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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이상
홍지향  |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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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9월 05일 (화) 00:24:29 [조회수 : 1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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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령에 드디어 햇살이 비추이고 있습니다. 오랜 비로 시들시들 죽어가던 풀들도 힘을 얻고 저희 집 빨래들도 빳빳하게 잘 마르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철에 해가 그리우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정말 해가 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요. 습기로 인해 옷장 속에 있던 남편의 양복들은 이곳저곳 곰팡이가 폈습니다. 처음 보는 벌레들이 있어서 알아보니 옷을 갉아먹는 벌레였습니다.  좀이 슬기 쉬운 옷들을 위해 좀약을 옷장 곳곳에 넣어두고 양복들은 모두 세탁소에 맡겼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해가 반짝 나고 습도가 낮아진 지난주는 제 얼굴의 기미도 개의치 않고 신나서 햇살을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씨가 맑아지면서 남편의 손도 바빠졌습니다. 보일러실의 분배기 벨브도 갈고 배관청소도 했습니다. 사람을 불러서 보일러 온수관의 녹을 빼야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을 부르면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며 남편 혼자서 배관청소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 차의 전조등을 사다가 집에서 갈기도 하고 안방과 거실의 등을 좀 더 밝은 LED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수요예배 후 귀가하시는 성도님들을 생각해 깜깜한 교회 입구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나무 거푸집을 만들어 태양광 등도 설치했습니다. 남편은 점점 시골사람답게 웬만한 것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해내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실력도 점점 탁월해져갑니다.

   지난 주일에는 고성 문암리에 위치한 김하인 아트홀에 다녀왔습니다. 수학 문제집 숙제가 많아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오후 4시까지 숙제를 마친 큰아이와 맛있는 것이 먹고 싶은 작은아이의 콧바람을 위해서 늦은 오후에 방문을 한 것이었는데 주일 오후여서 그런지 한산했습니다. 속초에서 고성으로 운전해서 지나다닐 때 김하인 아트홀이라고 이정표가 눈에 띄어 저도 기회가 되면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아트홀은 도자기체험, 제빵체험 등을 할 수 있었고 작은 도서관과 식당, 팬션 등이 오밀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동네사람답게 무심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초코머핀 두 개와 생수를 들고 테라스에 앉아서 잠시 시간을 보냈습니다.

   김하인 작가의 많은 소설책과 시집 중 제가 읽어본 것은 딱 한권 ‘국화꽃 향기’입니다. 그리고 그 소설을 생각하면 두 가지 추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첫째는 2000년도 초반 중국 유학시절에 학습교재를 사기 위해 서점에 갔는데 중국어로 번역된 한국소설 ‘국화꽃 향기’가 베스트셀러 가판대에 놓여있었습니다. 한국 소설이 중국에서 베스트셀러라고 하니 웬지 모를 뿌듯함에 저도 기념 삼아 한 권 샀었습니다. 둘째는 결혼을 하고 첫째를 임신을 했을 때 남편이 지은 첫아이 태명이 ‘희재’였는데 나중에 남편의 선배들이 이야기하기를 “**이가 국화꽃향기 여주인공을 좋아해서 딸을 낳으면 이름을 희재로 짓는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희 큰아이의 태명은 ‘희재’였지만 현재 이름은 아버님이 지어주신 관계로 ‘희재’가 아닙니다.

   국화꽃 향기의 여주인공 희재와 같은 예쁘고 여리고 심지어 아프기까지 해서 지켜주고 싶은 여성상을 좋아하던 남편은 지금은 평범한 얼굴의 튼튼한 몸에 스스로 자기 일을 알아서 잘 하는 저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김하인 아트홀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웃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이상과 다르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더 견고하게 설 수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가면 얼굴이 어찌나 까만지 금새 시골 아이들이라는 것이 표시가 납니다. 지하철이라도 타면 ‘지하철의 모든 것’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엄마, 지하철 문이 왜 한쪽만 열려요?”, “엄마, 지하철이 왜 이렇게 덜컹거려요?”,“엄마, 지하철 사이가 떨어져 버리면 어떻게 해요?”, “엄마, 지하철은 한 대가 계속 도는 건가요?”,“엄마, 저기 분홍자리(임산부석)는 뭐예요?”, “엄마, 지하철이 왜 밖(지상)으로 나가요?” 등등 지치지도 않고 질문을 합니다. 저는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답을 하지만 아이들은 잘 들리지 않아 더 큰소리로 물어봅니다.

   벌써 도시에서의 삶이 어색하고 신기한 아이들은 또래 친구가 없으면 연령이 낮은 마을의 아이들을 모아서 수준을 낮추고 노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습니다. 남편의 집수리 기술은 날마다 새롭고 저의 산길 급커브 운전 실력도 일취월장입니다. 이렇게 저희 네 식구는 잘 살고 있습니다. 저희의 이상은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하는 여유롭고 한적한 시골생활이었지만 현실은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더 강인해지게 하고 있습니다.

    진부령, 이곳이 날마다 새롭게 저희 가정을 인도하시는 삶의 자리인 줄 믿고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살기로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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