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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의 하나님 여호와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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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9월 09일 (토) 18:04:27 [조회수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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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5장 22-27절

치료의 하나님 여호와

 

가. 하나님의 인도를 잘 따라야 한다.

22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 본문은 마라의 쓴 우물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잘 따라야 평안히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말씀이다. 출애굽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인도하시고 이루신 사건이다. 이스라엘을 인도한 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으며 하나님이 실질적인 인도자였다.

*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아간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블레셋 사람의 땅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은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라고 하였다(출13:17). 하나님 보시기에 광야로 가는 길이 최선의 길이었다. 하나님이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그의 인도를 잘 따라야 한다.

* 본문은 이스라엘 광야생활의 축소판이다. 원망하고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게 되고,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나. 원망이 능사가 아니다.

24절,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 이스라엘이 수르 광야에 이르러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간신히 찾은 우물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다(23절). 여기서 백성이 원망했는데 이는 옳지 못했다.

* 본문에 ‘수르’는 ‘슈르’(여행하다, 함께 가다)에서 유래하였는데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나그네 인생길’에 비유된다. 그리고 ‘마라의 쓴 물’은 ‘인생길의 어려움’에 비유된다. 또 ‘슈르’가 ‘벽’이라는 뜻도 있어서 인생길에는 벽에 부딪힐 때도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도 만사형통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길이다.

* 그런데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원망을 한다. 본문에서 ‘원망하다’는 ‘계속 머므르다’라는 뜻을 가진 ‘룬’의 수동형이다. 이는 성숙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사람이 환경의 압박(스트레스)에 눌려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인생 문제에 눌려있는 사람들이 주로 원망을 한다. 성도는 고통까지도 자신을 위한 훈련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 인생길 문제의 해답은 하나님께 있다. 그 해답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한 것은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나무를 던진 순종이었다.

*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셨다(26절). 치료의 하나님 여호와는 백성이 순종할 때 치료하신다.

* 순종은 하나님 시험의 시금석이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법도와 규례를 정하시고 백성을 시험하셨다고 하였다(25절 참조). 즉 정하신 법도와 규례에 순종하느냐 아니냐가 하나님이 백성을 심판하시는 시금석이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순종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라. 순종이 백성을 평강으로 인도한다.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 엘림은 마라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이르는 평강의 땅이다. 여기서 ‘엘림’은 ‘힘’ 또는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아일’의 복수형이다. 엘림에는 열두 개의 샘이 있었고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가 있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열둘’이나 ‘일흔’은 충만한 수다. 이는 하나님이 백성이 들어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비유된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된 땅을 주신다.

* 하나님께 순종하면 평강을 주시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고통을 주신다. 본문에서 ‘마라’는 ‘쓰다’라는 뜻과 ‘반역’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반역의 결과가 쓰다는 것을 보여준다.

*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백성들은 가나난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스러졌다. 오직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을 참조하라. 순종이 평강에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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