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연휴 끝에 밀려오는 피로감과 아쉬움이 채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성실한 일상을 지낸 이들이 가끔 받는 선물입니다. 항상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때가 되면 만날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작은아이와 큰아이는 사촌들과 헤어진 후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마음이 쓸쓸하고 섭섭하다며 작은아이가 울자 큰아이도 그만 따라서 울었습니다. 모두 앞집, 옆집에 살아서 매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희 친정아버지의 꿈은 세 딸이 모두 친정 지척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니들과 저는 결혼 후 서울, 경기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남도 등으로 이사를 다니며 친정인 대구와는 먼 거리에 살았습니다. 그 중 가장 먼 것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 고성입니다. 명절이면 부모님과 남동생 내외, 언니들 가족과 저희 가족까지 5가족이 모여 성인 10명에 어린이 7명이 모입니다.  식사만 하고 돌아서면 다시 식사준비여서 “쉬는 날이 더 피곤하다.”며 설거지를 했습니다. 특별한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쉴 틈이 없습니다. 바쁜 중에도 아직 돌이 되지 않은 막내 조카는 낯가림을 하느라 다른 사람이 쳐다만 봐도 떼떼 울음을 울었습니다.

   정신없는 3일을 보내고 떠나오는 날에는 친정어머니가 딸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을 차에 그득히 실어 주셨습니다.  딸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아버지 뒤에서 눈물을 보이신 어머니가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저희 집의 두 아이처럼 친정어머니도 딸들을 보내면서 쓸쓸하고 섭섭하셨나봅니다. 저희들을 기르실 때도 쉽지 않으셨겠지만 다 자라서 결혼하고 나니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가끔 와도 이내 떠나버리는 자식들로 인해 정을 주고받는 정도를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는 또한 저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이번 명절에는 아이들과 함께 경주도 들렀습니다. 경주는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천년고도의 위엄을 자랑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여행에 빠지지 않는 곳이 경주였던 저는 20년 만에 경주를 찾았습니다. 제 기억속의 경주는 종아리가 굳어지도록 보문단지를 하염없이 걸어가면 높은 능이 하나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다시 찾은 경주는 여전히 많이 걸어야했습니다. 20년 전에는 왜 그렇게 걸어야만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유적지이니 편리함만을 위해서 길을 내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다리가 아프다며 울상이 되어 걸어 다닌 저희 아이들도 언젠가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좋았던 점은 야간에 첨성대 건축에 대한 해설을 들은 것과 국립경주박물관 해설이었습니다. 둘 다 다른 여행팀들이 듣고 있는 설명을 귀동냥으로 들었습니다. “첨성대에 어떻게 올라 가요?”는 작은아이의 궁금증도 풀렸습니다. 첨성대 중앙에 난 작은 정남향의 문으로 들어가면 내부에 흙이 채워져 있어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며 사다리를 놓고 우물 정자의 천장돌까지 올라갈 수 있다 했습니다.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이 지나는 경주는 삼국사기에 왕궁의 뜰이 갈라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지진이 상습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이지만 땅을 15미터  파고 다진 후 첨성대를 세웠기에 작년 지진에도 천장돌만 조금 흔들렸을 뿐 첨성대는 무너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짧았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명절 여행과 가족들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진부령으로 돌아와서 주일 예배를 드린 후 남편과 아이들은 뒷산에 올라가 떨어진 잣을 몇 송이 주워서 내려왔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가을에 떨어진 잣송이를 주워 말린 후 털어서 추운 겨울 내내 집에서 잣을 깐다고 했습니다. 저희도 손으로 훑어보니 잣 한 송이에서 잣이 100여개는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플라이어로 남편이 단단한 외부 껍질을 깨면 제가 얇은 속껍질을 깠습니다. 까면서 먹으니 다 까고 나서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까는 족족이 누군가의 입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어 버린 잣처럼 지나간 연휴는 시작과 함께 과거가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연휴로 넘어가는 마음의 거리가 1센티라면 연휴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100미터 달리기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명절은 또 돌아오고 가족들은 다시 만날 수 있기에 오늘도 힘을 냅니다. 잘 쉬었으니 아이들은 학교에서 저는 직장에서 남편은 교회에서 충직한 일꾼으로 새 날을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껏 펼쳐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