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
고든 코스비 목사에게 길을 묻는다
유성준  |  sjyoo721@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7년 07월 07일 (금) 01:41:26
최종편집 : 2017년 07월 12일 (수) 01:54:03 [조회수 : 135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고든 코스비 목사에게 길을 묻는다1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세미나 / 2017년 6월 14일 후러싱제일교회 / 유성준 교수

1. 본 자료는 그동안 필자가 출간하였던 졸저 ‘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교회(서울: 평단, 2005)’, ‘세이비어교회-실천편(서울: 평단, 2007)‘,’예수처럼 섬겨라(서울: 평단, 2009)‘,’작은 공동체가 희망이다(서울: kmc, 2012)‘, ’위대한 사랑의 힘에 사로잡힌 삶(서울: 평단, 2014)‘에서 고든 코스비 목사의 생애와 사역에 관한 내용을 재구성하여 소개하는 내용임을 밝힌다. - 유성준 교수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는 한마디로 위기와 새로운 공동체Crisis and New Community운동의 연속이었다. 초대교회가 생명력을 잃어가고 조직화되어 갈 때 초대교회적 공동체를 재현하려는 몬타누스운동이 있었고,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후 기독교는 오히려 세속화되고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졌고 제국 멸망의 반동으로 수도원운동이 일어나 시대의 아픔을 극복해 나갔고 중세교회가 세속화될 때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당시 세속화 된 교회를 신약성서의 원형으로 회복하려는 운동이었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교회의 역사를 돌아볼 때에도 교회는 어려울 때 마다 새로운 공동체운동이 일어났고 때로는 개인의 갈등들이 공동체화 되는 것도 볼 수 있다. 이 시대 교회에도 여러 가지 위기가 개인과 공동체에 만연해 있다. 이것이 이 시대 교회가 풀어야 될 과제이며 7월 달 뉴욕 플러싱제일연합감리교회의 종교개혁 기념강좌는 21세기 가장 혁신적인 교회갱신의 모델 가운데 하나인 와싱톤 디시의 세이비어교회의 설립자인 고든 코스비목사를 통해 그 위기에 대한 대안점을 찾고자 한다.

미연합감리교회의 감미준(감리교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의 40대 목회자 30여명이 2003년 10월 29일(월)부터 11월1일(수)까지 세이비어교회를 방문하고 미래목회의 대안으로서의 세이비어교회 모델과 비전에 대해 논의하고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향한 언약을 제정하는 모임을 가졌었다.

당시 참석자들이 고든 코스비목사의 주제강연을 듣고 대담하는 시간에 김정호목사(플러싱제일연합감리교회)가 코스비목사에게 ‘목사님이 일생동안 붙잡고 사역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말씀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였다. 고든 코스비목사는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마태22장 35절로부터 40절까지의 말씀이라고 대답하였다. 자신이 추구하는 세이비어교회의 핵심 목회철학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인 내적인 여정Inward Juorney과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인 외적인 여정Outward Journey의 철저한 균형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필자가 23년 간 미국에 살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교회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시에 위치한 세이비어 교회The Church of the Savior이다. 1947년 고든 코스비에 의해서 설립된 이 교회는 영성과 사역의 철저한 균형을 강조하는 입교과정과 고도의 훈련을 통해 100여명 정도의 교인으로 미국의 교계를 움직이는 혁신적인 교회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세이비어교회가 개척 때부터 지향해 온 목회철학은 “1) 영적인 삶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2) 예수 중심의 사회적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를 섬기며 3)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며 4) 용기와 희생적인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원동력이 되어 시작된 ‘희년사역‘Jubilee Ministry은 1960년도에 지역사회 사역인 카페와 서점이 동시에 운영되는 ‘토기장이의 집’ 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계속해서 저임금 가족을 위한 주택보급사역을 실시하고, ‘그리스도의 집’과, ‘사마리아인의 집’, ‘미리암의 집’ 등의 치유사역을 통해 빈민지역의 주민들과 실업자, 노숙자,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들을 치유하고 재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 70년의 역사를 통해 이제 세이비어교회는 7개 분야에 45가지의 연관된 지역사회사역을 진행하며 연간 2000만 불 이상의 예산을 집행하는 역동적인 교회가 되었다.

