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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표준설교] 마음의 할례
김동환  |  drdonghwan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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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6월 30일 (금) 00:34:17
최종편집 : 2017년 07월 03일 (월) 00:36:00 [조회수 : 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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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박사의 ‘풀어쓴 웨슬리 표준설교 44편

 

누구나 알아야 할 구원의 핵심을 다룬 설교, 웨슬리표준설교’

누구나 쉽게 읽고 응용하도록 풀어 쓴 설교, ‘풀어쓴 웨슬리표준설교’

 

7월에 함께 읽을 설교

제 목: 마음의 할례

원문제목: The Circumcision Of The Heart

 

성경본문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9)

 

설교 읽기를 위한 도움말 

웨슬리 설교의 전체 주제가 ‘하늘가는 길’이라 말씀 드렸습니다. 웨슬리 표준설교 중 이 주제를 전체적으로 개괄한 설교목록들은 이미 말씀 드린 바대로, 설교 4: ‘성경이 말하는 참된 기독교,’ 설교 7: ‘하늘가는 길,’ 그리고 설교 13: ‘마음의 할례’ 세 편입니다. 이번에 다룰 설교는 바로 이 설교목록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이 설교는 웨슬리가 서른 살이 막 되기 전 1733년 1월 1일 옥스퍼드 대학교회였던 성 메어리 교회에서 행했던 설교입니다. 이 때는 웨슬리 형제와 옥스퍼드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었던 ‘홀리클럽’이 왕성하게 활동할 때였습니다. 홀리클럽은 매우 엄격한 수도원적 삶을 살아보려 했기 때문에 때로는 메도디스트(규칙주의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습니다. 이 때는 메도디스트의 활동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메도디스트의 엄격한 삶의 방식에 대해 의심의 시선이 점차로 드리워진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웨슬리는 이에 대한 설명의 필요성을 느꼈고, 마침 대학교회에서 설교할 기회가 주어지자 메도디스트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교하게 다듬은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첫 초안을 준비하는 데만 무려 30시간이 들었다고 하니 웨슬리가 얼마나 이 설교에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설교에서 웨슬리가 주안점을 둔 것은 메도디스트들이 추구하는 믿음 생활의 본질이었습니다. 웨슬리는 여기에서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구원의 처음과 끝을 매우 정교하게 설명해 가는데 30살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기록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심오한 진리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비교적 젊은 시절에 기록된 이 설교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들은 나이를 먹은 이후에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칼빈이 26세의 약관으로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명저 ‘기독교강요’ 초안을 작성한 후 한 참 세월이 지나 네 차례의 증보를 거친 다음에도 그 기본 사상의 변화가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설교 이후 웨슬리가 2년 반 동안 6개의 대학에서 설교를 하게 되는 유명인사가 되게 됩니다. 말하자면 이 설교 이후 설교자 웨슬리의 삶이 본격화 되었던 것이지요.

 

   
 

풀어 쓴 설교

 

 

서 론

교회 역사상 늘 있어왔던 일 중 하나가 설교자가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선포하면 이 가르침을 ‘새로운 것’이라며 놀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이상한 것’이라 하며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행 17:20)고 반응하기도 합니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믿음의 본질에서 멀어져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놀랍게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부활, 그리고 이 사건을 믿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곧 ‘이 세상에 대하여 죽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살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형식만 있지 상상은 아무런 능력이 없는 외식적 믿음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 감사치도 영화롭게도 할 수 없는 ‘자연적 인간’이 이 핵심적인 기독교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에게는 이 진리가 수수께끼로 다가 옵니다. 그들은 이 세상과 더불어 살아 가는 자이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죽은 자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의 사건을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제 멋대로 해석하면서 쓸데 없고 무익한 가르침이라 치부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잠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어서, 곧 영적인 감각이 죽어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고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마음의 할례’라는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한 사람들은 영적인 태만함 때문에 마음의 할례에 내포된 진리를 외면하고, 영적 감각이 상실된 자연적 인간들은 마음의 할례라는 말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할례가 무엇입니까? 이는 법조문이 아닌 영에 의하여 마음에 받는 할례라고 말할 수 있는데(롬 2:29), 이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마음의 할례는 몸에 가하는 외적 할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롭게 된 혼과 마음과 영의 올바른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거룩함’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아버지께서 온전한 것처럼 온전하게 되는 것이며, 마음과 삶이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만 인식될 수 있으며 이 이 할례를 받은 자는 이 세상에 대해서는 어리석은 자요 죽은 자가 되지만 하나님께는 착하고 성실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중대한 증표입니다(마 25:21). 유대인들이 육신의 할례로 자신들이 유대인인 것을 입증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할례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인 것을 입증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같은 마음의 할례에 이를 수 있을까요?

