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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를 비판하지 말라!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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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0월 01일 (일) 21:34:10
최종편집 : 2017년 10월 08일 (일) 00:20:37 [조회수 : 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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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기독교 TV 채널을 틀고 널리 알려져 있는 K목사의 설교를 듣다가 크게 실망했다. 그는 설교 중에 ‘요즘 사람들이 선생님을 비판하고 부모를 비판하고 목사를 비판하고 나라의 부모격인 대통령을 비판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목사는 요한계시록 7장 9-17절을 본문으로 삼아서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었다. 그렇게 비판을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은 구원받기 힘들다는 말인데, 비판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

마태복음 7장 1-절에는 비판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이어지는 3-5절을 보면 1-2절에서 말하는 비판은 자기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상대의 눈에 들어 있는 티를 지적하는 것이다. 상대를 비판하기 전에 네 자신부터 돌아보라는 교훈이다. 달리 말하면, 부당한 흠잡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일전에 기독교 TV에서 설교한 분은 윗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인 것으로, 구원받은 자가 할 일이 아닌 것으로 말했다. 물론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세태에 대해서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판하지 말라는 언급에는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하는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한단 말인가.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이, 그것도 교회 지도자가 어떻게 그런 전근대적인 말을 한단 말인가.

비판이 없는 사회는 부패하게 되어 있다. 오늘날 언론이 중시되는 것은 언론의 주된 역할이 비판이기 때문이다. 정당정치에서 야당은 여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지만, 요즘 한국의 정치를 보면, 야당은 정부와 여당이 하는 일을 무조건 반대하고 본다. 그것이 올바른 견제의 역할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런 때에 언론의 이성적인 비판이 절실히 요구된다. 언론 기관에도 정치적 성향이 있지만, 언론에서는 원칙적으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객관적인 입장에서 비판해야 한다. 비판 없는 사회는 발전할 수가 없고 부패하게 마련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권위를 독점하는 교회가 부패하면 비판하는 세력이 일어나서 교회의 갱신을 촉구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왔다. 교회사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교회는 그 부패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표적인 교회 갱신을 위한 노력의 예를 종교개혁에서 본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서 개혁자들의 비판 정신을 되살려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 주변에는 제2종교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다. 그 슬로건이 너무 거창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 슬로건을 내걸고 교회의 갱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비판 세력은 지금 기울어져 가는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그런 비판 세력의 노력이 없으면 한국교회는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보면 왕이나 제사장을 비롯해서 백성이 타락할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그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셨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이런 비판이 없었으면 그리고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없었으면, 이스라엘과 교회는 끝없는 죄악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예를 노아의 시대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본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했다.

국가를 비롯해서 어느 단체든지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종교계에서는 지도자의 영향력이 어느 단체에서보다 크다. 성경에서는 잘 다스리는 장로 그리고 가르치는 자를 존경하라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스승을 존경해 왔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가 바로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바로 서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런 때에 공중파 방송에서 목사를 비판하지 말라는 설교자의 말은 현실을 외면한 발언이다. 그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인도를 떨어뜨린 주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그 책임이 장로들에게 있는가? 교인들에게 있는가?

그 설교자는 자신이 비판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믿기에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가 비판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치자. 그러면 한국교회는 어떻게 되든 내 교회만 잘 되면 된단 말인가? 그것은 아주 이기적인 발상이다. 그렇게 설교한 사람에게는 한국교회 전체를 보는 눈이 혹은 염려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그는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네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병든 자를 돌보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은 그런 이기적인 사람의 편에 서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공중파 방송에 나와서 목사를 비판하지 말라고 설교하는 목사는 우리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권위주의적 시대에 살지 않고 민주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성직자가 권위를 독점하는 시대에 살지 않고 만인제사장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교인들은 목사가 교인들의 위에 군림하기를 원치 않고, 그들의 약함을 보살피는 봉사자, 조력자, 혹은 상담자가 되기를 원한다.

중세기의 가톨릭은 사제들의 교권주의로 인해서 교회가 부패했었고, 그 부패가 종교개혁을 자초했다. 한국교회는 만인제사장주의를 외친 개혁자들의 정신에 역행하는 목사들의 권위의식으로 인해서 무너져 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중세나 개혁자 시절의 군주 전제주의 시대가 아니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목사의 권위를 내세우는 시대착오적인 설교는 듣기에 참 민망하다.