세이비어교회는 모든 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행함’ 이전에 ‘존재’를 중시하며 무엇보다 ‘관상의 삶Contemplative Life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적인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Henri Nouwen도 이곳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라‘Life of the Beloved를 집필하며 영향을 받았다. 필자 또한 1994년부터 세이비어교회와 연관을 가지고 ‘섬김의 리더십 학교’Servant Leadership School를 통해서 훈련과정을 이수하면서 나의 영적여정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고든 코스비 목사가 개척한 와싱톤 디시의 세이비어교회는 지난 70년간의 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을 격려하여 그들 가운데 참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세이비어교회는 오늘날의 교회의 기준으로 볼 때 하나의 작은 교회로 남아 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대형교회들이 있다. 그리고 그 교회들은 다 나름대로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은 세이비어교회는 이 시대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 미래목회에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교회이다.

 

   
 

세이비어교회의 개척자인 고든과 메리 코스비는 버지니아주의 린치버그에 있는 리버몬트 에비뉴 침례교회에 메리의 부친이 담임목사로 부임해 왔을 때 처음 만났다. 그 당시 메리는 10세였고 고든은 15세였습니다. 그 당시 미국 남부의 교회는 종교생활뿐 아니라 사회생활, 사교생활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한 교회 안에서 친하게 지내며 자라났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든은 19세가 되자 곧바로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그곳에서 몇 년을 지냈다. 그때 그는, 일반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시드니 햄든 대학으로 편입하여 공부했다. 그리고 다시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남침례교신학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마쳤다. 고든은 신학과 대학 두 과정을 동시에 공부하여 졸업하였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8일 후에 고향교회 목사님 딸인 메리 켐벨과 결혼하게 되었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고든은 그가 신앙생활을 하며 보고, 알고 있는 교회와 신약성서에서 읽은 교회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인 메리에게 어떻게 하면 이 둘 사이의 불일치를 줄이고 온전한 교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토론하였다.

새로운 교회에 대한 열망은 고든에게 있어 선천적이고 매우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그는 15세 때부터 당시 버지니아 린치버그 교외의 조그마한 흑인 교회의 교인을 섬기는 설교자로 3,4년을 보낸 적이 있다. 한번은 흑인동네를 방문하던 길에 오래되어 버려진 건물 한 채 발견했는데, 그것은 이 지역에 있는 교회 중 하나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교회는 목회자를 부를 여유가 없기 때문에 교회 문을 닫았다고 한다. 고든은 그들의 목회자가 되겠다고 제안했고, 그는 그 다음 주일 그 교회에 가서 시범으로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신학교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매 주일마다 그곳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어떤 면에서 신학교에서 배울 때보다 더 많이 그를 성숙시키는 기회가 되었고 일생동안 새로운 교회에 대한 열망을 가진 출발점이 되었다.

신학교를 마치고, 고든와 메리는 버지니아 알링톤에 있는 작은 침례교회로 부임해 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1년 동안 사역하였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고든은 군목으로 섬기게 되었다. 2년 반 동안 군목 생활을 했으며, 그는 101공수부대와 함께 유럽으로 파병되었다. 그가 참전한 곳은 놀만디 상륙작전 등 2차세계대전중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다. 그는 죽어가는 장병들과 함께했고, 그들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맞는 것을 보았다. 그동안의 그의 교회생활은, 그때 그가 보았던 삶과 죽음의 경험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2년 반 동안의 고된 시련을 거치면서 그는 다시 전과 같은 목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메리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는 어떤 형태든 새로운 목회를 시작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새로운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는 예전의 조직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가 전장에서 보고 경험했던 것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때 고든이 생각한 새로운 교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새 교회는 인종적으로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1940년대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지역에서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도 당시 그가 속한 남침례교회에서는 그를 파송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는 교인들의 신실성Integrity과 책임감Accountability을 철저하게 실현하는 교회였다. 고든은 전쟁 기간을 통해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병사들이 어느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했느냐는 것이, 그들의 삶과 죽음의 방식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든은 어떻게 그의 비전을 현실화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러한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큰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는 당대 재벌인 존 록펠러가 쓴 사설을 읽었다. 그 사설의 내용은 에큐메니컬 운동과 뉴욕시에 있는 리버사이드교회를 통해 록펠러가 그 운동에 참여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든은 록펠러의 동역자들과 자신의 비전을 나누기 위해 뉴욕에 찾아갔다. 그들과의 만남이 그의 새로운 사역에 뒷받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혹은 그들이 사역에 재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만남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 말미암아 고든은 큰 것을 통해 엄청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있었다. 이것이 그가 군목 생활로부터 돌아온 첫 해의 일이었다. 결국 고든은 전쟁을 통해 얻은 좌절과 경험을 구체적으로 사역에 적용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고도의 영적훈련을 받은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이때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그 후 메리의 아버지가 와싱톤 근교의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에 부임해 오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와싱톤 지역을 기반으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다음 단계는 그들의 비전을 위해 워싱턴 지역에 건물을 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든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37달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첫 번째 건물을 위한 재정의 전부였다. 그리고 와싱톤 디시의 19번가에 위치한 한 작은 건물을 구입했다. 그는 1946년 그의 아내 메리 캠벨 코스비와 다른 일곱 명과 함께 그 새로운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딛었고, 그곳에서 1947년 10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학교The School of Christian Living라는 이름 아래 세이비어교회의 최초 입교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첫 번째 교인 헌신서약자를 세우게 되었다. 이것이 세이비어교회의 시발점이었다.

