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에서 사리가 잘 나온다. 30때도 나오더니 이 번에도 나왔다. 죽음 후에 사리가 나와야 빛이 날 터인데 이렇게 타이밍을 못 맞추고 있는 것이다. 사리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앰블런스를 타고 응급실을 통해서 입원을 했다. 처음에 입원을 하게 된 것은 가슴의 고통 때문이었다. 몇 시간 고통이 계속되어서 앰블런스를 불렀는데 병원으로 가는 십 여분간의 시간은 지옥의 경험이었다. 결국 모르핀 주사를 맞고 응급실에 도착한 이 후로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되는 주사와 기다림, 검사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1 주일 동안 나는 평생 해보지 못할 귀한 경험을 했다. 그것은 돈을 전혀 내지 않고 평등하게 취급 받는 완전 공산주의를 경험한 것이다. 공공의료체계의 선진국답게 응급실에서의 처치는 신속하게 진행되었지만 다음 단계부터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절차가 너무 오래 걸려 기다리다 죽을 지경이다. 환자가 돈을 내지 않는 공공의료 제도에서 기다림은 숙명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돈을 좀 내도 좋겠으니 내 차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자본주의에 오염된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곧 속도요 기술이요 품위이다. 우리는 그런 시스템에 익숙해 있다 보니 기다리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조직의 동력은 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종교조차도. 하여간 돈을 쓰던지 벌던지 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하는 조직에서는 효율이 중요하게 되어 있고 쓰는 조직에서는 프로세스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의료가 장사가 아닌 복지 정책인 호주도 그런 경우이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는 최선의 결정을 최단시간에 하는 효율이 필요 하다. 그러나 이 원칙은 프로세스와 충돌한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면 기다리는 것이 일이다. 자칫하면 기다리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도 못 마시고 묶여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이니 참을 도리 밖에 없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큰 고통을 참지만 남을 살리기 위해서 조금의 고통을 겪은 적도 없다는 것을 성찰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3일 밖에 굶지 않았던 내가 내 몸을 위하여 7일 동안 굶어야 했다. 군대 생활이 힘든 것이 내무 생활 탓인 것처럼 굶기도 힘든 것이지만 병실생활이 더욱 힘들었었다. 굶고 주사줄에 묶여 있느라고 몸도 고생이었지만 영어가 고생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말로 아픈 것이 아니라 영어로 아파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하는 영어는 내가 손해 보지 않을 정도는 한다고 해도 의학용어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 나는 도와준 것이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핸드폰으로 만난 구글신이었다. 일단 병명이 나오고 나니 모든 것을 의사 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AI가 발달하면 의사도 없어질 직업이라더니 정말 그럴 만도 했다.

병원에서의 한 주간 경험은 많은 것을 보게 했다. 거대한 조직인 병원은 마치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개미들이 일하는 것처럼 돌아갔다. 입고 있는 유니폼의 색깔에 따라 하는 일과 직책이 구별되었다. 그런 거대조직에는 관료주의가 불가피하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이렇게 거대한 조직과 복잡한 일들이 진행 속에는 분명히 어딘가에 기능이 잘 되지 않는 것들과 개선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터인데 쇄신하는 기능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우선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큰 조직에는 반드시 관료주의가 나타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도 예외일 수 없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퇴원 절차에 관한 것이다. 금요일 수술 후 의사는 하루 밤을 지내고 통증이 없고 혈액검사에서 수치가 나쁘게 나오지 않으면 토요일 아침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토요일 결과가 좋아서 아침부터 퇴원을 준비했는데 퇴원은 의사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침 토요일이라 의사가 많이 없어서 저녁 때까지 기다렸다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You can go.”라고 하고 가서 갔다. 그래서 나는 의사가 무슨 퇴원서류를 작성하고 내가 싸인이라도 해야 하는 줄 또 다시 한참을 기다렸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서 간호사를 찾아가서 물었다. 그랬더니 아무 것도 없고 그냥 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것이 뭐란 말인가? 의사의 입에서 “You can go.” 한 마디를 기다리느라고 하루 종일 갇혀 있어야 했던 것이다. 가득이나 모자라는 병상을 점유하고서.