유명한 설교자 팀 켈러는 설교자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문화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중의 의식을 고려하지 않는 설교는 호소력이 없고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대 교인들의 의식을 외면하면서 성경만을 가지고 설교해서는 청중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켈러는 성경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다. 성경이 무엇보다 중요한 표준이지만, 그 말씀이 현대 문화에 적용되지 않고서는 그 뜻이 올바로 혹은 설득력을 가지고 전달되지 못한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호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있는 지금, 교회를 그토록 뒤틀리게 만든 주범인 목사를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상황착오적인 발언이다. 이러한 발언은 반감을 유발하게 마련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현대인의 의식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그들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삶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설교할 기본적인 바탕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지금 한국교회가 이토록 추락하게 된 데 대한 책임을 절감해야 한다. 나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 태도는 오만일 수도 있고 자기기만일 수도 있다. 그 말이 설사 옳다 하더라도, 한국교회가 완전히 기우는 날엔 당신의 교회도 함께 무너진다. 그러면 이 땅에서 복음의 빛이 사라질 위기에 몰리게 된다. 우리는 한국교회를 함께 안고 가야 한다. 이런 책임감이 없다면, 교회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올해 10월 31일은 루터가 가톨릭교회의 비리와 부패에 항의해서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내걸었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이다. 그런 반박문을 내거는 사람은 이단으로 몰려서 파문당할 것을 각오해야 했다. 그것은 단순히 파문만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결행이었다. 지금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행사를 갖고 있지만, 고작 개혁자들의 신학을 토론하는, 추상적인 말놀음만 일삼고 있다. 목사도 신학교수도 교단의 눈치를 보면서 추락하는 한국교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루터의 의기와 사명감을 본받자고 말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사명감을 지닌 교회 지도자를 그레이엄 그린의 대표작 『권능과 영광』(『권력과 영광』으로 번역되기도 했음)에서 만난다. 공산주의자들이 가톨릭 교회를 박해하면서 신부들을 잡아서 사형시키는 멕시코의 어느 주에 혼자 남아서 도망 다니는 한 신부의 책임감이 독자들을 감동시킨다. 그를 제외한 모든 신부들이 그 땅을 버리고 떠났지만 그리고 그가 그곳을 떠난다고 해도 그를 탓할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그는 혼자 남아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그곳을 지키고 있다. 그마저 떠난다면 그곳은 완전히 버려진 땅이 되고 만다는 것을, 그곳에서는 복음의 빛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도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지만, 그 기회를 포기하고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간다. 그는 결국 공산주의자들에게 붙들려 사형을 당한다. 20세기에 나온 기독교 소설들 가운데서 최고의 걸작으로 간주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책임감은 우리의 심금을 찡하게 울린다. 이 『권능과 영광』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자꾸만 기울어져 가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에게도 이런 책임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한국교회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고 해서 그들을 고소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교회를 일으켜 세워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안일과 유익을 위해서 귀를 막고 ‘개야 짖어라 기차는 간다.’ 식으로 나온다.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시키려고 하는 M교회의 K목사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 교회의 당회원들과 교인들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교회가 소속된 예장통합 총회에서는 한때 세습방지법을 통과시켰는데, M교회에서는 그 법을 피해갈 수 있는 묘수(?)를 짜내서 아버지 교회와 아들 교회를 통합하려고 했다. 그런데 최근 헌법위원회에서 그 법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내자 M교회에서는 두 교회를 통합하는 대신 아들을 위임목사로 청빙하겠다는 청원서를 소속 노회에 제출했단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결정될지 지켜보아야겠지만,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대형교회의 입김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작용할 것이다.

K목사는 한국교회는 어떻게 되든 내 아들만 잘 되면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교회의 교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든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면서 무분별과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 목사와 교인들은 세습이 잘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시시때때로 합심하여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잘 이루어지면 그 일을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진정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일인가, 하나님의 은혜일까? 이런 인간적인 꾀에 능한 목사와 그에게 휘둘리는 교인들을 비판하지 않고 입을 다물거나 편드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것처럼 우리도 한국교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책임을 자진해서 짊어져야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세워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한국교회의 장래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안일과 욕심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을 때, 당신만이라도 개혁자들의 사명감을 가지고 기울어져 가는 한국교회를 위해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신부가 멕시코의 교회를 버리고 떠났을 때, 혼자 남아서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려다 순교한 그 신부의 책임감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교회를 개혁하려고 몸을 던진 루터의 사명감을 본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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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콜 (82.XXX.XXX.86)
2017-10-04 05:56:22
세습방지법이 있더라도 교인들과 함께 세습을 강행하면 도리 없습니다. 천주교처럼 필요한 곳에 건물을 먼저 지어놓고 목회자를 파송하지 않는 한, 자기가 개척한 교회는 사실상 개인 사업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이래라저래라 왈가왈부 할 수 없습니다. 그자들에게는 공교회 개념이 없고 개인 사업이요 주식회사거든요 - (주)예수그리스도

또한 교회가 세습하지 않고 외부에서 초빙된다하더라도 그게 최선인지는 보장할 수 없어요. 누가 담임목사으로 초빙되더라도 돈과 권력과 명예가 있는 곳에는 부패와 타락의 온상이니까요. 세습받는 아들보다 백배천배는 더 사악한자가 담임목사로 들어 올 수도 있습니다.

고 옥한흠 목사도 자기 아들에게 세습하는 게 더 나을 뻔 했습니다. 신학을 하지 않는 순진한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그러나 누구든 신학을 (PhD 수준으로) 해버리면 이미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경건한 척 하지만) 사악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 같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대형교회를 12명씩 쪼개서 분산하고, 전국에 할 일없어 빈둥거리는 목사들에게 한 팀씩 나눠주겠습니다. 그러면 전국에 남아도는 목회자 수급문제도 해결이 되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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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
지나가다 (1.XXX.XXX.109)
2017-10-12 12:05:34
비판은 스스로에게...
남을 비판하기보다 비판은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혹 누군가에게 비판을 받았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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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잔나비 (110.XXX.XXX.187)
2017-10-05 12:43:57
똥고집과 보상 바라는 늙은 목사는

개새끼목사.!!!
리플달기
3 3
유상복 (110.XXX.XXX.175)
2017-10-03 23:21:53
M교회 K목사는 예장합동이 아니라 예장통합입니다.
리플달기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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