19번가에 위치한 그 건물은 오래되고 초라했지만 보수작업을 마쳤을 때, 그 건물은 아름다운 작은 예배당이 되어 있었다. 메리는 예술적인 재능을 살려 매우 그 건물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고든부부는 그 후 어떤 사역을 하던 빈민지역의 사역이라 하더라도 모든 공간들은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꾸미도록 노력했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영혼을 살찌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이비어교회가 세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에 세이비어교회가 소개되고 세이비어교회의 교인이었던 엘리자베스 오코너Elizabeth O’Connor가 세이비어교회의 목회철학을 담은 필독서인 ‘헌신에로의 부름’Call to Commitment과 ‘내적인 여정. 외적인 여정’Journey Inward, Journey Outward이 소개되며 21세기의 교회가 갖추어야 될 가장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모델로 주목받게 되면서 부터이다.

소문을 듣고 교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교회의 목회철학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학교’에 참여하여 훈련받기 시작하였고, 한 사람 한 사람씩 결단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모든 사람들을 다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여, 1976년 두 개의 다른 신앙공동체Faith Community로 교회를 나눌 때까지 120명 정도의 교인들이 있었다.

교회가 시작되며 시행했던 중요한 한 가지는 모임의 조직과 훈련이 매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 모임과 훈련이 바로 1988년에 세워진 섬김의 리더십 학교The Servant Leadership School로 발전하였고, 지교회 형태의 10개의 신앙공동체Faith Community가 세워졌고 각 신앙공동체는 독립된 비영리단체로 등록되었고, 각 공동체마다 소그룹 사역공동체Mission Group들이 시작 되었다.

사역공동체를 만들기 전에 사역초기에 그들은 소그룹 혹은 성장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소그룹들을 조직했다. 소그룹은 웨슬리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만약 그들이 소그룹 안에서 사람들을 온전하게 양육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바로 사역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역초기 세이비어교회의 비전에 동의하고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영적인 훈련Inward Journey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외적인 실천Outward Work에 참여함으로써 부담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손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를 원하지만 영적인 훈련을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로 그저 세상을 고쳐보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그러나 고든에게 있어서 영적인 훈련과 외적인 실천, 이 두 가지의 통전적인 적용은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목회철학이었다.

누구나 기도모임, 성서공부모임, 심리치료모임 등 그들이 원하는 모임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모임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교인의 자격은 영적인 훈련과 외적인 실천을 함께 갖추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그룹들은 단지 각각의 개인적인 사역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협력사역을 이루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세이비어교회는 정식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1) 하루에 한 시간 씩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 2) 약 3년이 소요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학교와 서번트 리더십 학교의 훈련과정에 참여 그리고 지속적인 연장교육에 참여하는 것 3) 온전한 십일조헌금 드리기 4) 소그룹 사역공동체 모임에 한 주간에 한 번씩 참여하는 것 5) 교회와 연관된 45가지의 지역사회 사역에 은사별로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것 6) 자신의 삶의 전 지경을 포함하는 영적자서전을 써서 공동체에 발표하는 것 7) 매년 각 신앙공동체 관상기도 영성수련회에 참석하는 것 그리고 8) 교인의 자격을 매년 갱신하는 것 등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방하여 동료교인들과 함께 좀 더 깊은 공동생활을 추구하는데 동의해야 한다. 이같은 교인의 자격은 세이비어교회가 초기부터 지향해 온 가장 중요한 입교과정의 원칙이다.

