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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독교의 대안적인 삶 "아미쉬공동체"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의 미주대안공동체 탐방
박성도  |  sjyoo7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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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8월 02일 (수) 02:57:45
최종편집 : 2017년 08월 14일 (월) 01:13:22 [조회수 :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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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의 미주대안공동체 탐방팀이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를 방문하며 우리 일행이 처음 방문한 곳은 아미쉬(Amish) 공동체 농가 체험장이었다.(http://www.amishfarmandhouse.com) 아미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국에도 아미쉬에 관한 책들과 기사들이 보도되었고, TV에서도 여러 차례 방송된 것으로 알고 있다. 현대인들이 아미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빠르게 변화하고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과 상반되는 삶을 살고 있는 아미쉬 사람들을 바라보며 단순한 삶이 주는 여유와 쉼을 그들의 삶의 현장을 통해 느껴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바라보는 아미쉬 공동체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미쉬의 예배의 모습과 직분제도들을 통해 기존교회와 무엇이 다르고 신앙전통을 어떻게 계승해 나가는지 궁금해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목사안수를 준비하는 목회후보자의 한사람으로 아미쉬 공동체를 방문하며 앞으로의 목회에 대한 큰 깨달음과 도전을 받는 기회가 되었다. 아미쉬들은 자동차 대신 마차를 끌고 다니고 전통적인 검은색 옷에 남자는 구렛나루 수염을 기르고 여자는 항상 두건을 쓰고 다니고 전기와 전자제품도 쓰지 않는다. 농사지을 때도 짧은 옷을 입지 않고 그냥 다니기도 힘든 무더운 여름날에 긴 옷들을 입고 농사를 짓고 자신들의 종교지침서The Ordnung에 의한 생활을 고집하며 자연 속에서 자신과 가정 그리고 노동(농사)에 집중하며 높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하는 모습에 큰 도전을 받았다. 여정에서 돌아와 아미쉬의 신앙과 삶에 대해 ‘작은공동체가 희망이다’(유성준, kmc, 2012)와 다른 자료들을 참조하며 나의 현장에 상황화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번 아미쉬 공동체 탐방경험이 이 글을 읽는 이들의 삶과 사역에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아미쉬 공동체 농가 체험장
   
▲ 아미쉬 공동체 농가 체험장 마차

 

1.아미쉬의 시작

스위스 메노나이트 교회의 젊은 장로 제이콥 암만Jacob Amman과 그를 따르는 소그룹의 추종자들은 메노나이트 교파가 교리에서 벗어나 시류를 따라 흐르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메노나이트 지도자들은 그들의 이러한 강경한 요구에 등을 돌렸다. 이에 제이콥 암만은 1693년에 이르러 자신의 주의 주장을 따르는 교도들과 함께 알사스alsace지방에서 독자적인 분파를 이루었다. 이 새로운 교파는 지도자 제이콥 암만Jacob Amman의 이름을 따 아미쉬amish라고 불렀다. 독일계 재세례파 아미쉬가 미국 땅에 정착한 시기는 1720년경 펜실베니아 주 랭커스터 지방이였다. 아미쉬들은 1730년 전후에 펜실베니아주의 관문인 필라델피아에 도착해 랭커스터 지방에 모여서 집단 거주지를 이루었고 일부는 인근의 벅스, 체스터와 레바논 카운티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미쉬 사람들이 이 지역을 정착지로 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처음 도착한 필라델피아에서 가까웠기 때문이고 기후와 토양 등 자연환경도 그들의 생업인 농사짓기에 적합했다. 지금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고 랭커스터 카운티에만 3만 5천명 이상이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2. 미국에서의 정착 생활

아미쉬들은 미국에 정착하고 종교의 자유와 기쁨 보다는 또 다른 고통과 난관을 맞이하였다. 원주민들의 습격과, 남북전쟁 징집거부로 인한 박해와 미국정부와의 충돌도 계속되었다. 1930년 시행된 고등학교 과정의 의무교육에 아미쉬 사람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도 그렇지만 공동체 삶을 영위하는데 중학교 과정을 넘어선 고등교육은 해가 된다고 판단한 아미쉬 사람들은 자체 교육 프로그램에 의한 학교 운영을 주장했다. 그들은 1971년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법적 권리를 얻어내기까지 주 정부로부터 피소를 당하고 벌금, 징역등의 처벌을 감수했다.