 

[설교 이해를 위한 팁] 육신의 할례와 율법의 길

할례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남자 아이의 성기 표피를 잘라내는 의식입니다. 이 할례의 유래를 밝히는 창세기 17장 9-14절에 기록에 따르면,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요구하신 언약의 증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겠다는 언약을 하셨는데 그들은 할례로써 그 언약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언약을 크게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할례의식을 통해 자동으로 하나님의 백성(자녀들)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할례의식=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할례는 ‘무효’라 선언합니다. 할례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겠다는 서약이라는 것이지요(롬 2:25 참조).

 

 

  1. 마음의 할례 사건의 단계, 칭의

마음의 할례는 먼저 참된 회개에서 출발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어떤 일을 잘못했다’ ‘저지른 잘못을 후회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보다 훨씬 깊은 차원의 의미를 갖습니다. 참된 회개는 다음 세 가지 내용들을 포함하게 됩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에 대한 바른 판단’입니다. 이는 곧 자신이 지닌 부패한 본성을 철저하게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자기자신에 대한 그릇된 평가, 즉 교만을 의미합니다. 이 교만은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헛된 욕망’과 동일한 것으로 사탄의 형상입니다. 여기서 ‘나는…이다”라는 헛된 망상, 달리 말하면 ‘아집’이 만들어 집니다(계 3:17). 회개는 바로 이 같은 우리의 실상, 곧 ‘비참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모습’을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둘째는 ‘이런 상황에 처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부패한 본성을 목도하면서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온전히 변화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죄에 죄를 더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실상을 명확히 알고 있기에 세상 사람들이 칭찬하거나 심지어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해도 마음을 팔거나 귀를 기울일 수 없습니다. 셋째는 ‘복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의 실상을 분명히 알게 되면, 또한 자기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부터 벗어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은총 가운데 예비하신 복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죽음의 문 앞에서 죽음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렇게 진실로 회개하는 자는 하늘이 멀지 않습니다.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진실로 회개 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영적 세계에 눈 멀어 있던 이에게 빛과 같습니다. 눈먼 자에게 갈 길을 알려주며, 흑암 속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춰주며, 어리석은 자에게 진리를 깨우쳐 줍니다. 부패한 본성에서 만들어진 편견과 이 세상 위에 터 닦은 어리석은 지혜(고전 1:20)를 단번에 허물어뜨리는 강력한 무기인 것입니다. 참된 진리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온갖 망상과 장애물들을 쳐부수고 참된 진리의 근원 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이 믿음은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 오셨다는 사실(딤전 1:15)과 우리 죄를 자신의 몸에 온전히 지우신 사실(벧전 2:24), 그리고 우리 죄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요일 2:2)을 밝히 드러내고 확신케 합니다. 곧, 죄인인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대한 거룩한 확신이며 성령으로서 우리 가운데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게 하고 확신케 합니다. 이 인식과 확신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는 내 안에서의 교제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 안에 사는 사람은 죄의 사슬에서 해방됩니다. 죄 사함의 은총을 입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게 됩니다.