1950년대 초부터 세이비어교회는 소명에 관해 분별하는 사역에 집중했는데, 핵심은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나는 이것을 감당할 것입니다”이다. 우리 모두는 전적으로 영적인 삶을 살도록 부름 받았다. 그것은 기도와 예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넓히고 사랑하는데 방해되는 것을 다루는 것, 또한 영성일기를 작성하고 영성수련회를 갖는 것 등 영적인 훈련 아래 속하는 것들이다. 이런 영적 훈련들을 거쳤을 때 비로소 이 세상에 진정으로 가치 있고 도전을 줄 수 있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훈련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고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교회를 이루는 일입니다. 교회를 이룬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여 진정한 교회가 되는 존재의 물음입니다. 여럿이 연합하여 하나의 완전을 이루어 내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우리의 비전, 프로그램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면 우리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 관한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목회모델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근본적으로 여러 가지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들 모두는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다 성서적인 의미에서의 교회에 관하여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교회라는 이름의 어떤 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그 교회가 이 세상의 문화에 맞서고 반대하는 것이 없다면 그 모임이 신약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사역을 시작할 때, 그 사역들이 여러 가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가졌던 보다 근본적인 것들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새로운 비전이 주어지고 다시 그것을 추구하게 되지만, 리차드 로Richard Rohr가 말하는 ‘근원 이야기founding myth’에서 다시 멀어지게 되고 만다. 다시 말해 그 비전들이 나오게 된, 보다 근본적인 것들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성육신, 그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우리의 근본적인 출발점이 되어야한다.

그것은 우리가 신앙의 연조가 깊어질수록 이제 막 그 근본적인 것에 관하여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경우 근본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진실 되게 주님으로 섬기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는 그저 이 세상의 문화에 중독되어 살 때가 많다. 근본적인 원칙들은 우리가 그것을 처음 발견하여 우리 가운데 주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 원칙이 우리 가운데 유효한 것이 되어야만 한다.

지금도 세이비어교회는 교회가 위치한 와싱톤 디시의 아담스 몰간 지역의 백여명 이상의 빈민 청소년들을 위한 자원봉사자들의 일대일 멘토링과 방과 후 과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매년 천여명의 실업자들을 훈련시키고 취업시키는 취업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34개의 침실과 의료진이 잘 갖추어진 미국의 유일한 노숙자병원인 그리스도의 집, 가난한 노인들을 위한 복지사역, 매년 오백명이 넘는 마약중독자, 알콜중독자들을 위한 미국의 국가적 중독사역 모델인 사마리아 여인숙사역 등을 진행하고 있다. 주거사역, 치유사역, 어린이와 가정사역, 취업과 성인교육 사역, 영성사역 등 45가지의 연관된 사역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고든 코스비목사는 세이비어교회가 방대한 사역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큰 교회가 아닌 작은 공동체로 남아 있기를 희망하였다. 그는 “많은 숫자는 거의 필연적으로 비인격화와 제도주의로 향하고 헌신을 약화시킵니다. 큰 규모는 실제로 효과를 반감시키며 이것은 실로 반문화적이어서 깊이를 가지고 문화로의 중독을 거부하고 진정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세이비어교회는 숫자를 통해 오는 힘의 유혹을 의도적으로 거부합니다.”고 말하고 계속해서 “내적인 영성, 외적인 사역, 그리고 사랑과 책임 있는 공동체에 중심을 둔, 작지만 고도로 헌신되고 훈련된 사람들의 공동체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고 강조한다.

코스비목사가 2008년 은퇴한 후 세이비어교회는 독특하게도 후임자를 정하지 않았다. 대신 세이비어 본부교회를 해체하고 그동안 함께 사역하였던 10개의 신앙공동체Faith Community를 독립시켜 사역하고 있다.

