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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의 미학다름으로 어울려야 한다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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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0월 12일 (목) 07:11:03
최종편집 : 2017년 10월 12일 (목) 07:12:13 [조회수 : 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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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이 있어 고속도로를 규정 속도보다 더 빠르게 달리고 있을 때 앞에서 규정 속도로 달리고 있는 차를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쉽게 추월을 할 수 있을 때는 모르지만 다른 차선으로 바꿀 수 없이 차량이 늘어서 있을 때 말이다. 아니 규정 속도 이하로 달리는 차량이 앞에서 얼씬거리면 어떻게 하는가? 난 가끔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원, 굼벵이를 삶아먹고 나왔남?”

이런 때 나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앞에 차가 여자 운전자일 경우, ‘집에서 밥이나 할 일이지.’ 한다지 않는가? 그러면 그 운전자는 이렇게 받는단다. ‘밥 다해 놓고 나왔어. 이 인간아.’ 성질이 급한 사람은 경음기를 눌러대 다른 사람까지 힘겹게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전조등을 깜빡거려 앞차를 협박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떤가? 한가하게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는데 뒤에서 경음기를 울리며 전조등을 깜빡이는 차를 만나면 당신의 반응은 어떤가? 숨기려 하지 말고 끄집어 내보라. 나의 경우는 속으로 이런다.

“급하기는 원, 1분 먼저 가려다 영원히 먼저 가!”

내가 바쁠 때는 여유 있는 차가 밉다. 내가 한가할 때는 빨리 가려는 차가 밉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생각한다.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면서 그 자기의 입장이나 위치가 모든 진리의 시발점이라고 착각한다. 여기에 대인관계의 깨짐이 있다.

‘남의 신발을 신어보라.’는 서양격언이 있다. 남의 입장을 배려하는 게 쉬우면 이런 속담은 필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남의 입장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역사를 쓰려고 하기에 이런 속담이 있는 것이다. 입장차를 인정하고 자신의 것만이 진리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대인이다. 그러나 남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자신만 주장하는 사람은 소인이다.

분명히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다름이 남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틀림이다. 틀림은 되돌려 다름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머리 스타일도 다르고, 마음 씀씀이도 다르다. 속도 다르고 겉도 다르다. 한 사물을 보고도 천차만별의 생각을 하고 반응을 보인다.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쌍둥이조차도 다 다르다.

세상은 다름이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건설된 세계다. 그런데 그 다름이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는 약속 아래서 말이다. 이 약속을 깨는 사람은 사회성을 잃은 사람이다. 사회성을 잃은 사람은 더 이상 이 사회의 일원으로 공존하기가 힘들다. 자신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다르다. 그러나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다르기도 하지만, 유다가 틀리다는 면에서 서로 단순히 다름이라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것에 대하여 틀리다고 하지 않나 묵상해야 한다. 틀린 것을 다르다고 그냥 넘기지 않나 또한 묵상해야 한다. 우리는 입장차는 있으나 틀리지 않음의 울타리에서 다름으로 어울려야 한다.

 

   
▲ 김학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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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XXX.XXX.79)
2017-10-13 01:13:11
다름과 틀림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과 내로남불 접근법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바탕으로 틀림과 다름을 구분하나요?

1.
백성 홍길동 (曰) 북한 지배층은 백성을 아주 못살게 굴기 때문에 틀렸다.
간첩 송두율 (曰) 북한 지배층 입장에서 보면 북한을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은 우리와 다를 뿐이다.

2.
野人 조국 (曰)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관직에 등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을 등용하는 박근혜는 틀렸다.
朝人 조국 (曰) 촛불혁명에 가담한 사람은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이 있더라도 등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적폐세력과 촛불세력은 다르다.

3.
동성애 반대자 (曰) 틀리고 다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동성애 그 자체를 이해 못하겠다.
동성애 지지자 (曰) 우리는 틀린 것이 아니고 당신들과 다를 뿐이다.

4.
가롯유다 (曰) 나는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예수님을 관청에 신고했고, 신고하면 당연히 나오는 보상금을 받았을 뿐이다. 그 후에 심히 후회하면서 자살하였다.

베드로 (曰) 나 혼자 살자고 법정에 선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였다. 그 후에 심히 자책하였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예수님을 관청에 신고한 사람과 예수님 부인한 사람은 ‘예수 배반죄를 지은 것은 같고’ 다만 죄의 輕重이 다릅니다.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베드로와 비교하여 가롯유다에게 틀렸다는 딱지를 붙이는지 모르겠군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는 다릅니다. 베드로와 비교하지 아니한 채 가롯유다는 틀렸다고 하면 몰라도 베드로에 견주어 상대평가 하면서 가롯유다는 틀렸다고 하면 그 상대평가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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