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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성수와 가두리 양식주일만 하나님 만나는 날 아니다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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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9월 19일 (화) 13:25:13
최종편집 : 2017년 09월 23일 (토) 13:21:47 [조회수 : 7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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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을 지금처럼 '주일(주의 날)로 부르게 된 기원은 서기 343년 사르디카(Sardika) 종교 회의에서다. 그 이전에는 일요일을 공식적으로 주의 날로 부르지 않았다.

초기 교회는 전통적으로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에 모였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인 안식일을 중시했으나 사도들의 초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일요일 예배를 시행했다.

사실 어느 날에 모였나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현대의 율법주의자들이 주일을 마치 구약의 안식일처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오죽하면 "목숨 걸고 주일 성수!"란 말까지 나올까.

장로교 보수 교단의 K교수가 "예배의 제사의 중심은 구약시대에는 안식일 성수의 예배의 제사였고, 신약시대에는 주일 성수의 예배의 제사였습니다."라고 한 주장이 그 좋은 예다.

하지만 만일 신약 시대에 '안식 후 첫날'이 정말 그토록 성수해야 할 정도로 중요했다면 사도들이 그날을 특별히 구분하여 별도로 강조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정작 신약 성경에 주일을 안식일처럼 중시하여 가르친 구절은 단 한 줄도 없다.

심지어 K교수는 "한 번은 장로님 한 분이 주일 날 군에 간 아들을 면회하러 갔습니다. 저는 그 장로님도 치리하며 두 달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라는 실화까지 소개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런 정도로 화석화한 한국 보수 교단의 신학 수준에 분노를 느낀다.

본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었던 것처럼 주일에 사랑과 선을 실천하는 건 결코 금할 일이 전혀 아니다. 나는 주일에 그 누구를 면회하러 가도 결단코 그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한국 보수 교단의 주일 성수 개념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신약 성경엔 그런 비슷한 말도 없다. 주일을 율법화하여 그날을 안식일처럼 특별히 신성시하거나 거룩하게 치장하는 건 율법주의와 교회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교회주의는 "세상은 속되고 교회는 거룩하다"는 중세적 이분법 사고에 기인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신도들을 교회당이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고 보호하고 관리하려고 한다. 군소리 말고 매주일마다 꼬박꼬박 교회당에 나와 열심히 예배하고 헌금 바치라는 거다.

나도 주일을 좋아하고 공예배를 사랑한다. 교우들이 주일마다 모여 함께 예배하고 봉사하고 교제하는 건 매우 귀하고 아름다운 전통이다. 그러나 그게 율법적 규제나 압박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리스도의 진리는 사람을 자유케 하는 것이지 결코 억압하는 게 아니다.

예수는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쉬게 하신다 했다. 율법의 정신을 지키는 것과 율법의 규정을 지키는 것은 매우 다른 것이다. 신약의 성도들은 율법의 속박 아래 있는 게 아니라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일 성수가 세속의 오염을 막기 위한 신앙 운동이라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다. 교회에 와서 세상 것으로 행패를 부리거나 해를 끼치는 사람은 드물다. 요즘 보면 세상이 교회를 더럽히는 게 아니라 도리어 교회가 세상을 더럽히고 있는 걸 더 자주 본다. 중세 교회 1000년의 역사 또한 비슷했다. 교회의 성직자들이 오히려 세상의 일반인보다 더욱 악하게 타락했고 세상에 더 큰 피해를 주었다.

주일을 신성시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별로 없다. 하나님께서는 평일엔 안식하시다가 주일에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다. 따라서 일요일이 특별히 거룩해 질 이유가 없고 그럴 신학적 근거도 없다. 그건 그냥 또 하나의 우상 숭배이며 가두리 양식이 될 뿐이다.

주일만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 아니다. 신자에게는 매일 매일이 주의 날이다. 또한 교회당 건물 속에만 교회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성도 자신이 서있는 그곳이 늘 거룩한 교회가 되어야 마땅하다. '교회에 다니는 신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되는 신자'다.

자신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진리 안에서 자유해야 옳다. 이 세상 어디에도 신약의 성도에게 강요될 '절기 율법'이란 없다. 구약 시대처럼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 것이 또 다시 율법의 종 노릇 하는 관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도바울은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갈3:12)."고 경고했다.

