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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현상과 방언 장사현대 방언은 거의 다 가짜다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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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0월 02일 (월) 11:14:29
최종편집 : 2017년 10월 11일 (수) 17:27:42 [조회수 : 1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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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에 할례파가 있었다면 현대 교회에는 방언파가 있다. 과연 랄랄라 방언은 하늘의 비밀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당 헛소리일까. 가장 중요한 점은 사도바울이 말한 정상적인 방언은 언제나 통역이 가능한 언어였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다른 곳도 아니고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라(고전14:28)"고 했다. 이 구절의 의미는 매우 중대하다. 간혹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다른 방언과 달리 인간의 언어 체계가 아닌 마구잡이 랄랄라여도 무방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이는 대단한 오해다.

우리는 흔히 사도행전 방언은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고, 고린도 방언은 남들도 자신도 못 알아듣는 방언이었다고 구분한다. 그 말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고린도교회에는 통역할 수 없는 가짜 방언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전14:13)"고 강조했다. 정상적인 방언은 통역이 가능한 언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당시 통역 불가 랄랄라 현상이 고린도교회에 만연한 이유는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하고 대적했던 거짓 사도들의 선동이라고 보아야 옳다. 고린도교회에는 심각한 문제가 많았고 특히 거짓된 가르침으로 인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고후11:4)'까지 받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경의 방언은 '지방 언어'였다


바울은 고린도 서신에서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고전14:11)" 라고 했다. 이 구절은 성경이 논하는 방언이란 땅의 언어이고 그것도 외국어라는 강한 암시를 준다.

게다가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고전14:21)"고 하신 구절을 보면 바울이 언급한 방언이 백성이 들을 수 있는 일반 언어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본래 통역이란 언어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것이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통역하라고 요구하는 미친 사람은 없다. 언어(Language)와 소리(Sound)의 차이는 명백하다. 문법적 체계를 지니고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게 언어다.

반면에 빗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파도 소리는 그냥 소리일 뿐이다. 거기엔 아무런 문법도 없고 체계도 없다. 그런 면에서 통역 불가 '랄랄라'나 '으다다다'나 '개굴개굴'은 결코 언어도 아니고 방언도 아니다.

성경의 방언이 반드시 외국어라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고전14:22)"이라는 구절에 있다. 이는 방언의 진정한 목적과 용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본래 방언은 언어가 다른 이방인 전도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그게 당연히 놀라운 표적이 되는 것이다. 만일 외국어가 아니라 뜻도 모르는 랄랄라로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 말한다면 그게 어찌 표적이 될 수 있겠는가. 도리어 크게 비웃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미 믿는 자들을 위해서는 굳이 방언이 필요 없다고 설명한 것이다.

 

   
▲ Thousands gathered to worship during the Azusa Now gathering ⓒcharismanews.com

 

'아주사 운동(Azusa Rivival)'은 교회사적 돌연변이


사실 신약 초기의 교부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무려 1800년 동안이나 기독교 내부에서 방언이 널리 유행하여 신학적 관심사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교회 역사상 간간이 나타난 극소수의 신비주의 집단들 외에는 방언이 일반화한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100여 년 전 이런 큰 흐름을 깬 돌연변이적 사건이 있었다. 바로 1906년의 '아주사 부흥운동(Azusa Rivival)'이다. 당시 미국 LA타임즈에 실린 그 집회 기사의 제목은 '괴기한 방언의 바벨탑 쌓기'였다. 그들은 1909년까지 3년에 걸쳐 매일 집회를 지속했고 수천 명이 모여 성령의 은혜에 감동했다고 주장한다.

아마 이게 본격적인 랄랄라 운동의 시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갑자기 들불처럼 퍼진 여러 방언 운동들은 대체로 이 아주사 방언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래서 상당수 오순절 계통이나 신사도 계통 교단들은 아주사 방언을 마치 성지처럼 찬양한다.

그럼 대체 무슨 이유로 현대 방언이 이처럼 별안간 성행하게 되었을까. 특히 미국과 한국에서 그 현상이 더욱 강하다. 다른 여러 요인도 있겠지만 나는 이게 현대 교회의 세속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개신교가 쇠퇴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방언이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헌데 미국교회와 한국교회는 근세기에 큰 부흥을 이루었다. 교회 역사에 전무후무한 수만 명의 초대형 교회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즉 교회가 돈과 권력이 모이는 육식공룡이 되면서부터 영적으로 혼탁한 성령 운동이 동시에 태동했다. 아니 역으로 보자면 왜곡된 성령 운동이 사람을 더 많이 모으고 교회당을 더 크게 키웠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터무니없이 성행한 랄랄라 방언


하지만 아주 약간의 상식만 있는 사람이라면 랄랄라 방언이 얼마나 허구이며 기만인지 매우 쉽게 알 수 있다. 현대 방언은 신학의 문제이기 이전에 상식의 문제다. 누구라도 좋다. 요즘 소위 통역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 10명만 모아서 특정인의 랄랄라를 5분 동안 들려주고 각자 노트에 통역을 적으라고 하면 된다.

만일 그 중에 단 두 사람의 내용만 일치해도 나는 현재의 주장을 모두 취소하고 랄랄라를 성령의 사역으로 즉시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 간 고린도식 랄랄라 방언을 동시에 통역해서 서로 일치한 기록은 단 한 건도 없다. 백 명이 하면 백 명이 다르고, 천 명이 하면 천 명이 모두 다르다.

설사 백 보 천 보 양보하여 많은 오순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외국어가 아닌 '하늘의 언어'로서 랄랄라 방언이 실제 성경적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가정하더라도 여전히 큰 의문이 남게 된다. 왜 현대 방언은 한결같이 모두 랄랄라로만 나타나냐는 거다.

만일 현대 방언이 정말 그들의 주장처럼 성령의 사역이며 성경의 방언이 현재도 그같이 반복하여 재현된다면 외국어 방언 또한 동시에 많이 나타나야 더 정상이 아니냐는 것이다. 균형상 적어도 반 정도는 외국어 방언이 나타나야 정상이다. 그런데 왜 그 좋은 외국어는 다 놔두고 하필이면 그토록 난잡한 랄랄라만 터무니없이 성행하냐는 것이다.

한국교회 랄랄라 업계의 대부격인 C목사의 방언을 녹음해서 들어보면 이건 아예 언어도 아니고 거의 그냥 육갑떠는 수준이다. 게다가 어쩌다 뱉어내는 그의 통역은 더욱 가관이다. 초등학생도 그걸 들으면 배꼽을 잡는다.

교회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랄랄라가 성령의 역사란 증표나 근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도리어 악령의 역사일 가능성이 거의 100%다. 사탄은 속이는 자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다가온다. 그래서 제 아무리 경건하고 신실한 사람이 방언을 한다고 해도 그걸 함부로 포용해선 안 된다.

