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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을 만나도 천 번을 만난 것 같은 안면해변[안면도 뒤안길] 안면해변을 향한 애모는 계속됩니다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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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1월 02일 (목) 08:26:20
최종편집 : 2017년 11월 02일 (목) 08:36:18 [조회수 : 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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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정교 하류에 깃든 바다모래 위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를 합니다. 가을을 머금고 바알갛게 익어가는 풀잎들 저 아래로 한 점 두 점 무수히 많은 점이 되어 그들 나름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 수고 다한 결과인양, 경례 다 마친 후 솔방울의 장렬한 전사(戰死)인양 솔방울이 땅에서 전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전 기사 :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곳... 안면도랍니다)

한 번을 만나도
천 번을 만난 것 같은 사람
당신 곁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한 번의 속삭임이
천년의 세월을 거듭나는 인연처럼
우연이 아닌 만남

한 번의 키스는
처음 사랑처럼 잊을 수 없는
천년의 밤 (강민 ‘당신 곁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6’ 전문)

그렇습니다. 한 번을 만나도 천 번을 만난 것 같은 곳이 있습니다. 반대로 천 번을 만나도 한 번을 만난 것 같은 곳이 있습니다, 내게 안면해변은 그런 곳입니다.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감촉이 몇 번을 걸어도 여전합니다. 지치지 않고 지칠 수 없고 지치면 안 되는 곳입니다.

만리포니 천리포에 비교하여 그리 너른 백사장도 없습니다. 해변이 길지도 않고 금모래니 은모래니 할 것도 없습니다. 주변의 편의시설이나 화려한 공간도 없습니다. 곰솔 사이로 야영할 공간이 좀 마련되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내게는 이곳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행복하게 만드는 밤, 안면해변입니다

   
▲ 모래가 어찌나 고운지 발아래서 나긋나긋 문드러집니다. 그래서 힘에 꽤나 드는 걷기입니다.
   
▲ 태안의 유명해변들과는 그 숫자에서 당해낼 재주가 없긴 하지만 여전히 호젓한 데를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의 안식처인 게 분명합니다.

 

강민 시인의 표현처럼, 안면해변과의 ‘한 번의 키스는 처음 사랑처럼 잊을 수 없는 천년의 밤’인가 봅니다. 이 밤은 새벽을 잃어버린 밤입니다. 영원한 밤, 불면의 밤, 둘이 오롯이 지새는 하얀 밤, 네 그런 밤입니다. 까만 밤도 하얀 밤도 다 좋습니다. 그런 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른 아침에 해무로 자욱한 안면해변도 그렇고, 늦은 오후에 아내의 손을 잡고 거니는 안면해변도 그렇습니다. 가끔 해가 이울 때 그 유명한 꽃지해변 대신 안면해변을 택하여 걷는 이유도 그런 밤을 사모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밤이 이렇게 환할 수가 있을까요. 밤이 이토록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갈 수 있을까요. 어느 새 해무를 밀고 바다 저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밉니다. 바람은 내 몸에 닿기 전에 먼저 바닷가 풀잎들을 건드려 곤드레만드레 질펀한 사랑 노래를 늘어놓고 난 후 내 옷깃에 스며들어옵니다.

청정교 하류에 깃든 바다모래 위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를 합니다. 가을을 머금고 바알갛게 익어가는 풀잎들 저 아래로 한 점 두 점 무수히 많은 점이 되어 그들 나름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하도 궁금해 견딜 수 없어 돌아오는 길에 그네들을 마중하러 바닷가로 가고 말았네요.

궁금한 건 궁금한 것일 뿐, 결국 그들의 이름을 알 수가 없네요. 그냥 염생식물이겠거니 하고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나문재는 아니고 그렇다고 퉁퉁마디도 아니니 내 지식의 한계를 넘긴 염생식물이었습니다.

언젠가 이 길을 더 오래 머물며 걸으면 누구에게라도 얻어 듣겠지요. 그럼 이 염생식물이 무엇이라는 지식으로 내 머리에 각인 될 거고요. 아직은 때가 아닌가 봅니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궁금증을 삭입니다.

양쪽으로 곰솔이 나란히 도열하여 경례를 붙이는 듯합니다. 너무 기합이 들어 그런가요. 언제 그랬는지도 모를 그네들의 땀방울이 길 위로 즐비합니다. 땀방울이 솔방울이 되었군요. 수고 다한 결과인양, 경례 다 마친 후 솔방울의 장렬한 전사(戰死)인양 솔방울이 땅에서 전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방울, 곰솔의 장렬한 전사(戰死)일까요

   
▲ 숲 쪽으로는 무궁화도 자신의 무게감을 보여주고요. 술에 붙은 작은 나방은 앙증맞기도 하죠.
   
▲ 뭉게구름? 양털구름? 그게 그건가요. 하여튼 저 멀리 떠있는 구름이 무척 몽환적입니다.

 

내 발에 솔방울이 밟힐까 봐 노심초사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리 조심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전사한 전우의 시체를 밟고 넘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모래가 어찌나 고운지 발아래서 나긋나긋 문드러집니다. 그래서 힘이 꽤나 드는 걷기입니다. 해변길 중 가장 걷기 녹록치 않은 길이 안면해변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마 앞에 가는 여행자의 뒷모습을 보는 것으로 그 솔방울이 빚어낸 전사(戰死)의 숭고함에서 벗어날 수 있어 감사했답니다. 주말이면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안면해변을 찾습니다. 태안의 유명해변들과는 그 숫자에서 당해낼 재주가 없긴 하지만 여전히 호젓한 데를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의 안식처인 게 분명합니다.

이미 밝게 떠오른 햇빛을 받아 곰솔 터널이 이미 대낮입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여행자들은 앞 다투어 앞으로 앞으로 향하기만 하는군요. 말 한 마디 섞어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그들은 재게 걷는데 나는 굼뜨게 걸으니 만날 수가 있어야지요.

나는 앞으로 가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요. 즐깁니다. 길을. 느낍니다. 바람을. 만집니다. 바다를... 그러니 그들과 만난다는 게 기적이지요. 뒤에서 오던 이는 만납니다. 하지만 앞에서 걷는 이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아마 인생이 그런 거라고 가르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부러 외롬을 만들며 걷는 안면해변길, 오늘도 바다뿐 아니라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뭉게구름? 양털구름? 그게 그건가요. 하여튼 저 멀리 떠있는 구름이 무척 몽환적입니다. 솔가지 위로 어지러이 그들의 지역구 다지기를 하는 걸 보니 그네들의 선거가 얼마 안 남은 모양입니다. 제발 누가 이기든 질펀한 가을비가 되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해변길에 왜 미군? 미군들이 훈련 후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꽤 차가운 날인데도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이들도 보이고요. 짧은 영어로 무슨 일이냐니까, 훈련이랍니다. 허허. 당연한 걸 괜히 물었습니다.

조개도 입을 벌리고 하늘 구경을 합니다. 구름들의 지역구 선거에 조개도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유독 한 조개만이 그런 모양입니다. 숲 쪽으로는 무궁화도 자신의 무게감을 보여주고요. 술에 붙은 작은 나방은 앙증맞기도 하죠. 내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에 안면해변을 향한 애모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누가 뭐래도.

   
▲ 조개도 입을 벌리고 하늘 구경을 합니다. 구름들의 지역구 선거에 조개도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 해변길에 왜 미군? 미군들이 훈련 후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바닷가에서 공놀이도 하고 물에 들어가기도 하는군요.

 

[안면도 뒤안길]은 김학현 목사가 안면도에서 목회하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안면도의 진면목을 담으려고 애쓸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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