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시월 초, 해란초를 사진으로만 보고 두해 가까이 궁금해만 하고 있을 때 친구가 사는 강릉을 방문했습니다. 짭쪼롬한 갯내음을 들이마시며 들어선 바닷가에 오밀조밀 해란초가 모여 있었습니다. 꽃 필 시기도 아니었고 해란초를 찾아 나선 길도 아니었기에 그 만남은 말 그대로 보너스였습니다. 발밑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생각보다 작았고 사진 속보다 훨씬 이뻤습니다. 폭신한 계란찜 같기도 하고 고소한 팝콘 같기도 한 첫인상 때문에 마냥 즐거웠지요.

난초는 아니지만 난초처럼 귀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바닷가에서 소금기를 견디며 팍팍한 모래땅에서 이리 환한 꽃을 그리 오랫동안 피워내니 난초에 못지않은 강단이 있는 게지요. 7~8월에 꽃이 핀다고 적혀 있으나 봄 가뭄이 심해 꽃들이 몸살을 앓았던 올해 6월초에 만났고 작년엔 가을빛 물씬 나는 10월 초에 만났으니 고개가 갸우뚱 해집니다.

줄기가 위로 꼿꼿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옆으로 비스듬하게 자랍니다. 잎은 은은하게 은빛이 섞여있어 평범한 초록색이 아닙니다. 노오란 꽃잎도 특별한데 가운데 주황빛 알맹이는 더욱더 별나 보이고 꽃잎 뒤로 뾰족한 꿀주머니도 인상적입니다. 이름하고는 달리 약초들이 많이 모여 있는 현삼과로 분류되네요.

남들은 스쳐 지나치는 꽃을 혼자서 알아보고 담는 그 은밀한 기쁨은 쾌감에 가깝습니다. 또한 꽃 속에 들어있는 아름다운 창조주의 솜씨를 나누고 싶어 민망한 결과물이나마 세상에 드러낼 때는 상큼한 긴장감마저 돌기도 하구요. 꽃과 꽃사진에 버무려져 있는 시간들은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생활 속 에너지, 삶의 활력소인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