 

오순절 방언은 외국어다


장로교 보수 교단에 출석하는 내 가까운 지인 중에도 학생 시절부터 오랜 기간 랄랄라를 했던 분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 늦게나마 그것이 가짜인 걸 깨달고 단호히 버렸다. 본인이 구하지도 않았는데 혀가 꼬이며 저절로 받았다거나 또는 자신이 매우 간절히 구해서 랄랄라를 한다고 해도 그게 성령의 은사라는 보장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아울러 힌두교나 불교나 이슬람교 일각에서도 얼마든지 랄랄라 방언이나 접신 현상이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더구나 랄랄라 방언은 개신교를 온통 목회업자의 장사판으로 물들였다. 삯꾼 목사들은 랄랄라를 지극히 좋아한다. 이보다 더 좋은 종교 영업이 없다. 랄랄라에 빠지면 신도들이 종교 생활에 더 몰두하고 헌금도 더 열심히 내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동안 방언 장사를 크게 벌린 목회자치고 부자가 아닌 사람이 별로 없었고, 또한 그 끝이 좋은 사람도 거의 없었다.

아무튼 앞으로 랄랄라 방언과 연관해서 소위 '오순절운동'이란 말은 함부로 쓰지 마시기 바란다. 이는 성경의 방언에 대한 모욕이며 신도들을 속이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오순절에 일어난 방언은 분명히 유라시아 지역 15개 이상의 다양한 언어였지 뜻도 없고 씨알도 없는 랄랄라는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방언과 관련하여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고전14:9)"고 경고한 가르침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 개신교의 무분별한 방언 지지자들은 이제 무당 작두 타기를 멈추어야 한다. 무당이 날선 작두를 탄다고 해서 그것을 성령의 역사로 보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랄랄라는 교회모독이며 동시에 신성모독이다. 자기 자신조차 이해 못하는 헛소리나 환각에 심취해 가짜 방언이나 귀신 방언에 빠진 걸 신령한 신앙 생활로 오도하는 기만 행위는 단호히 근절해야 마땅하다.

랄랄라는 무당 헛소리다. 그리고 헛소리는 기도가 아니다. 그건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단순히 시간 낭비, 심력 낭비, 그리고 인생 낭비일 뿐이다.


"우리는 공중기도에서나 개인기도에서나 이해력을 동반하지 않은 말은 하나님께서 심히 불쾌하게 여기실 것이라고 느낀다." - 장 칼뱅(Jean Calvin),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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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나누기(4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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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콜 (82.47.232.86)
2017-10-05 06:18:29
토론에서 분노하는 자는 이미 패한자다. 게다가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배려가 없는 자는 지식과 인격의 가벼움을 의미한다. 성경구절을 많이 인용한다고 해서 맞는 것도 아니고, 원어를 사용한다고 유식한 것도 아니다. 인터넷 시대에 그런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오히려 남용되고 오용되어 폐회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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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왜곡된 신앙은 어디서 오는가. 바울이 한말은 100% 맞을 거라는 맹신 때문이다. 바울은 청동기시대 끝자락에 살았던 인물이다. 눈병이 나면 진흙으로 짓이겨 치료하던 시대의 인물. 나는 그가 인터넷 시대에 사는 우리보다 더 유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지창조도, 출애급도, 호렙산 올라간 모세의 권능의 지팡이도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이미 학문적으로 모두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만 그 학문의 성과들이 성도들이 모르게 감춰지고 차단되고 있을 뿐이다. 종교적 기이한 현상들은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을 때가지만 기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잊지 말자.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구굴링으로 세계를 헤집고 다니지 않는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이 입신해서 지옥.천당에 다녀온 것으로 믿었지만, 그것은 생전에 학습된 교육의 영향을 받아 죽는 순간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임을 뇌심리학/뇌과학에서 밝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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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은 또 어떠한가
어느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방언을 할 줄 몰랐으나 "전임 목사의 방언에 깊은 인상을 받은 신도들의 압력 때문에 헬라어 성경을 마치 방언인 척 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방언은 종교를 막론하고 다양한 주술적 진언들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방언을 내뱉는 상태에 들어가면 시간감각이 사라져 10분 정도 기도한 것 같지만 1시간이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극도의 흥분이나 격양 상태가 되면 주위를 인지하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방언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토속종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무당(셔먼)의 트랜스 상태나, 환시, 환청, 환각 등의 현상도 동일하다. 고행이나 명상을 통해 종교적 무아지경을 경험하는 기타 다른 종교들과 비슷한 부류로 볼 수 있다.

가끔씩 불교 승려들의 방언체험이 보고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하는 방언이 실제로 기독교에서 믿는 그 신에 관련된 현상이 맞기는 맞는 것인지 확정해서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실제로 기독교 현상이 아니라 보편 종교적 체험으로 관련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우리는 성서를 해석할 때 다른 학문들의 성과들에서 도움과 자문을 구해야 한다. 융합의 시대에 나홀로 성서해석은 살아남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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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
일봉성도 (122.101.20.78)
2017-10-12 08:21:59
굳이 방언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남들이 이상한 말로 기도를 하니까 그 기도의 뜻이 뭔지도 모르고 그들을 따라서
흉네내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것 같던데 그러지 맙시다.
옆에서 그말을 듣는 사람들 속으로 웃습니다.
목사님도 마찬가지로 잘 뜻도 모르는 방언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간혹 설교
시간에 말씀을 하시는데 앞으론 그렇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방언으로 기도를 안하면 어떻고 그 이상한 발음 안하면 어떻습니까?
한국말로 진실되고 정성스럽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맘과
그의 정성에 대해서 다 아시지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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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
그리스도인 (71.56.214.153)
2017-10-11 12:10:33
방언의 은사

http://harvestdream.tistory.com/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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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방언이란 (221.155.166.184)
2017-10-11 11:59:57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어느 종교나 신을 섬기고 신이 임하면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사단의 세계에도 방언도 있고 예언도 있고 작두도 탄다
성령의 세계에도 성령이 성도들의 몸에 임하면 여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그 중에 하나가 방언이다.
성령의 역사인지 사단의 역사인지는 본인이 체험해 보면 안다
방언을 받은 자들이 예수님을 체험하고 더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주님을 더 사랑하고 더 헌신하는 것을 많이 봤다.
능력방언을 받아 무속신에 눌려 있는 사람들을 많이 축사하여 자유하게 하기도 한다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면 어찌 그 나라가 서겠는가 ?
다른 사람들의 쓴 책 읽고 기적이 없다느니 방언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면 현재는 사람들에게 지식인 처럼 유식해보일지 모르지만 교회내 역사하시는 성령님은 탄식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때는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신령한 것에 대해 모르면 잠잠히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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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5
김경환 (110.47.216.79)
2017-10-10 10:49:25
랄랄라 방언을 못 믿는다면? 못 믿는 자에겐 바울은 사기꾼일 뿐이다!
바울이 접신(接神)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즉 사도행전 9장 7절과 22장 9절을 통해 보는 바울이 접신(接神)한 경우입니다.

