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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밖에서 루터를 찾다
김종길  |  jpic19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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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0월 25일 (수) 01:33:32
최종편집 : 2017년 10월 25일 (수) 18:15:46 [조회수 : 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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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밖에서 루터를 찾다

― 루터의 <로마서 강의> 비판 ―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회가 500년 전의 형편보다 낫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는 교권과 금력에 지배되고, 교회의 윤리의식이 일반 사회보다 뒤떨어지며, 교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의 한 요인으로 신학에 문제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불서인 <벽암록(碧巖錄)>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는 말이 나옵니다.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라는 것이지요. 그런 뜻에서, 작금에 쇠퇴하는 한국 교회가 살아나려면, 개신교회의 시조인 루터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루터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은 그를 딛고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졸고는 루터에 대한 애정을 품고, 그의 칭의론 및 율법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합니다.

 

2. <로마서강의> 비판

 

새로운 관점

샌더스(E. P. Sanders)에 따르면, 제2성전 시대 이후 팔레스타인에 존재한 유대교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에 순종하는 삶은 언약 백성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언약 백성의 신분을 유지하는 방편입니다. 율법 준수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언약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것이지요. 언약적 율법주의를 수용한 던(James Dunn)은 바울 연구를 위한 “새로운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을 제시했습니다. 전통적인(루터신학의) 관점은 개인적이고, 구원론 중심이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인 관계에 집중합니다. 이에 비해 새로운 관점은 사회학적이고, 교회론적이며, 구성원 사이의 수평적 관계에 관심하지요. 저는 ‘새 관점’에서 루터의 <로마서 강의>에 접근하였습니다.

 

칭의론

첫째로, 루터의 칭의론을 검토하겠습니다. 전통적인 칭의론은 그리스도의 대속(代贖)과 의로움의 전가(轉嫁)를 강조했습니다. 루터는 로마 카톨릭이 내세우는 인간에게 내재하는 의로움에 반대하여 밖으로부터 오는 의로움을 주장했습니다. 이 낯선 의가 오직 은혜를 통해 우리 안에 주입되고, 죄인은 의의 전가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되고, 인간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된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가 개신교회 신학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타자의 죄악을 대신해서 죽었다는 ‘형벌적 대속론’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왜곡하고, 인간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억제한다고 봅니다. 로마서 3장 24-25절에 나타난 “속량,” “피,” “속죄제물” 등은 ‘대속’보다 ‘참여’와 관련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 사건에 참여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참여를 요구합니다. 속죄론에서 ‘대속’ 개념을 ‘참여’ 개념으로 해석해야 구원의 의미가 올바르게 드러난다고 틸리히(P. Tillich)는 말했습니다.

‘참여’의 빛에서 볼 때, 칭의 사건도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칭의는 ‘의의 전가’가 아니라 ‘의의 선언’을 의미합니다. 칭의란 신앙공동체 안에서 부당한 관계를 바로잡고 새롭게 설정되는 것을 뜻합니다. 칭의론은 개인의 구원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초기 교회가 처한 사회적 상황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구원받는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누가 구원받는가(하나님의 백성에 포함되는가)’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 사이에 발생한 갈등에 당면하여, 두 집단의 화해를 도모하고 공동체의 일치를 목적으로 바울은 칭의론을 개진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예수의 믿음

라이트(Tom Wright)가 주장하듯이, 칭의의 근거는 ‘예수의 믿음(the faith of Christ Jesus)’입니다. 로마서 3장 21-22절에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πίστις Ἰησου Χριστου)”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믿음은 예수의 신격화와 대속론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입장은 예수(Ἰησου)를 목적격적 속격으로 보고 “예수를 믿는 믿음”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예수(Ἰησου)를 주격적 속격으로 보고 이 구절을 ‘예수가 믿는 믿음’으로 읽으면, 예수는 신앙의 주체가 됩니다. 예수의 믿음이란 신실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포함하여 하늘의 뜻에 순종한 메시아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전통 신학은 예수를 믿음의 대상으로 신격화하였습니다.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을 탈문자화하고 실존론적으로 해석해야 본뜻이 드러날 것입니다. 초기 교회에서 예수를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라고 고백한 것은, 그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충분히 증거하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모범적으로 대변했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믿음이 뜻하는 바는, 신자가 ‘새로운 존재(New Being)’이자 믿음의 전형인 예수와 연합하여, 주체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참여하여, 예수처럼 믿고 예수처럼 살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믿음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라는 주제와 연결되고, “새로운 케리그마로서의 선생 예수”와 만날 수 있다고 봅니다.

 

율법관

둘째로, 루터의 율법관을 살펴보겠습니다. 루터는 ‘율법’을 ‘믿음’에 대립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율법주의 대 복음주의의 프레임으로 몰아갔습니다. 바울 서신에 나타난 갈등을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바울의 은혜신학 사이에 발생한 논쟁으로 단정했습니다. 유대교는 인간의 노력으로 의롭게 되는 율법주의에 의존했고, 바울은 ‘믿음’을 구원의 근거로 보는 은혜신학을 주장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바울이 반대한 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유대인의 신분을 내세우는 민족적 배타주의입니다. 예수 운동을 통해 유대교를 갱신하려 한 바울은, 우리의 생각보다 유대적이고 율법에 대하여 우호적이었습니다. 로마서에서 ‘율법’이라는 용어는 문맥에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거나 긍정적인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비판한 율법은 신분의 표식으로 사용된 안식일, 할례, 음식물 등에 관한 제의적 법규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유대인이 독점하고 민족적 편견을 부추기어 교회를 분열하는 부정적 의미의 율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올바른 삶의 길로서 선사한 율법, 곧 토라 자체를 바울이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율법과 복음은 모순개념이 아닙니다. 로마서 10장 4절에서 증언했듯이, 그리스도는 율법의 폐기와 보존의 대립을 지양하고 복음을 성취한 것입니다.

 

3. 나가는 말

이상에서 간략하게나마 루터의 칭의론과 율법관을 검토하였습니다. 칭의는 의의 ‘전가’가 아니라 의의 ‘선언’을 의미하며, 신앙공동체 안에서 부당한 관계를 바로잡는 제도적 장치를 뜻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믿음’에 대립하는 것으로 파악한 루터의 신학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이 반대한 것은 율법이 아니라 유대인의 신분을 내세우는 독선적인 신앙태도였던 것입니다.

루터는 역사의 물길을 바꾸고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기록한 위대한 인물이지만, 그의 신학사상은 역사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합니다. 그런데 개신교회는 바울이 전달한 원래의 메시지보다 후대에 굴절된 루터의 해석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과제는 루터를 넘어서 성서본문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의 말씀으로써 세상을 변혁하는 것입니다.

 

(※ 이 글은 10월 23일 감신대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년, ‘以後’ 신학: 루터 밖에서 루터를 찾다> 출판기념식에서 발표한 논문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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