 

   
▲ 아미쉬 가족의 중고장터

 

이 뿐만 아니라, 아미쉬 사람들은 1955년부터 실시된 정부의 사회보장제도도 그들의 공동체에 뿌리내린 상호 부조와 협동정신에 상치된다고 여겼으며, 정부 주도로 시행되는 그러한 제도는 자신들에게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정부로부터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않을 것임을 밝히며 세금 납부를 거부했고, 이로써 연방정부로부터 농지와 주택을 가압류당하고 밭을 갈고 있던 말과 농기구를 강제 경매 처분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그러한 처벌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온 끝에 의회로부터 아미쉬 공동체는 사회보장제도로부터 예외로 한다는 판결을 얻어냈다.

 

   
▲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인 아미쉬가족

 

오늘날에도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정부의 사회보장법과 노인의료보험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 따라서 노후연금과 장애연금, 실직급여, 치료비감면 혜택 등의 사회보장성 혜택을 받지 않는다.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사회보장세와 의료보장세를 제외한 소득세, 판매세, 기타 지방세 등 모든 세금을 일반인들과 똑같이, 어느 면에서는 일반인들보다 더 성실하게 납부한다. 사회에 나가 직장생활을 하는 아미쉬인들에게 월급에서 세금이 공제되지만 본인 스스로가 혜택을 누리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 운영에 있어서도 정부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공동체 학교를 운영하면서도 일반 공립학교 운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과되는 재산세를 성실하게 납부하고 있다.

 

3. 아미쉬 교육제도

아미쉬 공동체에서는 지금도 중학교 과정인 8학년까지만 학교 교육에 의존하고 그 이후에는 가정과 공동체에서 보고 듣고 배우는 현장교육 이른바 벽이 없는 교육을 중요시 한다. 아미쉬 공동체 학교의 외형상 특징은 바로 교실이 하나밖에 없는, 원룸스쿨one room school이다.

이 학교건물은 아미쉬가 세운 것이 아닌 미국의 정부로부터 구매한 것이다. 곳곳에 흩어져 살던 정착민의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세운 개척시대의 학교는 모두 원룸 스쿨인데 도시가 형성되고 큰 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농촌지역에는 폐교로 남아있는 학교들을 아미쉬가 사서 자신들의 학교로 운영하고 있다. 학교 주변 환경정리나 보수 수리역시 아미쉬 사람들이 관리한다.

 

   
▲ 아미쉬 원룸 스쿨 교실 사진
   
▲ 아미쉬 원룸 스쿨 Amish one room school house

 

아미쉬 학교에서는 한 학교의 학생 수는 25-35명이며 한 명의 교사가 1학년에서 8학년까지의 모든 학생을 한 교실에서 가르친다. 간혹 학생 수가 많거나 특수 학생들을 수용하는 학교에서는 교사가 두 명인 곳도 있다. 아미쉬의 여름방학은 긴 편인데 5월 초에서 8월 말까지 이어지는 넉 달에 가까운 긴 여름방학이 주어져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지는 못하였다. 아미쉬 학교 교사의 학력은 8학년 과정인 아미쉬 학교 졸업이 전부이다. 선생은 미혼 젊은 여성이며 월급에 있어서도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아니하고 각 아미쉬 교구에서 받는다. 하루에 30불정도로 적은 금액을 받는데 돈을 버는 생계 직이 아닌 봉사 직으로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다. 아미쉬 공동체의 청소년들은 일반 사회의 청소년들보다 조금 빠른, 16세에 이르러 공동체에서 성인으로 간주되며, 이 나이에 이른 아미쉬 청소년들은 모두가 짧은 기간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것은 아미쉬 교회의 정식 멤버가 되어 일생을 아미쉬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를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갈 것인가? 하는 일생일대의 중차대한 결단을 내려야하기 때문이다.

