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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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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8월 11일 (금) 22:23:24 [조회수 : 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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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누워있었던 사건의 결과로 노아의 아들 함은 저주를 받았다. 함과 다른 형제들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함은 아버지의 나체를 보았고, 다른 형제들은 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셈과 야벳이 저주를 피하기 위해 한 행동은 무언가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함은 우연히 보았고, 셈과 야벳은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다. 이 저주의 사건에서 결정적인 것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았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과거에 무엇을 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염려한다. 지금의 내 처지나 모습은 과거에 했던 모든 일 때문이라고 으스대거나 자책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의 처지와 모습을 위해 지금 부단히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한 것, 하는 것, 할 것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약해지고 말았다. ‘무엇인가를 함’에 대한 강박이 삶을 뒤덮은 모양새다.

하지만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쩌면 무엇을 하지 않았나가 삶에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가 무엇을 해왔고 쌓아 왔나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하지 않았고 어떤 것을 거부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내가 한 선택으로 지금의 내가 된 것이 아니라, 내가 하지 않은 선택으로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미련이라는 인생의 상처도 결국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이 아니던가. 결정적인 순간 나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고, 결정적인 순간 나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그것이 다행스런 나이든 후회스런 나이든. 현재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은가로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다.

인생의 선택에 대한 말 중 가장 도움이 되고 기억에 남는 조언은 이것이었다. “둘 중에 고민이 될 때에는 손해 보는 쪽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 옳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이것이야말로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 꽤 적절하고 실용적이고 간명한 원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해 보는 쪽으로의 결정, 곰곰이 따져보자면 이 또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선택이다.

하나님의 법이든, 사람의 법이든, 모든 법 역시 하지 않는 것에 관한 것이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고민하지 않으면 사람은 쉽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아마도 함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동산 숲을 이룬 모든 나무들 중 고작 하나의 나무열매를 금하신 것도 어찌 보면 인간들에게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상징적으로 알려주시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자유란 경계가 있는 것이고, 그러니 모른 채 타인의 자유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위해서. 법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의 속박이 아니라 자유의 경계에 대한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이 일에 대하여 인간은 ‘하지 않음’을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빌 2:6-7, 공동번역)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그분이 하지 않은 것이었고, 이렇게 그는 인간과는 정반대로 그가 하지 않은 일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셨다. 선택이 나를 만든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는, 하지 않은 선택이 나를 만든다. 하지 않음에 대하여 우리는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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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175.223.3.211)
2017-08-12 13:30:19
선택은 사람.

판단은 하나님.

선택은 자유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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