.

송영섭 선생의 강변에 의하면 김삼환이 10만명을 잘못 인도했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 데 그 근거가 '성경'인가요 아니면 선생의 '확신'인가요?

선생의 '확신'에 근거했다면 그거야 선생이 느끼는 바이니까 존중합니다. 저 같이 믿음이 아주 부족한 사람도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습니다만 그걸 성경에 비추어 말하는 것은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선생의 경우 <자기의 확신 = 성경 말씀>으로 아예 못을 박아 김삼환을 완전 똥개 취급하고 있네요.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시작합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하면서 선조代부터 예수님의 혈통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건 세습 아닌가요? 만일 세습찬성파가 이걸 그대로 차용하여 "마태복음에도 나와 있듯이 교회는 하나님의 지체로서 명성교회도 혈통에 의한 세습을 하였거늘 턱도 없이 세습에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화있을 진저!" 하면서 성경을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차용하여 <명성교회의 확신 = 마태복음에 근거한 예수의 혈통>을 근거로 세습반대파에게 저주를 퍼붓는다면 ??!!

성경을 차용하여 남을 저주하는 것을 예수님이 좋아하실까?

마치 송영섭 선생이 예수님을 밀어내고 예수님의 보좌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빗대어 남의 눈 속의 티를 들추는 것 같이 보입니다.
리플달기
강성모 (121.148.181.139)
2017-11-16 07:54:02
대한민국 목사님들이
목사님같은 사상을 가졌으연 얼마나 좋을까요?
리플달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