아미쉬 젋은이라면 누구든 거쳐야 하는 고심에 찬 통과의례인 럼스프린가Rumspringa가 있다. 럼스프린가Rumspringa는 독일어 방언이다. 여기에는running around time‘돌아다니는 기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기간 동안 세상에 나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럼스프린가를 마치고 돌아와 공동체에 남기로 결정한 아미쉬 젊은이들의 비율은 90%에 이르며 나머지 10%정도만이 공동체를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미쉬들은 학교교육을 통해 성경과 함께 생활에 필요한 공부, 예를 들면 집짓기나 농사, 양재 등을 배운다. 결혼연령도 빨라 남자는 19세에서 25세, 여자는 17세에서 23세에 결혼하며 신혼부부를 위해서 주민 전체가 함께 집을 지어주는 공동체문화가 특징이기도 하다.

 

   
 

 

4. 예배

아미쉬의 예배는 2주에 한 번씩 교구 내 각 가정을 돌며 집에서 주일예배 모임을 갖는다. 그들이 교회 건물을 짓지 않고 교도들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관행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신께서는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한다’ 이는 사도행전 17장 24절에 따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종교개혁 당시 혹독한 박해를 피해 산간벽지 등으로 숨어든 교도들이 감시의 눈을 피해 각자의 집을 전전하며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던 관행이 오늘에 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2주에 한 번씩 예배 드리는 것은 개혁 당시 범죄 집단으로 내 몰린 상황에서 예배 모임을 자주 갖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아미쉬 교회의 교구District가 25가구 내외, 약 150명 규모로 나누어지는 것은 예배나 친교모임을 위한 적정 규모라기보다는 2주에 한 번씩 갖는 예배 모임이 한 가정에 매년 한 차례씩 돌아가도록 하려는 고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150여 명이 한 가정에 모여 예배나 친교의 모임을 가지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아미쉬 사람들의 주택은 교구 내 교도들이 함께 모여 앉아 예배를 볼 수 있도록 넓은 거실과 방들이 미닫이 문으로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헛간 등을 정리하여 식사를 하거나 아이들이 노는 장소로 활용하곤 한다.

주일예배는 아침 8시에 시작을 한다. 그러기에 모든 일과를 아침 일찍 마치고 아침식사를 한 뒤에 단정한 옷을 입고, 가족전체가 마차를 이용해 예배가 시작하는 집으로 간다. 교도들은 예배 시작 전까지 남녀, 같은 연령층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려 잠시 인사와 한담을 나눈다. 예배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가 모자를 벗어 걸고 남성과 여성으로 자리가 구분된 방으로 들어가 등받이가 없는 딱딱한 의자에 앉는다. 목사와 감독, 집사는 맨 앞좌석에 앉으며, 노인들은 편안한 의자에 앉도록 배려한다. 예배용 의자와 성경책, 찬송가집 등은 교구 내에서 공동으로 소유하며 예배가 열리는 집으로 옮겨가며 사용한다. 따라서 집집마다 예배용 의자를 갖추지 않아도 되고 교회에 갈 때 성경책이나 찬송가를 들고 가지 않는다. 예배는 오전 8시에 찬송으로 시작된다. 찬송가집은 아미쉬 고유의 아우스분트ausbund를 사용하며 악기 연주 등 일체의 반주 없이 리더가 첫 음절을 부르면 모든 교도가 일제히 따라 부르는 방법으로 30분 정도 이어진다.