그리스도인은 종교를 거부하고 진리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0-11)"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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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75.171.200.91)
2017-09-26 00:22:13
당신 정말 하나님 믿어?
하나님 믿지도 않고 성경도 안 읽으면서 무슨 비판을 그리 하는거야?
로마서 14:1-6 읽어봐. 그 뒤도 읽어보고.
당당아, 무슨 이런 인간의 글이나 싣고 있냐. 한심하다 니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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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5
허허허 (61.36.222.132)
2017-09-29 16:25:41
批答
季康子 問政於孔子 曰 如殺無道以就有道 何如
孔子對曰 子爲政 焉用殺 子欲善 而民善矣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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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밑에 신집사 꼬봉 들으시게 (174.209.9.171)
2017-09-28 16:25:40
그저 교회가 싫고 못마땅해서, 저는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지 당췌 보이지 않는데, 그 비판 너도 한번 비판받고 생각해 보라고, 비판에 비판을 가했더니, 뭐 여기서 개독이 왜 나오고 맘몬이 왜 나오냐.... ㅉㅉㅉ 정신 차리시게나... 니가 하는 비판은 다 의로운 비판이고 남이 하는 비판은 다 맘몬이고 개독이냐? 교회다니는 사람들의 신앙과 열심, 그들의 의미와 기쁨, 구원에 대해 함부로 모욕하려 하지마. 당신이야 말로 좀 맘에 안드는 교회 형태가 있다고 하기로서는 밑도 끝도 없이 비판하고 모욕주려는, 혹은 신앙인들을 바보취급하는 이런 어줍짢은 인간이 더 웃긴거 같지 않냐. 투사가 되고 운동 (movement or social change)을 한다는 것이 이런 배설물 같은 진부한 글의 나열이여서 되겠냐. 좀 더 자신의 신념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지열한 헌신, 상대방의 가치에 대한 고민, 자기반성 등등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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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3
비판에 인색한자 보시게 (61.36.222.132)
2017-09-28 13:22:14
푸름이
아직도 이미이신 예수님 이미 와 있는 하나님의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물질의 맘몬과 권력의 맘몬에 종노릇 하는 그대같은 가라지 때문에 교회가

욕먹고 개0교 소리 듣는 것이네, 좀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게

목사, 장로, 권사만 성도요 하나님의종인가? 목회 얼마나 하셨는가?

내 주님은 내게 섬기로 오셨다고 하시더구만, 누구를 지적하고 정죄하고

죄인을 핍박하러 오신게 아니라고, 내맘에 안드는 부분이 있어도

좀 보기 싫어도 이해하고 정당한 비판과 성찰이라면 받아들일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주님의 진정한 종 아니겠는가?

한분에게만 종이고, 세상을 향하여는 눈속에 잣대를 치켜세우고 잼질하는

바리세인 이라면 목회 그만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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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
개혁본부 (121.127.78.181)
2017-09-26 05:15:05
푸름이

오랫만에 후련하게 자기소리 내시는 글을 접하니 희망이 보입니다 그려~^^
결국 짧은 자기 지식으로 자기 스스로를 옭아메는 결과가 생기게 될 것 입니다.

"제목낚시"...
때가 이르르게 되니 공공의적들이 그 발톱을 드러내게 되는 과정인가 봅니다. 그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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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6
잔나비 (175.223.27.97)
2017-09-22 21:34:16
불교 믿는 회사.

하루 만나는 직원 중에서

기독교 단어를

천천히 전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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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9
신성남 (49.50.206.22)
2017-09-22 12:04:40
'주일 성수'라는 개념은 사도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주의 날'이란 표현은 구약에 약 33회(사13:6-9, 습1:14-15. 욜1:15), 신약에 약 3회(살전5:2, 살후2:2, 벧후3:10) 정도 나오는데 이는 대부분 주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요일의 의미로 쓰여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계1:10의 '주의 날(lord's Day)'만이 유일하게 일요일(주일)을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역시 단순히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쓰인 것이지 율법의 안식일처럼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실제 사도들 중에 그 누구도 신약 교회에서 주일을 어떻게 중시하여 지키라고 언급한 가르침은 전혀 없습니다. 공식적인 주일 지정도 한참 후대의 일입니다.

물론 초대 교회가 초기부터 주일 집회를 존중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점이 주일을 지나치게 율법화하고 신성시할 근거는 못 된다고 봅니다. 아래 댓글에 귀한 의견들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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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9
Sammy (220.117.235.111)
2017-09-22 10:05:06
'주의 날(주일)'에 대한 이견
다른 언급은 모르겠으나, "일요일을 지금처럼 '주일(주의 날)로 부르게 된 기원은 서기 343년 사르디카(Sardika) 종교 회의에서다. 그 이전에는 일요일을 공식적으로 주의 날로 부르지 않았다."는 명백한 오해입니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1:10에 나오는 "주의 날(Lord's day)"에 대하여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것이 '일요일'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또한 디다케 14.1(1~2세기)이나 베드로복음서 12:50(2세기 이후)에서도 '주의 날'이 언급됩니다.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의 날뿐만 아니라(이그나티우스/1세기) 그리스도 공동체의 성찬일(고린도전서 11장)과도 연관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공식적'이라는 말이 애매한데, 1-2세기 경의 초기 기독교회에 대하여 후대에 등장하는 '종교회의(Synod/Council)'의 개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한, 기독교 초기 문헌부터 등장하는 '주의 날(일요일)'이 '비공식적'이라는 지적은 학문적으로도 부당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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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
Sammy (220.117.235.111)
2017-09-22 10:11:10
주의 날(Lord's day)
위키의 해설을 참고하시지요. https://en.wikipedia.org/wiki/Lord%27s_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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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1
김영준 (73.184.18.169)
2017-09-22 09:44:31
요한계시록에 주의 날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공식화 되기 이전에 1세기 쯤 이미 주의 날(주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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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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