사울과 함께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그 일행은 ‘빛과 소리’를 동시에 체험했는데 사울은 일시적으로 눈이 멀어지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고, 나머지 일행은 무슨 소리를 듣긴 들었는데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고 눈도 멀쩡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행이 눈이 멀어진 바울의 손을 이끌고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예수님 (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 (曰) Who are you, Lord?> 바울이 접신(接神)하는 순간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그 일행은 접신(接神)하지 못하여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누구는 접신(接神)하고 누구는 접신(接神)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상호간에 랄라라 방언으로 소통한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소리를 듣기는 들었는데 그 의미를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 (曰) Who are you, Lord?> 이건 바울이 자기는 이러 이러한 대화를 예수님과 나누었다고 후에 설명한 것입니다.

랄랄라 방언을 부정하는 자는 성경을 모독하는 자이다. 그렇지 않다면 바울을 사기꾼으로 보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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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5
깨진돌 (112.172.204.73)
2017-10-10 08:30:19
랄랄라 방언 장사
그게 기독교라 하는 개독교의
분명한 명패이지요.
아닌가요?
교회와 기독교에서 하는 대다수의 일은
다 거기서 거깁니다.
랄랄라 방언장사!
흥겹게, 더 흥겹게, 더더 흥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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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0
라라라 어어어어 으으응는 구라 (175.223.15.200)
2017-10-09 09:09:14
라라라 아아아아 어어어 으으으 데데데 많이하지??
목사들 부흥강사들이 통성기도시키고 좀 기도하다가 기도 할 내용이 없으니 라라라라 으으으 데데데 한 1-2분하다가 아버지 해주고 다시 에데데데 하지않냐?? 양심이있어라 그럼 라라라는 무슨뜻이고 데데데는 무슨뜻이야?? 라가 어디 방언이도 같은 음이 반복되는데 라는.단어 어찌보면 고유명사일거 아니야? 아버지야 주여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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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잔나비 (221.167.226.172)
2017-10-08 21:17:06
잠실 유리성교회에서

목사도 성도다.

성도는 영적 지도자다

부목사님께서 하나님 말씀 선포 했다.

세습자 아들아.

하나님의 사자를 건드리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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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
엘코트 (211.200.186.37)
2017-10-08 19:58:58
무식이 용감!!!
속담에 '서울 가 본 놈하고 안 가 본 놈이 싸우면 안 가 본 놈이 이긴다'더니 옛 말 하나도 그런적 없구나!
방언 기도의 체험이 없으니 그 실제를 알 수 없어서 이론과 논리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구나!
왜 당당뉴스인가, 뭐가 그리 당당할까했는데 역시 무식이 당당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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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5
김경환 (110.47.216.79)
2017-10-08 18:46:28
아래의 ‘논쟁불필요’님의 물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변
묻지마 믿어派(목사 빠돌이) vs 묻지마 믿어派가 꼴사나운 반대파(흠집 빠돌이)

카톨릭 반대만 하다가 입이 아파서 독립한 루터파 등의 그 무신파가 그래도 신사입니다. 유병언類조차도 그럴싸한 파벌을 만들어 독립했습니다. 뒤에서 목사 뒷담화까는 사람들보다 유병언類가 훨씬 더 정직합니다. 왜냐? 목사 뒷담화까는 대신 여하튼 자신의 이론을 내세워 독립하였잖아요! 일제시대에 독립운동한 사람과 일제체제에 순응하면서도 군국주의 뒷담화나까면서 한숨만 내쉬는 사람은 비교대상이 되지 안 듯이요.

크게 보아 예수교의 종파가 ‘3만’인가 ‘3십만’인가 됩니다. 肉身化 부활을 믿지 않는 영지주의자부터 하여 肉身化 부활을 믿는 문자주의자도 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교황과 마리아를 섬기는 카톨릭(로마, 동방정교회 등등)도 자기가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했다고 주장합니다. 헨리가 새로이 장가가려고 창시한 성공회도 물론이고요.

‘3만’인가 ‘3십만’인가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잡든가 아니면 따로 새로이 창시하든가 둘 중을 하나를 택하면 이런 토론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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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
잔나비 (221.167.226.172)
2017-10-07 17:19:11
방이동 나라도둑놈.

설교 기도 시간에 방언으로 기도.

세습자 아들은

방언이 좋다고 자기 자랑.

난 성경을 모른다고 자뻑.!!!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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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
게세마네 (175.117.158.104)
2017-10-07 02:19:27
통역과 번역 사이
굳이 영어를 들먹이는 무례함을 양해 바라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통역은 interpret 이고, 번역은 translate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방언을 통역한다는 말은 성경에 있는데 방언을 번역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성경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있지만 성경이 통역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통역은 통역하는 자가 자신이 알고 이해하는 단어와 지식을 동원해서 다른 언어로 바꾸어 주는 것이고 이때 때로는 통역자가 감정을 동원해서 원문(방언)의 뜻을 다른 사람이 알아듣도록 새로운 문장으로 바꾸어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번역(translate)한다는 것은 원문에서 사용한 단어의 뜻과 문장구조에 가장 가깝게 다른 언어로 바꾸어 쓰는 작업이며, 가능한 한 원문의 내용이 충실하게 전달되어야 하고, 번역하는 사람의 개인적 생각이나 다른 해석이나 보충해석이 들어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방언에 대해 연구한다는 사람들의 기본 자세는 거의 전부 다 "자기가 뭔가 되는, 뭔가 있는, 뭔가 아는 그런 아주 잘난" 존재로 우기면서(실은 쥐뿔도 아님. 모든 인간이 티끌에 불과한 존재임) 매우 시건방지게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함부로 농단하는 가소로운 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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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0
무등산 (112.133.131.124)
2017-10-06 21:45:45
성경대로 증거하고 선택하기....

https://youtu.be/q-Vh26z6N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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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무등산 (112.133.131.124)
2017-10-06 21:24:50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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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세우기 (125.177.28.178)
2017-10-06 17:23:27
방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데
방언은 실재하고, 성령의 역사이고, 신집사님의 글은 방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랄랄라 방언에 대해 지적하는 것입니다. 기사를 비판할 때, 글의 요지를 잘 읽고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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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면서 (183.108.197.56)
2017-10-06 15:11:34
신성남 집사님 방언에 대하여서 성서적, 신학적 공부를 조금 더하시고 글을 쓰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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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47.216.79)
2017-10-06 06:39:26
‘푸름이’님의 일갈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
‘푸름이’의 견해를 나 나름대로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단 1사람 예수뿐이었다.”라는 식의 겸손함이 없는 학자(먹물)들의 주장 역시 그들의 편견이 내재되어 있기에 바울, 칼뱅, 루터 또 그 요즈음의 무신 유명합네 하는 작자들의 一說(그들의 강변)을 비판 없이 추종하는 것도 참으로 웃기는 일이라는 표호라 봅니다.

