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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세습은 범죄교회는 무엇을 뜻하며, 그 소유는 누구의 것인가?
이인규  |  dsmed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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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9월 05일 (화) 00:29:30
최종편집 : 2017년 09월 09일 (토) 01:01:46 [조회수 : 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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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교회를 아들이나 사위에게 세습하는 목사들이 자주 있다. 최근에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두 교회의 두 목사들끼리 서로 아들을 바꾸어서 후임목사로 정한다는 이야기까지도 들린다. 어떤 목사는 과거 아들에게 세습을 시킨 것을 회개한다고 하였고, 어느 목사는 세습도 당회의 투표결과에 따르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하였으며, 어느 목사는 신문에 광고를 내어 세습을 하면 더 좋은 것이며 세습을 반대하는 것은 시기심때문이라는 글까지 올렸다. 대부분 과거에 교회를 세습한 적이 있거나 장차 세습할 의도가 있는 목사들은 세습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불륜과 로맨스의 차이는 다른 사람과 본인이라는 입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뜻하며, 그 소유는 누구의 것인가?

‘교회’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에크’(..로부터)와 ‘클레오’(부르다)의 합성어이다, 즉 어원적으로 보면 “...로부터 불러내다‘는 뜻을 갖는다.
신약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마16:18에서 처음 언급되는데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신앙고백으로 대답한 베드로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광야로 불러내셨기 때문에 성경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을 ‘광야교회’(행 7:38)라고 기록하고 있고,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가르쳤던 그리스도인들을 ‘에클레시아’라고 기록하고 있다.(행11:26)

또 고전 16:19에서는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라고 말하며, 골 4:15에서도 “눕바라는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대해서 언급하며, 빌레몬서 1:2은 “네 집에 있는 교회”라고 말함으로서, 교회가 어느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자체를 뜻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에서 사도바울은 교회와 성도를 동일시하며, 성도에 대해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교회가 ‘카할’이라는 단어가 ‘회중’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에클레시아’, 즉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회중’을 뜻한다. 목사도 교회의 한 구성원이며 직분일 뿐이다(엡4:11). ‘교회’란 용어 자체는 ‘성도’와 동일시 될 수 있다.

현재 목사라는 직분은 교회의 대표자가 되며, 엡 4:11에 의하면 교인을 양육시키는 교사 직분과 같다. 즉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회중’을 뜻하므로, 목사의 소유가 아니며, ‘세습’이라는 용어 자체가 불가한 것이다.
                    
혹간은 목사의 아들이라고 하여도 당회에서 후임목사로 결의가 되면 정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그가 목사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젊은 나이에 교회의 후임목사로 추천될 수 있었을까? 더욱이 담임목사의 영향력이 없다면 결의가 통과 될 수 있을까?

교회는 목사의 개인 기업이나 재산이 아니다. 왜 목사들은 산간벽지나 오지의 목사와 선교사 직분은 왜 아들에게 세습하지 않는가? 교계의 지도자들과 대형교회 목사들이 항상 아들이나 사위에게 교회를 세습한다는 것은 이기주의적인 발상에서 오는 것이 분명하며, 교회가 자신의 소유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회라는 개념은 성도를 뜻하며, 교회의 실제적인 주인은 목사가 아니라 주님의 것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교회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자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1) 교회는 주님이 머리가 되는 공동체이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 1:22-23)


   
(2) 교회는 주님의 몸이 되며, 우리는 그 몸의 지체가 된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엡 5:30)


   
(3)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가 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2-25)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

  
또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성도들을 처녀로, 남편을 그리스도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또한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남편, 이스라엘을 신부로 비유하는 예도 얼마든지 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사54: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 62:5)

  
또 계시록에서도 어린양과 혼인잔치를 하는 성도들이 신부로 비유되어 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7-8)
  
어린양의 신부는 반드시 성도이어야만 한다. 이것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다시 말하여 성도들의 구원 자체를 혼인으로 비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남편으로, 이스라엘은 신부로 비유되었는데, 즉 종말적인 구원을 신랑되시는 예수와 그 신부가 되는 성도의 혼인잔치로 비유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교나 변절을 성경은 간음과 음행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4) 교회는 주님이 모퉁이 돌이 되신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모퉁이 돌은 ‘아크로고니아’로서, 코너에 있는 기초석을 말한다. 이 기초석은 이사야서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회는 곧 주님이 머리가 되시며, 주님의 몸이신 유기체적인 공동체로서, 주님이 남편이시며, 또한 주님 자신이 기초석이 되어준 교회는 곧 주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를 아들이나 사위에게 세습시키는 목사는 교회론에서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필자는 주님의 교회를 세습시키려는 목사들이 하나님 앞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본다. 최근에 감리교에서는 세습을 금지하는 법안을 결의하였는데, 필자는 지지를 보내면서 한편 그와 같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법규를 제정하여야만 하는 한국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더욱 슬픔을 느낀다. 혹간은 아들도 목사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만약 그 아버지가 그 교회의 당회장이 아니었다면 젊은 아들에게 그 목사 후보가 될 자격이 주어질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여 보라. 반면에 도서 지방이나 산간 벽지에 세워진 교회는 왜 아들에게 승계하지 않는가?
 
