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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장로교 “노근리사건, 미정부 사과ㆍ배상 이끌 것“한국평화순례단, 지난 2일 노근리 방문 사과에 이어 6일 성명 발표
이병왕  |  wanglee@newsn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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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1월 07일 (화) 05:44:01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0일 (금) 01:49:57 [조회수 : 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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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의 기자회견 모습

미국장로교(PCUSA) 한국평화순례단 16명의 목사들이 한국을 찾아 미군이 저지른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서 사과했다.

지난달 31일 한국을 방문, 오는 8일까지 예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순례 일정’을 진행 중인 미국장로교 한국평화순례단 16명의 목사들이 6일 오전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먼저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서 사과한 후,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노근리 사건에 대한 사과와 배상, 재발 방지를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미군이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아래와 터널, 속칭 쌍굴다리 속에 피신하고 있던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을 무차별 사격해 300여 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미국장로교(PCUSA) 222차 총회는 ‘△노근리에서 민간인을 고의로 살해 한 미군의 책임에 대한 인정 △살아있는 희생자들과 그 사건에서 살해되거나 상처를 입은 가족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고려하는 긍정적인 결과와 함께 노근리에서 미군의 행동에 대한 사과와 진술 △장래에 일어날 사건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미국 군대 훈련 중 노근리 사건에 대한 교육을 포함하겠다는 약속을 담아 미국대통령과 상,하원의원이 대한민국에 공식 성명을 발표할 것을 요청하기로 결의했다.

이 결의에 따라 미국장로교회 대표단인 한국평화순례단이 지난달 31일 방한, 오는 8일까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정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지난 2일 노근리 사건 현장을 찾아가 추모예배를 드린 뒤,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아픔을 함께 나누고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회견에서 이들은 “△노근리 사건에 관해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고 △과거사 극복을 위해 대화하며 △만행에 대해 공식 사과를 도출하기 위해 양국 정부가 진상규명을 할 것을 촉구하고, 남북의 통일과 평화로운 한반도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할 것을 알리기 위해 방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에 △노근리에서 한국 민간인을 고의로 살해한 것에 대한 미국 군대의 책임을 인정하고 △노근리에서 행한 미군의 행동에 대해 사과와 유감을 표명하고 △그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고려하는 용의를 표하며 △유사사건 재발방지를 위해 미군 병력훈련 과정에 노근리 사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할 것을 서약하라고 요구했다.

8일까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순례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은 7일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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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XXX.XXX.79)
2017-11-07 08:25:30
노근리 사건의 발생 원인과 경위(강철군화의 글 중 발췌)
북한과 중공군에 의한 대한민국 국민의 학살행위는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서 국군과 미군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이른바 ‘거창 사건’이나 ‘노근리 사건’만을 유독 강조하는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일본에도 정신대 문제로 일본정부 방침을 공격하는 극히 일부의 사람이 있듯이, 미국에도 미국을 흠집 내려는 극히 일부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 일부 삐뚤어진 사람이 미국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미국 대통령 중에도 박정희를 지극히 증오하는 지미 카터는 민족학살자 김일성 빠돌이입니다.

지금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오폭하여 애먼 민간인이 죽어나간 게 부지기수입니다. 전쟁이란 피아구분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월남전에서 한국군이 부득이 월남양민을 학살한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 사격장에서 날아온 총알에 군인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군대 또는 전쟁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理想談論만 펼치는 행태는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노근리 사건의 발생 원인과 경위(강철군화의 글 중 발췌)---

장진호에서의 끔찍했던 추위에 대한 증언들부터 보자.
  
<5연대 의무대장이었던 체스터 레슨덴 해군소령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용해가 안 되고, 수혈관이 얼음조각 때문에 막혀서 혈장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붕대를 갈지도 못했는데, 붕대를 갈기 위해 장갑을 벗으면 손이 바로 동상에 걸리기 때문이죠. 상처부위를 살펴보기 위해 부상자의 옷을 자를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몸이 얼어버리기 때문이죠....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추위 때문에 지혈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무기가 추위 때문에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수류탄은 잘 터지지 않았고, 중기관총 총열의 냉각통에는 부동액을 채워야 했다. 또 경기관총은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 목표물이 있건 없건 몇 분 간격으로 사격을 게속해야 했다....따뜻한 텐트 안에는 눈을 녹인 물을 석유난로에 끓여서 꽁꽁 언 C-레이션을 끓는 물 안에 던져 넣었지만, 대부분 바깥쪽만 녹아서 얼어 있는 안쪽까지 먹어치운 해병들은 심한 장병과 설사를 겪어야만 했다.>
  
물론 추위는 미군뿐 아니라, 중공군에게도 끔찍한 시련이었다. 
  
<쉐퍼 병장이 다가와 데이비스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말했다. 쉐퍼를 따라간 중령은 그가 몸을 낮춰 중공군으로 판명된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참호에서 끌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 중공군은 그때까지도 살아 있었고, 데이비스는 그의 눈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위에 그런 모습의 중공군이 여러 명 있었는데,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참호에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갔다가 대부분이 얼어죽은 것 같았다.>
  
중공군들은 포로를 만들지 않았다.
  
<중공군은 황량한 고지에서 내려와 트럭들을 샅샅이 뒤지면서, 따발총의 총구를 높이 들어 그 안에 타고 있던 미군 병사들을 사살해 버렸다.
  
중공군은 포로 획득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들의 후방에서 잠재적 골칫거리가 될 지도 모르는 미군들을 미리 제거해 버리겠다는 전술적 목적으로 미군들을 사살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기 시작하자 차량행렬을 따라갔던 많은 미군 병사들이 호수 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능한 한 빠르게 호수의 얼음 위를 달려나갔다. 보름달이 그 고통스런 광경을 환히 비춰주고 있었기 때문에 중공군은 사격 목표물을 찾아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런 혹독한 상황 아래서 해병대원들은 불굴의 투혼을 발휘했다.
  