예수님 이외의 어느 누가 말해도 ‘성령’이 임재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검증되지 아니한 하나의 이론, 하나의 설교에 불과합니다. ‘성령’이 임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바울부터 시작하여 동네 아무개 목사까지 말입니다. ‘성령’이 임재했다는 것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증명합니까? 이러니 누구는 참이고 누구는 거짓이고 하는 걸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바울에게 성령이 임재 했는데 같은 기독교인인 동네 아무개 목사(집사 등)에게 성령이 임재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요.

가령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모하멧도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과학적으로 입증을 합니까? 코란 전체를 따르든지 아니면 거부하던지 둘 중 하나이지요. 모하멧이 직접한 말보다 그 제자들이, 愛妾과 長女가 한 말이 오히려 더 많을 지경입니다. 모하멧 死後에 떡하니 코란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건 모하멧의 말이고 저건 애첩의 말이다.”라고 어떻게 구분을 합니까? 성경도 오십보 백보입니다. 성령이 임재했고, 천사를 보았고, 부활한다고 한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고요? 이건 완전 코미디입니다.

과학(고고학, 비교분석학, 원전연구학 등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성경은 다를 것이고, 자기 확신(맹종이든 무엇이든 간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성경은 다를 것입니다. 이 둘을 융합하여 바라보는 성경 역시 다를 것입니다.

‘과학(고고학 등등)’이 성경구절을 들고 ‘자기 확신’을 공격할 때 항복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자기 확신’ 역시 과학(고고학 등등)의 맹점을 파악하여 성경구절을 들고 금방 반격할 것입니다. 이게 로마 카톨릭, 순복음교회 등이 건재하는 이유입니다.

글 쪼가리 하나로 세상을 바꾸겠다? 2000년 동안 성경을 읽고, 성경을 나름대로 해석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인간본성이 변하지 않는 데 무슨 수로?

성경구절을 들먹이면서 ‘자기 확신파’를 깨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쉬울 것입니다.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지푸라기 조금 건지는 데 불과합니다. 유럽 쪽에는 지푸라기가 조금 많이 발생했습니만.

통으로 믿느냐? 통으로 안 믿느냐? 의 문제입니다. 선제공격한 데 대해 남이 반격하는 걸 감수하지 못하면 자기 이론을 내세우지 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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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110.70.52.187)
2017-10-06 06:34:50
글로 쓰는 방언 보았나?

중간 중간 한글로 통역 된 방언 은사 보았나?

그분은 지금 사모가 되셨고

난 1981년에 봤다. 생생하다.

집사야 봉사 문고리 잡는 소리 작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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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성신도 (38.106.0.2)
2017-10-06 06:26:02
푸름아 너 임마 입에다가 걸레물었니?
니 글이 아무리 내용이 알차고 성경에 기반을 두었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반말짓거리로 찍찍대면 아무도 니 글에 동조할 인간 없다. 나도 너랑 똑같은 어조로 지금 댓글을 쓰는데 이 댓글 읽으면 기분 좋니?

뭔가 있어보이려고 굳이 영어로 안써도 괜찮은 표현을 니가 영어로 싸질러 대길레 나도 너한테 영어로 알려주고 싶은 표현이 있다. Do un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unto you. 심호흡 한번 하고 깊게 되뇌이면서 읽어봐라 그리고 니 머리로는 니 문제가 과연 뭔지 알아듣기 쉽게 타일러줘도 못알아 먹는거 같으니 죽을때 까지 걍 그대로 못배운티 내면서 살아라.

난 솔직히 니 글에도 크레딧을 주고 싶고, 니가 왜 시간죽여 가면서 여기다 댓글을 다는지 이유도 대강은 알고 있다. 다만 꼭 반말짓거리에 못배운 티를 내면 낼수록 누구 이름에 먹칠하는지는 똑똑히 알고 인터넷질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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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97.121.118.208)
2017-10-06 03:36:12
영어와 희랍어는 같은 뿌리이기에 오역이 되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희랍어가 엄두가 안나면 최소한 영어 성경이라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또한 영어 성경을 네가지 버젼 정도 본다면 더욱 더 오역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럼에도 확신이 서지 않을 때면 희랍어 성경을 찾아보고 간간히 그에 맞는 문법책을 “스스로” 찾아보라. (인테넷에 남이 해 놓은 희랍어 해석 말고!)

니가 희랍어 하는 것을 만고의 벼슬로 아는 것 같기에 희랍어 예를 들어 주겠다.
14절 :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if I pray in a tongue; my spirit prays, ἐὰν γὰρ προσεύχωμαι γλώσσῃ, τὸ πνεῦμά μου προσεύχεται,
ἐὰν(에안) - if, γὰρ (가르) - indeed, προσεύχωμαι (프로슈코마이) - I pray , 1인칭 현재 내가 기도한다. 중간태임. “내가” 기도함을 강조함, γλώσσῃ (글로세) 방언으로 τὸ (토 -the 정관사) πνεῦμά (프뉴마 spirit) μου (무- 나의) 나의 그 영이, προσεύχεται – 현재 3인칭 중간태임 – 기도한다. 즉 나의 그 영이 기도한다. 그 주체 – “그 영이 스스로” 기도함을 강조함! – 이것이 중간태의 특징임. 즉 영적 기도임을 말하고 있다.

즉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이것은 1인칭 현재 가정법이다 - 누가 봐도 순수 가정이다. 즉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이다. 할 수 있음을 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영이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이 한가지만 봐도 소위 먹물이라는 인간들이 얼마나 자신의 선입견으로 자신의 반대되는 입장을 폄하하려는지 알 수 있다. 어떻게 가정법이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할 마음이 없다고 해석하는가!

그리고 원문을 잘 살펴보면, 누가 보아도 speaking in a tongue - λαλῶν (랄론) γλώσσῃ (글로세) 혹은 praying in a tongue – προσεύχωμαι (프로슈코마이) γλώσσῃ (글로세) 둘 다 “방언으로 기도함”을 표의하고 있다. 마치 한국말에서도 교회에서 “내가 방언을 말할 때” 혹은 “내가 방언 기도를 할때” 두가지 표현 다 방언 기도할 때를 말하는 것이지, 난데없이 내각 방언을 “말할 때” 라고 했다하여 누구도 그가 “외국어를 구사할 때”라고 이해하지 않는다.

이것은 14장2절만 보아도 알 수있다. 즉 바울은 말하기를 ὁ (호 – the [one]) γὰρ (가르 – 진정) λαλῶν (랄론 – 말하는) γλώσσῃ (글라세 – 방언으로) οὐκ (우크 – not) ἀνθρώποις (안쓰로포이스 – 사람들에게) λαλεῖ (랄레이 – 말한다) ἀλλὰ (알라 – but) Θεῷ· (쎄오 – 하나님에게) 즉 그가 진정 방언으로 “말할 때는” – 즉 방언으로 기도할 때는 (난데없이 바울이 외국어 구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야!) 그는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말하는 것이다 – 즉 기도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심지어 방언으로 외국어를 한다 하여도 그것은 그가 그 외국어를 터득하여 말하는 단순한 외국어 구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 방언, 즉 방언 기도를 함을, 영적 기도를 함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먹물들, 진보주의 자들은 그저 학적인 것만 붙잡고 늘어지며, 온갖 추측과 상상으로 “새로운 말”이라는 이름하에 논문을 쓰며,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성경을 믿는 것을 무식한 것, 고상하지 못한 것 쯤으로 업신여긴다. 그들은 인간의 교만한 이론만 믿을 뿐,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느다.