세습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몸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부정하며, 주님의 아내가 되며, 주님이 모퉁이돌이 되시는 교회를 사유화하는 범죄로서 자기 혈육인 아들의 안위와 보장을 주님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이기주의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습에 대해서 부끄럽고 창피하게 여기지 못할 망정, 신문에 그 정당성을 올리는 목사는 최소한의 부끄러움과 양심마저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더욱이 그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글을 올리는 목사는 도대체 분별력이 있는 목사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한 한기총 대표회장 중에서 1/3이 세습을 하였다는 CBS 보도가 있었다. 한기총이라는 연합단체의 많은 지도층 목사들이 세습을 지지하며 아들에게 세습을 계획하였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들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잘못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욱이 교회세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해당 교회의 교인들에게 “대를 이어 충성하자”는 북한의 구호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인데, 세습은 아버지가 아들의 안위와 보장을 위한 목적으로 물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시기심을 없애려면 그 아들은 대를 이어 손자에게 목사를 물려줄 것인가?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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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XXX.XXX.239)
2017-09-05 07:28:28
그래서 감리교회에는 담임목사가 없었습니다.

사악한 무리들이 장로제도도 만들고 담임목사도 만들어서

감리교를 장로교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감리교의 장로들이 장로교의 장로들 처럼 철저하게 선출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감리교의 장로들은

담임목사의 입맞에 맞는 자들이 담임목사에 의해 선임됩니다.

그러니 감리교의 장로들이 장농들이 되어

신앙하여야 할 예수는 신앙하지 못하고 담임목사만 신앙합니다.

그래서 감리사선거, 감독선거가 돈으로 얼룩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담임목사제도를 없애고

순회목사제도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장농제도도 없애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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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
감리교 다.탈퇴하자 (118.XXX.XXX.133)
2017-09-09 10:24:09
본부가 부담금만 받아가지 개교회에 해주는거 있어??
이전 감독이니 감독회장글 세습안했어? 아니 세습을 떠나 당회에서 안건이 통과되어야하는거지 교인들이 원해도 법때문에 안된다는거잖아 구러면 바로 그 담임목사는 교단 탈퇴해버려라
감리교 체인점 상표 값어치도 떨어지지않나? 예전에는 장로교가 맥도날드였으면 감리교가 롯데리아는 되었는데 골목 구석탱이 햄버거 개인장영업가게만 못하다 현 상황이 그런데도 감리교 간판 사용료 본부부담금 연회 부담금 명목으로 받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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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세습만?? (14.XXX.XXX.234)
2017-09-05 15:41:15
세습만있나요? 바꾸는건요? 사는건요??
어그로 제목과 글 보기 그렇네요. 우리교회 출신이여서 권사 장로 아들이여서 사위여서 이건 이야기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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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
일봉성도 (122.XXX.XXX.102)
2017-09-05 12:51:14
편하고 돈벌이가 좋은곳은 어떻게 해서든 이런 저런 방법을 찾아서 두눈 꼭 감고
세습을 하려고 하고 어렵거나 힘들고 환경이 나쁜곳에 자기 아들이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면 부모가 그것은 못하게 말리시는가 봅니다.
아마 모든 부모가 자식을 바라볼때 같은 심정이고 같은 마음일것입니다.
아무리 목회자라고 해도 자기 자녀들은 환경이 좋고 편하고 편리한곳에서 목회하기를
추전하고 그런 꽃길(?)을 가기를 바라지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곳에 자기 자녀들을
보내고 싶은 분들은 아마도 별로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의 길을 걷는 분들이라면 일반 사람들과 같으면 안되겠지요.
어렵고 힘이 들겠지만 자식을 잘 훈련을 시켜서 더 큰 일을 할수 있게 할려면
때론 힘들고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할때도 있을것입니다.
아들이 편한 길을 찾는다면 오히려 아들을 독려하고 꾸짖어가면서 네 스스로 한번
나가서 경험해보고 스스로 헤치고 나와보거라 하면서 등을 떠밀어주어야 하지않나요.
(호랭이도 지 새끼를 낭떨어지에 떨어트려 될늠인지 안될늠인지 판단한다고...)
그러나 위에서 얘기를 했드시 이건 부모로서 참으로 어렵고 힘든 결단이고 어려운
권유일것입니다.
자기 자식에게 그 길을 가라고 권유할 수 있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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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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