필자는 위기 가운데 있는 한국교회가 세이비어교회와 같이 교회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개교회주의, 성장주의 일변도의 철학에서 벗어나 중대형교회는 한국교회의 80%가 넘는 소형교회와 미자립교회의 역량 있는 목회자들과 교회를 지원하고 큰 교회를 작은 교회로 나누어 함께 함께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2010년 10월에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열린 “한국교회 사회복지 엑스포 2010”의 국제 심포지움에서 한국교회 미래목회의 대안모델로 세이비어교회가 소개되었다. 고든 코스비목사 대신 국제 심포지움에 발제한 세이비어교회의 백카 스텔Becca Stelle목사와 필자가 강연 준비를 위해 세이비어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코스비목사께 한국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씀을 물었다. 연로하지만 아직도 청년의 눈빛을 가진 93세 된 코스비목사님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리더들이 참된 존재가 되어야 하고, 교회는 교회가 위치한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지역교회들이 함께 연합해서 사역해야 합니다”

고든 코스비 목사는 세이비어교회를 통해 65년 넘게 예언자적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다 온전히 삶으로 구현하도록 도전했고, 그 자신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예수를 따르는 삶에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게 일생동안 헌신했다.

고든은 동시대 교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영역의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모든 압제당한 자들을 향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던 “진짜 예수”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도록 도전했다. 그는 영적인 삶은 내적인 여정Inward Journey과 밖으로의 여정Outward Journey의 두 가지가 공동체 안에서 서로 통전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항상 강조했다.

고든은 일생동안 와싱톤 디시 빈민지역에 스스로 작은 신앙공동체 교회들을 개척하고, 비영리단체 사역을 조직하고, 공동선을 추구했었다는 점에서 꿈꾸는 이상가인 동시에 그것을 실천하는 실천가였다. 임종 시 까지 그는 감옥제도를 폐지하고 출소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사명을 하는 세이비어교회의 가장 최근에 시작된 사역공동체Faith Community 가운데 하나인Becoming Church의 멤버였다.

이 시대 교회는 여러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가 이 시대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 현대교회의 위기에 대한 대안 중 하나가 세이비어교회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교회가 교회개척부터 신약성서가 조명하는 참된 교회의 본질을 신실하게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절기에 교회역사의 교훈과 세이비어교회의 모델의 적용점을 각자의 교회와 사역에 상황화Contextualization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

   
▲ 후러싱 제일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세미나 ‘개혁의 역사에서 길을 찾는다’에서 강의하고 있는 유성준 교수(협성대)

후러싱 제일교회의 500주년 기념 세미나 ‘개혁의 역사에서 길을 찾는다’의 하반기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5강: 7월 5일(수) ‘고든 코스비에게 길을 묻는다’(유성준 목사)
6강: 8월19일(수) ‘여성, 평신도에게 길을 묻는다’(이성옥 전도사, 김명래 전도사)
7강: 9월 13일(수) ‘2세들에게 길을 묻는다’(2세대 목회자들)
8강: 10월 11일(수) ‘차세대에게 길을 묻는다’(차세대 목회자들)
지난 상반기 동안에는 마틴 루터, 도산 안창호와 같은 역사 속에서 사회의 개혁을 이루었던 분들의 삶과 사상을 배우면서 우리의 갈 길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 7월부터 시작되는 하반기는 동시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가 가야할 길을 실제적으로 찾아 나가는 시간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첫번째 시간으로 7월 5일 수요일에 한국의 써번트 리더십 훈련원의 유성준 목사님을 모시고 ‘고든 코스비에게 길을 묻는다’(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 교회 이야기) 라는 주제로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4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어렵다. (175.XXX.XXX.254)
2017-07-20 13:42:35
가진것을 내어놓고 특권을 포기하라는건데
신학대 교수나 기관목회하는 목사들 부터 목회자 은급 받지말아봐라
그건 또 싫지? 신뭐씨로 은급 말썽인데
강단에 서지도 않으면서 나 목사요 거들먹거리며 교직에서도 받고
목회자 은급도 받고 2중 3중으로 받는 그 행동들부터 멈춰라
리플달기
0 0
kingkang2518 (58.XXX.XXX.184)
2017-07-13 18:33:34
길에게 길을 묻자
고든 목사가 철저하게 예수를 따른다면
그의 말을 경청하고 배워볼 필요는 있다.
리플달기
0 0
포이멘 (183.XXX.XXX.239)
2017-07-10 06:19:30
고든 코스비 목사에게 길을 묻지 말고

예수님께 물어라.
리플달기
3 4
도저히 (99.XXX.XXX.49)
2017-07-07 23:51:07
할수 없는 거네요. 한국인으로써...
계급문화속에 사는 한국인에게 이 계급문화를 내 놓으라고 하는 것 자체가 너 죽으라고 하는 이야기인데...
누가 할까요.
목사 조차도 싫어하는데,
아무튼 시도는 좋으나 할수록 절망뿐이 보이지 않습니다.
리플달기
2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