그리고 우매한 먹물 추종자들은 그런 “학적인 것”만 붙잡고 자신은 신앙을 위해 아무것도 참여하지도 않고, 그들과 함께 살지도 않으며, 돌보지도 않으며, 이해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스스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요, 스스로 성경을 깊이 있게 읽는 것도 아니요 (영어로, 여러가지 버젼으로, 그리고 원어로) 오직 그 학적인 것 (자신이 터득한 것도 아닌, 남의 것, 그저 어디서 읽은 것)만이 만고의 고상한, 정당한 진리로만 단정지어 버리고 함부로 비판만 하고 있는 것이다. This is obscene nonsense and shame!
(루터도 칼뱅도 종교재판을 해서 많은 사람을 죽인 나약한 인간이야! – 그렇다고 내가 그들 말을 다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야.)

마지막으로 내가 교회의 모든 일탈자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맞지 않는 다 하여 교회의 신앙을 도매급으로 함부로 모욕하려는 당신이 한심할 뿐이다. 어떻게 방언이 거의 100프로 가짜다 라는 막말을 하는 가. 그리고 당신의 모든 글은 교회를 사랑하고 참여하는 자의 글이 아니다. 당신은 무언가를 빌미로 비난 일색이다.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려고 하며,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고 있고 모욕주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교회의 일탈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당신의 황당한 비판, 도에 지나치게 교회와 신앙인들을 모욕하는 행태를 보면 당신이 불쌍하기도 하지만, 그것에 동조할 엽전들이 있기에 당신에게 분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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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팔 소리 (118.32.202.180)
2017-10-06 00:30:56
신성남 집사님,제발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방언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마세요, 당신 스스로가 방언기도를 하지도 못하고, 잘 알지 못하면서 이렇게 비난하면 안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2절을 보세요,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게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은 통역해서 알수도 있지만, 성경은 방언은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으로, 저는 제가 깊히 방언으로 기도하고, 내면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음성을 들으려고 할때 감동과 확신으로 다가올때가 많이 있습니다. 방언을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통역하는 것이 좋지만, 통역하는 은사를 정확하게 받은 사람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공동기도에서는 자제하고, 통성기도나 개인기도에서는 기도를 덕 깊이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발 이론과 체험을 다 확실하게 모르면, 노우호 목사처럼 방언 폐기론을 주장하지 마세요, 노우호 목사강의듣고, 오순절교회를 비난하며,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둔 사람이 있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지식으로 자신이 정확하게 아는 것처럼 인터넷에 올려서 초신자들 혼란에 빠뜨리지 마세요, 제가 당당뉴스를 볼때마다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발 한국교회에 덕을 세우도록 하시고, 비판만하고 비난만하는 것을 일리는 있지만,누구나 할 수 있는일이니, 덕을 세우지 못하고 한국교회를 세우기 보다 비난일색, 그것도 정확하지 않은 편견된 인식을 가지고, 더욱 무너지게 하는 장본인이 될 수 있슴을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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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5
신성남 (49.50.206.22)
2017-10-05 16:01:34
푸름이님, 현대의 랄랄라 방언이 '영적 기도'라구요?
우선 한국 랄랄라 방언계의 전설이라는 조아무개 목사의 방언과 그 자신의 통역부터 한번 보시지요.

<디피야 라사카파카야 라시야바라 야라바캄마키 리키키코
라카치 라시카파따르 이리키 리야 아파타카야야 시키키코바야>

그리고 아래가 소위 이에 대한 통역이랍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너는 내가 어디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구만리 장천 멀리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땅끝에서 있다고 생각하느냐?
땅을 파야 나를 찾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내가 너희 속에 들어와있고 너희 숨과 함께 있고 너희 생명속에 함께 있도다.
내가 너를 붙들어주고 너를 도와 주기를 원하나 너희가 나를 모르는도다
나를 알라!
나를 깨달으라!
나를 의지하라!
내가 너희 기도를 듣고 너희 손을 붙잡아주고 너를 이끌어주리라
기필코 내가 살아계신능력을 너희에게 나타내 주리라!
영광을 보여 주리라!
뜻대로 되게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의 영광의 뜻이 임하여서 너희 속에 나타나게 되게 할것이라!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며 담대하고 강하라!
(이와 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푸름이님의 상식으론 이게 영적 기도고 통역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더구나 이건 기도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직통계시'라는 겁니다. 더 웃기는 건 음절 한마디가 문장 한줄보다 더 긴 통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짧은 음절은 고작 11개인데 완전한 문장만 무려 17개입니다. 물론 그 중엔 긴 문장도 있습니다.

그럼 첫마디 '디피야'에서 디:내, 피:사랑하는, 야:아들... 이런 식인가요. 그러면 '딸들아'는 어디로 날라갔나요? 뒤의 긴 문장으로 가면 더 심합니다. 전 아직까지 제 정신을 갖은 사람들 중에 이걸 보고도 안 웃는 사람은 한사람도 못 보았습니다.

원조 랄랄라가 저 수준인데 나머지 다른 랄랄라나 으다다다나 개굴개굴은 아예 말할 필요조차 못 느낍니다. 그 어떤 랄랄라 방언이라도 녹음해서 들어보면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습니다. 그리고 통역은 아예 난장판입니다. 같은 단어를 숱하게 반복하면서도 통역할 때는 아주 구만리 삼천포로 다 다르게 합니다.

정통 교회 역사상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이단이었습니다. 만날 잘못 오역된 고전14장을 들먹이며 자신의 무지를 자랑하지 마시고, 정 헬라 원어를 찾아보시기 싫다면 타인의 말이라도 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사 속의 그 많은 신학자들이 푸름이님보다 무식헤서 방언을 금한 줄 아십니까?

종교개혁자 칼뱅은 제네바교리문답 247항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하루 5시간을 기도했던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도 방언이라는 것은 하지도 않았고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랄랄라가 그리도 좋은 '영적 기도'라면 그들이 왜 안 하고 왜 안 가르쳤을까요.

뿐만 아니라 사도 시대 이후 20세기 초까지 근 1800년 동안 정통 교회는 언제나 랄랄라 방언을 '영적 기도'로 간주하지 않았고 단지 이단이나 사이비로 취급했습니다. 이는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루터, 그리고 아브라함 카이퍼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그 기간 동안 정통 교회 속에서 랄랄라 방언을 '영적 기도'나 '하늘의 언어' 따위로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저에게 "어줍잖은 지식의 무례함"이라고 하셨는데 그러게 말하시는 푸름이님은 그럼 칼뱅이나 웨슬리보다 더 뛰어난 지식이 있다는 주장이십니까?