<1개 분대의 병력을 거느린 윌리엄 G.윈드리치 하사가 적군의 역습을 오랫동안 저지하여 I중대가 어둠 속에서 재편성을 마치도록 했는데, 그 과정에서 12명 중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수류탄 파편에 머리를 다치고도 후송을 거절한 윈드리치는 1소대를 이끌고 돌격하다가 다시 부상을 입었다. 접근하는 위생병에게 오지 말라고 손을 저으며, 그는 '아직 아냐'라고 말했으나, 몇 분 후 숨을 거두었다.>
  
부상병들도 다시 무기를 들고 싸워야 했다.
  
<해리슨 포머스는 구호소 텐트에 들어온 바버 대위가 병력이 부족해 부상자들 중에 사선으로 돌아올 자원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여러 명의 부상자들이 간신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모두 영웅이었습니다.>
  
미 해병대원들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수많은 전우들을 먼저 보내야 했다.
  
<앨런 헤링턴 상병 ;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하갈우리라는 외부로 나가는 관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도로 장애물 옆에 서서 친구나 아는 사람들을 찾았지요. 부대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내가 아는 하사관을 찾으면 그 부대의 누군가가 트럭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전사'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동안 거기 서서 얼어붙은 시신들이 트럭에 실려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는데, 가끔씩 하는 얼굴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모르는 얼굴들이었지만, 그래도 그들 모두는 내게는 개인적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피가 흐르다가 얼어서 고드름이 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군의관 헨리 리트빈 중위에게는 이스트힐 전투가 긴 악몽의 일부분 같았다.
  
'부상당한 해병의 철모를 벗겼을 때 그의 심장이 그때까지 뛰고 있었는데도 뇌수가 냄비의 스튜가 쏟아지듯이 골 밖으로 나와 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참혹한 모습에 가슴이 저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는데, 그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두가 영웅은 아니었다.
 
<새벽이 가까워졌고 준비를 갖추고 이동할 시간이었다. 중화기 중대 소속 랄프 뵐크 일병의 기관총 반원인 어린 해병이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버텼다.

'그 친구는 키가 180센티미터난 되는 텍사스 출신이었으며, 나이는 18살이었는데....'더 이상 안 가겠어요'라고 그가 말했죠.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침낭을 둘둘 말아 싸고 이동할 준비를 하는 동안 누워만 있더라구요....그 친구는 내 말이 안 들리는 것 같이 굴더군요. '할 수 있을 만큼 했어요. 더 이상 안 가요'.... 그 친구는 모든 걸 포기한 거였어요. 혼이 빠져나간 거죠. 마침내 중위가 '출발해야 해'라고 말하고는 그 친구를 운반할 자원자를 찾기에 나도 자원했습니다. 그 불쌍한 애를 끌고 산과 계곡을 건너 2킬로미터는 족히 갔을 겁니다.'
  
...행군하기를 거부했던 그 18살짜리 텍사스 친구는 구호텐트로 옮겨졌고, 그의 상태를 점검한 위생병은 아무 부상부위나 상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어린 친구는 단지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폭스힐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죽었다.>
  
이 혹독한 전장에서 꽃핀 해병들의 전우애에 대해 역사가 린 몬트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전투력이 기강이나 무기의 성능보다 다른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 때가 있는데, 그걸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전투원이 자기 옆의 동료를 끝까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고, 반대의 경우도 성립될 때 갖게 되는 감정입니다. 전쟁은 잔혹한 것이지만 사전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이타심만큼 멋진 것은 이 세상에 없지요. 사소한 것들이 그 순간에는 사라져 버립니다.>
  
중공군들이 피난민들을 방패막이로 삼는 바람에 미군들은 적잖은 고생을 해야 했다. 이에 관한 증언들은 이 책 여러 군데에서 나오는데, 소위 노근리 사건을 비롯해 6-25 전쟁 중 미군이나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사건(?)이라는 것이 어떤 상황 아래서 발생한 것이었나를 짐작하게 해 준다.
  
<마지막 전차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몰려오고 있던 피난민 대열 속에서 동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던 피트 블랜드 병장은 누군가가 중국어 억양이 강한 영어로 일단의 중공군이 투한하고자 한다고 말할 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중공군 병사들이 지금 항복합니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들리자 블랜드는 소대장에게 보고하려고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갔고, 소대장과 그가 돌아왔을 때 전투가 바로 시작되었다.....
  
기관총을 진지 오른편에 설치한 지글러 일병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던 선두의 중공군이 비무장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미오트는 뒤에 오던 4명의 중공군이 따발총으로 무장했다고 단정했다...딱딱 소리와 함께 방망이 수류탄이 피난민 대열 속에서 날아와 폭발하는 바람에 하겟은 땅바닥에 쓰러졌으나, 몽롱한 정신상태로 땅에 누운 채 아미오트가 자동소총으로 그 허둥거리는 중공군 다섯 명을 사살하는 소리를 들었다.시끄러운 총소리가 산과 계곡 사이에서 메이리치더니 서서히 사라져갔다. 민간인 한 명이 '많아,많아'라고 한국말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던 하겟은 나중에 가진 인터뷰에서 그 남자는 피난민 속에 침투한 적이 많다는 것을 미군에게 경고하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블랜드 병장 ; '그러던 중에 피난민들 속에서 중공군이 벌떼처럼 튀어나왔고, 동시에 측면에 있던 철도 제방에서도 중공군들이 몰려나왔습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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