찬송이 끝나면 일반 교도 중 한 명이 나서 약 30분간 설교를 하고, 그 다음 모두 무릎을 꿇은 채 다소 긴 묵도가 이어지며 이때 성경이 낭독된다. 그러고 난 후 목사의 설교가 약 한 시간 이어진다. 목사나 다른 설교자는 사전에 준비한 원고 없이 설교를 하는데, 설교 중에는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교도들도 있다. 예배 모임에서 목사의 설교 등 모든 진행은 교도들 간에 일상생활에서 통용되는 펜실베이니아 더치어로 하며, 성경은 독일어 판을 사용하고 정통 독일어로 낭독한다. 그들에게는 1년 동안 스물여섯 번의 예배 모임마다 낭독할 성경 구절과 부를 찬송 등이 담긴 소책자가 있으며, 성경은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을 위시해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을 1녀에 완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목사의 설교가 끝난 뒤에는 신앙고백, 설교에 대한 보완 설명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며, 다시 이어지는 기도와 성경낭독, 찬송 순으로 약 세 시간의 예배 모임을 진행한다. 아미쉬들의 예배 모임에서는 헌금을 하지 않으며 예배 모임 전후에 성경 공부 시간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예배모임이 끝난 뒤에는 교도들이 모두 점심 식사를 함께 한다. 예배가 모이는 가정에서 마련한 음식으로 식사를 함께 하면서 교인들 간의 친교와 우의를 다진다. 남자 성인 교도들은 예배 모임의 자리를 정리하고 식사 모임을 위해 테이블을 들여놓고 의자를 재배치하며, 부인들은 음식 준비에 바쁘다. 식사는 한 번에 30-40명씩 방을 나누거나 남자 어른부터 시작해 차례로 나누어 하며 식사 전후에는 모두 다시 묵도를 한다. 이렇듯 예배와 친교의 모임에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고린도전서11장33절(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을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가 끝나면 성인 남자들과 여인들, 젊은이들이 각기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때 어린아이들도 헛간이나 뜰에 모여 놀이를 즐긴다. 각 가정들의 사정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젊은이들은 예배가 끝난 후 별도로 그들만의 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아미쉬 사람들의 찬송가에는 악보가 없고 가사만 있다. 찬송가의 멜로디는 대부분 종교개혁 당시의 종교적으로 또는 일반 속세에서 부르던 민속 음악과 그레고리오 성가의 곡조에서 따왔다. 악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도들이 찬송가를 기억하고 400여년 간 전승되어오고 있음은 매우 놀랄 만한 일이다.

 

   
 

 

5. 제비뽑기로 선출되는 교역자들

아미쉬 사람들은 교역자들을 독일어로 Diener라고 부른다. 이는 종, 하인, 봉사자, 공복이라는 의미로 감독Bishop, 목사Minister그리고 집사Deacon의 세 가지 직책이 있다. 아미쉬 공동체의 전형적인 교구의 경우 한 명의 감독, 두세 명의 목사 그리고 한 명의 집사를 둔다. 감독은 교구의 리더이자 총괄관리자로 성찬식, 세례, 결혼 의식을 주재하며 교도의 파문과 복위의 관한 결정을 총괄한다. 아울러 목사의 선발과정을 감독하며 선출된 목사의 성직 수임 예배를 주재하고 공동체의 율법을 어긴 자에 대한 훈계 조치를 공표하는 일도 담당한다. 감독은 두 세 개의 교구를 함께 관할하기도 하며 교구 내 교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동체 내 감독 모임에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한다.

목사는 설교를 담당하는데, 두세 명의 목사가 순서를 정하여 교대로 설교를 한다. 속한 교구에 예배 모임이 없는 주일이나 자신의 설교가 없는 목사는 다른 교회를 방문해 설교하기도 한다. 목사는 미리 준비한 원고나 메모 없이 교도들 앞에 서서 설교를 하고, 교도들에게 하느님의 가르침을 일깨워준다. 아미쉬 교회의 목사들이 목회자를 위한 특별 교육 과정을 이수하지 않았는데도 사전 준비 없이 한 시간여에 걸쳐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설교를 감당해 내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불가사의한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집사는 예배 모임에서 성경을 낭독하고, 세례식에서 주교가 세례를 받는 교도의 머리 위에 부을 물을 준비한다. 성찬 예배에서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고 성배를 관리하며 세족례 의식에 필요한 물이 가득 담긴 물통과 수건을 준비하는 일도 집사가 담당한다. 또한 집사들은 교구 내의 여타 행사에 겉으로 나서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 일을 맡아 처리한다. 도움이 필요한 교도나 미망인들을 돕는 임무를 수행한다고 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종minister to the poo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집사는 규율을 어긴 자에 대한 사실 여부 확인의 임무를 감독으로부터 부여받기도 하고, 파문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담스러운 임무도 감당한다.