그리고 타인의 글을 비판하실 때는 그냥 논리에는 논리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공적인 공간에 버릇없이 반말이나 늘어놓는 건 기독교인으로서 랄랄라 헛소리보다 더욱 저질스러운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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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코트 (211.200.186.37)
2017-10-05 12:53:45
망나니 칼춤 추기를 멈춰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완장을 차시고 썰을 푸시는군요.
영성의 세계는 인간의 이성과 지성의 틀 안에서 재단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성이 비이성, 비지성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때론 초이성, 초지성의 세계를 넘나듭니다.
구약은 할머니(사라)가 아들(이삭)을 낳는 이야기요
신약은 처녀(마리아)가 아들(예수)을 낳는 이야깁니다
신집사님 표현을 빌자면 무당이 작두타는 신통력으로 이 일이 가능했나요?
영적인 일들에 대해서 막말하지 마세요!
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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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4
개혁본부 (121.127.78.181)
2017-10-04 23:51:17
추석 특별 "떡밥"으로 제목 낚시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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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47.216.79)
2017-10-04 20:06:20
취사선택(取捨選擇)은 자유??
이 지구상에 여태껏 진정한 기독교인은 단 1명만 존재했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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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221.167.226.172)
2017-10-04 15:02:46
성령 훼방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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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세마네 (175.117.158.104)
2017-10-04 12:55:34
방언에는 랄랄라 방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창한 외국어 방언도 있다.
노우호 목사가 성경에 나오는 방언에 대하여 가장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는 최전선에 있는 투사에 속한다. (교회와신앙-엄무환> “한국교회 방언은 100% 거짓방언”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95 )그러나 방언은 랄랄라 방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유창한 외국어처럼 방언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노우호 목사도 방언에 대해 아주 많은 연구를 한 사람에 속하지만 어찌해서 그렇게 랄랄라 같은 단순한 발음만 내뱉는 방언만 들어왔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애기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옹알이 형태로 말을 하다가 점점 "엄마" "아빠" 같은 우리가 알아듣는 발음으로 발전한다. 마찬가지로 방언의 은사를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초기에는 랄랄라 형태의 방언을 하는데 그 이후에 방언으로 오랫 동안 기도하다 보면 그런 랄랄라 같은 단순한 발음이 점차 발전되어 나중에는 방언이 마치 유창한 외국어처럼 발음하게 된다. 본인은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고 본인도 직접 경험하였다.

단지 이렇게 유창한 외국어처럼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이 바깥으로 드러내어서 나는 방언을 외국어처럼 유창하게 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이다. 이들 중에는 학식이 신학적 논리를 전개할만큼 조리 있게 그런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더러는 신앙적 성숙도가 높아서 성경말씀처럼 공중이 모인 자리에서 잘난 체하면서 방언을 떠벌이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성경에 가르친 대로 혼자서 기도할 때에, 자신의 깨어 있는 마음으로 다 할 수 없는 기도의 내용을 영으로 깨닫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유창한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방언은 단순한 발음의 반복적 구사가 아니고 본인의 기도하는 상황이나 기도 내용에 따라 전혀 다른 발음의 방언기도가 나온다.

그리고 랄랄라 방언이 가짜라면 방언 통역의 은사도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가짜로 넘어가게 된다. 유창한 외국어 발음으로 하는 방언 기도가 멋지고 자연스러운 내용으로 통역이 되어 나온다면 그 방언 통역도 매우 자연스럽게 들릴 것이다. 실제로 방언 기도 중에 본인이 기도하는 내용이 달라질 때에 방언으로 발음되는 단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아기가 옹알이를 해도 부모는 그 옹알이의 의미가 다른 것을 느끼기도 하고 알아듣기도 한다. 랄랄라 같이 단순한 발음의 반복처럼 보이는 방언기도일지라도 방언 통역에 들어가보면그 사람이 평소에 본인만 알고 간절하게 기도하던 내용이었지만 그 통역되어 나오는 기도의 내용이 숨김없이 정확하게 통역되어 나오는 현상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우리의 주변에서, 특히 국내의 신학계에서 방언의 은사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그런 접근이 오히려 더 유아적이고 유치한 방언의 이해 수준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가, 헬라어 원어성경 원문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바로 해석해야 한다는 이론적인 접근의 수준에서 벗어나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유창한 방언을 하고 있고, 때로는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외국인에게 그 사람의 언어(방언)로 의사소통을 하게 하실 수도 있으며, 때로는 하나님이 내가 한국어로 말을 하는데 듣는 외국인이 자신의 언어로 알아듣게 하시기도 랗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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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75.171.190.179)
2017-10-04 12:11:05
마가복음 16:14-18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또 어떤이는 이것이 어느 사본에는 없으니 예수님의 말씀이 맞다 아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를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교회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하는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영감을 주셨다고 믿는 것이 신앙이다.

그런식으로 치면, 성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요, 모두가 저자가 있는데, 어찌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가.

성서는 이것도 저것도 폐하지 않느다.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근거는
첫째는 하나님이 그 저자들과 성서의 선택과정에 영감을 주시고 개입하셨다는 믿음이요,
둘째는 그것을 canon - 측정하는 자, 기준 - 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바울은 여러번 자신이 하나님안에서 발견됨을 말씀하셨다 - 자신이 하나님을 찾고 만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셋째는 그 잣대로 나를 측정하고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성서를 비판하고, 어느 것은 빼고, 어느 것은 의미를 비틀고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며, 더더군다나 그것을 가지고 남을 재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더더욱 성서의 일차적인 목표가 아니다.

부디 이곳에 신앙의 근거와 목적이 이해되어 지길 바란다.
신앙은 지식이나 비판이 주가 아니라, 불가능에서 가능함을 보는 것이고, 순간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보는 것이다.
믿음은 철저히 도약하는 것이고 초월하는 것이다. 휴머니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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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잔나비 (221.167.226.172)
2017-10-04 10:46:42
니가 게 맛을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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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yu (112.148.166.86)
2017-10-04 08:30:29
방언
방언 현상 가운데 영적인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더 많은 것이 영적 장사꾼들의 장사라는 필자의 의견에 발끈하는 사람도 거기 속하는가? 심리학적으로 연구한 것을 보면 방언은 언어적 발달이 이루어지기 전단계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소리로서 특히 방언을 한 다음 우울감이 가시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우울질 사람들은 방언을 좋아한다. 물론 영적현상으로서의 방언도 이에 속하지만 그 원천은 다르다. 현대의 영적 장사꾼들은 죽은 다음 어떻게 하느님을 뵐지 모르겠다. 아마 그들에겐 하느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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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239)
2017-10-04 08:21:42
마태복음 6장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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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75.171.190.179)
2017-10-04 07:51:50
성경의 모든 방언이 외국어 였다는 증거가, 원문에 복수로 표현했다는 것인데, 본문을 잘 읽어보면 복수든 단수든, speak in tongues 이듯 pray in tongues 이든 그것이 어느 경우든 외국어를 구사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억지 해석이요 껴맞추기 해석임을 문맥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당신의 목적은 그냥 방언, 혹은 영적인 것은 다 무식한 것이고, 목사들의 돈벌이 수단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야.

