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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버지”가 말이 되느냐는 이 집사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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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1월 02일 (목) 20:11:05
최종편집 : 2017년 11월 25일 (토) 01:48:16 [조회수 : 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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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일에는 내 옆자리에서 점심을 먹던 이 집사가 점심 후에 시간을 좀 내달라고 말했다. 어차피 점심을 먹고 나면 2시에 시작하는 오후 예배까지 한 시간 이상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에 그러마고 대답했다. 평소에는 자기 동료들과 식사하던 이 집사가 내 옆에 와서 앉았던 것은 이 말을 하려고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남전도회나 성가대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50대의 신실한 집사다. 성가대에서 나와 함께 노래하지만,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별로 없었다. 실제로 성가대에서는 한 시간 이상 같이 연습을 하지만 지휘자가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가 나하고 이야기할 말이 있다고, 그것도 단 둘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했다. 우리는 비어 있는 힐링센터로 갔다. 그곳은 조용하고 아늑해서 둘이서 이야기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이 집사는 자리에 앉자 이내 말을 꺼냈다. “성경을 읽다가 납득이 안 되는 표현이 있어서 이렇게 뵙자고 했습니다. 제가 마가복음을 읽다 보니,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엊그제는 거기에 나오는 ‘아빠 아버지’라는 말이 아주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애들이나 딸들은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지만, 장성한 아들들은 아빠라고 하지 않거든요. 장성한 아들이 아빠라고 부르면 사내자식이 애기처럼 무슨 아빠냐고 핀잔을 듣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서른세 살이나 된 장성한 남자 예수님이 당신의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 것이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이상한 것은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빠라고 부르지 않거든요. 그런데 ‘아빠 아버지’라고 말했다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장로님 보시기에는 어떤가요?”

교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든,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든 별 관심 없이 넘어간다. 그것은 예수님의 권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스러운 책이라고,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다르게 이 집사가 이런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언어적 감각이 예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집사는 지금 사업을 하고 있지만,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 나도 그 부분을 읽으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개역 성경에서는 ‘아빠’가 아니고 ‘아바’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역 성경에서 그것을 확인해 보았다. 개역 성경에는 분명히 ‘아바’라고 되어 있기에 표준새번역 성경과 영어 성경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개역개정 성경에는 ‘아빠 아버지’가 마가복음뿐 아니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도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집사가 시간을 내달라고 진지하게 말할 때부터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몹시 궁금했었다. 상대가 진지하게 나오면 이쪽에서도 진지해지게 마련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닐 테고 교회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하면서 내가 그의 말에 잘 대답해줄 수 있을지 약간은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빠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라면 내가 그의 궁금증을 쉽게 해결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상에 몸을 굽히고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나도 그 말이 부자연스러워서 이것저것 찾아본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더니 굳어졌던 그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이 보였다. “이해할 만한 질문이네요. 그렇죠, 우리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죠. 그런데 여기 ‘아빠’는 우리말이 아니고 예수님이 사용하시던 아람어입니다. 아람어로 ‘Abba’인데, 그 단어를 개역 성경과 표준새번역에서는 ‘아바’로,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아빠’로 표기했습니다.

“이 집사님도 개역 성경에서는 ‘아바’였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개역개정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Abba’의 ‘아바’가 우리말의 ‘아빠’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Abba’에서 ‘b’가 겹치는 것을 보고 이 단어는 ‘아바’보다는 ‘아빠’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면 진짜 우리말의 발음과 같아지지 않아요. 이건 내 추측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빠 아버지’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아직 그 글을 읽어보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Abba’가 아버지에 대한 애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말에서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아빠가 적격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b’자가 겹치는 것과 애칭이 맞아떨어진다고 보았겠죠. 그래서 개역개정 성경에 관여한 사람들은 개역 성경의 ‘아바’를 ‘아빠’라고 고치고는 참 멋있는 착상이라고 좋아했을 겁니다.”

내 말을 듣더니 이 집사는 ‘아빠’가 아람어의 ‘Abba’에서 온 것이면 그 발음은 ‘아빠’가 아니고 ‘아바’일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아빠’가 아람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Abba’에서 ‘b’가 겹치기는 하지만 영어의 경우라면 쌍‘ㅂ’처럼 발음되지 않고 ‘b’가 하나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바’로 발음되었을 것 같습니다. ‘grammar’의 경우에 ‘그램머’로 발음하지 않고 ‘그래머’로 발음하거든요. 하긴 제 중학교 영어 선생님은 ‘그램머’로 발음하셨지만, 그것은 그분이 영문과를 나오지 않은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그렇게 발음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 아람어가 영어처럼 로마자로 표기되었으니 ‘Abba’에서도 영어에서처럼 발음되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개역 성경이나 표준새번역 성경에서 ‘아바’로 표기한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많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 사람 영문과를 나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영문과를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국문과를 나왔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하면서, 성경에 구두점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집사님도 잘 아시다시피 성경에는 구두점이 없어요. 이런 때에 그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개역 성경이나 개역개정 성경에는 구두점이 없어서 ‘아바 아버지’ 혹은 ‘아빠 아버지’로 되어 있지만, 표준새번역에서는 ‘아바, 아버지’라고 ‘아바’ 다음에 쉼표가 들어 있습니다. NIV에서도 ‘Abba’ 다음에 쉼표를 넣어서 ‘Abba, Father’로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이 쉼표는 중요합니다. 이렇게 쉼표를 넣으면 ‘아바’나 ‘Abba’가 아버지 혹은 ‘Father’를 의미한다는 것을 나타내거든요.”

