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는가.

내가 나를 소유하는  순간은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인가.

아니면 내쉬는 동안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음에 무엇을 쓸지

연필이 알고 있는 정도.

또는 다음에 어디로 갈지

그  연필심이 짐작하는 정도.

-잘랄루딘 루미-   



지난 일요일  새벽 한 친구에게  카카오톡으로 띄운 

루미의 詩  ‘내가  알고 있는 것’   전문이다.  

토요일  오후 한국  식품점에 들렸다가 우연히 마주친

한 지인으로 부터  그 친구  부인 건강에 대한  불길한  소식을  듣고 놀랐다.

“아직 아무런 소식 을  못들었어요?   미시터 박과는  친한 사이로 알고 있었는데…. 

한번 전화해 보세요.” 

“그렇께요”  하는 대답을 허공에  힘없이  떨구고 나서 

전화기를  수십번씩  만지작 거리며  망설이다가  결국  카카오톡 메시지로 대신했었다.

“삶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협력해서 최선을 이룹니다.” 는

간단한 위로의 말과 함께. 

밖에서는  새벽비가  요란하게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그 격렬함이  盛夏같았다.  

가끔 샛 푸른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숲풍경도 내마음 풍경도  을찌년스럽게 했다.

   

나는 그  친구의  처가 언제 부터, 무슨 질병을  앓고 있는지,  또 상태가 어떠한지…. 등에

대해서  깜깜하다.  가끔씩 마주치는 지인들의 입을  통해서  몇차례 어슴프레한 소식들을

흘려 듣기는 했으니 남말을 즐기는 사람들의 과장된 헛소문이려니 했었다.

지난 일년간 그를 한두차례 만난 적이  있었지만  굳이 심각하게 물어본 적이 없었고,

그도  밝힌적이 없었다.  나에게 감추고 싶은  그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

나는 안에서 잠겨진 타인의 마음문이나 창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는  도벽이 부족한 위인이다.

어떤 인연은 한시간을 만나서 만리장성을 쌓을 수도 있고, 

어떤 인연은 수십 년간 만리장성을 함께 쌓았어도  이름 섯자와  그가 꼿아논

팻말 밖에 모르는 경우가 있다.  사람 나름이다.

그래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을 알 수 없다.’ 는 옛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나는  “고통에 찬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충고하려 들지 말라.

그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올 것이다.” 는  시인 장 루슬로 싯구를 사랑한다.

‘나서서 남에게 충고하려 하지 말고  문이 열릴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라.  그 충고들이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 는 것이 내가 나이들어서야

뒤늦게 깨달은 생활철학 중 하나다.



오후가 돼서야 이틀째 내리던 비가 갑자기 멎었다.

나는 단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  아무것도 한일이 없었다. 

뭉개구름들이 파란 하늘에 꿈처럼 피어오르고, 하얀 새털구름들이

한가하게  부유하며 나를 유혹했다.  나는 누구보다도  유혹에 약한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다.



등산베낭에 물 세 병과 책 두 권을 챙겨 넣고 무작정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내 여행길 반려자 인 Thunder (개) 가   코를 킁킁거리며 차에 뛰어올라

운전석 옆 자리를 잡았다.  Thunder 는 후각으로  내 사랑의 향기,  고독의 향기,  

방랑끼의 향기를 알아차리는  유일한 친구다.  Thunder 에게 사랑은

시인 예이츠 처럼 눈으로 드는 것이 아니라 늘 코로 든다.





자동차 핸들이 나도 모르게 North Chesapeake Beach 를  향했다.

바다 냄세가 그리울 때마다 혼자서 찾아가곤 하는  한시간 거리,

바다를 닮은  만(Bay)이다.

두달 전에 4시간 운전을 해서Thunder 와 함께Ocean City 를 간  적이 있었다  

모래사장을 걷기 시작하자마자  해수욕장 경비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 죄송합니다만  모래사장은 개들의 출입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며

김을  세게했었다.  70여년 전만 해도

“이 해수욕장은 유태인들과 개들의 출입을 금한다.” 는 경고 팻말이

세워져 있던 곳이다.  그간 세상이 많이 변했어도 개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

그런면에서North Chesapeake Beach 는 개들을 차별하지  않는 에덴동산이다.



구름, 구름, 구름…………..구름들이  파란 하늘위를 끝없이 흘러가고,

차창밖엔  지난 40년간의  이민 역사가 주마등 처럼 스쳐가고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흘러왔다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문득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여행하고 있는  방랑객처럼 느껴졌다.



역시 바다는 바다고 숲은 숲이다.  그 풍경도 다르고 그 냄세도 달랐다.

모처럼 찾아온 바다, 

바닷구름들, 바닷사람들 , 바닷갈매기들, 바닷오리들, 바닷바람들,

바닷냄세들, 바닷파도들, 바닷모래들, 바닷소리들만 실컷  바라보고

듣고,  맡고, 느끼고,  만지고, 호흡하고, 사랑하고 ……… 돌아갈 것이다.



이 해변에 올 때마다 즐겨 찾는   Rod 'N' Reel Restaurant  의 Dining  Deck에

Thunder 와  자리를 잡고  앉아 생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천국에 가서도  이런 맥주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씀쓸했다.



그리고나서 Thunder 와 함께 발길가는 데로 걷기 시작했다.

긴 콩크리트 보드웍(boardwalk)을 따라 수백개의 벤치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 벤치마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리는 동판 표지판들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들도 나처럼 바다가 그리워 죽어서도 바다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듬성 듬성 벤치를 점령하고  8월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마치 신천지를 발견한 탐험가라도 되는 듯   벤치 표시판에 세겨져있는 글들을

하나하나 경뢰감으로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90살을 넘게 살다 간  노인들도 있었고,  일년을 채 못 넘기고

죽어간 어린이들도 있었다.   가끔씩 사랑하는 개들을 기리는 표지들도

눈에 띄었다.   

비록 세겨진 단어들은 서로 달라도 주제만은 한결같이

고인들에 대한 사랑, 그리움들을  자기 목소리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인생의 주제는 처음도 사랑이고, 

과정도 사랑이고,  끝도 사랑이려니.

그런데 왜 죽음에는 순서가 없은 것일까? 

신의 변덕인가?  아니면  신의 사랑인가?



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다만  生命은 ‘살라’ 는 신의 명령이고

죽음은 모든 존재들에게 공평하다는 것밖에…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의  전부다. 





08/15/2017  아침 메모

버지지나 숲 속에서

해암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