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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목회의 신학과 실천 (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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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0월 30일 (월) 23:49:43
최종편집 : 2017년 10월 30일 (월) 23:53:04 [조회수 :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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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목회의 신학과 실천 (중판)

 

윌리엄 윌리몬 지음, 최종수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7년 10월 30일,

신국판, 509쪽,

정가 22,000원.

ISBN 978-89-97339-32-7 93230

원서: Pastor: The Theology and Practice of Ordained Ministry (2002)

 

 

 

1. 책 소개

이 책은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설교자이며 실천신학 교수인 저자가 30년이 넘는 목회경험과 교수생활을 통해, 목회사역의 환희와 어려운 도전들에 대해 포괄적으로 안내하는 목회 안내서다. 저자는 목사 안수의 의미와 오늘날 목사의 다양한 이미지들에서부터 목회자의 탈진과 목회 실패의 원인들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설명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목회 대선배들의 많은 일화를 통해서 목회자의 소명과 정체성뿐만 아니라 목회사역의 모든 측면들에서 목회자의 역할과 위험한 도전들에 대해 친절하게 안내한다. 특히 성경해석자, 설교자, 상담자, 기독교인의 인격형성, 복음전도자, 예언자로서의 역할, 목회자의 윤리 등의 주제들을 자세히 다루면서, 저자는 철저하게 성경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교회와 예배전통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목회의 복음적 의미를 강조한다. 또한 목회적 돌봄이나 목회상담이 지나치게 현행 사회과학, 심리학, 의학 모델에 의존하는 것을 비판하며, 기독교의 본질적인 것을 굳건히 지키려 한다.

저자는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져오신 새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서, 현 세상 풍조와 가치관에 순응하도록 돕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낡은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새 세상을 발동(發動)하여 건설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목회적 돌봄도 현 문화가 요구하는 교인들의 필요 충족 그 이상으로서, 목회사역은 어려운 과제이지만 잘 훈련받은 전문성을 갖추어 수행할 때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2. 저자와 역자

   
 

윌리엄 윌리몬(1946- ) 감독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설교자이며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의 목회학 교수와 대학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그는 30년이 넘는 목회경험과 교수생활을 통해, 이 책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공저), 『설교학 사전』 등 십여 권의 책을 썼다.

최종수 목사는 목원대학교,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미국 스케렛대학을 졸업하고 동부침례교신학대학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연합감리교회에서 은퇴했다. 저술은 『예수와 인간해방』, 『겨울나무』, 『한국을 위해 몸바친 나애시덕 선교사』, 『고호의 영성과 예술』 등이 있고, 이 책을 비롯해서 『예수를 해방시켜라』, 『새 시대를 위한 새 기독교』, 『가정폭력 남성치유모델』, 『은퇴와 믿음생활』, 『노인의 영광은 백발』, 『기도의 빛』 등을 번역했다.

 


3. 목차

옮긴이의 말 7
서론 11

1장. 목사 안수: 왜 하필 목사냐? 35
2장. 21세기를 위한 목회: 목사의 이미지들 77
3장. 사제인 목사: 예배의 리더십 109
4장. 목사인 사제: 목회적 돌봄의 내용이자 현장인 예배 135
5장. 성경해석자인 목사: 말씀으로 창조된 백성 165
¶ 막간 읽을거리: 성경본문의 놀랍도록 짙은 농도 201

6장. 설교자인 목사: 말씀의 종 211
¶ 막간 읽을거리: 사도행전에 나오는 설교 241

7장. 상담사인 목사: 기독교적 돌봄 255
¶ 막간 읽을거리: 말씀으로 만든 세상으로 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278

8장. 가르치는 선생인 목사: 기독교적 인격형성 301
9장. 복음전도자인 목사: 그리스도는 변화를 뜻한다 333
¶ 막간 읽을거리: 복음전도와 불가항력적인 예수 355

10장. 예언자인 목사: 예수 이름으로 진리 외치기 373
¶ 막간 읽을거리: 기독교 목회사역이 저지르는 죄 398

11장. 지도자인 목사: 기독교 리더십의 특성 413
¶ 막간 읽을거리: 목회의 실패 434

12장. 인격자인 목사: 목회자 윤리 449
13장. 수련 쌓은 기독교인인 목사: 목회의 항구성 475

 

 

 

4. 서평

 

“목회사역을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수행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큰 선물이다. 윌리몬 교수의 이 책은 목회자의 소명에 대한 깊은 성경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옹골찬 신학을 보여준다.”