 

  1. 마음의 할례 사건 둘째 단계, 성화

마음의 할례의 첫 단계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의롭게 되는 칭의의 단계라면, 두 번째 단계는 실제로 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변모되는 성화의 단계가 할 수 있습니다. 회개를 통해 복음을 믿어 의롭게 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선물, 곧 성령을 부으십니다. 성령이 임할 때 우리 영혼은 거룩하게 변화되어 실제로 의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데 이 일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자는 그 자신의 영이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게 됩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끊임 없이 그 영과 더불어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해 그들이 생명의 길을 걷고 있음을 확증해 주기 때문에 그들은 소망을 품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 가게 됩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영광의 면류관을 준비해 두셨다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늘을 온전히 누릴 때까지 그 어떤 도전이나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먼 대양을 내다 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순간순간 일렁이는 파도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묵묵히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교만과 아집이 만들어내는 허상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지속적인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합니다. 어둠의 행위를 피하고 모든 부정한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갈 뿐입니다. 이 길은 한 순간만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눅 9:23) 날마다 행합니다. 자기의 옛 의견, 정열, 기질을 제거하여 흠 잡힐 것이 없도록 영과 혼과 몸을 완전히 순결케 해 가는 자기 부정의 삶을 늘 살아 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은 마음의 할례를 받아 성화의 삶을 사는 삶의 샘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약한 자가 되었고 모욕을 당했으며 궁핍과 박해와 곤궁을 기뻐했습니다(고후 12:10). 그는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며 앞에 놓인 면류관의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목표를 향해 달음질했던 것입니다.

 

  1. 마음의 할례 사건 셋째 단계, 완전

마음의 할례 사건의 세 번째 국면은 ‘완전’의 단계입니다. 이 완전의 단계는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즉, 완전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가장 중심적인 특징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완전에 이른 자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드릴 사랑을 결코 다른 피조물과 나누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한 가지 마음으로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을 행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행합니다(고전 10:31). 그런데 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이웃을 향하게 됩니다. 사랑이 지닌 속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본질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할례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완성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최고 강령이요, 율법이 성취되는 길입니다.

 

[설교 이해를 위한 팁] 마음의 할례와 믿음의 길

할례의 참된 의미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겠다는 서약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죄에 물들어 있어 율법을 온전히 지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할례의식에 주목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 행하는 할례’입니다. 이 할례는 율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면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온전히 살아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요.

 

 

결 론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정리해 봅니다. 먼저 진심으로 회개한 자라 할 수 잇습니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죄로 물들어 본래적인 의로부터 이탈되어 부패하고 육신적 생각으로 가득 차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않는 자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 끊임없이 심판의 위협 속에서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나아가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자기에게 전혀 없음을 인식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예비하신 복음의 은총에 주목합니다. 그는 기꺼이 복음을 믿습니다. 자연적 인간의 시각을 버리고 믿음의 눈으로, 다시 말해 하나님 안에서의 시각으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믿음의 길을 통해서 경험됩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의 영과 함께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롬 8:16). 그러므로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상과 면류관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 할 것을 바라면서 기뻐합니다(롬 5:2). 현재의 수고나 환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앞에 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는 점점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육체와 혼과 영혼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 사랑은 또한 우리의 이웃을 향합니다. 그들을 자기의 몸처럼 사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할례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마음의 할례 받은 자의 발걸음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으십시오. 육신의 할례가 아닌 심령 안에 이루어지는 할례를 받으십시오. 새롭게 된 혼과 마음과 영의 올바른 상태가 회복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십시오. 마음과 삶이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아 아버지께서 온전한 것처럼 온전하게 되십시오. 풍성한 하늘나라의 삶을 누리십시오.

 

   
▲ 김동환 교수

웨슬리표준설교를 자신의 목회현장에 적용하기를 원하는 교회가 있으시면 김동환 박사에게 연락바랍니다(이메일: drdonghwan1@gmail.com).

웨슬리표준설교를 기초로 한 통합적 목회 planning(예배와 설교, 속회, 교회교육 및 제자훈련)을 각 교회 사정에 맞게 준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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