방언은 영적인 기도로 - 외국어 구사가 아니야! - 그 것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바울의 말데로, 그 뜻을 알려고 해야하고, 질서있게 해야하며, 더 높은 단계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당신은 그 단계를 다 무시하고, 자신의 잣대로 성령운동을 상스런 말로 비난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단계에 있는 지 당신이 얼마나 아는가.당신은 그럼 예언을 사모하고 예언을 하는가. 방언은 하는가.

바울이 외국어를 5개나 했다고? 정말? 그 시대는 이미 헬라화가 되어서 모든 언어가 통일된 보기 드문 시대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때 오신 것이 절묘한 타이밍이었고, 그래서 헬라어 성경으로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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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75.171.198.233)
2017-10-04 03:09:33
지금은 중세가 아닌데...
비판 자체가 금기가 되고 처벌받던 시대에는 비판 자체로 의미가 있었으나,
지금은 free speech 가 보장된 상황에서
이런 종류의 글은 그 수준과 의도가 의심될 뿐이다.
I think he is seeking a shallow fame or just angry because he cannot understand what is going on in faith communities.
그리고 모든 걸 돈과 결부시키고 있다. 그것도 매우 주관적인 잣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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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성신도 (38.106.0.2)
2017-10-04 02:31:44
신집사님 글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
마치 중세시대때 제대로 브레인이 function하는 사람이라면 그 당시 카톨릭 교회가 썩었고 하나님이 아닌 권력과 돈을 사랑하는 그런 곳이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그걸 발설 할 용기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죠. 잘못된걸 알지만 걍 잠잠히 있어야 하는... 지금 한국 교회를 보는 교인의 한 사람으로써 저도 중세때 유럽의 평범한 교인이 느꼈던 부조리를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 분명 잘못된걸 아는데 그걸 지적해서 말할수 있는 용기는 없는... 근데 신집사님은 제가 평소에 느꼈던 부조리를 속시원하게 긁어서 용감하게 말씀하십니다. 신집사님 칼럼이 그냥 잘못된것 밝히는 추적 60분에 그치지 않고 진짜 부조리를 고치는 교회운동으로 발전하기를 마음속 깊이 응원합니다. 마틴루터의 교회개혁운동이 개신교를 잉태했듯이 신집사님 칼럼이 궁극적으로 맘몬신전으로 변질된 대한민국 개신교를 다시 바꾸는 시작점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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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성신도 (38.106.0.2)
2017-10-04 02:22:30
푸름이님께...
상대의 나이, 지위를 알수 없다면 더더욱 존대를 하셔야죠. 거기다가 나의 잘못이 있다면 주님께서 심판할 것이라뇨? 이건 성폭행, 성추행 목사님들께서 평소에 유용하게 써먹는 레파토리 인데요?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주님께서 심판할 것이니 너희는 잠잠히 있으라는... 저도 신집사님글이 100% 다 맞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주 계시글인 '주일성수' 문제에 관한 칼럼은 10%는 맞는 말씀이고 90%는 틀렸다고 보여집니다. 마찬가지로 푸름이님 의견이 신집사님 말씀보다 더 성경에 기반한 맞는 말씀일때도 있다고 사료됩니다만 난데없는 반말 짓거리에 함부로 남을 폄하하는 독선이며... 이런거 없는 클린 토론을 보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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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75.171.198.233)
2017-10-04 01:32:19
나의 무례함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글은 대화가 아니다.
존대의 의미가 없다. 읽는 이 다수를 향한 의견의 피력이다. 상대의 나이, 지위를 알 수 없다.
내 글이 다소 무례를 무릅쓰는 이유는
신앙에 모욕을 주고 곡해하는 원저자의 무례함을 향한 정당한 분노이며 표현이다.
그것까지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한계일 것이나, 주님께서 심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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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75.171.198.233)
2017-10-04 01:27:22
오역??? 번역본 몇개만 대조해도 알것을!!!
누가 너더러 고전:14:2을 그리 번역하라고 일러주더냐. 어디 내가 제시한 성경구절 다 그렇게 번역하지 그러냐.
고전 14:4 - For if I pray in a tongue; my spirit prays, but my mind is unfruitful. -- 바울은 방언의 기도를 "영이 기도한다"라고 표현하고 있고, 자신이 그렇게 기도함을 말한다. 다만 그런 기도는 지성적인 기도(mind - 지성)가 아님을, 그 쪽 부분에서는 별 열매가 없음을 말한다.
고전14:15 - So what shall I do? I will pray with my spirit, but I will also pray with my understanding; I will sing with my spirit, but I will also sing with my understanding. -- 그 다음 절에 바울은 곧바로 자신은 영으로 기도할 것임을 – 즉 방언으로 기도할 것임을!!! (주의깊게 보라!) – 말한다. 그러나 또한 지성적인 기도도 할 것임 (with my understanding - in other words, with mind - 이해 - 지성)을 말하고 있다.
심지어 찬양도 영적인 찬양을 할 것이며 (방언적인 찬양), 또한 지성적인 찬양도 해야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바울은 교회의 질서를 위해 방언 (영적인 기도)보다 예언 (지성적인 기도 - 이해를 동반한 기도)를 더 권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신앙에 영적인 부분과 지성적인 부분 모두 있음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결론 짓는다.
고전14:39-40 - Therefore, my brothers and sisters, be eager to prophesy, and do not forbid speaking in tongues. But everything should be done in a fitting and orderly way. (예언하기를 사모하되 방언하는 것도 금하지 말라.그러나 모든 것 - 방언과 예언 모두! - 합당한 방법으로 질서있게 행하여야 한다!)
아니 바울이 방언 자체를 없애기를 원했다면 왜 이렇게 여러 번 반복적으로 그것도 끝까지 방언을 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2절, 4절, 5절, 15절, 18절, 22절, 39절! 무려 7번이나!!)
이래도 정말 내가 성경을 오역하고 있는 것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성경에 있는 것을 함부로 빼로고 하지마라. 예수님의 경고를 무시하지 마라 (마태복음 5:18-20).
마지막으로 당신은 방언도 하지 않으면서, 예언은 얼마나 하고 있으며, 예언의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을 사모한 적이 있는가. 정말 예언을 하고 있는가? 방언도 없이!!!
성경을 왜곡하고, 어느 부분을 빼고, 어느 부분을 고치려 하지 말라. 그것도 무슨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처럼, 남들을 비판하면서, 또 모욕감을 주면서 말이다…… 보는 이가 상당히 애처롭게 느껴질 뿐이다.
성경을 자기 확신데로 해석하고 바꾸는 것은 너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유익이 아니요,
자신의 삶을 먼저 비추고, 자신을 고치려 하는 것이 신앙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바꾼 해석으로 오히려 남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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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성신도 (38.106.0.2)
2017-10-04 01:26:44
푸름이님도 설득력은 떨어지지만 나름 근거를 가지고 말씀하시려고 노력하시는것 같은데 왜 쓰시는 모든 글에서 '무례함'이 묻어나는 것일까요? 글쓴이를 '너'나 '니'라고 지칭하며 반말 짓거리 하시는것 하며... 당신이 진짜 예수님의 사람이라면 평상시 생활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날 것이며 반대로 마귀에 지배를 받는다면 일상에서 무례함과 독선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당신의 글에서는 바로 그 무례함과 독선이 여과없이 느껴집니다. 제발 예수님을 욕되게 하지 마시고 반박글을 쓰시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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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75.171.190.179)
2017-10-03 21:45:03
바울이 방언보다 예언을 더 높은 은사로 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언도 하나의 중요한 은사라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I would like every one of you to speak in tongues, but I would rather have you prophesy. He who prophesies is greater than one who speaks in tongues, unless he interprets, so that the church may be edified.—고전 14:5
심지어 사람들 하나 하나 모든 이들이 방언하기를 원하였다. 다만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교화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더 높은 은사인 예언하기를 사람들이 사모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시작은 방언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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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75.171.190.179)
2017-10-03 21:23:54
There are different kinds of gifts, but the same Spirit.
고전 12:4
to another miraculous powers, to another prophecy, to another distinguishing between spirits, to another speaking in different kinds of tongues, and to still another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고전 12:10

