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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나무와 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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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8월 20일 (일) 00:00:00 [조회수 :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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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모든 문제의 시발은 '키가 작다'는 것이었다. 아주 작은 문제일 수 있지만 나를 제국의 나무에 올라도록 만든 원인이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왜소함은 만만하고 나약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런 편견은 아무런 죄의식없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였다.

   
나는 키가 작았다. 그래서 '땅꼬마'라 놀림받고 왕따 당하였다. 내가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은 나를 둘러싸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꼬마 땅꼬마'라고 놀려댔다. 어른들 중에도 '그러면 못쓴다'고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혼내는 사람이 없었다. 어른들도 철없는 아이들의 따돌림을 방조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강해야만 했다. 식민지 시민으로서 내가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로마의 앞잡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 '유일한 길'이 얼마나 위험하고 민족을 배신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 '땅꼬마'라고 무시당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약점을 극복하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로마제국이라는 나무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제국의 나무에 오르기 위해 남들보다 몇배나 더 살을 깎고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하였다. 드디어 나는 '세리'가 되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땅꼬마'에서 '면허증을 가진 강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든 게의치 않았다. 사람들이 내 앞에서 형식적이나마 허리를 숙였다. 나는 여리고에서 권력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를 얕보고 조롱하던 이들이 내 앞에서 비굴한 몸짓을 하며 머리를 숙였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나무는 대단한 것이었다.


제국에 성실히, 열심히 세금을 모아 받쳤으므로 로마는 나를 더욱 강한 자가 되게 해주었다. 나는 '종려의 도시',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라는 여리고 지역을 총괄하는 '세리장'이 되었다. 제국은 독특한 방법으로 세금을 거둬들였다. 한 지역에 거둬들일 세금액수를 정하고 그 이상으로 거둬들일 수는 자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수탈을 많이 하는 자일수록 제국의 나무에서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세리장이 되었다는 것은 동족의 고혈을 그 누구보다도 심하게 짜냈음을 의미하였다.


세리장이 되어 부자로 살아갔지만 나는 늘 외로웠다. 편안히 얘기할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 내색할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이 정점에 다다랐을 무렵, 갈릴리 나사렛 출신 예언자가 우리 동네를 지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다. 궁금했던 그 이가 여길 지나간다니, 꼭 한번 얼굴을 봐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사람들이 몰려나갔다. 나도 따라 나갔다. 군중들이 이미 그를 둘러싸고 있었고 나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묘히 나를 밀치며 접근을 방해했다.


'그럼 그렇지!....' 포기하고 돌아오려고 했지만 순간, 손상된 자존심을 보상받아야 된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나는 저만큼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를 탔다. 어른이 나무를 탄다는 것은 점잖치 않은 일이었으므로 눈에 금방 틔는 행동이었다. 무리가 다가 오고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 분이 걸어오고 있었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걸음걸음에서 근엄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흰 겉옷을 걸친 몸 주위에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창피함을 잊고 넋을 놓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나무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더니,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하고 말씀하셨다. 그 분이 예지능력으로 나를 알아봤는지, 내가 워낙 악랄한 강도여서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아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분이 나를 부르셨다. 그것도 사람들에게서 오랫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나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잊고 있던 나의 이름!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이름을 너무도 편안히 부르시는 그 분에 나는 금방 매료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분이 나의 집에 머무르시겠다고 하셨다. 아무도 나의 집에 온 사람이 없었다. 나의 집은 '죄인의 집'이었다. 소위 거룩타하는 자들은 내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분은 거침없이 공개적으로 우리 집에 오시겠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어찌 죄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느냐면서 웅성거렸다. 세상의 어떤 관습이나 편견에 묶여있는 않는 자유로운 분이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일행을 극진히 대접했다. 가까이서 오랫동안 그 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깊은 감동을 받았다. 왜 사람들이 그를 예레미야 혹은 모세, 다시 살아난 세례요한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날 밤 받은 감동으로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숨가쁘게 달려왔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깊이 생각하는 행복한 밤이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갑자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쁨이 몰려왔다. 너무 즐거웠다. 한번도 이런 기분으로 산 적이 없었다. 밤새도록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반성하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나는 그 분에게 밤새도록 다짐한 결심을 말씀드렸다.
"어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집에 오셔서 주무시고, 편견없이 나를 대해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어떻게 사는게 행복하게 사는 길인가를 말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흡혈귀처럼 사람들의 고혈을 짜며 살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제가 가진 소유의 절반을 조건없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가지 살아오면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조사해서 네 배로 갚겠습니다' 저는 평소 사람이 갑자기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을 만난후에도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이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나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일행과 식구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돈밖에 모르고 살던 매국노가, 돈에 구원이 있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고 다니던 돈의 노예가 하루 아침에 이렇게 변했다는 것은 해가 동쪽으로 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절반은 조건없이 나눠주고 나머지 절반으로 강제로 빼앗은 것을 갚아주다보면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비로소 진리를 깨달은 것을 아신 예수님이 기뻐하시며 축복해 주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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