― 토니 캄폴로, Eastern College

 

“오늘날 목사들은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고 있다. 목사들이 주는 이미지와 인상은 싸구려에서부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찬란함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목사의 엄청난 존엄성을 채워주는데, 이 존엄성에서 거드름이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우리의 세례, 성경적, 신학적 기반을 발전시켜 교회의 타락한 문화와 평범성을 내어버리고, 우리들의 소명이 지닌 명예를 회복시킨다.”

― 유진 피터슨, Regent College

 

“오늘날 목사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많은 혼란이 있다. 이런 혼란에 대해 윌리몬 교수는 성경과 교회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30여 년의 목회경험과 교수생활을 바탕으로 분명하고 뚜렷한 대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모든 목사들과 신학생들이 반드시 읽고 연구하고 성찰할 책이다.”

― 엘리자베스 악테마이어, Union Theological Seminary

 

“이 책은 수십 년에 걸친 저자의 목회경험과 연구가 마침내 이룩한 금자탑이다. 이 책은 목회의 소명에서부터 목회사역의 모든 측면에 관해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처럼 깊은 신학과 실제적 인내를 따라 목회하는 이들은 누구나 자신의 소명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목회가 크게 발전하게 된 것을 경험할 것이다.”

― 로버트 웨버, Northern Seminary

 

5. 책 속으로

 

이 책은 나의 30년 목회사역과 역시 30여 년 신학교에서 목사가 되기 위하여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일이 낳은 열매이다. 이 책은 나의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안수 목회에 대한 극히 비판적인 명상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목회 경험이 많은 목사님들에게 이 책은 처음 목회사역을 시작하던 때를 다시 기억하고 목회사역이 복된 길이요 크나큰 결단이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목사가 되기 위하여 준비하는 신학도들에게는 이 책이 일종의 목회 교과서, 또는 목회사역 준비를 위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미 목회 하시는 분들이나 목회 길에 들어서기 위해 준비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이 바울이 말한 “격려의 사역”(롬 15:5; 살전 5:11) 역할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여러 면에서 목회사역은 다른 세상을 건설하고, 불러내고, 발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 정말 예기치 않게 기독교 목회사역은 이 세상 사회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러 가치관과 충돌을 일으킨다. 우리가 배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세상 나라와 불화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결코 이 말은 목사들이 낮은 봉급을 받는 데 대한 변명이 아니지만, 높은 교육과 훈련을 받았는데도 낮은 봉급을 받는 것 자체가 한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헤아려야 한다고 믿는 문화에 맞서는 것(affront)이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가롯 유다의 배신을(행 1장) 상기시키는 서술과 함께 시작된다. 만일 어느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를 찾는다면, 먼저 예수와 함께 밥상에 앉았던 사람들 가운데서 찾을 것이다. 오순절의 영광과 교회 위에 내린 성령 강림(행 2장), 그리고 베드로의 놀라운 설교와 그 성공적인 결과와 함께, 베드로와 바울의 체포된 이야기가 바로 그 뒤에 따라 나오고 있다(행 3장). 그리고 땅 판 돈 일부를 빼돌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비열한 행동(행 5장)과 스데반의 순교 이야기가 나온다(행 6-7장). 교회는 그 안팎에 적(敵)을 가지고 있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승리이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 적들이 예수에게 저지른 일을 예수의 사람들에게도 계속해서 저지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크게 말해서 교회 리더십 개혁운동이었다. 개혁자들은 교리 안에 안수목회 역사를 위해 커다란 의미를 지닌 여러 성직 가치관(clerical values)을 강조할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언제나 실행된 것은 아니다. 우선 성직자 교육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었다.(개신교 성직자는 제의복[liturgical garment]을 피하는 경향이 있고, 그 대신 검은색 제네바 가운을 즐겨 입는데, 그것은 성직복장이라기보다 학자들의 복장이다.) 많은 중세 성직자들의 지적(知的) 게으름에 대한 반동으로 개신교 성직자는 말씀의 종이 되기 위하여 성경공부를 잘 하길 바랐다.