희랍어 번역이 자기한테 유리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나마 다른 부분은 전혀 언급이 없다.
고로 오히려 니가 통전적으로 성경을 보지 않고 의도적으로 한쪽을 무시하고 있다.
목적이 무엇일까. 불쌍할 뿐이다.
Interpretation preoccupied with his own personal convictions and censure toward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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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레라 (222.105.238.133)
2017-10-03 19:35:44
성경을 잘못 번역해서 일어나는 문제도 있습니다.
아래 글은 노우호 목사님의 강의중 내용입니다.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내 마음엔 열매가 없으리라
[헬라어]고전 14:14 eja;n proseuvcwmai glwvssh/, to; pneu'mav mou proseuvcetai, oJ de; nou'" mou a[karpov" ejstin.

이 구절은 누가 보아도 오역이다.
내가 만약(가정법) 글로쎄(γλώσσῃ )로 기도한다면(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할 마음도 없지만) 내 영이 기도한다고 하겠지만(de접속사;역접) 그러나 내 마음에 결과는 없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부정문을 쓰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번역해야 한다.

(고전 14:18) I thank my God, I speak with tongues more than ye all:
[헬라어]고전 14:18 eujcaristw' tw'/ qew'/, pavntwn uJmw'n ma'llon glwvssai" lalw':

고전 14:18절에 바울이 더 많이 말했던 것은 방언 기도(proseuvcomai)가 아니라 외국어들로서 랄레오(glwvssai" lalw)함을 감사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을 두고 바울이 방언기도를 더 많이 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해다. 고전 14장 2절과 14절과 18절 39절 이렇게 몇 구절을 우리 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오해가 초래된 것이다.

누구든지 이 부분을 정확하게 번역하고 이해하려면 관점을 바꾸어서 번역을 해 보라 그러면 필자와 같이 방언을 부정하는 번역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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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레라 (222.105.238.133)
2017-10-03 19:26:07
방언은 중요하지 않은데 중요한 것처럼 되어버린것 같습니다.
에스라하우스 노우호 목사님께서는 30여년동안 방언을 연구하고 검증하셨습니다. 그 결과 현대 방언은 거의 대부분 가짜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말 방언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노목사님이 강의 하신 내용을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제 주변에도 랄랄라 방언과 중국어풍 방언, 그리고 알지 못하는 방언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대부분 반복된 말을 되풀이 할뿐입니다.

정말 그게 성령에 의한 방언이고 하늘의 언어(방언이 옳다는 사람들은 방언이 하늘의 언어라고 말하기도하더군요-성경 어디에도 하늘의 언어라고 기록되어있는 곳이 없는데도요.)라면 같은 말을 지속적으로 되풀이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방언 하시는 분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신들의 방언을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방언이 성령의 은사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서를 통전으로 읽어본다면 방언은 은사가 아니라 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한구절만 떼어다가 앞뒤내용은 분간하지도않고 해석하기 때문에 많은 오역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단들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죠.

성경 어디에도 방언으로 기도하라고 한 구절이 없습니다. 바울이 방언 기도를 했다고 했는데 정확한 번역과 원어를 보면 바울은 당시 근동의 외국어(방언)을 했을 뿐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태에 대해서 논하면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바울은 자기가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이 아니라 만일(if) 이란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 자신이 “만일(if) 방언으로 기도를 한다고 하면(지금까지 자신이 그렇게 기도한 적이 없지만) 어쩌면 그런 기도는 자기의 영이 하나님께 무슨 비밀을 기도하는 것일 수 있겠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로 바울은 당시 고린도교회같은 그런 방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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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75.171.190.179)
2017-10-03 17:27:39
어줍잖은 지식의 무례함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기확신 그리고 비난
고전 14:2-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고전 14:18-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 14: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고전 14:39-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방언은 단순히 외국어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 기도이다. 바울은 다만 그것을 교회에서 질서있게 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비신자를 위한 전도와 권면의 효과 또한 인정했다. 그리고 자신도 방언으로 기도함을 분명히 말하고 있고, 또한 분명히 사모해야할 은사임을 말하고 있다.
뭐 외국어? 허튼 소리로 은사 중에 하나인 영적기도인 방언을 니맘데로 폐하려 들지마라. 다시 말하지만 바울은 질서를 원한 것이다.
교회 운동 중 하나를 니 사사로운 혀끝으로 모욕하려 한다면 너는 너도 모르게 적그리스도 벌레가 되어 하나님의 영을 대적하는 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의 탈선은 하나님이 분명히 심판 할 것이며, 성도는 교회에 다시 모이게 될 것이다.
너는 좀 더 성경을 깊이있게 읽고, 조심함으로, 겸손함으로, 온유함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 예수께 말하 듯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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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성신도 (38.106.0.2)
2017-10-03 02:52:15
아멘!!! 특히 방언장사해서 말로가 좋았던 목회자는 없었다는 말씀이 크게 와닿습니다. 제가 모든 방언장사 목회자들을 다 알고 있는건 아니지만 제 주위에 있는 방언강조하는 목사님들중 가난한 목사님 한번도 본적 없고 말로가 제대로 된 목사님도 한분도 본적이 없네요... 미혹의 영은 정말 우리 주위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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