아미쉬 공동체 교회의 교역자는 모두 남성이며 그 어떠한 경우라도 여성들이 교역자로 나서는 일이 없다. 아미쉬 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제비뽑기로 교역자들을 선출하는 것이다. 감독의 공석이 발생했을 경우, 후임 감독은 교구 내 목사들 중에서 선발하여 연장자순으로 선임되는 것이 관례이다. 목사와 집사는 교회 모임에서 교도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자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출하며 기혼자로서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교도들을 목사나 집사의 후보로 추천한다. 목사와 집사를 제비뽑기로 선발하는 관행은 사도행전 1장 23-26절에 이르는 열두 제자 중 떠나간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제비뽑기로 결정 했다는 요지의 성경 구절을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아미쉬에서의 제비뽑기는 운에 따르는 당첨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부름에 행하는 방법 즉 운명적 피선임의 수단임을 알 수 있다.

아미쉬의 감독, 목사, 집사는 그 어떤 보수나 대가도 받지 않는다. 그들은 평소에 자신들의 생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교역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아미쉬 공동체의 주교나 목사도 일반 교도들과 다름없이 평일에 말을 몰아 밭을 갈거나, 목공실에서 대패질을 하며 가구를 만드는 등 가족의 생계를 위해 땀 흘려 일한다. 우리가 방문한 목공소에서도 작년 탐방팀이 만났던 풀 타임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감독 한분을 만났는데 바쁜 일과 때문에 함께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 하여 다소 섭섭하였지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시간이었다.

 

   
 

 

나가는 말

이 시대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사람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를 이야기하지만 통계청 자료를 보면 불교, 천주교, 기독교(이단 및 가나안성도를 제외하면)할 것 없이 전반적으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수가 줄고 있다. 많은 현대인들은 종교를 가지려 하지 않으며 관심조차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교인들의 가족들조차도 인가귀도가 되지 못하고 있다. 집사님, 권사님의 가정부터가 자신의 자녀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시간보다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젊은 세대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일이 큰 도전인 시대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 성도들의 헌신도 많이 약화되고 있다. 교회 안에 다양한 분쟁들도 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미쉬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의 집을 예배장소로 사용하도록 제공하며, 또한 많으면 150명가량의 식사를 준비한다. 자신들의 신앙전통을 철저하게 파수하며 이러한 전통이 300년가량 이어져 오고 있다. 아미쉬 사람들은 한 가정이 5명에서 12명까지 출산하는 다산의 영향도 있지만 교인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 아미쉬 자녀들도 세상에 나가 살기보다는 부모님과 함께 아미쉬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을 원하고 있다.

감독, 목사, 집사 등 교회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 역시 사례비를 받지 아니한다. 아미쉬 성직자는 한평생을 자비량으로 봉사하고 희생하며 살아가야 하는 고난의 삶으로 받아들여진다. 성직자가 된 것이 축복된 일이지만 아미쉬 공동체에서는 성직자로 사역하는 당사자들이나 가족들이 그것을 결코 기쁜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그 삶이 얼마나 고난스러운지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아미쉬 사람들은 세례예배 때를 제외하면 헌금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질에 있어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헌금이나 봉사와 섬김에 있어 부담이 많고 나도 어촌교회 전도사로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지만 목회자는 생활비를 받으며 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요즘 감리교회가 은급문제로 시끄럽다. 개교회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담임목회자가 은퇴를 하게 되면 집과 차를 장만해 주는 것이 교회 재정으로 부담이 되니, 교회는 새롭게 오는 목회자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교회를 사고 판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아미쉬 공동체를 방문하며 깨닫는 것은 단편적일 수 있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신앙과 전통 그리고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지켜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의 삶은 단순하게 하나님 말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 아미쉬들의 삶을 반추해 볼 때 한국교회는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삶이 우선이며 자신들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살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도 보여진다. 하나님의 음성에 아멘으로 순종하며 나가지 못하고 변명했던 모세와 도망쳤던 요나의 모습이 현 교회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아미쉬들의 경건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삶과 사역에 실제적인 통찰력을 주는 도전들을 받게 된다. 우리가 움켜쥐려 했던 욕심들을 내려놓고,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했던 말씀을 실천하며 교회가 진정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연결점이 될 수 있는 공동체로 세워질 수 있다면 우리 교회는 달라지고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받게 된다.

