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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예배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
오세영  |  sumkim070@han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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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1월 13일 (월) 00:18:16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4일 (화) 06:32:24 [조회수 :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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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배의 참된 의미는 광야에서의 회막 제사나, 솔로몬성전의 성전제사도 아니며 중세시대 동방교회의 성만찬 중심의 서서드리는 예배, 무릎을 꿇고 드렸던 서방교회의 성례전적 예배도 아니다. 그렇다고 개혁교회들이 앉아서 드리는 전통적 개신교 예배도 참된 예배의 의미를 찾기엔 미흡하다. 결국 예배의 원형은 초대교회에 있었다 할 것인데, 성도의 가정에서 모였고, 핍박을 피하여 드려진 카타콤(catacomb)에서의 예배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예배의 모델이라 할 것이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1-24)“ 하셔서 새로운 예배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려 주셨다.

예수께서 기대하셨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이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 후 생기게 된 것이다. 부활을 목도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이들은 함께 모여 찬양하며 기도하며 서로 증거 하였고 성찬을 나누게 되었다. 또한 승천 이후 예수께서 속히 오실 것을 기대하며 모이게 되었던 그들의 예배는 더욱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드렸던 예배는 예전적 이거나 성직자가 주도하는 예배가 아니었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함께 기다리며, 그 분을 찬양하고 기도하였기에 그리스도의 약속이 재확인되고 영으로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 안에서 생생히 체험하는 예배였다,

그러한 예배는 자연스럽게 삶으로 이어져 비 그리스도인들에게 칭송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곧 삶이 예배가 되도록 하는 힘이 되었다.

교회개혁의 시급성 중 하나가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라”(롬12:1) 는 말씀대로 헌신된 삶으로 이어지지 아니하는 예배이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모이는 예배가 예배로 인식되어 있다. 하여 교회 안에서는 신자, 교회 밖에서는 불신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삶이 예배라는 인식을 교회에서 강조하고 꾸준히 가르치지 아니하였기에 이러한 결과는 당연한 것이다. 삶이 예배가 되는 신앙생활은 모이기를 힘쓰기도 하지만 모이는 일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15:22)하고 꾸짖었다. 예배가 삶이 되지 못하는 오늘날 명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교회 성도들은 모여 예배드리는 것으로 삶의 예배를 대체 할 뿐 아니라, 신앙적 성취감으로 삼고 있다. 또한 교회는 양적성장과 교인 관리를 목적으로 모이는 예배를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는 율법적 예배를 드리게 되어 예배가 짐이 되고 의무가 되는 성도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 예배를 고집하던 개신교나 카톨릭이나 근래에 와서는 예배의 틀을 바꾸고 변화를 주는 예배문화의 르네상스(Renaissance)를 맞고 있다. 하여 다양한 예배의 폼(Form)이 소개되고 있는 시대이다. 그 중 열린예배는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딱딱한 설교대신 CCM을 비롯한 복음성가를 다양한 악기와 함께 부르며 모이는 예배이기에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고 교회의 부흥에 일조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예배의 변화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삶이 예배가 되게 하지 못하게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열린예배를 비롯한 다양한 예배에 익숙해 있는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통적 예배를 고집 할 때나 마찬가지로 예배당 안에서의 예배자로 멈추어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예배를 성장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 얘기는 모이는데 만족하는 교회나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이는 결집력이 교회의 힘이 아니다. 흩어진 성도가 얼마나 삶으로 예배를 드리느냐가 힘이다.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성도는 성서적 가르침과 훈련으로 만들어진다. 진정한 의미에서 성도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은 삶이 예배가 되도록 새 힘을 얻는 시간이며 회복의 시간이다.

「한국의 목사님이 미국을 방문하여 예배드리려고 어느 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배당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한 성도에게 물었다. "예배가 다 끝났습니까?”

문에서 막 나오는 그 분은 “아니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고 대답했다.」 [출처] 예배란 무엇인가?

지금 예배를 드리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삶속에서 예배의 시작점이 되지 못한다면 오늘 열심히 모여 거룩하게 드린 예배가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며 내게 무슨 유익이 있을 것인가!

“특새”를 비롯한 각종 기도회나 예배가 경쟁적이며 과시적 예배 수준이라면 헌신된 그리스도인을 찾기는 소돔성에서 의인 10명 찾기보다 힘이 들 것이다.

 

 

   
▲ 오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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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203.XXX.XXX.10)
2017-11-13 06:56:25
항상 기도한다.

은혜와 찬송가를 흥얼 거린다.

때에 따라 예수님 복음 전파 한다.

삶이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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