“개역개정 성경에서 구두점이 사용되었으면 ‘아빠’ 다음에 쉼표를 넣었을 겁니다. 그러면 ‘아빠’라고 발음되는 아람어는 우리말로 아버지를 의미한다는 것이 되지요. 그런데 구두점 없이 ‘아빠 아버지’로 표기했을 때, 여기 ‘아빠’가 우리말로 보이기 때문에 이 집사님처럼 ‘아빠 아버지’가 말이 되느냐고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 경우에 그렇게 의문을 갖게 된 이 집사님의 실수라기보다는 그 ‘아빠’를 우리말로 착각하게 만든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에 관여한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죠.”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이 집사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Abba’를 ‘아빠’로 표기한다고 해도 ‘아빠 아버지’로 번역할 경우 ‘Abba’가 아버지의 애칭이라는 것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장로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렇게 번역하면 ‘아빠’라는 아람어가 우리말로 아버지를 의미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칭의 뉘앙스를 살리려고 한다면 ‘아빠, 아빠’가 되어야 합니다. 영어로 하면 ‘Abba, Daddy’로 번역해야죠.”

“그러지 않고 우리말 성경에서 ‘아바 아버지’나 ‘아빠 아버지로, NIV에서 ‘Abba, Father’로 번역한 것을 보면, 그 아람어는 우리말의 아빠보다는 아버지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어떻든 ‘아바 아버지’로 하는 것이 나을 뻔 했습니다. 개역 성경에서처럼 ‘아바’ 다음에 쉼표가 없더라도 ‘아바 아버지’로 놓아두었더라면, ‘아바’가 우리말이 아니라는 감을 잡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면 저처럼 ‘아빠 아버지’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개정을 한 것이 아니고 개악을 한 것이네요.”

그는 나를 앞질러 나갔다. 그래서 내가 이 집사에게 설명을 하는 것인지 그가 내게 설명을 해주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 집사는 한 가지를 가르치면 열 가지를 터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머리 좋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둔한 학생은 반복해서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가르치기가 아주 힘든데, 영민한 학생은 한 번만 이야기해주어도 바로 알아듣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많은 학생을 상대로 설명할 때는 몇 학생만 이해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염두에 두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개인지도를 할 때는 학생이 못 알아들으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반복해서 설명해도 학생이 이해하지 못할 때는 참으로 답답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인생삼락 가운데 하나로 영재를 가르치는 것을 꼽지 않았는가!

나는 ‘우리의 아빠 되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꺼냈다. 이 집사라면 내가 하려는 말을 잘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역개정 성경이 나온 후로 ‘우리의 아빠 되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아빠 아버지’의 ‘아빠’를 우리말로 착각한 데서 생긴 실수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아빠 아버지’의 아람어 ‘아빠’를 우리말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아빠 되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게 된 것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겟세마네의 기도보다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아빠 아버지’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는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로 되어 있고,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로 나와 있거든요.”

“그들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혹은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에서 아버지는 빼고 아빠만 남겨서 하나님을 ‘우리의 아빠 되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아빠’는 우리말이 아니고 아람어 아닙니까? 아마 그들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거나 대하기 어려운 분이 아니고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빠’만 떼어내서 ‘우리의 아빠 되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이겠죠. 여기서 문제는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그 ‘아빠’를 아람어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말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아람어의 ‘아빠’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말의 아빠로 둔갑해 버립니다.

“이 집사님은 ‘아빠 아버지’의 ‘아빠’가 아람어인 줄 몰랐기 때문에 그 ‘아빠’를 우리말로 착각했지만, ‘Abba’가 아람어인 줄 아는 사람들조차도 그 단어를 우리말 ‘아빠’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개역개정 성경의 탓입니다. 그들은 개역개정 성경 탓에 성경의 ‘아빠 아버지’를 이 집사님의 말대로 ‘아빠, 아빠’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빠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실수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아람어 ‘아빠’는 우리말의 아버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아빠 하나님’이라고 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해야죠. 그러나 그 원인 제공자는 개역개정 성경에서 ‘아빠 아버지’로 번역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번역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죠.”

이야기하다 보니 오후 예배 시간이 가까워져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회 본당까지 가면서 나는 이것 외에도 개역개정 성경에는 옛날의 권위적인 어투를 비롯해서 바로 잡을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혹시 궁금하면 <당당뉴스>에 들어가서 내가 2013년에 올린 ‘우리말 성경 번역’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어 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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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석 (122.35.176.192)
2017-11-15 10:01:00
진작 답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아버지 최재석은 아버지로서의 최재석이고 최재석 아버지는 최재석이라는 이름의 아버지라는 말 아닐까요? 하나님의 경우도 그렇게 이해하면 좋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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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175.223.26.184)
2017-11-03 19:10:20
질문 있습니다.

아버지하나님 표현이 맞나요?

장로님 기도 때 간간히 표현하고

구약에 나오는 표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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