 

박성도 전도사(대천지방 효자도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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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239)
2017-08-02 08:57:54
.
웨슬리의 감리교가 참으로 예수님께로 가까이 향했다면

이 글을 통해

한국의 감리교가 얼마나 예수님과 멀어졌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월급을 받는 목사는 없어져야 합니다. 자비량 목사가 있을 뿐입니다.

십일조도 없어져야 합니다. 구제를 위한 연보가 있을 뿐입니다.

성전도 없어져야 합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예배당이 있을 뿐입니다.

선출되어진 감리사와 감독도 없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뽑으시는 제비뽑기가 있을 뿐입니다.

감리교안에 있어 목사가 뽑는 친위대인 장로라는 직분도 폐하여져야 합니다.

성도들이 뽑는 집사가 있을 뿐입니다.

새물결은 휴가 갔습니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기를 바랍니다.
.
핵심을 찌르는 탐방 보고서를 쓴 박성도 전도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리플달기
8 0
지나가다 (99.225.193.49)
2017-08-03 20:21:36
같이 일년이라도 같이 살아보세요.
그래야 그들이 유럽을 떠나 미국에 거처하게 된 이유,
그리고 어울려 살지 않고, 그렇게 살 수 밖에 없게 된 배경,
현재는 많은 아미쉬들이 공동체를 떠나 개인의 삶을 추구하면서
생기는 모습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삶이 검소한 것 처럼 보여도,
엄청난 부자들이고, 목회자가 자비량을 해도,
한국 큰 교회 목회자들보다 훨씬 더 부자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속에 노동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개념도 알아야
합니다.

많은 한국분들이 아미쉬 마을 관광왔다가 왔다가
돌아가면서 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못산다라고 합니다.
리플달기
1 4
포이멘 (183.109.98.239)
2017-08-04 07:07:44
와! 하하하
리플달기
1 0
빛의자녀 (152.99.38.73)
2017-08-03 16:25:32
기독교의 모든 문제는 자비량 목회만 하면 해결
한국교회가 개독교 소리를 들으며 온갖 욕을 다 듣고 교회다니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근본 원인은 목사가 직분이 아니라 직업이기 때문에 교인들은 교회에 돈을 많이 내는데 그 돈이 모두 목사의 생활비와 큰 건물 짓고 유지하는데 소용되기에 사회에 베풀 수가 없는 것과 교인들은 십일조, 건축헌금, 감사헌금, 절기헌금 등 지나치게 많은 돈을 교회에 내기에 자기들의 생활하기도 빠듯하여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없기 때문에 구두쇠다 인색하다 자기 밖에 모른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원인은 목사들 때문입니다. 목사들이 자비량 사역을 하지 않고 교인들이 내는 헌금으로만 생활하려고 하고 있고 이렇게 하려고 하니 돈을 많이 거둬야 하기에 신약에서는 무효가 된 십일조를 안 내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고 내면 복을 받는다며 십일조를 강요하게 되고, 설교도 교인들을 많이 끌어모아 수입을 늘리려고 기복 설교만하고 또한 교회를 성전이라고 하면서 할 수만 있으면 교인들의 주머니를 쥐어짜서 교회를 크게 지으려고 하고 은퇴목사가 되면 죽을 때까지 주택과 생활비를 제공받으려고 하는 등 모든 것이 목사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가 교인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지 않고 자비량 사역을 하면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기에 십일조와 건축헌금 등 모든 헌금을 강요하지 않게 되고 이렇게 되면 교인들은 헌금에 대해 부담을 갖지않게 되고 지금 교회에 내고 있는 헌금의 일부라도 이웃과 사회에 베푼다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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