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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의 위기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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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8월 16일 (수) 01:14:00
최종편집 : 2017년 08월 16일 (수) 01:19:01 [조회수 : 7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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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 _주님의 포도원

종교개혁 500년, 우리의 경우 특별한 감흥이 있을 리 없지만 본 고장 독일에서는 그 기억과 기념이 뜨겁다. 사실 제 앞가림은커녕 허구 헌 날 개혁대상으로 취급받는 한국교회가 개혁 500년을 자축하는 것은 면구스러운 일이다.

  여유 있는 사람은 종교개혁 대희년을 맞아 독일 비텐베르크를 비롯해 루터의 도시들을 순례한다. 개혁의 장소를 찾는 것보다 로마서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로마서읽기운동을 전개하는 이도 있다. 10월 9일에 감신대에서 열리는 ‘작은교회한마당’ 역시 종교개혁의 주제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종교개혁 시대에 루터와 함께 개혁의 전염병을 널리 퍼뜨린 주인공 가운데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 부자를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동명이인으로 부자(父子)는 종교개혁의 강력한 메신저였다. 두 화가는 세대를 달리하였지만, 종교개혁의 정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붓으로 기록하였다. 그림마다 종교개혁 의지를 담아낸 선전선동 포스터와 같이 호소력이 있다.

  ‘주님의 포도원’(1569년 작)은 아들 크라나흐(1515-1586, Lucas Cranach d. j.)의 작품이다. 루터하우스에 걸려있는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한 동산 위에 두 개의 포도원이 마주하고 있다. 위 아래로 얕은 담장으로 갈라져 동서로 나뉜 두 개의 포도원 중 왼편은 교황의 포도밭이고, 오른편은 루터의 포도밭이다. 둘 사이에는 경쟁심리로 가득해 보인다. 두 포도밭은 모든 면에서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교황의 포도밭은 담장이 멧돼지가 들쑤신 듯 대부분 파손되었다. 루터의 포도밭은 그 경계가 튼튼해 보인다.
  
  교황의 포도밭은 점점 황폐해 간다. 포도나무들은 말라 비틀어졌고, 그나마 뿌리째 제거 중이다. 열매는커녕 돌무더기만 수북하다. 교황의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얼굴에서 분노가 느껴진다. 심지어 우물 안으로 돌을 버린다. 그들은 농부가 아닌 약탈자처럼 보인다. 교황의 포도원은 더 이상 소망이 없는 땅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루터의 포도원은 넉넉한 수확 때문에 기쁨으로 가득하다. 루터의 포도밭은 나무가 튼실하고 열매가 풍성하며, 농부들의 표정에도 희망이 엿보인다. 우물에서 맑은 물이 넘쳐난다. 크라나흐의 그림은 종교개혁용 포스터다운 의도가 다분하다.

  포도밭의 비유는 일종의 심판의 내용이다. 이사야의 ‘포도원 노래’(사 5:1-7)가 이스라엘의 부정과 타락을 의미하듯, 교황의 포도밭은 심판의 대상을 의미한다. 포도농사를 비유해 이스라엘의 현실을 책망하듯 당시 로마 가톨릭을 비판하고 있다. 농부는 기름진 산등성이에 극상품 포도나무 묘목을 심고, 망대와 술틀까지 준비하였다. 그런데 투자와 기대, 노동의 보람도 없이 들포도가 맺혔다. 농부는 분노한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사 5:4). 마침내 농부는 포도원의 담을 헐어버리기로 마음먹는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를 파문한다. 그는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루터를 공격하였다. “주여, 일어나사 심판하소서... 숲에서 뛰쳐나온 멧돼지 한 마리가 (당신이 가꾼) 포도원을 파괴하고 있고 온갖 들짐승이 먹어 치우고 있나이다.” 이는 시편의 두 구절을 인용하여 변용한 것이다.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7:7).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80:14).

  교황은 41개조에 이르는 교서를 통해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였고, 반교회적 저작을 불태우도록 명령하였다. 루터는 60일 이내에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될 것이다. 종교개혁시대의 화가 크라나흐는 묻고 있는 것이다. 교황과 루터, 과연 누가 하나님께 순종한 것인가?

  주님의 포도원에 위기가 닥쳤다. 포도나무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고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탓하며 이렇게 안타까워한다.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렘 2:21). 예나 지금이나 불순종한 백성의 열매는 악하다.

  하나님의 심판은 예외가 없다. 예언자 에스겔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당시 유다 임금을 풍자하여 비판한다. ‘독수리와 포도덩굴 비유’(겔 17:1-10)는 망할 처지에 직면한 유다 왕국을 향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왕국을 지배하는 교황도 예외가 없다.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땔감으로밖에 쓸 수 없다.

  누가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포도열매인가? 포도나무 비유는 역사에 대한 예언적 경고이다. 현실에 순응하면서 세상과 타협한 교회와 복음은, 그 결과로 세상의 그럴듯한 일부분은 되었을지언정 세상에서 씨앗도, 누룩도, 소금도, 포도나무도 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포도주 틀에 포도주가 끊어지게 하리니 외치며 밟는 자가 없을 것이라”(렘 48:33). 들을 귀가 있다면, 오늘 한국교회야말로 나를 향한 나팔 소리로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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