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말한다. 복음주의(evangelism)는 가톨릭교회(Catholicism)의 신앙에 대립하는 말로서 ‘오직 성경’을 강조하는 개신교(Protestantism)의 신학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된 전통적인 보수주의 신앙을 가리킨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에 자유주의 신학이 위세를 떨치자 20세기 초에 보수적 신앙을 고수하려는 근본주의 운동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전통적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는 신학적 입장이 다르지 않지만, 근본주의는 이성적 사고와 과학으로부터 자신을 옹호하려는 수세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에 와서 근본주의의 반지성적인 면을 비판하면서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신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이 외면하는 현대 사상이나 과학적 지식을 받아들이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근본주의자들이 반대하는 비평적 성서해석도 받아들인다. 한 마디로 신복음주의자들은 현대 문화에 개방되어 있다. 전통적 복음주의와 근본주의가 보수적인 반면 신복음주의는 진보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주의는 모름지기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보적인 신복음주의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자유주의자로 매도당하기 쉽다. 그러나 신복음주의도 복음주의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 현대 문화에 열려 있는 신복음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자는 반드시 시대를 외면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21세기의 복음주의자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제 『교회 용어 사전』(생명의 말씀사, 2013)을 참고하여 앞에서 언급한 전통적 복음주의, 근본주의, 신복음주의 신학의 흐름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목창균의 『현대신학 논쟁』(두란노, 1995)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복음주의의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통적 복음주의
     
복음주의라는 말은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가톨릭교회의 교황주의와 성례주의에 대항하여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믿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복음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시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기독교 개혁운동을 표현하는 신학 용어이다. 복음주의자는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고 믿는다. 또한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동정녀 탄생, 대리적 속죄를 위한 죽음, 육체적 부활, 승천, 재림을 비롯해서, 죽은 자의 부활, 최후의 심판, 이신칭의, 내세의 영생 등을 믿는다.

이러한 복음주의는 16세기 이후 지속되어 온 개신교의 전통적인 신학이다. 이 전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금도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교단의 명칭에 복음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교단들이 있다. ‘독일 복음주의 교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chland)나 프랑스의 ‘복음주의 교회’(Églises évanǵeliques)가 좋은 예이다. 그러나 교단 명칭에 관계없이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등의 개신교회들에서는 복음주의 신학을 중심 신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0세기에 와서는 미국 등지에서 전통적 복음주의의 반지성적인 면을 비판하면서 진보적인 신복음주의 사상이 나타나서 그들도 자신들의 신학을 복음주의라고 부르기 때문에 용어에 혼란이 생겼다. 이런 혼란은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서 복음주의라는 말이 철저하게 성경의 권위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와 신복음주의의 진보주의가 구분 없이 사용된다.

하지만 신복음주의자들이 말하는 복음주의란 온전한 복음주의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좁은 의미의 복음주의에 국한되어 있다. 철저한 보수주의에서는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고 '개혁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복음주의'란 말이 원래 종교개혁에서 시작되었음을 감안한다면 ‘개혁주의’는 원래의 취지를 잘 살린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근본주의

근본주의란 20세기 초에 일어난 보수주의 신학운동이다. 근본주의는 협의적으로는 성경의 무오성과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것에 연관되나, 광의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의 복음주의 체계를 이르는 말이다. 1919년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결성된 ‘세계기독교근본주의협회’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고, 특히 우리나라를 위시한 아시아권에서는 엄격한 보수주의로 인식되고 있다.

근본주의가 내세우는 주장은 1. 성경의 무오성, 2.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3.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4. 육체의 부활, 5. 그리스도의 재림 등이다. 여기 열거된 근본주의의 신학적 입장은 전통적 복음주의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근본주의자들이 근본주의 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은 계몽주의 이후로 대두된 이성적 사고와 과학으로부터 복음주의적 신학을 옹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그들의 선배 복음주의자들이 직면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이다.

그들이 문자적 의미대로 성경의 복음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현대 과학이나 비평적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창조론을 옹호하기 위해서 진화론에 반대하고 창조과학을 내세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무오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축자 영감설을 내세우면서 성서 비평을 거부했다.

신복음주의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에 대한 일종의 수정주의 운동으로, 20세기 중엽부터 미국 신학계에서 대두된 신학적 경향이다. 이성과 과학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함으로써 근본주의가 안고 있는 편협성과 폐쇄성을 극복하고 학문적 수준의 향상을 꾀했다. 그리고 영혼구원 일변도에서 벗어나 복음의 현실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보임으로써 보수진영 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신복음주의의 특징을 요약하면, 1. 근본주의의 학문성과 사회·문화성 및 역사성의 결여를 비판, 2. 과학과 성경의 조화를 중시하고 성경 비평을 수용, 3. 사회적 변혁에 대한 관심, 4. 신학적 노선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와 협력 등이다.

복음주의의 전망

복음주의는 전통적으로 체험과 정서를 강조한 반면, 지성과 문화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것은 대중 운동 차원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이룩했으며 복음의 단순한 진리로 수백만 명의 신자를 양육했다. 반면, 지성적인 면에서는 취약하여 진지한 지성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실패하고, 대학교와 예술, 고급문화의 영역을 포기했다. 그것이 복음주의의 스캔들로 지적되었는가 하면 심지어 복음주의에는 신학이 없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신복음주의는 현대 미국 교회에 복음주의의 부흥을 일으켰으며, 반지성적인 보수주의 학계에 지성적 활력을 불어넣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현대인에게 현대의 언어로 복음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면에서 전통적 복음주의와 근본주의가 보수적인 반면 신복음주의는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중요한 업적은 현대 후기의 급진 신학에 굴복하지 않고 근본주의적 극단성의 늪으로부터 복음주의 신학을 구출하는 데에 크게 공헌한 점이다.

1990년대 이후 신복음주의자들이 복음주의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복음주의 학자들은 대부분 이 그룹에 속한다. 그들로 인해서 복음주의 지성의 르네상스가 꽃피고, 복음주의 서적 출판이 활성화했다. 따라서 이들이 21세기 복음주의 신학계를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겠다.

마치면서

지금까지 『교회 용어 사전』을 참고하여 복음주의 신학의 흐름을 확인하고 목창균이 전망하는 복음주의의 미래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목 교수뿐 아니라 『교회 용어 사전』에서도 많은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지지하는 근본주의가 반지성적이고 편협하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근본주의의 문제점을 수정하여 현대의 지성에 맞게 복음을 설명하려는 신복음주의가 대두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목 교수는 진보적인 신복음주의가 21세기 복음주의 신학계를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반지성적인 근본주의를 고수하려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신복음주의적 자세를 취하는 사람을 자유주의자로 혹은 이단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복음주의자는 현대의 문화를 외면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복음주의 신학의 흐름을 모르기 때문이다.