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특별한 기도회에 참석했다. 부당하게 해고되어 오랜 시간 복직을 위해 투쟁했던 노동자들과 기도로 연대했던 작은 길바닥 기도회가 드디어 마지막 예배를 드린 것이다. 부당 해고를 자행했던 회사의 본사 빌딩 앞 작은 인도 위에서 매주 드려졌던 기도회는 평균 10명 남짓 참석했던 작은 기도회였다. 그런데 무려 934일 만에 마침내 해고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복직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기도회는 의로운 싸움의 긴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드물게 보는 좋은 끝을 보게 된 마지막 기도회였다. 모든 마지막이 언제나 이렇게 기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은 세상일까.

934. 9, 3, 4. 이 무심한 세 숫자 뒤편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과 눈물과 다툼과 절망과 조바심과 안타까움과 유혹과 좌절과 의심과 인내가 있었을 것인가. 가정 안에 생겨난 균열과 뜻을 같이 하던 사람들 가운데 일어난 분열은 또 없었을까? 934라는 숫자가 지닌 무게감은 쉽고 섣부른 짐작조차 곤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무려 3년에 가까운 시간이 아닌가.

기도회에 몇 차례 참석하고, 심지어 설교까지 했으면서도 나는 이 싸움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의심했었다는 사실을, 승리에 대한 명백한 확신이 없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와 현재 우리가 경험했고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이 잔혹한 세계 속에서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불의의 피해자가 정의의 보상을 받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더구나 그 상대가 막강한 자본의 힘을 행사하는 골리앗이라면, 내 손에 든 작은 돌멩이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설교를 하면서도, 싸움에 승리하기를 바랐으면서도, 실상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저 위로나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약한 믿음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오랜 싸움이 결국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작은 돌멩이에 거인이 쓰러지는 일이 성경 밖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그 기쁨을 나누는 자리에서 나는 나와 비슷한 심경을 고백하는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의심의 죄책감만큼 축하와 기쁨의 마음도 컸다는 사실이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었달까.

마지막 기도회를 인도하며 사회자는 작은 센스를 발휘했다. 십자가와 촛불을 얹은 책상을 덮었던 보에 적혀 있던 ‘승리를 위한 기도회’라는 문구에서 함께 연이어 있던 ‘를’과 ‘위’자를 청테이프로 붙여 가려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승리를 위한 기도회’는 ‘승리한 기도회’가 되었다. 그렇다. 오늘의 기도회는 승리를 위한 기도회가 아니라 승리한 기도회, 그 승리한 기도회를 감격하며 감사하는 기도회였던 것이다. 작은 센스가 전해준 큰 의미였다.

하나님은 늘 새삼스럽고 새로우시다. 절망에 익숙해지면 희망을 선사하시고, 부재에 익숙해지면 존재를 드러내신다. 절망과 부재에 완전히 익숙해져 희망과 존재를 의식조차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시간은 신비롭게도 바로 그때 시작되곤 한다. 인간의 희망이 다한 곳에서 하나님의 희망이 시작되는 것일까?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앎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 그 신뢰를 향한 요청의 소리를 다시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당장은 충분하다.

“나오느니 탄식뿐이다. 이제 내게서는 찬란함도 사라지고, 주님께 두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애 3: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