목회의 과중한 부담 때문에 많은 목사들이 지쳐서 쓰러지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밖에는 다른 아무런 근본 바탕이 없이 목회 길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이야말로 사람들이 어떤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값있는 일인지 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무엇이든 움켜쥐려 하고 닥치는 대로 탐내는 사회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만족을 모르는, 검토되지 않은 거짓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밖에 삶의 목적이 없는 이기적 무리들을 위하여 생애를 바친 나머지, 결국 목사의 목회는 피곤에 지치고 분노만 끓어오르게 된다.

세상 표준으로 보아 무언가 “유용하고” “능률적인” 일을 목사가 하고 싶어하는 강한 유혹이 널리 퍼져 있는 사회에서, 목사들은 대리적인 사회운동가가 되려는 유혹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로운 입장에서 흠만 잡는 사회비평가가 되려고 애쓰기보다, 목사는 반드시 권력자들에게 진리를 말하도록 성도들을 가르쳐 준비시키는 일에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사도행전 2장이 말해 주는 것처럼, 오순절의 영광은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 지도자만이 아니라 온 교회 교인들을 예언자로 만들었다는 데서 드러나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다, 연로한 남자와 여자도, 젊은이들도, 가정부도, 청소부도 모두 예언자들인 것이다.

기독교 목회는 뚜렷하게 이스라엘과 로마 문화를 포함하여 우리가 속한 지배적 문화에 반(反)하는 대항문화적인(countercultural)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본질상 문화 타협적인 기독교 리더십 스타일을 경계해야만 한다. 물론 우리는 절대로 문화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라고 하는 “문화”를 포함하여 모든 문화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그러므로 목사들은 언제나 목회하고 있는 사회와 교회 안에서 문화와 어느 정도 마찰이나 불협화음을 예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 “적합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때때로 우리는 순전히 세속 리더십이 줄 수 있는 것을 세상에 주지 못한다고 죄책을 느낀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은 우리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 생활” (as aliens and exiles)할 것을 권고한다.

스데반은 교회의 리더십이란 십자형(cruciform)임을 알려준다. 그것은 또한 종말론적인 것이고, 우리가 행하여야만 하는 것 그 이상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들이 가진 모든 목회모형(models)에 대한 비판기준(critique) 노릇을 한다. 십자가의 위험과 순종, 부활의 충격과 능력을 충분히 체현함으로써 목사들은 기꺼이 [목숨마저] 버려야 하고, 그리스도의 선(善)과 그의 교회를 위하여 우리의 모든 목회모형들을 채택하여야 한다. 목사들이 목회에 적절한, 성경적으로 재가된 메타포와 중심 이미지를 얻기 위하여 분투노력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현세를 휩쓰는 문화에 자기를 맞추려 하기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 받기 위하여 분투노력하는 일은 목사가 쉬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목회하는 그 시대와 장소에서 목회를 위해 필요한 은사와 은총을 주실 수 있다는 확신 가운데 일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를 정의하여 “부활의 증인”(행 1:21-22)이라고 하였다. 부활에 대하여 설교할 때, 사도들은 거부와 불화를 무릅써야 했다. 결국 설교와 같은 기독교적 의사전달은 인간의 경험이나 능란한 구두전달 기술에 의존할 수 없다. 설교는 은혜롭게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은사이다. 설교가 “역사(役事)”하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사랑하시는 사람과, 계속 구원되어야 하는 피조물과 만나고자 뜻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은 듣는 사람”(눅 10:16)이다. 대체로 설교가 실패하는 것은 설교자의 보잘것없는 재능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움직이고 존재를 갖게 해 주시는 분, 인간의 예술이나 상상과 전혀 다른 분이 섭리하시는 세상에 관하여 이야기함으로써 청중들이 듣기에 생소한, 복음이 지닌 난해성 때문이다.

설교가 하나님의 은사이기 때문에, 바울이 아테네에서 한 설교가 하찮은 결과를 얻었던 것이 증명해 주는 것처럼 실패하기 쉽다. 우리 인간은 죄 많은 피조물이어서 그 듣는 것이 다른 감각 능력과 마찬가지로 왜곡되어 있다. 때때로 목사들은 설교에 좋은 반응이 없어 좌절감을 느낀다. 그러나 바울이 자기 교회 회중 가운데서 알아 차렸던 것처럼 우리가 땅에 씨를 심고 가꾸면, 거두어들일 열매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신실한 설교는 언제나 복음과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 사이에 나누는 예의바른 대화 그 이상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설교는 또한 주어진 세상에 맞서는 것, 맹렬한 비난공격이자 예고통지이며, 충돌이어서, 이 모든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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