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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와 생령
이인규  |  dsmed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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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8월 13일 (일) 00:31:42
최종편집 : 2017년 08월 17일 (목) 00:20:12 [조회수 :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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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니쉬마트 하임 = 호흡. 바람)를 그 코에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야 = Living Being)이 된지라."(창2:7)

본문에서 “생령”이라는 단어를 “영적인 존재”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처음에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여 이런 해석은 잘못된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생기’를 ‘성령, 하나님의 영’으로 해석하고, ‘생령’을 ‘살아있는 영’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특히 지방교회와 같은 곳에서는 이 본문을 인용하여 “영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대량으로 만들었다”고 해석을 하기도 한다. 또 베뢰아와 같은 곳에서는 “아담 이전에 짐승과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들 중에서 아담을 선택하여 영을 불어넣어줌으로서 영적존재인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영"(spirit)이라 번역되는 용어는 히브리어 "루아흐"이며, "영혼" 혹은 "혼"(soul)이라고 번역되는 용어는 히브리어 "네페쉬"이다.

그런데 생령(네페쉬 하야)이라는 단어는 “영”(spirit)이 아니라 “혼”(soul)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분법에서는 성경은 영과 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구별을 하지는 않지만, 삼분법에서는 영과 혼은 다르다. 그런데 "루아흐"(영)나 "네페쉬"(혼)라는 단어의 원래적인 의미는 모두 "호흡"이며 "바람"이라는 뜻을 갖는다.

즉 창세기 2장7절의 내용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어 생령(살아있는 영)이 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해석이다.
 
“생기”를 “혼”과 구별되는 “영”으로 해석하고, 생령을 "살아있는 영적존재"로 해석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볼 때에 완전히 오류가 된다. 창세기 2장7절에서의 “네페쉬”는 문자적으로는 “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혼"을 뜻하며, “네페쉬 하야”는 영적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생명체”라는 뜻이다. 즉 개역성경에 “생령”으로 번역되어, 마치 육체를 배제한 영적인 의미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혹간은 에스겔 37장을 창세기 2장7절의 본문과 비교하는데, 에스겔 37장과 창세기 본문은 다르며, 마른 뼈에 불어준 “생기”는 “루아흐”(영, spirit)이고, 에스겔 본문은 바벨론 포로생활로 디아스포라가 되었던 이스라엘에 넣어준 성령을 회복으로 비유한 것이지만, 창세기 본문은 흙으로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줌으로서 생명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른 번역성경과 비교하여보자
                           
(공동번역)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표준새번역)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현대인의 성경) 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티끌로 사람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산 존재”가 되었다.

영어성경을 살펴보자

[KJV]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NIV]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왜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를 영적존재라고 해석하면 안될까?
성경을 살펴보면, 사람만 “생령”(네페쉬 하야)이라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짐승들도 동일한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것이다.(창1:21, 1:24, 1:30, 2:19등) 만일 ‘생령’을 “영적인 존재”로 해석하려면, 각종 들짐승과 새등 짐승들도 모두 영적인 존재라고 해석하여야만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하이 네페쉬: Living Creature)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
                          
즉 본문은 하나님이 생기 또는 호흡을 불어 넣어주므로써, 생명체가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혹간은 흙을 이상한 의미로 비유하는 경우도 있는데, 흙을 “사탄의 저주”라고 해석하는 주장도 있고, 흙을 “영이 없고 혼만 가진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도 알레고리적인 잘못된 주장이며, 육체를 사담, 죄와 연결시키는 이원론적인 주장이다.

또 혹간은 뱀이 흙을 먹었다는 것에 대해서 자의적인 해석을 한다.
“땅”은 히브리어로 “아다마”이며, “붉다”(하아다마: 붉게되다)는 의미를 가졌으며, “아담”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된다고 한다. “흙”은 “아파르”로서 먼지를 말한다.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혼과 영과 관계가 없으며, 사람은 먼지와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히: 아파르)을 먹을지니라” (창 3:14)

이단들이 그들을 전도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들은 성경의 부분적인 구절을 인용하며, 기독교가 잘못 해석한 오류라고 문제를 삼는 수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달리 해석하여야 한다고 유도를 하면서 자신들의 자의적인 해석을 합리화 시키는 것이다.

신천지는 뱀이 실제로 흙을 먹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뱀이 흙을 먹도록 저주를 하였다는 것이 오류라고 주장한다. 즉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지 말고 달리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뱀은 작은 짐승을 잡아 먹고 사는 육식동물이다. 과연 유대인들이 뱀이 흙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기록을 하였을까?

뱀이 저주를 받아 흙을 먹게 되었다는 것은 저주를 받았다는 비하적인 표현을 의미한다. 성경에서는 그러한 비하적인 표현이 많이 발견된다.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그 원수들은 티끌(아파르: 공동번역, 표준새번역은 땅바닥으로 번역)을 핥을 것이며” (시 72:9)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하매 캄캄하고 거친 들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욥 30:3)

“그들이 뱀처럼 티끌(아파르: 공동번역, 흙)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 (미 7:17)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아파르, 다른 번역은 먼지로 번역)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사 49:23)

신천지뿐 아니라 지방교회와 베뢰아도 ‘흙으로 지은 사람’에 대해서, 영은 없으며 혼과 몸으로 된 육신의 사람이라고 해석하며, 생기를 곧 영이라고 해석하며 생기를 받아 생령, 즉 영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해석한다. 심지어 정통교회의 목사들도 그와 같은 해석을 하는 수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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