조직의 관료주의는 조직을 굳게 만든다. 경직되면 부러지기 쉬운 것은 물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사랑과 평화’를 말하던 예수의 조직이 중세기를 거치면서 ‘독선과 권위’의 교회가 되었듯이.

힘 들었던 병원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행복함을 느꼈다. 집값이 세계에서 2 번째로 높은 시드니 기준에서는 오막살이 수준의 집이지만 내 집에 돌아오니 집 구석 구석에 애정을 느꼈다. 인간은 반드시 어떤 공간에 거주하고 마련이고 모든 공간은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생활하는 공간은 나 자신의 일부이기도 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아무리 그 공간이 구덩이 수준이라도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분위기고 뭐고 생각할 여유도 없이 자신이 거주할 한 평의 공간커녕 하룻밤 잠자리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수 천만의 난민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생존’이 분위기이다. 육체적으로 그런 극한의 상황을 거쳐온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적극적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짓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렇게 육체적 극한상황에 치달은 상태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 극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다. 더욱 이런 현상은 밖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것이다. 굳이 테러나 라스베가스 총격 난사 사건처럼 돌발사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가 정신적 극한 상황에 달해 있는지 그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위험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따듯한 관심과 애정으로 대하는 것이 최상의 방탄쪼기일 것이다.

의사들은 검사의 결과를 가지고 환자의 고통의 원인을 찾았다. 신은 인간의 고통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고통에 관심이 없는 종교는 유사품인 것이다. 고통이라고 해도 자기 개인의 고통에만 관심을 갖는 종교는 싸구려 중국제 비슷한 상품일 수 밖에 없다. 인류의 근원적인 고통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종교만이 고급 종교인 것이다.

목사의 설교가 개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면 그런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할 것인지 신중하게 고려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40년 전 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의료진들이 환자에 대한 의료기록이 담긴 차트를 들고 다녔다. 만일에 큰 종합 병원에서 차트가 없어진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차트를 기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주특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컴퓨터로 얼마나 편리하고 신속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통증의 원인을 찾는데 4일이나 걸렸다. 기계가 하는 일은 빨라졌으나 인간이 하는 일은 별로 빨라지지 않은 것 같다.

SF 영화에서는 종종 인간의 신체를 재생산 혹은 부품을 교체하고 뇌는 컴퓨터로 스캔도 하고 복사도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끝없는 과학의 발달이 도달할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복합적으로 모여서 일을 하고 있는 거대한 종합병원을 보면 4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게 느껴졌다. 즉 기계는 달라졌지만 인간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은 오줌이 나오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응급실에서 여러 가지 처치로 갑작스런 몸에 이상이 와서 방광에 오줌이 차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최후수단으로 요도로 작은 관을 집어 넣어 방광에서 바로 오줌을 빼내는 처치를 받게 되었다. 젊은 여의사가 나의 성기를 잡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요도에 관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부끄럽고 말고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여의사는 나의 신체 중에 가장 은밀한 부분을 만지고 있었지만 그 순간 그녀는 과학적인 자세로  의학적 시술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통스런 시술을 하는 동안 나는 몸의 지각이 모두 깨어나서 병원이라는 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메를리 뽕티의 현상학에서 중요한 것은 지각이다. 우리는 지각을 통하여 세계를 알아나간다. 그리고 그 지각이란 감각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그 감각작용은 신체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몸이 단순히 감각기관을 가졌다는 생리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메를리 뽕티는 우리의 몸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육화라고 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의식의 상태에 머물렀다면 메를로 퐁티는 살의 차원으로 구체화 시켰다. 그러니까 실존, 그것의 최초의 형태는 의식이 아니라 인간의 몸뚱이라는 것이다. 즉 의식적인 세계가 아니라 감각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옆 침대 환자의 신음소리, 기침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온 밤을 눈을 감고 지새기도 하면서 1 주일 동안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침대에 묶여 고생 끝에 결과는 겨우 5~6 mm 사리를 하나 빼낸 것이다. 수면 마취에서 깨어 나서 사리를 어째느냐고 하니까 그 귀한 사리를 버렸다고 해서 무척 섭섭했다.

담석의 한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